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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침에 식사를 가져온 시내는 어려워하는 얼굴로 말을 전했다.

“빈 마마, 황후 마마께서 부르십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발목은 조금 더 부었다. 의원은 별문제는 없고 잠시 충격을 받아 그런 것뿐이니 며칠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아침부터 통증에 시달리며 깨어나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말 걱정했던 아리용사나가 금세 나을 것이라는 확언까지 받았으니 그 점은 다행이었다.

황후는 한 명밖에 없다. 나란게렐은 저도 모르게 솔직한 인상을 썼다. 시내는 그 찌푸림에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어렵게 부연했다.

“식사 저수신 후 바로 오시라는 명이었습니다.”

“알았어.”

솔직히 모르고 넘어가 주었으면 했는데, 어젯밤에 의원을 부르고 난리를 쳤으니 그것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황제가 직접 후궁의 문을 열어 데리고 들어오기까지 했으니. 정작 그 황제는 다른 사람에게 간다며 훌쩍 가 버렸지만.

나란게렐은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는데 식사가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기는 했다.

나온 음식을 깨끗이 먹고 시내의 부축을 받아 천막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고향에서와 같이 눈부신 푸른색이었다. 식은 아침 공기 속에서 후궁에 소속된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생활감 있는 소리를 냈다. 나란게렐만이 아니라 수많은 비빈이 친정에서 데려온 동물들이 있어서인지 작나무나 여물 따위를 들고 뛰어다니는 시비도 여럿 보였다.

황후의 천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후궁의 처소 앞도 몇 지나야 했다. 나란게렐은 문을 몇 개나 넘어 다니며 이 속 터지는 담을 왜 만든 것일까 하고 다시 고민했다. 시내는 충직하고 조심스럽게 주인을 보필해 황후의 천막을 찾아갔다.

황후가 사는 천막은 빈이 받은 것에 비해 훨씬 컸고, 배정받은 땅조차 훨씬 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천막이 몇 개 있어 아마도 아주 많은 시비가 황후의 옆에 항시 붙어살며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보다 황후의 천막은 위에 검은 야크 가죽이 씌워지고 문에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어 하늘 아래 매우 위풍당당했다.

주눅 들어 산 적이 없었지만 저것은 조금 두렵다. 천막의 문은 아침 식사 준비 때문인지 열려 있었다. 작은 천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 쪽에서는 연기와 양 삶는 냄새가 진하게 났다. 황후의 천막을 드나들며 여러 음식을 분주하게 옮기던 시비들은 나란게렐을 보자 인사하며 길을 열었다. 나란게렐은 시내의 얼굴을 보았다. 시내는 공손하게 천막 문 쪽을 가리켰다.

깨금발로 문지방을 밟지 않고 건너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나란게렐은 황후의 천막 안으로 들어가다 문에 모자를 부딪쳐 떨어뜨릴 뻔했다. 시내가 주인을 붙잡지 않은 손으로 모자를 얼른 다듬어 주었다. 천막 안은 아직 불을 피워 두고 있어 따뜻했다.

“자네가 나란게렐 빈인가?”

천막에 들어오자마자 여러 가지 음식 냄새와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란게렐은 천막의 중앙에 앉아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어르던 여인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제도 본 황후는 호화로운 장식과 자수가 있는 옷을 입고 두터운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굴은 상당히 뻣뻣하다.

다만 그 표정이 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엄마에게서 도망가려고 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란게렐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지 새삼 고민하며 말했다.

“황후 마마께 인사드립니다.”

“다리를 다쳤다더니.”

황후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는 아직 잘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나란게렐은 결혼한 여자는 어떤 방식으로 꾸지람을 듣는 것일지 고민했다. 적어도 선물을 주려고 부른 것은 아닐 텐데.

황후가 낳은 제1황자, 뭉케 에센은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무릎 아래로 내려놓자 금세 상 앞을 돌아다니며 저 좋은 것을 마구 주워 입가에 묻혔다. 나이 들어 보이는 시비가 얼른 황자를 안아 입가를 닦아 주었다. 황후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란게렐에게 손짓했다.

“앉게.”

“예.”

“내가 자네를 왜 불렀는지는 알지?”

“……예.”

황후의 천막은 색색으로 칠한 가구와 기둥,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든 양탄자로 가득해 과연 내부에도 위용이 있었다. 빈의 천막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쪽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나란게렐은 모든 것에 위축되어 시내의 부축을 받아 앉았다. 그나마 바닥에 앉으니 발목에 가해지는 부담은 훨씬 줄었다.

“시집온 첫날에, 자네 친정에서는 신부가 말을 타고 나가도록 가르치나?”

아, 저것은 황제와 같은 말이다. 부부라서 닮은 것일까. 나란게렐은 더 위축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마 지금 친정 사람들이 그녀를 본다면 매우 놀랄 것이었다.

“아닙니다.”

“밤늦도록 나가 돌아다니다가, 남편이 구해 오게 하는 것이 전통이냐고 묻고 있네.”

“아닙니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황후는 매섭게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매우 불쾌하다는 듯, 웃전의 품위를 가지고 말했고, 나란게렐은 그것에 정말로 주눅이 들었다. 아무튼 이쪽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황후는 나란게렐의 머리에도 시선을 옮겼다.

