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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20화
第六章 꽃보다 남자(3)
낙화루에 도착하자 주동동은 그 세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북궁설은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가지고 식재료 창고로 갔다.
방에 들어오자 진령공주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리고 왜 가출했어. 아바마마하고 태황후님이 걱정이 크셔 그리고…… 그리고.”
진령공주는 말을 막 쏟아내다가 점점 늘어뜨렸다.
주동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령공주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아까 그분, 아이 몰라!”
“뭐야?”
주동동은 진령공주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리고 우선 무엇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낙화루로 걸어오면서 생각한 말을 하기로 했다.
“세 사람 다 잘 들어. 여기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이야.”
그 말에 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침상 하나와 옷장 하나 그리고 탁자 하나가 끝인, 아무리 봐도 황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방이었다.
진령공주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겨우 이런 데 살아?”
“아무튼 잘 들어 난 여기서 요리를 해. 여기 숙수야.”
세 사람은 두리번거리다가 숙수라는 말에 주동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말?”
“오황자님!”
“그것이 정말이옵니까?”
주동동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허리를 쭈욱 폈다.
“잘 들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알리지마, 부탁이니까 제발. 그리고 나는 여기 생활에 만족해. 뭐 정 내가 보고 싶다면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이곳으로 오면 돼. 그러면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게.”
진령공주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래도 돼? 소소 여기에 자주 와도 돼?”
“응. 자주 와도 돼.”
황보현중은 가느다란 막대를 지면 위에 여러 개 꽂아 놓고 그 위를 걸어다니며 왕복하고 있었다.
떨어질 듯하면서도 용케 잘도 왔다 갔다 하는 황보현중.
웬만큼 숙련이 됐는지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표정이 없었다. 다만 수십 차례 넘어졌는지 온통 먼지 투성이에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옆에서 천태성이 뒷짐을 진 채 황보현중을 보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무공을 배울 때 기초 심법도 병행해서 배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사람 몸이라는 게 그릇이라고 치면 어느 정도 넓혀 놔야 그 내용물인 즉 ‘기(氣)’도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외공(外攻)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내공(內攻)에 들어가는 것이지.”
“예!”
천태성은 황보현중에게 아직 아무런 심법도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도 황보현중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천태성이 시키는 대로 모두 해내었다.
나무 막대 위에 올라서는데 수백 번 넘어지고 깨지고 하면서 올라서는데 성공하자 다시 나무막대를 늘려서 그 위를 돌아다니기까지 수천 번 떨어지고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성공한 황보현중이었다.
‘후후, 이 녀석 정신력도 매우 좋아.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성 하나는 그 자질만큼이나 뛰어나군.’
황보현중은 만 명 중에 하나 난다는 무상지체(無上之體)였다.
배우면 배우는 대로 흡수한다는 그 선천기골.
천태성은 그의 손목을 잡았을 때 알아차렸다. 그러나 천태성은 이 사실을 황보현중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실 심법에 바로 입문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보다 확실한 기본기를 쌓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태성은 일단 기본 심법과 경신부(輕身赴)부터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일하러 가마. 이각 후에 씻고 나오너라.”
“예에. 알겠습니다.”
천태성은 황보현중을 남겨둔 채 천천히 뒤뜰에서 돌아 나오며 숨어 있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걸어갔다.
좀 전부터 모퉁이에 숨어서 황보현중과 자신을 훔쳐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후후.”
이제 갓 십오륙 세 되었을까. 양손에 술인지 물인지 호리병을 꼭 쥐고 있는 소녀였다.
눈치 빠른 천태성은 이 소녀가 누구를 보러왔는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후후후.’
소녀는 천태성이 어려운지 고개를 숙인 채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머리를 한번 슥 쓰다듬으며 천태성은 소녀에게 말했다.
“현중이 보러 왔구나, 가 보거라.”
자신의 내심을 들킨 덕분인지 소녀는 벌겋게 된 얼굴로 인사를 꾸벅하더니 황보현중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소녀를 발견한 황보현중은 예의 그 특유의 명랑한 웃음을 지었다.
“어? 려지구나. 그런데 어쩐 일이야? 수미하고 지영이는?”
황보현중은 막대 아래로 뛰어내리며 소매로 땀을 슥슥 닦았다.
등려지는 황보현중이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양손에 쥐고 있던 호리병을 내밀었다.
“이거 나 마시라고 주는 거야?”
끄덕끄덕.
“고마워. 잘 마실게.”
그것은 방금 떠 온 듯한 시원한 물이었는데 황보현중은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말없이 황보현중의 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려지, 그녀 얼굴은 뭐가 좋은지 웃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이제 십칠 세이고 여자아이는 갓 십오 세였건만 둘은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보였다.
