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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12화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3)
송시영의 머리는 아주 복잡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의 내심을 알고 있는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며 창 쪽으로 걸어갔다.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소. 그리고 그 여인이 사랑한 남자는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소.”
천태성의 한 마디에 송시영은 머릿속의 복잡한 실타래가 풀리며 등 쪽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천태성은 창밖을 비추는 월광(月光)에 손을 내밀며 계속해서 말을 하였다.
“그녀는 달을 향해 매일 빌고 빌면서 꼭 그 사람이 과거에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둘만의 사랑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매일 눈물로 기도했소.”
송시영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손을 뻗었다.
“나, 난…….”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냥 들으시오! 그녀는 그 사람의 약속을 믿고 그렇게 기다렸고 그 사람은 과거에 급제하여 보란 듯이 돌아왔소. 그런데 그 사람이 그녀와 함께 혼인 승낙을 구했을 때 그만 그의 부모가 반대를 한 것이오. 고작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송시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냈는데 그것은 집으로 오는 길에 주은 노리개였다.
반쪽뿐인 연옥빛 노리개.
송시영은 다시 품에 손을 집어 넣더니 노리개 하나를 더 꺼냈다.
그것 역시 반쪽 난 것으로 좀 전의 것과 한 쌍인 듯했는데 둘을 맞추니 꼭 맞았다.
천태성은 여전히 밖을 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은 그녀가 쫓겨나는 것을 그냥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었지. 그녀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아니, 알고 있더라도 용기가 없었겠지.”
한줄기의 물방울이 송시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천태성은 몸을 돌리며 나직이 말을 하였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소?”
송시영은 천태성의 말에 답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흑, 흑.”
천태성은 손가락으로 송시영을 가리키며 힘주어 말을 하였다.
“당신은 분명히 사랑이 있다고 말을 하였소. 그러니 그 말을 꼭 증명하시오.”
“흑흑.”
고개를 흔들며 송시영은 손 안의 노리개를 꽉 쥐었다.
近來安否問如何
잘 지내시는지요.
月到紗窓妾恨多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송시영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천태성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달빛의 숨결만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 * *
천태성이 구해준 여인의 이름은 정여옥이었다.
올해 스무 살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평생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도록.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는지 메마른 눈빛으로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낙화루 밖으로 나왔다.
밝은 달빛이 비치는 대로를 쓸쓸히 혼자 걷는 그녀, 정여옥의 시선은 자신의 배로 가 있었다.
‘아가야 미안하구나. 한순간 나만의 생각에 세상을 포기하려 했단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으마. 이 어미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모든 것을 잊고 너만 바라보며 살아가련다. 우리 함께 멀리 떠나자꾸나.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자.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으로…….’
정여옥은 훗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사랑의 아픔을 뒤로한 채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정여옥은 고개를 들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헉! 헉! 헉!”
눈물을 흩날리며 어디론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는 송시영.
달려가는 그의 마음속에 천태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낙화루에 있소.”
송시영은 골목을 돌아 큰 대로변으로 나왔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는 송시영,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정여옥뿐이었다.
여태 태어나서 한 번도 부모를 거역해 본 적 없는 그였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자신의 머리는 떠나는 몸과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증거로 송시영은 혼인을 하였건만 부인의 손 한 번 잡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 것일까 송시영은 달리면서 힘에 겨운 듯 눈을 찔끈 감더니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사이에 옆으로 지나가는 정여옥, 멍해진 그녀는 제대로 앞을 보고 걷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공교롭게도 둘 사이로 가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 위 안타까워 하는 달빛의 손길을 받으면서 그렇게 서로를 지나쳤다.
“허억, 허억.”
낙화루 입구에 도착한 송시영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심호흡을 하였다. 그런데 입구에 자신을 찾아왔던 천태성이 서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송시영은 천태성을 바라보았다.
천태성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내뱉듯이 말을 하였다.
“그녀는 떠났소.”
털썩.
송시영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르르륵.
“아아아악!”
그 자세에서 엎드리더니 송시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늘 상처만 주고 기다리게 하고 하였는데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런 송시영을 내버려 둔 채 천태성은 등을 돌리고는 그대로 낙화루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자신의 일이 아니지만 천태성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그녀가 빨리 떠날 줄 몰랐는데…… 그것도 기별도 없이. 그리고 송시영은 저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며 울고 있는 꼴이란 도저히 못 봐주겠군.’
송시영은 한참을 엎드려 울더니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뛰어온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송시영, 그의 머릿속은 아무것도 없는지 텅 빈 눈빛을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송시영은 어느덧 대로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척.
