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낙화루 1권 11화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2)
도착한 천태성은 거지 한 명을 불러 물어 보았다.
“저기 최근에 장원을 차지한 집안이 어딘지 아시오?”
“과거 말이오?”
“예.”
“당연히 알다마다 크게 잔치해서 음식을 많이 얻어 먹었다우.”
천태성은 그 거지에게 그 남자의 집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계륜장(契莊倫場).
이것이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송시영.
이번 과거에 급제하여 황궁 중앙 관리로 입궁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항주에 파다했다.
중앙 관리라고 하나, 처음 주어지는 벼슬이라 그리 높지 않았는데 급제라는 이유로 중앙에 가게 되었다.
밖에서 본 장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곳이군.’
천태성은 그 사람의 집을 찾아왔는데 막상 들어갈 구실이 없었다.
‘그래도 왔는데…….’
대문 안에서 누군가 마당을 쓸고 있자 천태성은 그를 불렀다.
“이보시오!”
“예에.”
“혹시 이곳이 그 장원 급제한 송시영이라는 사람의 댁이 맞습니까?”
계륜장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 같은데 그는 천태성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맞습니다만 어인 일로 오셨소?”
“별 다른 일은 아니고 혹시 그분 계십니까?”
하인은 천태성의 복장이 평범하였으나 분위기에 눌려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입궁하셔서 지금 계시지 않소. 성함을 말씀하시면 기별을 넣어 드리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럼.”
‘그 사람을 찾아 황궁에 들어갈 수도 없고……. 황궁…… 황궁!’
천태성은 순간 주동동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주동동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궁과 연이 있을 거라는 천태성의 생각이었다.
그 길로 낙화루로 돌아온 천태성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동동은 국자를 부드럽게 놀리며 탕을 끓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방 안에 울려 퍼지는 낭랑한 목소리.
人生無根體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북궁설은 식재료를 들고 오며 주동동의 시가를 이어 불렀다.
주동동의 목소리가 낭랑하였다면 북궁설의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落地爲兄弟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得歡?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그 유명한 도연명의 시였다.
주동동과 북궁설은 겉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작 붙여 놓으면 죽이 척척 맞았다.
주방에 들어온 천태성이 맥을 끊었다.
“풍류라, 후후 얼음땡이 니가 풍류를 알아?”
찌릿.
북궁설은 천태성의 말에 눈에 힘을 콱 주고 노려 보았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된 것인지 천태성은 북궁설을 그대로 무시하고 주동동에게 다가갔다.
“야, 동동.”
“네!”
“너 황족이지?”
“헉! 그걸 어떻게?”
주동동은 상당히 놀랐는지 국자를 솥에 떨어뜨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후후, 맞군.’
그냥 넘겨짚어 말해 본 것 뿐인데 주동동은 천태성이 던진 떡밥을 덥썩 물었다.
“그냥 말해 본 건데, 스스로 가르쳐 주는구나.”
“으윽.”
주동동은 국자를 쥐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볼에 바람을 한껏 집어 넣었다.
“태성이 형 나빠요.”
주동동의 그런 모습에 북궁설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었다.
‘귀엽군.’
북궁설의 미소를 본 천태성은 순간 자신의 얼굴에 핏기가 삭 빠지는 것을 느꼈다.
‘헛. 저 얼음땡이가 웃을 줄 아는구나!’
천태성은 북궁설이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그것보다 너 황궁에 가서 일 좀 해줘야겠는데 할 수 있겠냐?”
“안 돼요! 저 황궁 가면 잡혀가요.”
“흐음.”
천태성은 주동동의 뒷말을 듣지 않아도 대충 이유가 생각났다.
‘그렇겠군 저놈이 황족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다른 황족이 안다면 가만 놔두지 않겠지. 어쩔 수 없군 밤에 몰래 찾아가야겠군.’
천태성은 웬만하면 정석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니 일이 더욱 복잡해질 것 같았다.
‘월담하기 싫은데.’
천태성의 표정이 약간 찌푸려졌다. 한데 이곳에는 황궁 사람이 주동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좌(秘座), 그는 삼십 년 동안 어둠 속에서 황제를 보호했다.
어둠의 세계에서 조용히 명성을 쌓던 그가 돌연 나라의 부름을 받고 황궁에 투신,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실로 몇 십 년만에 고민에 빠졌다.