멀찍이 지켜보던 천태성은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돌아섰다.
‘요즘은 빠르구나. 후후후후.’
한편 식당 안에는 웬 낯설지 않은 중년인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흑발에 짧은 수염,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매는 꼭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호오. 이곳이 성이가 말하던 그 객잔이구만, 허허. 그런데 이 무슨 객잔이 이런고? 한 무림의 방파 같지 않은가? 곳곳에 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구만 허허.’
탁자에 앉아서 눈동자를 천천히 돌리는 노인.
그는 당금 무림의 절대지존 중 한 명이자 천태성의 아버지인 천마 천운학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색 장삼을 입은 학사풍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황보현중의 할머니를 치료한 적 있는 독천존이었다.
독천존이 천마의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한마디 했다.
“교주님 어떻습니까?”
천마는 방금 독천존이 따른 자신의 술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뭘 말씀이오? 이 술잔에 탄 독 말이오?”
“허허, 교주님도 참. 극마지체를 이루신 분이 뭐가 독이 무섭다고 그러십니까? 가볍게 한잔하시지요.”
“먹고 뒈지지야 않겠지만 뒷간에 가면 본좌도 힘드오.”
“허허허허.”
“그것보다 여기는 무림의 한 방파라 해도 손색이 없겠소.”
“그런 거 같습니다.”
독천존은 고기를 한 점 집어먹더니 천마에게 자신의 먹은 고기를 권했다.
“교주님, 이 고기도 한번 드셔보시지요. 교에서 먹던 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맛있습니다.”
천마는 독천존이 가리킨 고기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더니 말을 했다.
“여기도 독을 살포했구만. 에잉, 뭔 음식을 못 먹게 하시오.”
“교주님도 참 농이 심하시구려.”
그때 천태성이 후원에서 돌아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천마를 발견한 천태성은 눈을 크게 한 번 뜨더니 천마 쪽으로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기별이라도 하고 오시지요. 그럼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부자(父子) 간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니, 천태성이 따르고 천운학이 받았다.
쪼로로록.
“이건 무슨 술이냐?”
“그냥 죽엽청입니다.”
꿀꺽.
“크으.”
천운학이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자 옆에 있던 독천존이 불만을 터뜨렸다.
“소교주가 따라준 술은 넙죽넙죽 잘도 마시는구랴.”
“이건 독이 없거든.”
천태성은 두 노인이 주고받는 농이 우스운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운학은 시선을 천태성에게 돌리더니 정색하며 물었다.
“그래 네가 원하던 것을 이루었느냐?”
“아직입니다.”
또다시 끼어드는 독천존.
“이제 두 달도 안 됐습니다, 교주님.”
천운학은 독천존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자 헛기침을 내었다.
“흠흠.”
그때 마침 주방에서 나온 북궁설이 옷을 갈아 입기 위해 객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어.”
독천존과 천운학은 북궁설이 나타나자마자 대번에 그 진가를 알아본 듯 눈을 크게 떴다.
‘범상치 않는 놈이로다.’
그러나 웬걸 북궁설은 천운학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디 한번.’
천마 천운학은 눈에 힘을 주더니 자신의 기세를 세워 북궁설에게 날렸다.
슈아아아악.
‘……!!’
천하의 북궁설도 엄청난 기세가 자신을 덮쳐 오자 크게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검을 쥐는 시늉으로 덮쳐오는 기세를 향해 세 번 휘둘렀다.
스아아아악.
그러자 그 기세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마는데, 북궁설은 천운학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천태성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그러나 천태성의 예상과는 반대로 천운학이 고개를 돌리더니 웃는 것이 아닌가.
“허허허허! 태성아, 친구가 없다면서 어디서 이런 청년을 만났으냐?”
천마는 예상도 못한 반응에 감탄했다. 실상 자신의 기습에 저 정도까지 대처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천운학은 북궁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태성이와 겨뤄도 승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구나. 대단해. 누가 이 정도까지 키워냈을까? 역시 무림은 기인이사들이 많다고 하던 옛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천운학은 이제 자신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느꼈다.
“장강(長江)의 뒷물이 밀려오는구나, 허허허허.”
북궁설은 기세가 거둬지자 손을 내리며 등을 돌렸다.
북궁설의 이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천운학은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태성의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태성아 네 친구가 아니냐?”
“아닙니다.”
“친구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말하기 복잡하오나 일단 주종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저 청년,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구나. 너도 방심 해선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자리에 다시 앉은 천태성과 천운학은 식사를 마치고 독천존과 함께 황보현중의 할머니를 방문하였다.
