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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채아는 대학에 붙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입학식이 될 때까지, 자신이 그 대학교 학생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입학식 날이 되자, 그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이 역이 맞는 것 같은데 학교는 보이지 않았다. 채아의 얼굴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대체 학교는 어디야?”
지독한 길치인 채아는 그저 발만 동동 굴렀다. 더군다나 내성적인 성격이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가면 될 것을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벌써 지나가는 사람을 놓친 것만 해도 6명이나 되었다.
시계를 바라보던 채아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 버렸다. 입학식이 시작되기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다. 약속 시간에는 늘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지만,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조금 부지런을 떨어 볼까 해서 오히려 여유롭게 나왔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전부 길을 찾는 데 소비해 버렸다.
“아, 어떻게 해. 진짜 미치겠네.”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채아의 앞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안에서 몇 명이 내리며 각자 갈 길을 가기 위에 흩어졌다. 그러나 한 남자만이 그런 채아를 바라보는 것 같더니, 점점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서 멈췄다.
남자의 존재를 느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안 우네요.”
“……네?”
“우는 것 같아서, 울지 말라 하려고 했거든요.”
그는 평범하게 청바지에 후드티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는 절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키는 컸고, 얼굴은 한 주먹이나 될 법한데 그 안에는 눈, 코, 입이 잘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눈썹을 살짝 가린 앞머리 아래의 이목구비는 뚜렷한 데다가 미소까지 완벽했다.
그런 남자가 제 앞에 서서 말을 걸어오자, 채아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곤 대답했다.
“……아, 안 울어요.”
“다행이네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남자에게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 눈이 마주치자 채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내성적인 자신의 이런 성격이 지금은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채아를 알아차렸는지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혹시, 제서대 학생?”
자신이 입학을 할 학교 이름이 들리자, 고개를 숙이며 침울해 있던 채아가 고개를 냉큼 들었다. 여전히 웃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 미소에 안도한 채아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 맞아요!”
채아는 뛸 듯이 기뻐서 남자의 손을 하마터면 붙잡고 감격한 제 감정을 표현할 뻔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제서대에 가는데. 같이 갈래요?”
“네…… 네!”
‘제발 같이 가요!’
그러나 채아는 그 말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초면인 남자 앞에서 너무 친한 척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얼마나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였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잘생긴 남자 앞에서 추태라니!
말없이 남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남자를 향해 슬쩍 고개를 들어 보았다. 옆모습도 끝내주게 잘생겼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이렇게 잘생긴 선배와 친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어차피 저런 잘생긴 남자가 자신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여자였기에.
“저기.”
그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광경을 배경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크게 되물으며 뒤를 돌자, 벚꽃이 팔랑이며 떨어지는 동시에 남자가 부드럽게 웃는 것이 보였다. 순간 채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가 어떻게 돼요?”
“과…… 아, 경영학과요.”
“진짜? 나도 경영인데. 근데 같은 수업 들을지는 모르겠네요.”
하긴, 경영이 사람이 많긴 하다. 같은 과인게 어디인가 싶지만 채아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이 보이는 것 같아 의아했다. 또다시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채아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여기가 제서대예요. 신입생?”
“아, 아아. 네. 그쪽은…….”
“난 복학생이에요.”
멋쩍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모습도 참 잘 어울렸다. 거기다가 벚꽃이 휘날리는 배경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계를 보던 채아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꾸벅,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저, 저기! 감사했어요! 늦어서 이만……!”
남자가 분명 입을 열려고 들썩이는 것을 보았지만 3분밖에 남지 않아서 채아는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학교 약도는 미리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남자는 채아가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는, 제 시야에서 채아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따르르릉―
멋없고 단조로운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던 채아가 침대 위에서 꿈틀대다 벌떡 일어났다. 몽롱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휙휙, 강아지가 물을 털듯이 고개를 젓고서 눈을 번쩍 떴다.
“……꿈을 꾼 것 같은데.”
무언가 하늘하늘했던 것도 같은데.
