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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19화
第六章 꽃보다 남자(2)
낙화루에는 다른 객잔에는 있지 않는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가지는 바로 휴일이었다. 다른 객잔이 매일 영업하는 방식이라면 낙화루는 한 달에 한 번씩 이틀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다.
완전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휴일 전에 투숙한 손님들은 객실을 이용할 수 있으나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투숙객들은 밖에 있는 다른 식당을 이용하여야 했다.
휴일이 되자 황보현중은 서호 끝자락에 위치한 거지촌에 갔으며 주동동과 북궁설은 식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돌아다녔다.
“황보 형!”
“황보 오빠!”
거지촌의 아이들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황보현중을 반겼다.
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얼굴은 모두들 깨끗했다.
그런 것이 거지촌이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어른들이 모두 일자리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굶지 않았다. 집은 아직까지 움막이라고는 하나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황보현중은 아이들과 서호에서 뛰어놀 며 물고기를 잡았다.
미리 마음먹고 왔는지 황보현중은 시장에서 커다란 그물을 사 가지고 온 것이다.
작은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멱도 감고 좀 큰 아이들은 황보현중과 함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아직 봄이라 물에 들어가면 좀 추울 텐데 아이들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듯 마냥 신나 했다.
한편 주동동과 북궁설은 한참 바쁘게 장을 보고 다니는 중이었다.
북궁설은 평상시 보다 많은 양의 짐을 들고 있었고 주동동은 한 손에는 종이를 다른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있었다.
주동동은 몰랐지만 북궁설의 눈빛은 착 가라 앉아 주위를 경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북궁설의 눈동자는 재빠르게 돌아가며 날카롭게 빛났다.
벌써 세 번째다.
주동동과 장을 보면서 드러난 살기, 그것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살기는 자신들을 노리지 않고 드러나자마자 사라졌다.
‘시험하는 것인가.’
북궁설은 자신 혼자 몸이라면 그 살기를 감지하는 즉시 몸을 날렸을 것이다. 하나 주동동과 함께 있어서 몸을 날리면 주동동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주동동을 노리는 자객은 일부러 살짝 살기를 흘리며 압박을 하고 있다고 북궁설은 생각했다.
그것도 모른 채 주동동은 한껏 밝은 표정이었다.
갓 강에서 잡혀 올라온 송어를 보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와, 이것 봐요, 북궁 형. 송어가 이렇게나 크다니.”
송어는 그 크기만큼이나 자신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 주동동의 두 손 안에서 몸무림쳤다.
주동동이 돌아보자 북궁설은 표정을 급 변화 시키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억!”
그렇게 밝던 주동동이 누굴 보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궁금한 북궁설이 주동동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동동은 다급한 표정으로 북궁설에게 손짓했다.
“빨리 고개를 돌려요.”
북궁설은 주동동이 고개를 돌린 반대 방향으로 허리를 쭉 펴며 보았다.
북적거리는 시장 통으로 아리따운 소녀 두 명과 무사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 무리가 주동동의 지척에 왔을 무렵, 그 아리따운 두 소녀는 멀찍이서부터 북궁설을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이 보통 사람보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지녔기에 북적거리는 시장통이라고 하더라도 눈에 금방 띠었기 때문이다.
‘갔나?’
북궁설의 옆에 있던 주동동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만 그 소녀 한 명과 눈이 딱 마주 쳤다.
“허억!”
소녀의 눈은 귀신이라도 본 듯 주동동을 보자 크게 부릅떴다.
주동동은 몸을 급히 돌리더니 냅다 달렸다. 그러자 주동동과 눈을 마주쳤던 소녀가 뒤에서 크게 외쳤다.
“동동 오라버니!”
소녀도 주동동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소녀의 일행은 소녀가 외치는 말을 듣더니 놀라서 함께 뛰었다.
한편 천태성은 왕소군을 말에 태우고 자신은 고삐를 잡은 채 지면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길거리는 봄의 절정을 알리는 듯 꽃향기가 가득했다.