천운학이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저는 여기 태성이의 아비되는 사람입니다.”
“아이구,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냥 아들놈이 잘하고 있나 해서 들러 봤습니다.”
할머니는 천운학과 인사를 나눈 후 독천존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독천존과는 일면식이 있는지라 매우 반가워했다.
세 사람은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방을 나왔다. 그러자 독천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태성에게 말을 하였다.
“이거 이렇게 가다가는 올해를 넘기기 어려우실 거 같습니다.”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독천존은 뭔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반적인 치료법은 되지 않고 절세영약이나 영단(靈丹)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자 천운학이 자신의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엇인가 꺼내었다.
은박으로 싸여 있으면서 아주 청아한 향기가 나는 단이었다.
“이건 안 되오?”
천태성은 그것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천운학이 꺼낸 것은 마교에서도 몇 개 없는 단으로써 소림의 대환단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마령신단(魔靈神丹)은 마공을 익힌 사람이나 수(水)나 토(土)의 기운을 가진 사람에게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할머니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독천존의 말에 천운학은 마령신단을 다시 자기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그 소림의 대환단은 효능이 있소?”
“예, 대환단이라면 마령신단과 상극이고 할머니의 신체에 잘 부합되는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천존의 말을 들었지만 천태성과 천운학은 전혀 개운한 표정이 아니었다.
천태성이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 대환단을 어떻게 구합니까? 소림이 줄 턱이 만무한데…….”
그러자 가만히 있던 천운학이 밝은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아, 방도가 있어! 그 콧대 높은 땡중들의 대환단을 받을 방도가 있어!”
천태성은 천운학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독천존은 대충 눈치챈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 승천대회에서 우승하면 부상으로 그것을 줄 거야.”
“승천대회!”
승천대회, 통칭 승천무투대회로 삼 년마다 정사의 고수들이 모여 자신들의 실력을 겨루고 무림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대회였다.
이 대회 우승자에게는 부상으로 절세 영약이 주어지는데 그 영약이 바로 대환단과 마령신단이었다.
대게 마공을 익힌 고수들은 마령신단을 택하고 정파무공을 익히면 그 반대였다.
第六章 꽃보다 남자(3)
낙화루에 도착하자 주동동은 그 세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북궁설은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가지고 식재료 창고로 갔다.
방에 들어오자 진령공주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리고 왜 가출했어. 아바마마하고 태황후님이 걱정이 크셔 그리고…… 그리고.”
진령공주는 말을 막 쏟아내다가 점점 늘어뜨렸다.
주동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령공주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아까 그분, 아이 몰라!”
“뭐야?”
주동동은 진령공주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리고 우선 무엇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낙화루로 걸어오면서 생각한 말을 하기로 했다.
“세 사람 다 잘 들어. 여기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이야.”
그 말에 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침상 하나와 옷장 하나 그리고 탁자 하나가 끝인, 아무리 봐도 황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방이었다.
진령공주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겨우 이런 데 살아?”
“아무튼 잘 들어 난 여기서 요리를 해. 여기 숙수야.”
세 사람은 두리번거리다가 숙수라는 말에 주동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말?”
“오황자님!”
“그것이 정말이옵니까?”
주동동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허리를 쭈욱 폈다.
“잘 들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알리지마, 부탁이니까 제발. 그리고 나는 여기 생활에 만족해. 뭐 정 내가 보고 싶다면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이곳으로 오면 돼. 그러면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게.”
진령공주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래도 돼? 소소 여기에 자주 와도 돼?”
“응. 자주 와도 돼.”
황보현중은 가느다란 막대를 지면 위에 여러 개 꽂아 놓고 그 위를 걸어다니며 왕복하고 있었다.
떨어질 듯하면서도 용케 잘도 왔다 갔다 하는 황보현중.
웬만큼 숙련이 됐는지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표정이 없었다. 다만 수십 차례 넘어졌는지 온통 먼지 투성이에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옆에서 천태성이 뒷짐을 진 채 황보현중을 보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무공을 배울 때 기초 심법도 병행해서 배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사람 몸이라는 게 그릇이라고 치면 어느 정도 넓혀 놔야 그 내용물인 즉 ‘기(氣)’도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외공(外攻)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내공(內攻)에 들어가는 것이지.”
“예!”
천태성은 황보현중에게 아직 아무런 심법도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도 황보현중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천태성이 시키는 대로 모두 해내었다.
나무 막대 위에 올라서는데 수백 번 넘어지고 깨지고 하면서 올라서는데 성공하자 다시 나무막대를 늘려서 그 위를 돌아다니기까지 수천 번 떨어지고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성공한 황보현중이었다.
