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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14화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5)
팔랑이는 부채, 그리고 하얀 장삼에 영웅건을 질끈 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미청년, 그의 이름은 선우휘윤이었다.
사청룡(四靑龍) 중의 옥룡(玉龍)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는 무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왜냐 하면 그는 화산파와 무당파의 비호를 받는 엄청난 배경과 더불어 뛰어난 무공 실력, 그리고 조각 같은 외모 때문에 수많은 소저들을 달고 다니는 인기남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주어진 환경 탓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오만했다. 그러한 단점이 있어도 그의 인기를 가리지는 못하였다.
그는 항주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유리봉황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낙화루로 몸소 행차하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유일하게 뻣뻣했던 여인들, 바로 나예은과 남궁연지 때문에.
‘후후후. 이번엔 기필코…….’
낙화루의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왠지 모르지만 시끌시끌했다.
‘뭐지?’
선우휘윤이 낙화루 입구로 다가서자 그를 알아본 유리수호대가 외쳤다.
“옥룡이다!”
“어디? 어머! 꺄아! 옥룡이야!”
여자들은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후후.’
선우휘윤은 예의 그 부채를 살랑거리며 낙화루의 문턱을 넘었다.
“와와와!”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가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그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두들 중앙을 빙 둘러싸고는 뭘 구경하는지 소리 치고 난리였다.
그래도 그를 반기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같은 사청룡 중 하나인 검룡(劍龍) 남궁백이었다.
“휘윤! 여긴 어쩐 일이야?”
“그냥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남궁 형이 여기 있다는 소릴 듣고 겸사겸사 한 번 들렀습니다.”
“잘 왔어. 술이나 한잔하자.”
“그런데 나 소저는 어디 계십니까?”
“저기 중간에…….”
선우휘윤은 남궁백과 함께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에는 한 탁자를 놓고 웬 홍의 미녀와 산적같이 생긴 사람이 고기를 미친 듯이 뜯고 있었다.
우걱우걱.
조그마한 입으로 절대로 산적같이 생긴 사람한테 밀리지 않는 미녀, 선우휘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증거로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때였다.
“우윽!”
산적같이 생긴 사람이 닭고기를 뜯다가 입을 크게 부풀리더니 자신의 양손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입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식신! 식신!”
승리자 유화영은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이왕 망가진 거.’
자리에서 일어나 닭다리를 번쩍 치켜드는 유화영, 그녀의 지척에는 남궁연지와 나예은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요, 호호호호.”
승부가 갈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지며 자신의 탁자로 돌아갔다. 그리고 좀 전의 대결을 안주 삼아 술들을 마시고 즐겼다.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선우휘윤은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웬일이지? 그녀가 면사를 벗었네.’
그 홍의 소녀는 승부가 갈렸음에도 남은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선우휘윤은 부채를 살랑거리며 나예은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시오, 나 소저.”
나예은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선우휘윤을 보고는 평소 짓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만발한 백합이 한순간에 떨어지는 모습 같았다.
남궁연지도 별반 다르지 않게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한편 천태성은 옥룡을 입구에서부터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잘생긴 놈이군. 후후후.’
나예은은 살짝 눈을 감았다 뜨며 선우휘윤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우 소협. 저희는 이만.”
그리고는 나예은은 유화영의 손을 잡고 남궁연지와 함께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치잇.”
선우휘윤은 그런 대접을 몇 번 겪어 봤던 것인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며 유화영은 멀뚱히 선우휘윤을 바라보았다.
‘요즘 잘생긴 것들이 많군.’
선우휘윤은 나예은의 등에 슬쩍 시선을 주고는 검룡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합석했다.
자리로 돌아온 남궁연지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술병을 들었다.
“자, 화영 언니 한잔 받으세요. 축하주예요.”
그새 친해졌는지 둘 사이 부르는 호칭이 달라져 있었다.
나예은도 딱딱한 표정을 풀고 유화영을 보며 한마디 했다.
“저는 언니가 그렇게 잘 먹는 줄 몰랐어요.”
“내가 뭐…… 잘 못 먹어.”
유리봉황의 말에 유화영은 얼굴을 붉히며 남궁연지의 술을 받았다.
“호호호. 부끄러워 하시네요, 호호호. 언니 여기 또 뭐가 맛이 있나요? 이왕 온 김에 다 맛을 보고 가지요.”
“으음, 여긴 다 맛있지만 화월채도 맛있어.”
“저기요!”
남궁연지가 손을 들자 쏜살같이 달려가는 황보현중.
“여기 화월채 주세요.”
“예이. 즉각 대령하겠습니다.”
화월채는 소채 요리의 한 종류로써 고기는 일체 들어가지 않고 갖은 채소와 향긋한 꽃잎을 쓴 요리였다.
그녀들이 주문을 한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음식을 들고 나온 사람은 황보현중이 아니었다.
