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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21화
第七章 승천무투대회 上(1)
낙화루의 주방 업무가 끝나는 저녁 시간, 천태성은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식구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천태성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내었다.
“제가 회의를 주제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황보현중의 할머니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황보현중은 천태성의 입에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저희 할머니요?”
“그렇다.”
“저희 할머니가 왜요?”
천태성은 식구들을 한 번 슥 돌아본 후 대답을 하였다.
“지금 상태로는 할머니가 올해를 못 넘기신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습니다.”
천태성의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는데 당연히 그중 가장 놀란 사람은 황보현중이었다.
“정말입니까?”
“그것이 사실이냐?”
모두들 진위 여부를 묻는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황보현중은 고개 숙여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그리고 냅다 이층으로 뛰어가려 하자 천태성이 손을 들어 재지했다.
“잠깐! 아직 내 말이 안 끝났으니 다 듣고 가거라.”
천태성의 말을 들은 황보현중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많이 흥분되는지 심호흡을 하였다.
“후우, 후우.”
그런 황보현중을 내버려 둔 채 천태성은 식구들을 돌아보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할머니의 병은 노환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할머니가 거지촌에 계실 때 너무 기력이 쇄하셔서 그만 병이 찾아왔는데 제가 의원을 불러 진료케 한 결과 기력은 회복하셨지만 그 병은 완전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을 치료하지 못 하면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한 것입니다.”
잠자코 있던 주동동이 손을 들얼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치료 방도가 있는 것입니까?”
“그래 있다.”
갑자기 급 밝아지는 황보현중의 표정.
다른 식구들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 치료 방도란 바로 소림의 ‘대환단’이다.”
식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대환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멍청하게 변했다.
이번에는 장태봉이 한마디 했다.
“그 대환단이라는 것은 내 듣기로는 소림의 무상지보(無上之寶)라고 하는데 그걸 우째 구하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장태봉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 대환단은 달라고 해서 소림이 넙죽 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힘으로 빼앗는 것도 거의 불가능이죠.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승천무투대회입니다.”
“승천무투대회!”
장태봉과 그 이하 두 명은 그 말을 듣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복창했다.
“그 정사(正邪)의 고수들이 삼 년만에 모여 자웅을 겨룬다는 그 대회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그 무투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소림의 대환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득출이 손바닥을 치며 천태성의 말을 정리해 주었다.
“오호라. 그러니까 우리 중에 누가 나가서 우승해서 그것을 얻어오자는 말이렷다?”
“맞습니다.”
식구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사람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는 바로 북궁설이었다.
북궁설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서 있다가 식구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검지로 자기를 가리키며 눈을 크게 떴다.
“나?”
끄덕끄덕.
실상 천태성도 속으로 북궁설을 찍어 놓고 있었다.
자신은 너무 알려진 데가 또한 승천무투대회의 규정상 한 번 출전한 사람은 다시 출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천태성은 육 년 전 약관의 나이로 수많은 고수들을 꺾고 그 승천무투대회의 우승을 당당히 차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상으로 그는 인형하수오를 받았다.
여느 때보다 이번 승천무투대회는 마령신단과 대환단이 걸린 만큼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 얼음땡이라면 반드시 우승할 거야.’
북궁설은 중얼거렸다.
“가야 하나?”
그러자 황보현중을 비롯한 주동동 그리고 천태성 등등은 실눈으로 북궁설을 쳐다보았다.
“가야겠군…….”
냉혈무정검 북궁설, 그가 비록 선우휘윤과 대결에서 강호에 이름을 작게나마 알렸다면 이번 승천무투대회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진가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 * *
승천무투대회는 가까운 소주 땅에서 열렸다.
대회 성격상, 웬만큼 명성이 있는 사람들은 출전을 꺼려했다. 왜냐 하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자칫하다 패하기라도 하면 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승천무투대회는 젊은층을 주축으로 신진고수들의 등용문이었다.
대회 시작 이틀 전 낙화루는 일주일 간 임시 휴업을 하고 손님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 할머니와 황보현중, 노득출, 고미미만 남겨둔 채 모두 소주 땅으로 떠났다.
소주에 들어서자 승천무투대회의 열기를 반영하듯 도시 전체가 사람들로 들끓으며 축제 분위기였다.
그중에서 낙화루 일행들은 단연 돋보이며 눈에 띠었다.