‘후후, 이 녀석 정신력도 매우 좋아.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성 하나는 그 자질만큼이나 뛰어나군.’
황보현중은 만 명 중에 하나 난다는 무상지체(無上之體)였다.
배우면 배우는 대로 흡수한다는 그 선천기골.
천태성은 그의 손목을 잡았을 때 알아차렸다. 그러나 천태성은 이 사실을 황보현중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실 심법에 바로 입문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보다 확실한 기본기를 쌓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태성은 일단 기본 심법과 경신부(輕身赴)부터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일하러 가마. 이각 후에 씻고 나오너라.”
“예에. 알겠습니다.”
천태성은 황보현중을 남겨둔 채 천천히 뒤뜰에서 돌아 나오며 숨어 있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걸어갔다.
좀 전부터 모퉁이에 숨어서 황보현중과 자신을 훔쳐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후후.”
이제 갓 십오륙 세 되었을까. 양손에 술인지 물인지 호리병을 꼭 쥐고 있는 소녀였다.
눈치 빠른 천태성은 이 소녀가 누구를 보러왔는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후후후.’
소녀는 천태성이 어려운지 고개를 숙인 채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머리를 한번 슥 쓰다듬으며 천태성은 소녀에게 말했다.
“현중이 보러 왔구나, 가 보거라.”
자신의 내심을 들킨 덕분인지 소녀는 벌겋게 된 얼굴로 인사를 꾸벅하더니 황보현중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소녀를 발견한 황보현중은 예의 그 특유의 명랑한 웃음을 지었다.
“어? 려지구나. 그런데 어쩐 일이야? 수미하고 지영이는?”
황보현중은 막대 아래로 뛰어내리며 소매로 땀을 슥슥 닦았다.
등려지는 황보현중이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양손에 쥐고 있던 호리병을 내밀었다.
“이거 나 마시라고 주는 거야?”
끄덕끄덕.
“고마워. 잘 마실게.”
그것은 방금 떠 온 듯한 시원한 물이었는데 황보현중은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꿀꺽.
말없이 황보현중의 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려지, 그녀 얼굴은 뭐가 좋은지 웃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이제 십칠 세이고 여자아이는 갓 십오 세였건만 둘은 마치 오래된 부부처럼 보였다.
멀찍이 지켜보던 천태성은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돌아섰다.
‘요즘은 빠르구나. 후후후후.’
한편 식당 안에는 웬 낯설지 않은 중년인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흑발에 짧은 수염,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매는 꼭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호오. 이곳이 성이가 말하던 그 객잔이구만, 허허. 그런데 이 무슨 객잔이 이런고? 한 무림의 방파 같지 않은가? 곳곳에 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구만 허허.’
탁자에 앉아서 눈동자를 천천히 돌리는 노인.
그는 당금 무림의 절대지존 중 한 명이자 천태성의 아버지인 천마 천운학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색 장삼을 입은 학사풍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황보현중의 할머니를 치료한 적 있는 독천존이었다.
독천존이 천마의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한마디 했다.
“교주님 어떻습니까?”
천마는 방금 독천존이 따른 자신의 술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뭘 말씀이오? 이 술잔에 탄 독 말이오?”
“허허, 교주님도 참. 극마지체를 이루신 분이 뭐가 독이 무섭다고 그러십니까? 가볍게 한잔하시지요.”
“먹고 뒈지지야 않겠지만 뒷간에 가면 본좌도 힘드오.”
“허허허허.”
“그것보다 여기는 무림의 한 방파라 해도 손색이 없겠소.”
“그런 거 같습니다.”
독천존은 고기를 한 점 집어먹더니 천마에게 자신의 먹은 고기를 권했다.
“교주님, 이 고기도 한번 드셔보시지요. 교에서 먹던 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맛있습니다.”
천마는 독천존이 가리킨 고기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더니 말을 했다.
“여기도 독을 살포했구만. 에잉, 뭔 음식을 못 먹게 하시오.”
“교주님도 참 농이 심하시구려.”
그때 천태성이 후원에서 돌아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천마를 발견한 천태성은 눈을 크게 한 번 뜨더니 천마 쪽으로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기별이라도 하고 오시지요. 그럼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부자(父子) 간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니, 천태성이 따르고 천운학이 받았다.
쪼로로록.
“이건 무슨 술이냐?”
“그냥 죽엽청입니다.”
꿀꺽.
“크으.”
천운학이 술을 한 입에 털어 넣자 옆에 있던 독천존이 불만을 터뜨렸다.