그의 걸음이 멈추고 텅 비었던 눈에는 뭔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다.
대로 중간에 등을 보이며 서 있는 여인,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으리라.
그 순간 따뜻한 봄의 입김이 송시영을 감싸며 땅에 떨어진 몇 송이의 벚꽃을 하늘 위로 올려보냈다. 그와 함께 비 내리 듯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의 분홍 물결.
송시영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가운데 그녀가 뒤쪽으로 몸을 스르르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송시영을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두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랴.
송시영은 달렸다. 그리고 그녀를 죽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정여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 전체에 뒤범벅 되어 있는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송시영은 눈을 꼭 감은 채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미안하오. 내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정여옥은 이게 꿈이라면 정말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떠도 따뜻한 그 사람의 품에 자기가 안겨 있는 것이다.
‘정말 그대인가요? 정말요?’
정여옥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아이같이 큰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다.
“어엉엉엉!”
달빛과 봄의 숨결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 벚꽃의 화우(花雨)를 멈추지 않았다.
미안하다 말하지 말아요.
모두 잊고 떠나려 했어요.
지난날 나의 상처는 생각지 마요.
이렇게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저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이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네요.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검은 인영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복면 속의 눈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 * *
당금 무림의 수많은 여걸들 중 가장 미인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무림삼봉(武林三鳳)을 든다.
천산노군의 금지옥엽 유리봉황 나예은.
그녀의 별호가 왜 유리인지 그녀를 직접 보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피부가 너무나 투명한 나머지 건드리면 깨질 듯한 착각조차 들게 만든다고 한다.
전신이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나 그것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승화시켜면서 그녀의 미(美)는 가히 중원제일이라고 일컬어진다. 하나 이런 경천동지할 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단점이라면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낯가림이 너무 심했다.
천산노군이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도 있지만 어렷을 적부터 자신의 외모로 인한 세간의 관심이 너무나 부담스러운 그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남해 검각주(劍閣主) 소령령.
검봉황이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한 문파의 수장으로써 엄청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절대고수이다.
어린 나이에 수장으로 등극할 만큼 타고난 검의 기재인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괄괄한 성격을 지녔다.
그녀의 사부인 ‘검나찰’의 영향도 크겠지만 그녀는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 했으며 특히 남자한테 지는 것을 싫어했다.
셋째는 혈봉황(血鳳皇)이라 불리는 사파의 인물이 있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도를 주로 쓴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무림삼봉들은 서로 간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키운 노고수들이 친구였기 때문에 과거 어린 시절 그들을 데리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무림삼봉 중 한 명이 항주에 나타났다.
“유리봉황이 나타났다!”
거리에는 무슨 한 나라의 황제가 행차하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춘 채 유리봉황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들거나 까치발을 서는 둥 부산을 떨었다.
유리봉황은 그 중원제일미(中原第一美)라는 별호답게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천산노군의 휘하 절정고수 다섯 명이 그녀를 지척에서 보호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모하는 남정네들이 뜻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으니 일명 유리수호대라고 불리는 이 단체는 무림의 젊은 후기지수들로 이루어졌으며 수장은 신예 고수들의 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진사룡(新進四龍) 중 하나인 검룡(劍龍) 남궁백이었다.
그는 오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 출신으로써 뛰어난 검술 실력과 더불어 매우 준수한 미남이었다.
어느 날 나예은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수호대를 자청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대로 중간에 가마가 지나가고 가마 가까이 천산노군의 고수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며 그 뒤로 흰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스무 명의 남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이 항주를 방문한 중원제일미를 환영한다는 듯 거리 위에 천천히 뿌려졌다.
가마의 창으로 면사를 쓴 여인의 눈이 살짝 보인다. 그리고 창틀을 잡고 있는 섬섬옥수는 너무 희고 매끄러웠다.
이윽고 거리의 사람들이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마가 멈춰 선 곳은 평범한 객잔이었다.
황금색 글자로 쓰여진 현판에는 ‘낙화루’라고 쓰여져 있었다.
객잔 안의 손님이 모두 밖으로 나온 듯 객잔 입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입에 뭔가 우물거리면서 가마를 지켜보았다.
그중 객잔의 주인인 천태성은 힐끗 보더니 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곧이어 휘장이 걷히고 여인의 앙증맞은 발이 나타나자 지켜보는 남자들은 눈이 부릅떠지며 저마다 침을 삼켰다.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3)
송시영의 머리는 아주 복잡했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의 내심을 알고 있는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며 창 쪽으로 걸어갔다.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이 있었소. 그리고 그 여인이 사랑한 남자는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소.”