월궁 항아가 이 현신한 듯한 여인이 말 위에 앉아 있고 그 고삐를 잡은 검은색 무복의 청년도 보통 미남이 아닌 데다가 뒤에 따라오는 소년 또한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절세미남이었다.
맨 뒷줄에는 훤칠한 키에 고독은 자기 혼자 다 씹고 있다는 듯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사내 또한 범상치 않았다.
말 위에 앉아 있는 왕소군을 슬쩍 쳐다본 천태성이 말문을 열었다.
“왕 소저, 여기가 고향 아니오?”
“네, 맞아요. 감회가 새롭군요.”
고향에 왔건만 왕소군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천태성은 왕소군의 표정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아, 아니에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천태성은 지난 번에 독천존이 왔을 때 왕소군의 진료도 부탁했었다.
“독으로 인해 눈과 다리가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여독은 웬만큼 다 몰아냈으니 이제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러자 천태성이 물었다.
“그녀가 다시 걷거나 앞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참, 그렇군. 눈은 이미 다 죽은 상태라 회복이 불가능 하지만 다리는 노력만 한다면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천태성은 밝은 얼굴로 독천존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허허, 제가 어디 빈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소교주.”
천태성은 그녀가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지만 걸을 수는 있다는 소리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객잔이 보이자 낙화루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천태성이 장태봉을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저는 먼저 볼일이 있어 여기 왕 소저와 함께 어딜 좀 다녀오겠습니다.”
천태성의 말에 장태봉을 포함한 일행들은 익살스럽게 미소지었다.
장태봉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다녀와, 다녀와. 내 방은 넉넉히 잡아 놓을 테니 다녀와.”
천태성은 의아했다.
‘저 표정들이란 마치…….’
자기들은 빠져줄 테니 둘이 잘 놀아 보라는 표정이었다.
슬쩍 말 위에 앉은 왕소군을 쳐다보는 천태성.
‘후후.’
“흠흠, 아무튼 다녀올 테니 쉬고들 계십시오.”
그렇게 일행들에게서 나온 천태성은 왕소군을 향해 물었다.
“왕 소저 집이 어딥니까?”
“서문 근처인 왕가장(王家莊)이에요.”
한편 객잔 안으로 들어온 장태봉과 그 이하 일행들은 꽉 들어차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은 먹고 마시며 떠드는데 죄다 무기들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 듯했다.
“와 엄청 많구먼. 미리 언질 안 하고 왔으면 방도 못 구했겠는데.”
승천무투대회의 유일한 경험자인 천태성은 이러한 사태를 짐작하고 미리 객잔의 방을 잡아둔 상태였다.
장태봉이 객잔 장부에 서명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냉혈무정검(冷血無精劍)이다!”
누군가 북궁설을 알아보았는지 그렇게 소리친 것이었다.
식당 안은 급작스레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북궁설의 등에 꽂혔다. 그러자 북궁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자기를 보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궁설.
‘음?’
북궁설이 다시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자 몇몇 콰당 하고 사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북궁설은 자기 별호가 냉혈무정검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언제 조용했냐는 듯 다시 시끄러워지는 식당.
때가 때인 만큼 방 값이 워낙 비싼지라 일행은 방을 세 개 잡았다.
서명을 한 장태봉이 말문을 열었다.
“북궁하고 동동이가 한 방 그리고 나하고 장팔이가 한 방, 나머지는…….”
장태봉과 유장팔은 또다시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똑같이 웃었다. 이어지는 유장팔의 한마디.
“흐흐흐흐, 애들은 가라 방.”
북궁설은 원래 그렇다치고 주동동은 장태봉과 유장팔이 웃는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일행들은 객실로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누군가를 본 유장팔은 화들짝 놀랐다.
붉은 옷을 입은 절세미인 유화영, 그녀가 객실에서 내려오고 있던 것이었다.
“허억!”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 유화영은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으음? 니들이 왜 왔어?”
장태봉은 대답 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러는 유 소저는 여기 어인 일이시우?”
“나야 대회 나가려고 왔지.”
“허억!”
식신 소녀 유화영, 그녀도 승천무투대회 참가를 위해 소주 땅에 온 것이었다.
승천무투대회는 여성부, 남성부 따로 구분을 두지 않았다. 대신에 여성과 남성이 맞붙었을 경우 남성이 여성에게 이 초식을 양보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럼 난 이만 배고파서.”