하품을 하던 채아는 기지개를 펴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꼭 예쁘게 하고 나오라던 친구 영은의 말이 떠올랐다. 뭐냐고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씩 웃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무언가 저에게는 켕기는 일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저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것을 믿기에 채아는 그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우선 그녀는 어제 들어온 문자를 확인했다.
“12시, 레스토랑 Shangri―La.”
설마, 밥을 사 주려고 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스크루지 영감의 후예가?”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일단 영은을 믿고서 채아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며 멍하니 화장대 거울을 바라보다 간단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화장을 하지 않지만 예쁘게 하고 오라는 그 말에 연하게라도 뭔가 발라야 할 것 같았다.
옷장 앞에 선 채아는 무엇을 입을까, 바라보다 단아한 원피스 하나를 골랐다. 편하다고 청바지만 자주 입고 다녀서 그런지 치마 종류는 불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영은의 말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거면 다시는 말 안 들을 거야.”
중얼거리던 채아는 옷을 갈아입고서 구석에 세워 놓은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늘씬한 몸매는 단아한 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마침 오늘 쉬는 날이기에 망정이지.”
좋은 학교, 좋은 과를 나왔지만 그저 성적에 맞춰서 가장 좋은 곳을 들어갔던 것뿐이다. 당연히 흥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다니다 보면 생기겠지,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명문 학교라 불리는 제서대에, 더군다나 경쟁률 높기로 유명한 과 중 하나인 경영학과에 당당히 합격을 했으니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흥미가 없으니 문제였다. 그래도 다시 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다시 해서 가고 싶은 과는 없었다. 채아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릴 적 티브이에 나온 대기업 회장 비서의 우아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반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성격상 업무 외의 부분에서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입시를 준비할 즈음 비서의 꿈을 묻어 두었지만 다른 데에 흥미가 갈 리 없었다.
흥미가 없어도 일단 들어갔고,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열심히 하기는 했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으니 서류 전형은 충분히 잘할 수 있지만 문제는 면접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내성적이었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시고 의기소침했을 때 운명처럼 채용 정보가 들려왔다. 제서대의 재단을 운영하는 제서 그룹이었다. 운 좋게도 이력서 위주로 본 데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떨면서도 준비한 대답을 마쳐 채아는 당당하게 회계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음, 이 정도면 되겠지?”
채아는 전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집을 나섰다. 여유롭게 집을 나선 채아는 약속 시간 15분 전에 영은이 말을 해 주었던 레스토랑 Shangri―La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게 간판을 바라보며 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 금방 전화를 받았다.
― 어, 채아야! 벌써 도착했어?
“아, 응. 너 어디야?”
― 일단 안으로 들어와. 내 이름 대면 알아서 안내해 줄 거야.
“……오고 있는 중이구나?”
― 뭐…… 그렇지.
키득거리며 대답을 해 오는 영은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리며 영은의 이름을 댔다. 그러자 웨이터가 안내를 해 주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봐서는 굉장히 비싼 것 같은데. 역시 비싼 점심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박영은. 네가 무슨 일로 이런 비싼 곳을 사려고 해?”
― 채아야.
“진지하게 부르니까 무섭네. 알았어. 반씩…….”
그러나 채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웨이터가 안내를 해 준 자리에 한 남자가 이미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빛나는 갈색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남자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눈을 깜빡이던 채아가 조심스럽게 웨이터에게 물었다.
“저……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박영은 씨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는 저곳이 맞습니다, 손님.”
낮게 한숨을 쉰 채아는 통화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고서 다시 귀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박영은. 뭐야, 이건……?”
― 스물여덟 살이나 되어서 홀로 늙어 가는 네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주는 선물.
“뭐, 뭐야?”
마침 고개를 돌린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딱, 눈이 마주치자마자 낯설지 않은 그 얼굴에, 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 너도 알 거야. 우리 학교 다니던 시절에 유명했던 사람이니까.
“…….”
― 아무튼 잘해 봐! 굿 럭!
뚝―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허탈한 기분이 들어 채아는 핸드폰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서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웃고 있는 남자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말을 마치자마자 채아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어색한 웃음이 아니었다.