탁.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조용히 접시만 내려놓고 등을 돌리는 남자, 그는 바로 북궁설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키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그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
유화영은 신경 쓰지 않았고 남궁연지는 잘생긴 얼굴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 나예은은 뭔가 느꼈는지 눈동자가 약간 떨렸다.
‘이 사람은…….’
그녀가 느끼기에 이 사람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유리봉황의 이러한 표정을 간파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선우휘윤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사람의 감정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자 선우휘윤은 눈을 크게 뜨고 분노했다.
‘감히 저따위 자식에게!’
나예은이 북궁설에게 느낀 것, 낯설지 않다는 느낌은 북궁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벽을 세운 채 혼자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어린 시절, 그런 자신을 남궁연지가 온갖 정성으로 겨우 벽을 조금 허물고 세상으로 끌고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게되었고 어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인데 좀 전의 북궁설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남궁연지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같았다.
‘누굴까?’
나예은은 화월채를 아삭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는 유화영을 보며 물었다.
“화영 언니, 방금 그 사람…….”
“음? 얼음땡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묻는 나예은.
“얼음땡이?”
“응. 아까 그 녀석.”
“왜 그렇게 불러요?”
남궁연지는 나예은이 웬일로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속으로 놀랐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고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뭐 그러니까 표정도 없고 인상이 차갑잖아, 잘 안 나오는데 오늘은 나왔네, 어어어?”
유화영은 나예은과 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자기 혼자 화월채 다 먹어 버리고 만 것이다.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유화영,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으리오.
“미안, 헤헤헤. 혼자 다 먹어 버렸네.”
그러자 남궁연지는 화사하게 웃으며 유화영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괜찮아요. 또 주문하면 되죠 뭘. 그리고 저는 언니 먹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걸요.”
“그러니? 하하!”
멋쩍은 웃음의 유화영.
남궁연지는 또다시 황보현중을 불렀다.
“저기요, 여기 주문요.”
“예이! 뭘 드릴까요?”
“화월채 한 접시요. 아 그리고 방금 음식 가져오신 분으로 가져다 주세요.”
나예은은 왜 그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궁연지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으며 나예은의 표정을 무시해 버린 남궁연지.
“예? 북궁 형이요?”
황보현중의 말에 남궁연지는 짐짓 관심이 있는 척했다.
“그분 성함이 북궁 씨인가요?”
“네에, 북궁설.”
“멋진 이름이네요. 그분이 가져다 주셨으면 해요.”
“예에, 알겠습니다. 금방 오실 겁니다.”
싱긋 웃으면서 주방으로 달려가는 황보현중.
낙화루에는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가끔 여자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할 때 지명하여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북궁설이 지명 당한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곧이어 주방 쪽에서 석상처럼 음식을 들고 나오는 북궁설의 모습이 보였다.
세 여인의 시선은 당연히 북궁설을 향해 있었다.
북궁설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무표정이었다.
그때 뭔가를 느낀 듯 북궁설이 걸어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선우휘윤 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걷는 북궁설, 선우휘윤 쪽으로 시선을 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선우휘윤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놀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선우휘윤은 북궁설을 골탕 먹일 작정으로 암암리에 자신의 기세와 함께 경력을 실어 북궁설의 다리를 노렸었다.
그러나 웬걸 자신의 힘이 바닷물에 물 한 바가지 부은 듯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선우휘윤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저놈이?’
도저히 무공을 익힌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북궁설이었다. 그런 북궁설이 숨은 고수라는 사실을 선우휘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나예은 일행의 탁자에 음식을 조용히 내려놓는 북궁설.
유화영을 제외한 두 여인은 북궁설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람을 계속 바라보면 민망하게 마련인데 북궁설은 전혀 흔들림 없이 냉담했다.
이내 북궁설이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남궁연지는 느낀 그대로 툭 내뱉었다.
“마치 예은이 옛날 모습 같아.”
나예은은 남궁연지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자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조용히 웃으며 젓가락을 드는 남궁연지.
“후후.”
한편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제삼의 인물 천태성은 술병을 들고 선우휘윤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리고는 탁자에 술병을 내려놓으며 검룡에게 말을 했다.
“이건 아까 청을 못 들어 드린 것에 대한 저의 성의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검룡은 일어서더니 포권을 취하며 감사해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무례를 범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천태성은 돌아서기 직전 선우휘윤에게 슬쩍 전음을 날렸다.
“사랑은 힘 있는 사람이 쟁취하는 것입니다.”
‘……!’
자신의 행동과 내심이 들켰기 때문일까 선우휘윤은 놀란 눈으로 천태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뭔가 결심한 듯 선우휘윤은 술 한잔을 쭉 들이켰다.