언제나 황제의 명령에 두말없이 수행하였던 그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검은 복면에 반짝이던 비좌의 눈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 비좌는 천천히 주먹을 쥐더니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
천태성은 자신이 구해준 여인에게 찾아가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내려왔다.
“이젠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거요.”
‘설마 또다시 그 짓 하진 않겠지.’
여인은 천태성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황궁.
과거에 급제한 송시영은 동근 얼굴 형에 큰 눈, 학사모 그리고 수염, 그는 한창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다른 고위 관리들 대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게 고된 하루를 보내게 되고 퇴궐할 시간이 되었다.
황궁의 관리들은 보통 가마나 말을 타고 가지만 송시영은 그냥 자신의 두 다리를 이용하였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으나 그는 말 타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겁이 많았다.
초저녁 대로는 보름달 처녀의 춤사위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다.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을 옮겼던 송시영은 어떠한 물체가 날아와 자신의 이마를 때리자 걸음을 멈추었다.
“아!”
천천히 날아와 부딪혀서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으나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물체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송시영은 반사적으로 아래로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노리개였다.
무심코 노리개를 주워 든 송시영은 잠시 후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반쪽 난 연옥빛 노리개를 든 채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편 계륜장으로 월담한 천태성은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장원이라 그런지 몸을 숨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태성급 정도의 고수가 자신의 기척을 숨기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 그래서 그는 여기가 자기 집인 것처럼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지? 방문마다 열어 볼 수도 없고.’
그때 장원 문밖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천태성은 재빨리 몸을 날려 지붕 위로 몸을 숨겼다.
“나리 오셨습니까?”
하인들은 재빨리 나와 대문을 열고 학사풍의 남자를 반겼다.
동그란 얼굴, 큰 눈에 작은 키,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학사(學士)였다.
하인들과 함께 그를 맞이하는 웬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단아한 차림에 미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한 복장이었으나 머리에 꽂은 비녀만큼은 꽤나 화려했다.
‘저 사람이 송시영이고 저 여자가 부인이겠군.’
궁에서 돌아온 송시영의 표정은 많이 상기되고 좋지 않았다. 그것을 궁금하게 여긴 여인이 송시영에게 물었다.
“궐에서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아니오. 좀 고단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천태성은 송시영이 들어가는 방을 확인한 후 밤이 깊어 지길 기다리며 달을 이불 삼아 지붕 위에 몸을 눕혔다.
“흐아. 그럼 기다려 볼까.”
그렇게 한두 시진 정도 기다리자 방 안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꺼졌다. 하지만 송시영의 방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송시영의 방에 스며들 듯이 잠입한 천태성은 홀로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상에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잠을 자고 있었다.
쪼르르륵.
탁자 위에는 간소한 음식이 있었으나 송시영은 오직 술만 마셨다.
천태성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퉁겼다.
송시영은 술을 마시다 바늘에 찔린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윽.”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천태성, 송시영은 천태성을 발견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실상 아혈(啞穴)을 천태성에게 제압당한 처지라 소리를 못 내고 있었다.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놀라고 있을 뿐.
그런 송시영을 보며 천태성은 웃으면서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조용히 하겠다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소.”
겁에 질려 잠시 멍해 있던 송시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송시영은 천태성이 점혈을 풀자 마자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천태성은 송시영의 말에 답은 하지 않고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사랑을 믿으시오?”
천태성의 대답에 잠시 멍해진 송시영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서로에게 답은 하지 않고 질문만 던지며 마주 앉은 두 남자.
줄곧 미소만 짓던 천태성은 무표정으로 급선회하며 송시영에 자신의 기세(氣勢)를 살짝 흘렸다.
“크헉!”
무공을 익히지 않는 학자로서는 천태성의 티끌 만한 기세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증거로 송시영의 안색이 허옇게 떠 버렸다.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의 상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착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사랑을 믿느냐고 물었소.”
송시영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믿, 믿고 있소.”
송시영이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자 그제야 천태성은 미소를 지으며 기세를 거두었다.
“분명 당신은 사랑이 있다고 말을 했소. 그렇다면 그것을 나에게 증명해 보시오.”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2)
도착한 천태성은 거지 한 명을 불러 물어 보았다.
“저기 최근에 장원을 차지한 집안이 어딘지 아시오?”