배고프다는 말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는 유화영, 그녀는 언제나 배고프다.
방으로 들어온 주동동은 조용히 짐을 푸는 북궁설을 보며 이야기했다.
“북궁 형 자신 있어요?”
북궁설은 아무 말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동동은 북궁설의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잡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북궁 형이 우승하면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요.”
다시 웃으며 고개만 끄덕거리는 북궁설.
만일 이 자리에 천태성이 있었으면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유장팔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던지더니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장태봉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으이그. 중생아, 쯧쯧쯧.”
서문 근처에 오게 되자 천태성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물어보았다.
“저기 실례지만 왕가장이 어디입니까?”
“왕가장 말이우? 글쎄 이 근처에는 없는데?”
그러자 말 위에 있던 왕소군이 말문을 열었다.
“서문 근처에 왕영지라는 사람이 살고 있을 텐데요. 혹시 그분의 집을 모르시나요?”
행인은 말 위의 왕소군을 보더니 잠시 놀란 눈빛을 띠었다.
“아하 왕 학사(王學師) 말이우?”
“네.”
“그 사람이라면 이 년 전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소. 식구들과 급히 짐을 싸고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는 말도 있고, 큰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리도 있고, 아무튼 지금 그 사람은 여기서 볼 수 없소.”
“고맙습니다.”
천태성은 행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왕 학사라는 사람은 누구요?”
“저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에요. 벼슬에서 물러나시고 아이들을 주로 가르치는 일을 하셨답니다.”
왕가장이 없다는 말에 왕소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마시오. 별일 없을 거요.”
“그래야겠지요.”
‘어디로 가셨을까 혹시 나를 찾아 떠나신걸까?’
왕소군은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이 실종된 지 만 이 년이 다되었으니 충분히 걱정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왕소군은 아버지의 얼굴과 어머니 얼굴 그리고 왕가장을 뛰놀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후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물어 보았으나 전부 처음에 만났던 사람과 비슷한 말들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왕 학사가 어디로 떠났는지 모두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듯하자 천태성은 일행들이 묵는 객잔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말머리를 돌렸다.
第七章 승천무투대회 上(1)
낙화루의 주방 업무가 끝나는 저녁 시간, 천태성은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식구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천태성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내었다.
“제가 회의를 주제한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황보현중의 할머니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황보현중은 천태성의 입에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저희 할머니요?”
“그렇다.”
“저희 할머니가 왜요?”
천태성은 식구들을 한 번 슥 돌아본 후 대답을 하였다.
“지금 상태로는 할머니가 올해를 못 넘기신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습니다.”
천태성의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는데 당연히 그중 가장 놀란 사람은 황보현중이었다.
“정말입니까?”
“그것이 사실이냐?”
모두들 진위 여부를 묻는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황보현중은 고개 숙여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그리고 냅다 이층으로 뛰어가려 하자 천태성이 손을 들어 재지했다.
“잠깐! 아직 내 말이 안 끝났으니 다 듣고 가거라.”
천태성의 말을 들은 황보현중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많이 흥분되는지 심호흡을 하였다.
“후우, 후우.”
그런 황보현중을 내버려 둔 채 천태성은 식구들을 돌아보며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할머니의 병은 노환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할머니가 거지촌에 계실 때 너무 기력이 쇄하셔서 그만 병이 찾아왔는데 제가 의원을 불러 진료케 한 결과 기력은 회복하셨지만 그 병은 완전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 병을 치료하지 못 하면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한 것입니다.”
잠자코 있던 주동동이 손을 들얼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치료 방도가 있는 것입니까?”
“그래 있다.”
갑자기 급 밝아지는 황보현중의 표정.
다른 식구들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 치료 방도란 바로 소림의 ‘대환단’이다.”
식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대환단이라는 소리를 듣고 멍청하게 변했다.
이번에는 장태봉이 한마디 했다.
“그 대환단이라는 것은 내 듣기로는 소림의 무상지보(無上之寶)라고 하는데 그걸 우째 구하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장태봉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 대환단은 달라고 해서 소림이 넙죽 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힘으로 빼앗는 것도 거의 불가능이죠.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승천무투대회입니다.”
“승천무투대회!”
장태봉과 그 이하 두 명은 그 말을 듣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복창했다.