第四章 사랑은 가슴이 시킨다(5)
팔랑이는 부채, 그리고 하얀 장삼에 영웅건을 질끈 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미청년, 그의 이름은 선우휘윤이었다.
사청룡(四靑龍) 중의 옥룡(玉龍)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는 무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왜냐 하면 그는 화산파와 무당파의 비호를 받는 엄청난 배경과 더불어 뛰어난 무공 실력, 그리고 조각 같은 외모 때문에 수많은 소저들을 달고 다니는 인기남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주어진 환경 탓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오만했다. 그러한 단점이 있어도 그의 인기를 가리지는 못하였다.
그는 항주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유리봉황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낙화루로 몸소 행차하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유일하게 뻣뻣했던 여인들, 바로 나예은과 남궁연지 때문에.
‘후후후. 이번엔 기필코…….’
낙화루의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왠지 모르지만 시끌시끌했다.
‘뭐지?’
선우휘윤이 낙화루 입구로 다가서자 그를 알아본 유리수호대가 외쳤다.
“옥룡이다!”
“어디? 어머! 꺄아! 옥룡이야!”
여자들은 그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후후.’
선우휘윤은 예의 그 부채를 살랑거리며 낙화루의 문턱을 넘었다.
“와와와!”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가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그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두들 중앙을 빙 둘러싸고는 뭘 구경하는지 소리 치고 난리였다.
그래도 그를 반기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같은 사청룡 중 하나인 검룡(劍龍) 남궁백이었다.
“휘윤! 여긴 어쩐 일이야?”
“그냥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남궁 형이 여기 있다는 소릴 듣고 겸사겸사 한 번 들렀습니다.”
“잘 왔어. 술이나 한잔하자.”
“그런데 나 소저는 어디 계십니까?”
“저기 중간에…….”
선우휘윤은 남궁백과 함께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에는 한 탁자를 놓고 웬 홍의 미녀와 산적같이 생긴 사람이 고기를 미친 듯이 뜯고 있었다.
우걱우걱.
조그마한 입으로 절대로 산적같이 생긴 사람한테 밀리지 않는 미녀, 선우휘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증거로 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때였다.
“우윽!”
산적같이 생긴 사람이 닭고기를 뜯다가 입을 크게 부풀리더니 자신의 양손으로 막았다. 그리고는 입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식신! 식신!”
승리자 유화영은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이왕 망가진 거.’
자리에서 일어나 닭다리를 번쩍 치켜드는 유화영, 그녀의 지척에는 남궁연지와 나예은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요, 호호호호.”
승부가 갈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지며 자신의 탁자로 돌아갔다. 그리고 좀 전의 대결을 안주 삼아 술들을 마시고 즐겼다.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선우휘윤은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웬일이지? 그녀가 면사를 벗었네.’
그 홍의 소녀는 승부가 갈렸음에도 남은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선우휘윤은 부채를 살랑거리며 나예은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시오, 나 소저.”
나예은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선우휘윤을 보고는 평소 짓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만발한 백합이 한순간에 떨어지는 모습 같았다.
남궁연지도 별반 다르지 않게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한편 천태성은 옥룡을 입구에서부터 쭈욱 지켜보고 있었다.
‘잘생긴 놈이군. 후후후.’
나예은은 살짝 눈을 감았다 뜨며 선우휘윤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우 소협. 저희는 이만.”
그리고는 나예은은 유화영의 손을 잡고 남궁연지와 함께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치잇.”
선우휘윤은 그런 대접을 몇 번 겪어 봤던 것인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며 유화영은 멀뚱히 선우휘윤을 바라보았다.
‘요즘 잘생긴 것들이 많군.’
선우휘윤은 나예은의 등에 슬쩍 시선을 주고는 검룡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 합석했다.
자리로 돌아온 남궁연지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술병을 들었다.
“자, 화영 언니 한잔 받으세요. 축하주예요.”
그새 친해졌는지 둘 사이 부르는 호칭이 달라져 있었다.
나예은도 딱딱한 표정을 풀고 유화영을 보며 한마디 했다.
“저는 언니가 그렇게 잘 먹는 줄 몰랐어요.”
“내가 뭐…… 잘 못 먹어.”
유리봉황의 말에 유화영은 얼굴을 붉히며 남궁연지의 술을 받았다.
“호호호. 부끄러워 하시네요, 호호호. 언니 여기 또 뭐가 맛이 있나요? 이왕 온 김에 다 맛을 보고 가지요.”
“으음, 여긴 다 맛있지만 화월채도 맛있어.”
“저기요!”
남궁연지가 손을 들자 쏜살같이 달려가는 황보현중.
“여기 화월채 주세요.”
“예이. 즉각 대령하겠습니다.”
화월채는 소채 요리의 한 종류로써 고기는 일체 들어가지 않고 갖은 채소와 향긋한 꽃잎을 쓴 요리였다.