선남선녀가 그렇게 걸어가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는데 지나다니던 행인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와.’
저마다 행인들은 그들을 보고는 소리 없는 감탄을 했다.
조심스럽게 천태성이 왕소군에게 외출을 권했을 때 그녀도 답답했는지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자 어색한 기분이 들었는지 왕소군이 말을 꺼냈다.
“꽃 내음이 아주 진하군요. 마치 꽃밭에 온 느낌이에요.”
천태성은 왕소군의 말을 듣고 두 발자국 걸은 다음 대답했다.
“원래 꽃은 지기 전에 가장 강한 향기를 내는 법이지요.”
천태성은 근거도 없이 꺼낸 이야기였지만 상황에 맞게 그럴듯하게 들렸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고 걸을 수도 없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태성은 그런 그녀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그들은 작은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러자 천태성은 왕소군에 나직이 속삭였다.
“잠시 결례하겠소.”
그러면서 천태성은 왕소군을 말에서 내려 품에 안은 후 조각배로 걸음을 옮겼다.
품에 안긴 왕소군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여린 빛의 홍조가 떠올랐다.
삿갓을 쓰고 천천히 노를 젓는 뱃사공, 그의 손등에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인 양 주름살이 가득했다.
양자강의 바람은 봄의 입김과 어울려 배 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혀 주었다.
왕소군은 바람이 불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며 강(江) 내음을 한껏 맡고 있었다.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왕소군의 머리칼, 그리고 그녀의 은은한 미소, 그 뒤에 앉아 열심히 무엇인가 만들고 있는 천태성.
바람이 실어다 준 왕소군의 향기 때문인지 그도 얼굴에 왕소군과 비슷한 미소를 달고 있었다.
‘좋은 사람…….’
사람이 눈이 멀게 되면 원래 눈이 하던 일을 다른 기관들이 떠맡게 되는데, 마음의 눈 또한 그 기능을 나눠 갖는 기관 중에 하나가 된다.
왕소군은 천태성과 비록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흑강파에 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망쳐 버리고 하루하루가 암흑이었다.
왕소군은 음식을 먹어도 숨을 쉬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을 점점 잃어갈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손을 뻗어왔다.
처음 그의 손을 잡았을 때를 잊지 못했다.
‘그 손 참 따뜻했지.’
왕소군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그에게 구함을 받고 낙화루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말로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왕소군은 궁금했다. 그 부탁을 한 사람이 누군인지, 처음에는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시일 점점 지나자 곧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몸의 기운이 점점 회복되어짐에 따라 마음도 회복되어 갔다.
천태성이 매일 자신에게 찾아와 친절하게 대해 주자 그녀는 그것이 무척이나 고마웠고 또한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보이지 않는 두 눈과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안타까웠다.
왕소군은 눈을 떠서 이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래서 왕소군은 기운을 차리면 고향에 가겠노라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마음씨가 따뜻한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꼭 그대를 고향에 데려다 주겠소.”
그때 왕소군은 보이지 않는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사실 왕소군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곁에 평생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정상적인 몸이 아닌 자신이 그의 곁에 있으면 짐이 될 것 같았다.
만약에 그와 함께 산다고 하면 평생 그는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이다. 왕소군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가 외출을 권하였다.
왕소군은 그렇게 바라던 그와 함께 대로를 걸었다. 비록 자신의 두 다리를 말이 대신하였지만 곁에는 그가 있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꽃 내음보다 그의 발자국 소리에 더욱 관심이 가는 왕소군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세우더니 실례하겠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자신을 품에 안는 것이 아닌가.
‘아…….’
그의 옷깃을 잡은 왕소군의 가녀린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자신을 번쩍 들고는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고 자신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된 느낌이었다.
왕소군은 다잡고 그렇게 다잡았던 마음이었는데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 증거로 자신의 볼이 뜨거웠다.
행여나 그가 벌겋게 된 자신의 얼굴을 보지는 않을까 부끄러웠다. 그래서 왕소군은 그의 품에서 얼굴을 돌렸었다.