“그 정사(正邪)의 고수들이 삼 년만에 모여 자웅을 겨룬다는 그 대회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그 무투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소림의 대환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득출이 손바닥을 치며 천태성의 말을 정리해 주었다.
“오호라. 그러니까 우리 중에 누가 나가서 우승해서 그것을 얻어오자는 말이렷다?”
“맞습니다.”
식구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사람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는 바로 북궁설이었다.
북궁설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서 있다가 식구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검지로 자기를 가리키며 눈을 크게 떴다.
“나?”
끄덕끄덕.
실상 천태성도 속으로 북궁설을 찍어 놓고 있었다.
자신은 너무 알려진 데가 또한 승천무투대회의 규정상 한 번 출전한 사람은 다시 출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천태성은 육 년 전 약관의 나이로 수많은 고수들을 꺾고 그 승천무투대회의 우승을 당당히 차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상으로 그는 인형하수오를 받았다.
여느 때보다 이번 승천무투대회는 마령신단과 대환단이 걸린 만큼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 얼음땡이라면 반드시 우승할 거야.’
북궁설은 중얼거렸다.
“가야 하나?”
그러자 황보현중을 비롯한 주동동 그리고 천태성 등등은 실눈으로 북궁설을 쳐다보았다.
“가야겠군…….”
냉혈무정검 북궁설, 그가 비록 선우휘윤과 대결에서 강호에 이름을 작게나마 알렸다면 이번 승천무투대회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진가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 * *
승천무투대회는 가까운 소주 땅에서 열렸다.
대회 성격상, 웬만큼 명성이 있는 사람들은 출전을 꺼려했다. 왜냐 하면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자칫하다 패하기라도 하면 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승천무투대회는 젊은층을 주축으로 신진고수들의 등용문이었다.
대회 시작 이틀 전 낙화루는 일주일 간 임시 휴업을 하고 손님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 할머니와 황보현중, 노득출, 고미미만 남겨둔 채 모두 소주 땅으로 떠났다.
소주에 들어서자 승천무투대회의 열기를 반영하듯 도시 전체가 사람들로 들끓으며 축제 분위기였다.
그중에서 낙화루 일행들은 단연 돋보이며 눈에 띠었다.
월궁 항아가 이 현신한 듯한 여인이 말 위에 앉아 있고 그 고삐를 잡은 검은색 무복의 청년도 보통 미남이 아닌 데다가 뒤에 따라오는 소년 또한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절세미남이었다.
맨 뒷줄에는 훤칠한 키에 고독은 자기 혼자 다 씹고 있다는 듯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사내 또한 범상치 않았다.
말 위에 앉아 있는 왕소군을 슬쩍 쳐다본 천태성이 말문을 열었다.
“왕 소저, 여기가 고향 아니오?”
“네, 맞아요. 감회가 새롭군요.”
고향에 왔건만 왕소군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천태성은 왕소군의 표정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아, 아니에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천태성은 지난 번에 독천존이 왔을 때 왕소군의 진료도 부탁했었다.
“독으로 인해 눈과 다리가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여독은 웬만큼 다 몰아냈으니 이제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러자 천태성이 물었다.
“그녀가 다시 걷거나 앞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참, 그렇군. 눈은 이미 다 죽은 상태라 회복이 불가능 하지만 다리는 노력만 한다면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천태성은 밝은 얼굴로 독천존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허허, 제가 어디 빈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소교주.”
천태성은 그녀가 비록 앞을 볼 수는 없지만 걸을 수는 있다는 소리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객잔이 보이자 낙화루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천태성이 장태봉을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저는 먼저 볼일이 있어 여기 왕 소저와 함께 어딜 좀 다녀오겠습니다.”
천태성의 말에 장태봉을 포함한 일행들은 익살스럽게 미소지었다.
장태봉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다녀와, 다녀와. 내 방은 넉넉히 잡아 놓을 테니 다녀와.”
천태성은 의아했다.
‘저 표정들이란 마치…….’
자기들은 빠져줄 테니 둘이 잘 놀아 보라는 표정이었다.
슬쩍 말 위에 앉은 왕소군을 쳐다보는 천태성.
‘후후.’
“흠흠, 아무튼 다녀올 테니 쉬고들 계십시오.”
그렇게 일행들에게서 나온 천태성은 왕소군을 향해 물었다.
“왕 소저 집이 어딥니까?”