천태성의 한 마디에 송시영은 머릿속의 복잡한 실타래가 풀리며 등 쪽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천태성은 창밖을 비추는 월광(月光)에 손을 내밀며 계속해서 말을 하였다.
“그녀는 달을 향해 매일 빌고 빌면서 꼭 그 사람이 과거에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둘만의 사랑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매일 눈물로 기도했소.”
송시영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손을 뻗었다.
“나, 난…….”
천태성은 그런 송시영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냥 들으시오! 그녀는 그 사람의 약속을 믿고 그렇게 기다렸고 그 사람은 과거에 급제하여 보란 듯이 돌아왔소. 그런데 그 사람이 그녀와 함께 혼인 승낙을 구했을 때 그만 그의 부모가 반대를 한 것이오. 고작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송시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무엇인가 꺼냈는데 그것은 집으로 오는 길에 주은 노리개였다.
반쪽뿐인 연옥빛 노리개.
송시영은 다시 품에 손을 집어 넣더니 노리개 하나를 더 꺼냈다.
그것 역시 반쪽 난 것으로 좀 전의 것과 한 쌍인 듯했는데 둘을 맞추니 꼭 맞았다.
천태성은 여전히 밖을 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사람은 그녀가 쫓겨나는 것을 그냥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었지. 그녀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아니, 알고 있더라도 용기가 없었겠지.”
한줄기의 물방울이 송시영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천태성은 몸을 돌리며 나직이 말을 하였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소?”
송시영은 천태성의 말에 답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흑, 흑.”
천태성은 손가락으로 송시영을 가리키며 힘주어 말을 하였다.
“당신은 분명히 사랑이 있다고 말을 하였소. 그러니 그 말을 꼭 증명하시오.”
“흑흑.”
고개를 흔들며 송시영은 손 안의 노리개를 꽉 쥐었다.
近來安否問如何
잘 지내시는지요.
月到紗窓妾恨多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송시영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천태성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달빛의 숨결만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 * *
천태성이 구해준 여인의 이름은 정여옥이었다.
올해 스무 살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평생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도록.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는지 메마른 눈빛으로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낙화루 밖으로 나왔다.
밝은 달빛이 비치는 대로를 쓸쓸히 혼자 걷는 그녀, 정여옥의 시선은 자신의 배로 가 있었다.
‘아가야 미안하구나. 한순간 나만의 생각에 세상을 포기하려 했단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으마. 이 어미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모든 것을 잊고 너만 바라보며 살아가련다. 우리 함께 멀리 떠나자꾸나.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자.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으로…….’
정여옥은 훗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사랑의 아픔을 뒤로한 채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정여옥은 고개를 들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헉! 헉! 헉!”
눈물을 흩날리며 어디론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는 송시영.
달려가는 그의 마음속에 천태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낙화루에 있소.”
송시영은 골목을 돌아 큰 대로변으로 나왔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는 송시영,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정여옥뿐이었다.
여태 태어나서 한 번도 부모를 거역해 본 적 없는 그였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자신의 머리는 떠나는 몸과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증거로 송시영은 혼인을 하였건만 부인의 손 한 번 잡지 않았다.
‘정말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누구에게 사과를 하는 것일까 송시영은 달리면서 힘에 겨운 듯 눈을 찔끈 감더니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사이에 옆으로 지나가는 정여옥, 멍해진 그녀는 제대로 앞을 보고 걷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공교롭게도 둘 사이로 가마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 위 안타까워 하는 달빛의 손길을 받으면서 그렇게 서로를 지나쳤다.
“허억, 허억.”
낙화루 입구에 도착한 송시영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심호흡을 하였다. 그런데 입구에 자신을 찾아왔던 천태성이 서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송시영은 천태성을 바라보았다.
천태성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젓더니 내뱉듯이 말을 하였다.
“그녀는 떠났소.”
털썩.
송시영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르르륵.
“아아아악!”
그 자세에서 엎드리더니 송시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늘 상처만 주고 기다리게 하고 하였는데 시간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런 송시영을 내버려 둔 채 천태성은 등을 돌리고는 그대로 낙화루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자신의 일이 아니지만 천태성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그녀가 빨리 떠날 줄 몰랐는데…… 그것도 기별도 없이. 그리고 송시영은 저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며 울고 있는 꼴이란 도저히 못 봐주겠군.’
송시영은 한참을 엎드려 울더니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뛰어온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송시영, 그의 머릿속은 아무것도 없는지 텅 빈 눈빛을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송시영은 어느덧 대로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척.