그녀들이 주문을 한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음식을 들고 나온 사람은 황보현중이 아니었다.
탁.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조용히 접시만 내려놓고 등을 돌리는 남자, 그는 바로 북궁설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키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그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
유화영은 신경 쓰지 않았고 남궁연지는 잘생긴 얼굴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 나예은은 뭔가 느꼈는지 눈동자가 약간 떨렸다.
‘이 사람은…….’
그녀가 느끼기에 이 사람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유리봉황의 이러한 표정을 간파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선우휘윤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사람의 감정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는 것을 알자 선우휘윤은 눈을 크게 뜨고 분노했다.
‘감히 저따위 자식에게!’
나예은이 북궁설에게 느낀 것, 낯설지 않다는 느낌은 북궁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벽을 세운 채 혼자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어린 시절, 그런 자신을 남궁연지가 온갖 정성으로 겨우 벽을 조금 허물고 세상으로 끌고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게되었고 어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인데 좀 전의 북궁설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남궁연지를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같았다.
‘누굴까?’
나예은은 화월채를 아삭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는 유화영을 보며 물었다.
“화영 언니, 방금 그 사람…….”
“음? 얼음땡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묻는 나예은.
“얼음땡이?”
“응. 아까 그 녀석.”
“왜 그렇게 불러요?”
남궁연지는 나예은이 웬일로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속으로 놀랐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고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뭐 그러니까 표정도 없고 인상이 차갑잖아, 잘 안 나오는데 오늘은 나왔네, 어어어?”
유화영은 나예은과 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자기 혼자 화월채 다 먹어 버리고 만 것이다.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유화영,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으리오.
“미안, 헤헤헤. 혼자 다 먹어 버렸네.”
그러자 남궁연지는 화사하게 웃으며 유화영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괜찮아요. 또 주문하면 되죠 뭘. 그리고 저는 언니 먹는 모습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걸요.”
“그러니? 하하!”
멋쩍은 웃음의 유화영.
남궁연지는 또다시 황보현중을 불렀다.
“저기요, 여기 주문요.”
“예이! 뭘 드릴까요?”
“화월채 한 접시요. 아 그리고 방금 음식 가져오신 분으로 가져다 주세요.”
나예은은 왜 그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궁연지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으며 나예은의 표정을 무시해 버린 남궁연지.
“예? 북궁 형이요?”
황보현중의 말에 남궁연지는 짐짓 관심이 있는 척했다.
“그분 성함이 북궁 씨인가요?”
“네에, 북궁설.”
“멋진 이름이네요. 그분이 가져다 주셨으면 해요.”
“예에, 알겠습니다. 금방 오실 겁니다.”
싱긋 웃으면서 주방으로 달려가는 황보현중.
낙화루에는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가끔 여자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할 때 지명하여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북궁설이 지명 당한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곧이어 주방 쪽에서 석상처럼 음식을 들고 나오는 북궁설의 모습이 보였다.
세 여인의 시선은 당연히 북궁설을 향해 있었다.
북궁설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무표정이었다.
그때 뭔가를 느낀 듯 북궁설이 걸어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선우휘윤 쪽으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걷는 북궁설, 선우휘윤 쪽으로 시선을 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선우휘윤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놀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선우휘윤은 북궁설을 골탕 먹일 작정으로 암암리에 자신의 기세와 함께 경력을 실어 북궁설의 다리를 노렸었다.
그러나 웬걸 자신의 힘이 바닷물에 물 한 바가지 부은 듯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선우휘윤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저놈이?’
도저히 무공을 익힌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북궁설이었다. 그런 북궁설이 숨은 고수라는 사실을 선우휘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나예은 일행의 탁자에 음식을 조용히 내려놓는 북궁설.
유화영을 제외한 두 여인은 북궁설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람을 계속 바라보면 민망하게 마련인데 북궁설은 전혀 흔들림 없이 냉담했다.
이내 북궁설이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남궁연지는 느낀 그대로 툭 내뱉었다.
“마치 예은이 옛날 모습 같아.”
나예은은 남궁연지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자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조용히 웃으며 젓가락을 드는 남궁연지.
“후후.”
한편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제삼의 인물 천태성은 술병을 들고 선우휘윤 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리고는 탁자에 술병을 내려놓으며 검룡에게 말을 했다.
“이건 아까 청을 못 들어 드린 것에 대한 저의 성의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검룡은 일어서더니 포권을 취하며 감사해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무례를 범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천태성은 돌아서기 직전 선우휘윤에게 슬쩍 전음을 날렸다.
“사랑은 힘 있는 사람이 쟁취하는 것입니다.”
‘……!’
자신의 행동과 내심이 들켰기 때문일까 선우휘윤은 놀란 눈으로 천태성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뭔가 결심한 듯 선우휘윤은 술 한잔을 쭉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