“서문 근처인 왕가장(王家莊)이에요.”
한편 객잔 안으로 들어온 장태봉과 그 이하 일행들은 꽉 들어차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은 먹고 마시며 떠드는데 죄다 무기들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 듯했다.
“와 엄청 많구먼. 미리 언질 안 하고 왔으면 방도 못 구했겠는데.”
승천무투대회의 유일한 경험자인 천태성은 이러한 사태를 짐작하고 미리 객잔의 방을 잡아둔 상태였다.
장태봉이 객잔 장부에 서명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냉혈무정검(冷血無精劍)이다!”
누군가 북궁설을 알아보았는지 그렇게 소리친 것이었다.
식당 안은 급작스레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북궁설의 등에 꽂혔다. 그러자 북궁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자기를 보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북궁설.
‘음?’
북궁설이 다시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자 몇몇 콰당 하고 사람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북궁설은 자기 별호가 냉혈무정검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언제 조용했냐는 듯 다시 시끄러워지는 식당.
때가 때인 만큼 방 값이 워낙 비싼지라 일행은 방을 세 개 잡았다.
서명을 한 장태봉이 말문을 열었다.
“북궁하고 동동이가 한 방 그리고 나하고 장팔이가 한 방, 나머지는…….”
장태봉과 유장팔은 또다시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똑같이 웃었다. 이어지는 유장팔의 한마디.
“흐흐흐흐, 애들은 가라 방.”
북궁설은 원래 그렇다치고 주동동은 장태봉과 유장팔이 웃는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일행들은 객실로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누군가를 본 유장팔은 화들짝 놀랐다.
붉은 옷을 입은 절세미인 유화영, 그녀가 객실에서 내려오고 있던 것이었다.
“허억!”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 유화영은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대뜸.
“으음? 니들이 왜 왔어?”
장태봉은 대답 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러는 유 소저는 여기 어인 일이시우?”
“나야 대회 나가려고 왔지.”
“허억!”
식신 소녀 유화영, 그녀도 승천무투대회 참가를 위해 소주 땅에 온 것이었다.
승천무투대회는 여성부, 남성부 따로 구분을 두지 않았다. 대신에 여성과 남성이 맞붙었을 경우 남성이 여성에게 이 초식을 양보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럼 난 이만 배고파서.”
배고프다는 말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가는 유화영, 그녀는 언제나 배고프다.
방으로 들어온 주동동은 조용히 짐을 푸는 북궁설을 보며 이야기했다.
“북궁 형 자신 있어요?”
북궁설은 아무 말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동동은 북궁설의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잡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북궁 형이 우승하면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요.”
다시 웃으며 고개만 끄덕거리는 북궁설.
만일 이 자리에 천태성이 있었으면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유장팔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던지더니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장태봉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으이그. 중생아, 쯧쯧쯧.”
서문 근처에 오게 되자 천태성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물어보았다.
“저기 실례지만 왕가장이 어디입니까?”
“왕가장 말이우? 글쎄 이 근처에는 없는데?”
그러자 말 위에 있던 왕소군이 말문을 열었다.
“서문 근처에 왕영지라는 사람이 살고 있을 텐데요. 혹시 그분의 집을 모르시나요?”
행인은 말 위의 왕소군을 보더니 잠시 놀란 눈빛을 띠었다.
“아하 왕 학사(王學師) 말이우?”
“네.”
“그 사람이라면 이 년 전인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소. 식구들과 급히 짐을 싸고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는 말도 있고, 큰 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리도 있고, 아무튼 지금 그 사람은 여기서 볼 수 없소.”
“고맙습니다.”
천태성은 행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왕 학사라는 사람은 누구요?”
“저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에요. 벼슬에서 물러나시고 아이들을 주로 가르치는 일을 하셨답니다.”
왕가장이 없다는 말에 왕소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마시오. 별일 없을 거요.”
“그래야겠지요.”
‘어디로 가셨을까 혹시 나를 찾아 떠나신걸까?’
왕소군은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이 실종된 지 만 이 년이 다되었으니 충분히 걱정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왕소군은 아버지의 얼굴과 어머니 얼굴 그리고 왕가장을 뛰놀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후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물어 보았으나 전부 처음에 만났던 사람과 비슷한 말들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왕 학사가 어디로 떠났는지 모두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듯하자 천태성은 일행들이 묵는 객잔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말머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