“과거 말이오?”
“예.”
“당연히 알다마다 크게 잔치해서 음식을 많이 얻어 먹었다우.”
천태성은 그 거지에게 그 남자의 집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계륜장(契莊倫場).
이것이 그 남자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송시영.
이번 과거에 급제하여 황궁 중앙 관리로 입궁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항주에 파다했다.
중앙 관리라고 하나, 처음 주어지는 벼슬이라 그리 높지 않았는데 급제라는 이유로 중앙에 가게 되었다.
밖에서 본 장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곳이군.’
천태성은 그 사람의 집을 찾아왔는데 막상 들어갈 구실이 없었다.
‘그래도 왔는데…….’
대문 안에서 누군가 마당을 쓸고 있자 천태성은 그를 불렀다.
“이보시오!”
“예에.”
“혹시 이곳이 그 장원 급제한 송시영이라는 사람의 댁이 맞습니까?”
계륜장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 같은데 그는 천태성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맞습니다만 어인 일로 오셨소?”
“별 다른 일은 아니고 혹시 그분 계십니까?”
하인은 천태성의 복장이 평범하였으나 분위기에 눌려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입궁하셔서 지금 계시지 않소. 성함을 말씀하시면 기별을 넣어 드리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럼.”
‘그 사람을 찾아 황궁에 들어갈 수도 없고……. 황궁…… 황궁!’
천태성은 순간 주동동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주동동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궁과 연이 있을 거라는 천태성의 생각이었다.
그 길로 낙화루로 돌아온 천태성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동동은 국자를 부드럽게 놀리며 탕을 끓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주방 안에 울려 퍼지는 낭랑한 목소리.
人生無根體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飄如陌上塵.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分散逐風轉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此已非常身.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니지.
북궁설은 식재료를 들고 오며 주동동의 시가를 이어 불렀다.
주동동의 목소리가 낭랑하였다면 북궁설의 목소리는 잔잔하면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落地爲兄弟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가 되는 것
何必骨肉親
어찌 꼭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得歡?作樂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斗酒聚比隣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그 유명한 도연명의 시였다.
주동동과 북궁설은 겉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작 붙여 놓으면 죽이 척척 맞았다.
주방에 들어온 천태성이 맥을 끊었다.
“풍류라, 후후 얼음땡이 니가 풍류를 알아?”
찌릿.
북궁설은 천태성의 말에 눈에 힘을 콱 주고 노려 보았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된 것인지 천태성은 북궁설을 그대로 무시하고 주동동에게 다가갔다.
“야, 동동.”
“네!”
“너 황족이지?”
“헉! 그걸 어떻게?”
주동동은 상당히 놀랐는지 국자를 솥에 떨어뜨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후후, 맞군.’
그냥 넘겨짚어 말해 본 것 뿐인데 주동동은 천태성이 던진 떡밥을 덥썩 물었다.
“그냥 말해 본 건데, 스스로 가르쳐 주는구나.”
“으윽.”
주동동은 국자를 쥐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볼에 바람을 한껏 집어 넣었다.
“태성이 형 나빠요.”
주동동의 그런 모습에 북궁설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었다.
‘귀엽군.’
북궁설의 미소를 본 천태성은 순간 자신의 얼굴에 핏기가 삭 빠지는 것을 느꼈다.
‘헛. 저 얼음땡이가 웃을 줄 아는구나!’
천태성은 북궁설이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그것보다 너 황궁에 가서 일 좀 해줘야겠는데 할 수 있겠냐?”
“안 돼요! 저 황궁 가면 잡혀가요.”
“흐음.”
천태성은 주동동의 뒷말을 듣지 않아도 대충 이유가 생각났다.
‘그렇겠군 저놈이 황족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다른 황족이 안다면 가만 놔두지 않겠지. 어쩔 수 없군 밤에 몰래 찾아가야겠군.’
천태성은 웬만하면 정석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니 일이 더욱 복잡해질 것 같았다.
‘월담하기 싫은데.’
천태성의 표정이 약간 찌푸려졌다. 한데 이곳에는 황궁 사람이 주동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좌(秘座), 그는 삼십 년 동안 어둠 속에서 황제를 보호했다.
어둠의 세계에서 조용히 명성을 쌓던 그가 돌연 나라의 부름을 받고 황궁에 투신,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실로 몇 십 년만에 고민에 빠졌다.