그의 걸음이 멈추고 텅 비었던 눈에는 뭔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다.
대로 중간에 등을 보이며 서 있는 여인,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으리라.
그 순간 따뜻한 봄의 입김이 송시영을 감싸며 땅에 떨어진 몇 송이의 벚꽃을 하늘 위로 올려보냈다. 그와 함께 비 내리 듯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의 분홍 물결.
송시영이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가운데 그녀가 뒤쪽으로 몸을 스르르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송시영을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손으로 가렸다.
두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랴.
송시영은 달렸다. 그리고 그녀를 죽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정여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 전체에 뒤범벅 되어 있는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송시영은 눈을 꼭 감은 채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미안하오. 내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정여옥은 이게 꿈이라면 정말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떠도 따뜻한 그 사람의 품에 자기가 안겨 있는 것이다.
‘정말 그대인가요? 정말요?’
정여옥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아이같이 큰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다.
“어엉엉엉!”
달빛과 봄의 숨결은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 벚꽃의 화우(花雨)를 멈추지 않았다.
미안하다 말하지 말아요.
모두 잊고 떠나려 했어요.
지난날 나의 상처는 생각지 마요.
이렇게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저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이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네요.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나무의 맨 꼭대기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검은 인영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복면 속의 눈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 * *
당금 무림의 수많은 여걸들 중 가장 미인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무림삼봉(武林三鳳)을 든다.
천산노군의 금지옥엽 유리봉황 나예은.
그녀의 별호가 왜 유리인지 그녀를 직접 보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피부가 너무나 투명한 나머지 건드리면 깨질 듯한 착각조차 들게 만든다고 한다.
전신이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나 그것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승화시켜면서 그녀의 미(美)는 가히 중원제일이라고 일컬어진다. 하나 이런 경천동지할 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단점이라면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낯가림이 너무 심했다.
천산노군이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도 있지만 어렷을 적부터 자신의 외모로 인한 세간의 관심이 너무나 부담스러운 그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남해 검각주(劍閣主) 소령령.
검봉황이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한 문파의 수장으로써 엄청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절대고수이다.
어린 나이에 수장으로 등극할 만큼 타고난 검의 기재인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괄괄한 성격을 지녔다.
그녀의 사부인 ‘검나찰’의 영향도 크겠지만 그녀는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 했으며 특히 남자한테 지는 것을 싫어했다.
셋째는 혈봉황(血鳳皇)이라 불리는 사파의 인물이 있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도를 주로 쓴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만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무림삼봉들은 서로 간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키운 노고수들이 친구였기 때문에 과거 어린 시절 그들을 데리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무림삼봉 중 한 명이 항주에 나타났다.
“유리봉황이 나타났다!”
거리에는 무슨 한 나라의 황제가 행차하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춘 채 유리봉황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들거나 까치발을 서는 둥 부산을 떨었다.
유리봉황은 그 중원제일미(中原第一美)라는 별호답게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천산노군의 휘하 절정고수 다섯 명이 그녀를 지척에서 보호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모하는 남정네들이 뜻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으니 일명 유리수호대라고 불리는 이 단체는 무림의 젊은 후기지수들로 이루어졌으며 수장은 신예 고수들의 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진사룡(新進四龍) 중 하나인 검룡(劍龍) 남궁백이었다.
그는 오대세가의 하나인 남궁세가 출신으로써 뛰어난 검술 실력과 더불어 매우 준수한 미남이었다.
어느 날 나예은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는 수호대를 자청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대로 중간에 가마가 지나가고 가마 가까이 천산노군의 고수들이 말을 타고 지나가며 그 뒤로 흰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스무 명의 남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이 항주를 방문한 중원제일미를 환영한다는 듯 거리 위에 천천히 뿌려졌다.
가마의 창으로 면사를 쓴 여인의 눈이 살짝 보인다. 그리고 창틀을 잡고 있는 섬섬옥수는 너무 희고 매끄러웠다.
이윽고 거리의 사람들이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마가 멈춰 선 곳은 평범한 객잔이었다.
황금색 글자로 쓰여진 현판에는 ‘낙화루’라고 쓰여져 있었다.
객잔 안의 손님이 모두 밖으로 나온 듯 객잔 입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입에 뭔가 우물거리면서 가마를 지켜보았다.
그중 객잔의 주인인 천태성은 힐끗 보더니 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곧이어 휘장이 걷히고 여인의 앙증맞은 발이 나타나자 지켜보는 남자들은 눈이 부릅떠지며 저마다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