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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이게 맞나?”

인하는 하체를 타고 올라오는 속삭임에 지그시 눈을 아래로 깔았다. 헐벗은 나체, 그 중심에서 위를 향해 단단하게 일어서 있는 남근의 언저리에, 그녀가 매우 서툰 움직임으로 입술을 가져가고 있었다. 혀끝을 내밀어 남근을 핥아 내리다가 이내 이게 아닌 듯 낭패감에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마치 결재서류를 들여다보는 얼굴 같았다.

인하는 두 손을 머리 아래에 받치고 그녀가 하는 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여전히, 여자는 모든 면에서 서툴렀다. 배웠다더니,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자신과의 두 번째 섹스, 두 번째 밤인데도 잔뜩 경직되어 제대로 흥분하지 못하고 있는 여자가 사랑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으음.”

인하는 일부러 신음을 길게 내었다. 여자는 그녀 자신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육감적인 몸매는 침대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를 잔잔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녀를 대할 때마다 뜨거운 것들이 올라와 시야를 가리고 귀를 막고 이성을 농락하고 있었다.

“어딜 해줄까요.”

고개를 든 여자가 물어왔다. 마치 이 서류의 어느 곳에 사인을 할까요, 라고 묻는 듯하여 인하는 가볍게 실소를 흘렸다.

“아무데나.”

“정확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래? 그럼 거길 한 번 더 쭉…… 빨…… 으음.”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그녀가 다시 한번 남근을 가득 머금었다. 혀끝으로 희롱하고 타액을 가득 묻히고, 그러고 나서 마구 들이켰다 내뱉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참으로 기계적이고 이론적어서 쾌감보다는 헛웃음만 나게 했다. 인하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피식거렸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이지 감정이라곤 없는 여자다. 이런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 자신의 안목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어쩔 수 없지.

인하는 상체를 홱 들어 올려 앉았다. 동시에 여자를 끌어당겨 제 허벅지에 앉게 했다. 여자의 다리가 방만하게 벌어진 채 그와 눈높이를 마주했다. 한손에 잡힐 정도로 적당하게 풍만한 젖가슴이 출렁거린다. 인하는 어깨를 덮은 긴 머리칼을 천천히 걷어내곤 여자를 응시했다. 반쯤 떠진 여자의 눈은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간간이 내뱉어지는 더운 숨은 뜨거웠다.

의외였다. 침대에서도 서류를 결재하듯 기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여자에게서 상상 이상의 뜨겁고 가쁜 열기가 느껴진 탓이다. 인하는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술을 천천히 내렸다. 도도하게 선 유두를 한 입에 머금고는 혀끝으로 희롱하듯 굴려간다. 여자의 어깨가 움찔움찔 떨렸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체는, 인하의 남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처 다른 쪽 유두를 빨아대자 여자는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야속한 듯 눈을 흘겼다.

“오늘은 내가 한다고 했을 텐데요. 서두르지 말자구요.”

혀로 유두를 굴리던 인하는 쇄골 쪽으로 입술을 옮겨가며 신음하듯 대답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 바엔 내가 하고 말지. 남자를 이렇게 잔뜩 흥분시켜놓고 뜸 들이는 거 아니야. 당신 같은 여자를 앞에 두고 난 그렇게 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아하! 급하셨군요. 난 좀 더…… 하앗!”

여자의 말을 자르고 인하는 곧장 그녀를 시트에 눕혔다. 그녀의 매력적인 나신에 제 몸을 겹친 그는 양손을 바닥에 짚은 후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조금은 상기된 듯한 여자의 표정이 그를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너하고 난 원하는 바가 달라. 넌 섹스 그 자체겠지만, 난 너뿐이지. 하지만 이 관계의 끝에선 너도 분명히 섹스가 아니라 나를 원할 거야.”

여자의 눈빛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 금세 평정을 되찾았지만 인하의 날카로운 눈매를 피해갈순 없었다. 그래, 네 떨림만으로도 난 얼마든지 너한테 이긴 기분일 거다. 절대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너지만, 그래도 충분히 소유한 기분일 거다.

“여전히 반말이군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당신한테 반할 줄 알고?”

“무려 반해주시기까지 하려고? 그런 상황은 피곤해. 하루에도 여러 번 겪는 일이니까. 반하는 건 나한테 넘겨. 그건 내가 해.”

인하는 말을 내뱉는 중간중간 하체를 움직여 그녀의 중심부를 향해 진입을 시도했다. 이미 몇 번의 애무로 흥건하게 젖은 여체가 질척하고 음탕하게 드글거리는 내부에 그의 몸을 조금씩 들이고 있었다. 여자의 미간이 아찔한 고통으로 일그러지다 펴지는 것을 반복했다. 인하는 허리에 더욱 힘을 가한 채 그녀의 좁은 길 끝, 그 정점까지 힘껏 박아 넣었다.