배에 타게 되고 이렇게 왕소군은 강바람을 쐬고 있는 것이었다.
왕소군의 애틋한 상념은 뒤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깨어졌다.
‘아.’
천태성은 아무 소리 없이 그녀의 뒤에 앉아서 피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피리 소리는 천천히 나아가는 배 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느린 듯하면서도 전혀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기분을 점점 좋게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노를 젓고 있던 사공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자그마한 배 위는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즐거운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멈추시오!”
뛰어가는 주동동의 앞을 무사 차림의 사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그 무사는 주동동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신 금의위 팔교두 백중훈이 오황…… 읍!”
주동동은 무릎 꿇고 있는 무사 위를 뛰어올라 덮치다시피 하면서 한 손으로 그 무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조용히 해, 조용히!”
행여나 주동동은 무사의 말을 누가 들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북궁설은 무사가 길을 막길래 검을 빼들려는 찰나 갑자기 부복하는 바람에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뒤 이어진 무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금의위?’
곧이어 북궁설의 등 뒤로 뾰족한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동동 오라버니! 동동 오라버니!”
주동동을 도망치게 만든 바로 그 귀여운 소녀였다.
그 소녀는 무사 차림의 사내와 엉켜 누워 있는 주동동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동동 오라버니, 맞죠!”
그러자 주동동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나 주동동 아니야.”
북궁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푸웁.
“와 맞네! 언니 언니!”
귀여운 소녀는 뒤따라 달려오는 분홍 옷의 소녀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여기 동동 오라버니 있어!”
고개 숙이고 있는 주동동을 발견한 분홍 옷의 소녀는 그 자리에서 무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굽히며 입을 열었다.
“소녀 구설란, 오황…… 읍!”
이번에는 소녀에게 달려드는 주동동.
“쉿, 쉿, 쉿.”
좀 전의 엉켜 있던 무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분홍 옷의 소녀, 구설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구설란은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주동동은 귀여운 소녀를 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모두 쉿, 따라와.”
귀여운 소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 본 물건을 챙겨든 주동동은 북궁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어요, 북궁 형.”
“그러시죠.”
북궁설은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주동동에게 묻지도 않고 주동동의 말에 대답하고 따라 걸었다.
주동동을 발견한 이 세 사람은 모두 황궁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작고 귀여운 소녀는 주동동의 이복 동생인 진령공주 주소소.
올해 십사 세로 황궁에서 주동동과 곧잘 어울리곤 했다.
그리고 분홍 옷을 입은 소녀는 구태사의 여식으로 황궁에서 지내지는 않지만 황궁에 자주 들락거리며 주소소와 자주 만났다.
그녀는 올해 십육 세로 한참 피어나는 시기인 만큼 풋풋한 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젊은 무사는 금의위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면서도 무공이 출중한 백중훈이었다.
그는 금의위 역사상 최연소로 교두 직위에 오른 인물이었고 현재 진령공주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원래 금의위는 호위 임무를 특별한 명령 없이 수행하지 않으나 황제가 특별히 내린 명령이라 이 임무를 맡고 있었다.
진령공주 주소소는 걸어가면서 북궁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북궁설의 착 가라앉은 눈과 마주치면 찔끔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젖살 때문에 동그란 볼을 가지고 있는 진령공주는 이 차가운 미남자가 끌렸는지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와 멋지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 눈빛이 무서워 눈을 돌렸겠건만 진령공주는 자꾸 돌아봤다.
황궁에도 잘생긴 사람들이 즐비 했지만 여기 키 큰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여태 자신의 이복 오라버니인 주동동이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사람을 보고서 진령공주는 생각을 바꿨다.
주동동이 아무 생각 없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북궁설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오는 북궁설의 미소.
진령 공주는 그 미소를 보고 말았는데 눈이 동그래지더니 아직 해도 안 졌건만 하늘의 별을 따다 눈에 가져다 심었다.
‘와 진짜 멋지다!’