“대례 때 쓰는 관은 왜 쓰고 왔나?”

“……저, 친정에서 가져온 모자가 망가졌습니다.”

“잘하는 짓이네.”

황후는 가감 없이 혀를 찼다. 그녀는 태후에게는 사근사근했지만, 아랫사람은 제대로 혼을 내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하긴 갑자기 들어온 수많은 첩 중 한 명이 예쁠 이유는 없다. 황제는 어젯밤 여기에 왔을까.

“시비를 보내 공방에서 고치게 하거나, 못 쓰게 되었으면 새로 만들게. 모자를 만들 옷감과 실은 내려 줄 테니.”

“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아 한 것인데, 황후는 혀를 찼다.

“황궁의 예법을 배우지 않았나? 시녀장은 뭘 한 게야?”

“소, 송구합니다. 망극하옵니다, 황후 마마.”

솔직히 시녀장이 꼬치꼬치 따져 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예법을 대충 공부했다는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집에서 엄마가 이런 식으로 혼낼 때는 반쯤은 흘려듣고 금세 들판으로 나가곤 했는데…….

“자네가 친정에서 어찌 행동했는지는 모르나, 황궁에서는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은 절대 금물일세.”

“망극하옵니다, 황후 마마.”

“자네는 이제 한 남자의 아내일 뿐만 아니라 이 황궁에 속한 사람일세. 황제 폐하의 아이를 낳아 황실을 번창하게 할 임무가 있는데, 혼례 날부터 몸을 상하면 어떻게 하자는 겐가? 가례 때 태후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송구합니다, 황후 마마.”

“다시는 허투루 행동할 생각 말게. 후궁에서 나갈 때는 혼자 나가지 말고, 또 나가기 전에는 나에게 허락을 받고 나가는 걸세. 해가 진 뒤 후궁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황제 폐하밖에 없으니 다시는 어제와 같은 요행을 기대할 생각도 말게.”

“며, 명심하겠습니다, 황후 마마.”

꾸지람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황후는 한참이나 더 황궁에서의 주의 사항을 말하고 나란게렐이 어제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성토하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자네의 말도 다쳤다더군. 말이 다친 것 때문에 자네의 발목이 그런가?”

“조금 비틀거리다…….”

있는 대로 기가 죽은 나란게렐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솔직히 설명했다. 황후는 인상을 썼다.

“문제는 자네 말이구먼. 자네의 벌은 말의 목을 치는 걸로 하겠네.”

“황후 마마!”

청천벽력이었다. 나란게렐은 기겁해 목소리를 높였다. 황후는 어디 웃전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냐는 듯 눈을 부라렸고 주변의 시비들도 놀란 눈치였지만 나란게렐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절했다.

“아리용사나는 제가 친정에서 데려온 유일한 친구입니다. 다치게 한 것도 제가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리용사나는 잘못이 없으니, 제발 말씀 거두어 주시어요.”

“어차피 다친 말은 죽여야 하는 것을 알지 않나. 본래는 자네의 시비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을 짐승으로 끝내겠다는 것일세.”

“잘못한 것은 저이니 불쌍한 짐승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매를 맞든 뭘 하든 다 하겠습니다.”

황후는 여전히 인상을 쓴 채였지만 기분이 바뀐 것 같았다.

“연약한 여인을 칠 수야 없지. 말이 없으면 이제 혼자 들판으로 뛰어나가거나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다시는 혼자 마음대로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리용사나에게는…….”

어조를 보니 황후는 마음을 단단히 정한 것 같았다. 나란게렐은 초조하고 슬퍼 간절하게 또 절했다. 황후는 나란게렐이 떠는 것을 보다가 황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뭉케 에센, 더 드세요.”

“시스니다…….”

황자는 음식에 흥미를 잃은 듯 종알거리며 시비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황후는 엄격하게 말했다.

“뭉케 에센.”

그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황자는 안 그래도 겁을 먹고 있었던 듯 금세 눈치를 보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나란게렐은 황후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 것 같아 급히 맹세했다.

“다시는 어젯밤과 같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리용사나의 상처는 대단한 것이 아니니 금세 나을 것이고, 그러면 저를 다치게 할 일도 없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한 것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다행히 나란게렐의 짐작이 맞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새파래진 어린 빈을 바라본 황후는 입술을 모았다가 찬찬히 물었다.

“약속할 수 있나?”

“예, 맹세합니다.”

나란게렐은 다시 절했다. 세상에,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빌어 본 적이 없다. 황후는 가타부타 말없이 손을 저었다.

“그럼 나가 보게.”

“황후 마마, 그러면 아리용사나는…….”

“됐으니까 나가 보래도.”

아마도 살려 주겠다는 말인 것은 같았지만 확언이 필요했다. 나란게렐이 우물쭈물하자 황후 옆에 있던 시비가 시내에게 명령했다.

“빈 마마를 모시고 처소로 돌아가라.”

“예.”

시내는 나란게렐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나란게렐은 일어나서도 황후의 눈치를 보았다. 황후는 그러나 그녀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황자를 자신의 품에 도로 안았다. 황자는 오물거리며 차를 마셨다. 황자의 얼굴은 황제와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