“으흣!”

여자가 허리를 비틀며 교성을 질렀다. 그의 몸은 뜨뜻한 탐욕의 동굴로 아찔하게 빠져들어 끝 간 데 없는 욕정을 드러내었다. 음부를 탄탄하게 마찰시킨 채 좁고 예민한 질벽을 마구 긁어내며 그녀의 욕망을 부추겼다. 그것도 모자라 인하는 그녀의 다리 하나를 제 팔에 끼워 더욱 넓게 벌어진 사타구니 사이를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그, 그만…….”

여자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눈을 들고 애원하듯 그를 쳐다봤다. 가열차게 움직이는 남자의 아래에서 여자는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은 미약했고 인하는 절대 그만 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리듬을 느리게 줄여 그녀의 숨통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그제야 몸이 풀린 그녀는 그가 밀어붙일 때마다 어깨를 움칫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묻고 싶은 게…… 하아…… 있어요…….”

“뭔데.”

“왜…… 나한테, 으읏! 그런 제안을…… 했던 거죠? ……첫눈에 반한 것치곤…… 너무 노골적…… 하윽!”

그녀는 밀려드는 쾌락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핵심을 간파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인하는 연신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흘리는 여자를 이글거리는 시야에 담았다. 대답 없이 그녀가 쾌감에 울부짖는 모습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좀 더 느긋하게 기다릴 계획이었다.

인하는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이 관계의 시작을 돌이켜보았다. 이 여자를 다른 놈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그의 안에서 차츰 싹을 틔우고 있었던 감정. 어쩌면 운명일지도, 그게 아니라면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이어진 순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안’을 해버린 것이다.

‘섹스든 연애든, 나하고 해.’

그녀에게 다그쳤던 그때, 심장이 무섭게 고동치고 있었다.





#1.



한 달 전.

직사각형의 대리석 식탁 위로 수저가 달그락 소리를 내었다. 나물이며 생선 살 한 점 등이 밥그릇으로 옮겨진다. 연서는 힘없이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었다. 새벽까지 서류에 매달려 있었던 데다가 겨우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는 바람에, 밥알을 세는 수준으로 식욕이 떨어져 있었다. 아침 일찍 있을 간부회의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수저를 내려놓아야 했다.

연서는 하는 수 없이 식사를 그만 하기로 하고 물 잔을 들었다. 지금은 식사보다 영양제 한 알이 더 필요할 듯했지만 지각 때문에라도 그것마저 사치였다.

“아주머니. 물 한 잔만 더 주세요.”

연서는 하는 수 없이 물 한 잔을 더 마시기로 하고 소리를 내었다. 주방 쪽에서 ‘네.’ 하는 아주머니의 대답이 들려왔지만, 정작 물 잔을 가져온 건 강숙이었다. 연서는 강숙이 옆자리에 앉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마셔. 어째 밥은 손도 안 댄 것 같니?”

“바빠요.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

“바빠도 밥은 거르지 마. 안 그래도 너 요즘 살이 좀 내린 것 같아서 걱정인데.”

“엄마나 걱정해. 그 정도면 운동 중독수준이니까. 앙상한 해골 같아.”

올해 예순이 된 강숙은 연서가 보기에 심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일부러 살을 빼서가 아니라 하루의 반을 운동을 하면서 보내는 강숙의 라이프스타일 탓이었다. 그것은 곧 강숙의 일상이 무료하고 외롭다는 의미였고,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숙의 그런 모습은 연서를 여전히 권태롭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 연서는 반 강제적으로 아버지의 호텔을 물려받아야 했고, 아버지가 살아왔던 삶을 의무적으로 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연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은 철저하게 묵살 당했다. 오로지 아버지의 호텔을 지켜야 한다는 강숙의 눈물과 애원과 부탁만 있었을 뿐이다.

“운동하면 좋지 뭘 그래. 너도 엄마 나이 돼 봐. 하루 보내면서 낙이라곤 운동하는 시간뿐일 테니까.”

“알았어요. 나 나가요.”

아침 시간에 강숙과 부딪치는 건 그날 하루의 기분을 잡치는 것과 같았다. 강숙은 언제부터인가 연서 앞에서 매번 인생의 고달픔에 대한 하소연과 넋두리를 번갈아가며 해대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뉘앙스가 느껴진 통에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어나려는 연서의 팔을 강숙이 붙잡은 탓에, 연서는 오늘 하루도 틀렸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이미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