第六章 꽃보다 남자(2)
낙화루에는 다른 객잔에는 있지 않는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 한 가지는 바로 휴일이었다. 다른 객잔이 매일 영업하는 방식이라면 낙화루는 한 달에 한 번씩 이틀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다.
완전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휴일 전에 투숙한 손님들은 객실을 이용할 수 있으나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투숙객들은 밖에 있는 다른 식당을 이용하여야 했다.
휴일이 되자 황보현중은 서호 끝자락에 위치한 거지촌에 갔으며 주동동과 북궁설은 식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돌아다녔다.
“황보 형!”
“황보 오빠!”
거지촌의 아이들은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황보현중을 반겼다.
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얼굴은 모두들 깨끗했다.
그런 것이 거지촌이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어른들이 모두 일자리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굶지 않았다. 집은 아직까지 움막이라고는 하나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황보현중은 아이들과 서호에서 뛰어놀 며 물고기를 잡았다.
미리 마음먹고 왔는지 황보현중은 시장에서 커다란 그물을 사 가지고 온 것이다.
작은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멱도 감고 좀 큰 아이들은 황보현중과 함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아직 봄이라 물에 들어가면 좀 추울 텐데 아이들은 전혀 그런 것이 없다는 듯 마냥 신나 했다.
한편 주동동과 북궁설은 한참 바쁘게 장을 보고 다니는 중이었다.
북궁설은 평상시 보다 많은 양의 짐을 들고 있었고 주동동은 한 손에는 종이를 다른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있었다.
주동동은 몰랐지만 북궁설의 눈빛은 착 가라 앉아 주위를 경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북궁설의 눈동자는 재빠르게 돌아가며 날카롭게 빛났다.
벌써 세 번째다.
주동동과 장을 보면서 드러난 살기, 그것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살기는 자신들을 노리지 않고 드러나자마자 사라졌다.
‘시험하는 것인가.’
북궁설은 자신 혼자 몸이라면 그 살기를 감지하는 즉시 몸을 날렸을 것이다. 하나 주동동과 함께 있어서 몸을 날리면 주동동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주동동을 노리는 자객은 일부러 살짝 살기를 흘리며 압박을 하고 있다고 북궁설은 생각했다.
그것도 모른 채 주동동은 한껏 밝은 표정이었다.
갓 강에서 잡혀 올라온 송어를 보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와, 이것 봐요, 북궁 형. 송어가 이렇게나 크다니.”
송어는 그 크기만큼이나 자신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 주동동의 두 손 안에서 몸무림쳤다.
주동동이 돌아보자 북궁설은 표정을 급 변화 시키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억!”
그렇게 밝던 주동동이 누굴 보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궁금한 북궁설이 주동동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동동은 다급한 표정으로 북궁설에게 손짓했다.
“빨리 고개를 돌려요.”
북궁설은 주동동이 고개를 돌린 반대 방향으로 허리를 쭉 펴며 보았다.
북적거리는 시장 통으로 아리따운 소녀 두 명과 무사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 무리가 주동동의 지척에 왔을 무렵, 그 아리따운 두 소녀는 멀찍이서부터 북궁설을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이 보통 사람보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를 지녔기에 북적거리는 시장통이라고 하더라도 눈에 금방 띠었기 때문이다.
‘갔나?’
북궁설의 옆에 있던 주동동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만 그 소녀 한 명과 눈이 딱 마주 쳤다.
“허억!”
소녀의 눈은 귀신이라도 본 듯 주동동을 보자 크게 부릅떴다.
주동동은 몸을 급히 돌리더니 냅다 달렸다. 그러자 주동동과 눈을 마주쳤던 소녀가 뒤에서 크게 외쳤다.
“동동 오라버니!”
소녀도 주동동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소녀의 일행은 소녀가 외치는 말을 듣더니 놀라서 함께 뛰었다.
한편 천태성은 왕소군을 말에 태우고 자신은 고삐를 잡은 채 지면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길거리는 봄의 절정을 알리는 듯 꽃향기가 가득했다.
선남선녀가 그렇게 걸어가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는데 지나다니던 행인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와.’