“소교주가 따라준 술은 넙죽넙죽 잘도 마시는구랴.”
“이건 독이 없거든.”
천태성은 두 노인이 주고받는 농이 우스운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운학은 시선을 천태성에게 돌리더니 정색하며 물었다.
“그래 네가 원하던 것을 이루었느냐?”
“아직입니다.”
또다시 끼어드는 독천존.
“이제 두 달도 안 됐습니다, 교주님.”
천운학은 독천존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자 헛기침을 내었다.
“흠흠.”
그때 마침 주방에서 나온 북궁설이 옷을 갈아 입기 위해 객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어.”
독천존과 천운학은 북궁설이 나타나자마자 대번에 그 진가를 알아본 듯 눈을 크게 떴다.
‘범상치 않는 놈이로다.’
그러나 웬걸 북궁설은 천운학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디 한번.’
천마 천운학은 눈에 힘을 주더니 자신의 기세를 세워 북궁설에게 날렸다.
슈아아아악.
‘……!!’
천하의 북궁설도 엄청난 기세가 자신을 덮쳐 오자 크게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검을 쥐는 시늉으로 덮쳐오는 기세를 향해 세 번 휘둘렀다.
스아아아악.
그러자 그 기세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마는데, 북궁설은 천운학을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천태성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그러나 천태성의 예상과는 반대로 천운학이 고개를 돌리더니 웃는 것이 아닌가.
“허허허허! 태성아, 친구가 없다면서 어디서 이런 청년을 만났으냐?”
천마는 예상도 못한 반응에 감탄했다. 실상 자신의 기습에 저 정도까지 대처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천운학은 북궁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태성이와 겨뤄도 승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구나. 대단해. 누가 이 정도까지 키워냈을까? 역시 무림은 기인이사들이 많다고 하던 옛말이 틀리지 않았구나.’
천운학은 이제 자신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느꼈다.
“장강(長江)의 뒷물이 밀려오는구나, 허허허허.”
북궁설은 기세가 거둬지자 손을 내리며 등을 돌렸다.
북궁설의 이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천운학은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태성의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태성아 네 친구가 아니냐?”
“아닙니다.”
“친구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말하기 복잡하오나 일단 주종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저 청년,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구나. 너도 방심 해선 안 될 것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자리에 다시 앉은 천태성과 천운학은 식사를 마치고 독천존과 함께 황보현중의 할머니를 방문하였다.
천운학이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했다.
“저는 여기 태성이의 아비되는 사람입니다.”
“아이구,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냥 아들놈이 잘하고 있나 해서 들러 봤습니다.”
할머니는 천운학과 인사를 나눈 후 독천존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독천존과는 일면식이 있는지라 매우 반가워했다.
세 사람은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방을 나왔다. 그러자 독천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태성에게 말을 하였다.
“이거 이렇게 가다가는 올해를 넘기기 어려우실 거 같습니다.”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독천존은 뭔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반적인 치료법은 되지 않고 절세영약이나 영단(靈丹)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자 천운학이 자신의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엇인가 꺼내었다.
은박으로 싸여 있으면서 아주 청아한 향기가 나는 단이었다.
“이건 안 되오?”
천태성은 그것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천운학이 꺼낸 것은 마교에서도 몇 개 없는 단으로써 소림의 대환단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마령신단(魔靈神丹)은 마공을 익힌 사람이나 수(水)나 토(土)의 기운을 가진 사람에게 효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할머니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독천존의 말에 천운학은 마령신단을 다시 자기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그 소림의 대환단은 효능이 있소?”
“예, 대환단이라면 마령신단과 상극이고 할머니의 신체에 잘 부합되는 기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독천존의 말을 들었지만 천태성과 천운학은 전혀 개운한 표정이 아니었다.
천태성이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 대환단을 어떻게 구합니까? 소림이 줄 턱이 만무한데…….”
그러자 가만히 있던 천운학이 밝은 표정으로 검지를 치켜들었다.
“아, 방도가 있어! 그 콧대 높은 땡중들의 대환단을 받을 방도가 있어!”
천태성은 천운학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독천존은 대충 눈치챈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번 승천대회에서 우승하면 부상으로 그것을 줄 거야.”
“승천대회!”
승천대회, 통칭 승천무투대회로 삼 년마다 정사의 고수들이 모여 자신들의 실력을 겨루고 무림에 이름을 널리 알리는 대회였다.
이 대회 우승자에게는 부상으로 절세 영약이 주어지는데 그 영약이 바로 대환단과 마령신단이었다.
대게 마공을 익힌 고수들은 마령신단을 택하고 정파무공을 익히면 그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