언제나 황제의 명령에 두말없이 수행하였던 그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검은 복면에 반짝이던 비좌의 눈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 비좌는 천천히 주먹을 쥐더니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
천태성은 자신이 구해준 여인에게 찾아가서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내려왔다.
“이젠 당신이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거요.”
‘설마 또다시 그 짓 하진 않겠지.’
여인은 천태성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황궁.
과거에 급제한 송시영은 동근 얼굴 형에 큰 눈, 학사모 그리고 수염, 그는 한창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다른 고위 관리들 대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게 고된 하루를 보내게 되고 퇴궐할 시간이 되었다.
황궁의 관리들은 보통 가마나 말을 타고 가지만 송시영은 그냥 자신의 두 다리를 이용하였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으나 그는 말 타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겁이 많았다.
초저녁 대로는 보름달 처녀의 춤사위로 인해 대낮처럼 밝았다.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을 옮겼던 송시영은 어떠한 물체가 날아와 자신의 이마를 때리자 걸음을 멈추었다.
“아!”
천천히 날아와 부딪혀서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으나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물체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송시영은 반사적으로 아래로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노리개였다.
무심코 노리개를 주워 든 송시영은 잠시 후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반쪽 난 연옥빛 노리개를 든 채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한편 계륜장으로 월담한 천태성은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장원이라 그런지 몸을 숨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태성급 정도의 고수가 자신의 기척을 숨기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 그래서 그는 여기가 자기 집인 것처럼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지? 방문마다 열어 볼 수도 없고.’
그때 장원 문밖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천태성은 재빨리 몸을 날려 지붕 위로 몸을 숨겼다.
“나리 오셨습니까?”
하인들은 재빨리 나와 대문을 열고 학사풍의 남자를 반겼다.
동그란 얼굴, 큰 눈에 작은 키,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학사(學士)였다.
하인들과 함께 그를 맞이하는 웬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단아한 차림에 미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한 복장이었으나 머리에 꽂은 비녀만큼은 꽤나 화려했다.
‘저 사람이 송시영이고 저 여자가 부인이겠군.’
궁에서 돌아온 송시영의 표정은 많이 상기되고 좋지 않았다. 그것을 궁금하게 여긴 여인이 송시영에게 물었다.
“궐에서 무슨 일이 있었사옵니까?”
“아니오. 좀 고단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천태성은 송시영이 들어가는 방을 확인한 후 밤이 깊어 지길 기다리며 달을 이불 삼아 지붕 위에 몸을 눕혔다.
“흐아. 그럼 기다려 볼까.”
그렇게 한두 시진 정도 기다리자 방 안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꺼졌다. 하지만 송시영의 방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송시영의 방에 스며들 듯이 잠입한 천태성은 홀로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상에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잠을 자고 있었다.
쪼르르륵.
탁자 위에는 간소한 음식이 있었으나 송시영은 오직 술만 마셨다.
천태성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퉁겼다.
송시영은 술을 마시다 바늘에 찔린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윽.”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천태성, 송시영은 천태성을 발견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사실상 아혈(啞穴)을 천태성에게 제압당한 처지라 소리를 못 내고 있었다.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놀라고 있을 뿐.
그런 송시영을 보며 천태성은 웃으면서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조용히 하겠다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소.”
겁에 질려 잠시 멍해 있던 송시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송시영은 천태성이 점혈을 풀자 마자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천태성은 송시영의 말에 답은 하지 않고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사랑을 믿으시오?”
천태성의 대답에 잠시 멍해진 송시영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서로에게 답은 하지 않고 질문만 던지며 마주 앉은 두 남자.
줄곧 미소만 짓던 천태성은 무표정으로 급선회하며 송시영에 자신의 기세(氣勢)를 살짝 흘렸다.
“크헉!”
무공을 익히지 않는 학자로서는 천태성의 티끌 만한 기세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증거로 송시영의 안색이 허옇게 떠 버렸다.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의 상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착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사랑을 믿느냐고 물었소.”
송시영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믿, 믿고 있소.”
송시영이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자 그제야 천태성은 미소를 지으며 기세를 거두었다.
“분명 당신은 사랑이 있다고 말을 했소. 그렇다면 그것을 나에게 증명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