저마다 행인들은 그들을 보고는 소리 없는 감탄을 했다.
조심스럽게 천태성이 왕소군에게 외출을 권했을 때 그녀도 답답했는지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자 어색한 기분이 들었는지 왕소군이 말을 꺼냈다.
“꽃 내음이 아주 진하군요. 마치 꽃밭에 온 느낌이에요.”
천태성은 왕소군의 말을 듣고 두 발자국 걸은 다음 대답했다.
“원래 꽃은 지기 전에 가장 강한 향기를 내는 법이지요.”
천태성은 근거도 없이 꺼낸 이야기였지만 상황에 맞게 그럴듯하게 들렸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고 걸을 수도 없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태성은 그런 그녀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그들은 작은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러자 천태성은 왕소군에 나직이 속삭였다.
“잠시 결례하겠소.”
그러면서 천태성은 왕소군을 말에서 내려 품에 안은 후 조각배로 걸음을 옮겼다.
품에 안긴 왕소군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여린 빛의 홍조가 떠올랐다.
삿갓을 쓰고 천천히 노를 젓는 뱃사공, 그의 손등에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인 양 주름살이 가득했다.
양자강의 바람은 봄의 입김과 어울려 배 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혀 주었다.
왕소군은 바람이 불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며 강(江) 내음을 한껏 맡고 있었다.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왕소군의 머리칼, 그리고 그녀의 은은한 미소, 그 뒤에 앉아 열심히 무엇인가 만들고 있는 천태성.
바람이 실어다 준 왕소군의 향기 때문인지 그도 얼굴에 왕소군과 비슷한 미소를 달고 있었다.
‘좋은 사람…….’
사람이 눈이 멀게 되면 원래 눈이 하던 일을 다른 기관들이 떠맡게 되는데, 마음의 눈 또한 그 기능을 나눠 갖는 기관 중에 하나가 된다.
왕소군은 천태성과 비록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흑강파에 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망쳐 버리고 하루하루가 암흑이었다.
왕소군은 음식을 먹어도 숨을 쉬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을 점점 잃어갈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손을 뻗어왔다.
처음 그의 손을 잡았을 때를 잊지 못했다.
‘그 손 참 따뜻했지.’
왕소군은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그에게 구함을 받고 낙화루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말로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왕소군은 궁금했다. 그 부탁을 한 사람이 누군인지, 처음에는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시일 점점 지나자 곧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몸의 기운이 점점 회복되어짐에 따라 마음도 회복되어 갔다.
천태성이 매일 자신에게 찾아와 친절하게 대해 주자 그녀는 그것이 무척이나 고마웠고 또한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보이지 않는 두 눈과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안타까웠다.
왕소군은 눈을 떠서 이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걷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래서 왕소군은 기운을 차리면 고향에 가겠노라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마음씨가 따뜻한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꼭 그대를 고향에 데려다 주겠소.”
그때 왕소군은 보이지 않는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사실 왕소군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곁에 평생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정상적인 몸이 아닌 자신이 그의 곁에 있으면 짐이 될 것 같았다.
만약에 그와 함께 산다고 하면 평생 그는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야 할 것이다. 왕소군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가 외출을 권하였다.
왕소군은 그렇게 바라던 그와 함께 대로를 걸었다. 비록 자신의 두 다리를 말이 대신하였지만 곁에는 그가 있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꽃 내음보다 그의 발자국 소리에 더욱 관심이 가는 왕소군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세우더니 실례하겠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자신을 품에 안는 것이 아닌가.
‘아…….’
그의 옷깃을 잡은 왕소군의 가녀린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자신을 번쩍 들고는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고 자신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된 느낌이었다.
왕소군은 다잡고 그렇게 다잡았던 마음이었는데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 증거로 자신의 볼이 뜨거웠다.
행여나 그가 벌겋게 된 자신의 얼굴을 보지는 않을까 부끄러웠다. 그래서 왕소군은 그의 품에서 얼굴을 돌렸었다.
배에 타게 되고 이렇게 왕소군은 강바람을 쐬고 있는 것이었다.
왕소군의 애틋한 상념은 뒤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깨어졌다.
‘아.’
천태성은 아무 소리 없이 그녀의 뒤에 앉아서 피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피리 소리는 천천히 나아가는 배 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느린 듯하면서도 전혀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사람의 기분을 점점 좋게 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노를 젓고 있던 사공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자그마한 배 위는 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즐거운지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멈추시오!”
뛰어가는 주동동의 앞을 무사 차림의 사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그 무사는 주동동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신 금의위 팔교두 백중훈이 오황…… 읍!”
주동동은 무릎 꿇고 있는 무사 위를 뛰어올라 덮치다시피 하면서 한 손으로 그 무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조용히 해, 조용히!”
행여나 주동동은 무사의 말을 누가 들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북궁설은 무사가 길을 막길래 검을 빼들려는 찰나 갑자기 부복하는 바람에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뒤 이어진 무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금의위?’
곧이어 북궁설의 등 뒤로 뾰족한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동동 오라버니! 동동 오라버니!”
주동동을 도망치게 만든 바로 그 귀여운 소녀였다.
그 소녀는 무사 차림의 사내와 엉켜 누워 있는 주동동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동동 오라버니, 맞죠!”
그러자 주동동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숙이더니 중얼거렸다.
“나 주동동 아니야.”
북궁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푸웁.
“와 맞네! 언니 언니!”
귀여운 소녀는 뒤따라 달려오는 분홍 옷의 소녀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여기 동동 오라버니 있어!”
고개 숙이고 있는 주동동을 발견한 분홍 옷의 소녀는 그 자리에서 무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굽히며 입을 열었다.
“소녀 구설란, 오황…… 읍!”
이번에는 소녀에게 달려드는 주동동.
“쉿, 쉿, 쉿.”
좀 전의 엉켜 있던 무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분홍 옷의 소녀, 구설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구설란은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주동동은 귀여운 소녀를 보며 조용히 하라는 듯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모두 쉿, 따라와.”
귀여운 소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 본 물건을 챙겨든 주동동은 북궁설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어요, 북궁 형.”
“그러시죠.”
북궁설은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주동동에게 묻지도 않고 주동동의 말에 대답하고 따라 걸었다.
주동동을 발견한 이 세 사람은 모두 황궁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작고 귀여운 소녀는 주동동의 이복 동생인 진령공주 주소소.
올해 십사 세로 황궁에서 주동동과 곧잘 어울리곤 했다.
그리고 분홍 옷을 입은 소녀는 구태사의 여식으로 황궁에서 지내지는 않지만 황궁에 자주 들락거리며 주소소와 자주 만났다.
그녀는 올해 십육 세로 한참 피어나는 시기인 만큼 풋풋한 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젊은 무사는 금의위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면서도 무공이 출중한 백중훈이었다.
그는 금의위 역사상 최연소로 교두 직위에 오른 인물이었고 현재 진령공주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원래 금의위는 호위 임무를 특별한 명령 없이 수행하지 않으나 황제가 특별히 내린 명령이라 이 임무를 맡고 있었다.
진령공주 주소소는 걸어가면서 북궁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북궁설의 착 가라앉은 눈과 마주치면 찔끔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젖살 때문에 동그란 볼을 가지고 있는 진령공주는 이 차가운 미남자가 끌렸는지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와 멋지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 눈빛이 무서워 눈을 돌렸겠건만 진령공주는 자꾸 돌아봤다.
황궁에도 잘생긴 사람들이 즐비 했지만 여기 키 큰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여태 자신의 이복 오라버니인 주동동이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사람을 보고서 진령공주는 생각을 바꿨다.
주동동이 아무 생각 없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북궁설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오는 북궁설의 미소.
진령 공주는 그 미소를 보고 말았는데 눈이 동그래지더니 아직 해도 안 졌건만 하늘의 별을 따다 눈에 가져다 심었다.
‘와 진짜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