“……선배.”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채아의 동아리 선배였다.
01
채아는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도 먼저 말을 걸지 못해서 놓치기 일쑤였다. 막상 친해지고 나면 말도 재미있게 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수다쟁이가 되니 첫인상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런 자신의 성격을 열다섯 살 때 깨달아서 고치려고 해 봤지만, 원래 고치기 힘든 것이 타고난 성격이다. 이미 오랫동안 굳어 왔기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기 전에 많이 걱정을 했었다. 대학교는 전국에서 모이지 않던가? 거기다 나이도 다양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신입생 환영회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과 입학식 때부터 친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은과, 영은의 고등학교 친구라던 소라.
그렇게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복도를 지나다니다 동아리 홍보 게시판 앞에서 세 사람은 멈췄다. 친구들이 열심히 홍보지를 살펴보았기에 채아도 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나는 이거 할래! 영화 감상 동아리!”
“고등학교 때 했으면 충분하지, 뭘 더 한다고 그래? 채아야, 너는?”
채아가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기에 소라에게 타박을 주던 영은이 물었다. 채아는 정신을 차리며 손을 쭉 뻗어 한 동아리 홍보물을 가리켰다. 영은과 소라는 채아를 따라가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채아가 가리킨 동아리는 천문학 동아리였다.
“저거…… 정말로?”
“응! 나, 저기 들고 싶어.”
홍보물을 보는 순간 늘 갖고 있던 작은 바람이 하나 떠올랐다. 시골에 내려갔을 때, 맑은 밤공기와 더불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머리 위에서 총총히 빛나는 별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지나가는 세월에만 몸을 맡겼다. 꿈도 없었다. 사소하게 해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기를 벌써 스무 살. 채아는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마치 산삼을 캐러 들어갔다가 산삼 무더기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음, 더 재미있어 보이는 동아리가 많은데?”
소라의 목소리에 채아는 고개를 가로로 젓고서 홍보물에 적힌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긴 했지만 채아는 심마니의 기분을 맛보며 가슴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바로 대학 생활이구나!’
그리고 곧장 날아온 답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당장 면접을 보러 와도 된다는 말.
“우와……. 은채아, 추진력 빠르네.”
“그러니까. 아주 스피드야. 저거, 선배들 번호겠지? 답장 왔지? 뭐래?”
궁금한 게 많은 영은의 질문에, 채아가 씩 웃으며 답장을 보여 주었다.
“오오! 면접 보러 같이 가 줄까?”
“응, 응! 떨린다, 막!”
그렇게 채아는 친구들과 함께 천문학 동아리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공고를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난 후라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도 같아 긴장이 되기도 했다.
“아, 여기다.”
어느새 면접을 볼 동아리실 앞에 도착했다. 영은과 소라는 채아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채아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소리에 안으로 들어갔다. 남들 앞에 서기 전에는 잘할 수 있다, 생각을 하면서 막상 차례가 되면 목소리가 덜덜 떨려 왔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오늘은 잘하리라, 평소보다 더 굳게 다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유롭게 앉아 있는, 선배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혹시 아까 전에…….”
“네, 맞아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채아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에 번뜩 고개를 들었다.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에 채아는 걸음을 옮기며 슬쩍 안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다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아!”
남자가 놀라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뭐야. 형,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뭐…….”
남자가 말끝을 흐리며 채아와 다시 눈을 마주쳐 왔다. 그 순간 분명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외모이기도 했다.
그 남자는 대략 일주일 전에 학교 앞에서 마주쳤던, 채아를 학교 앞까지 안내해 주었던 친절한 귀공자였다.
채아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한 뒤, 여자 선배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런 채아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 한 자락이 걸려 있었다.
프롤로그
채아는 대학에 붙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입학식이 될 때까지, 자신이 그 대학교 학생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입학식 날이 되자, 그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이 역이 맞는 것 같은데 학교는 보이지 않았다. 채아의 얼굴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대체 학교는 어디야?”
지독한 길치인 채아는 그저 발만 동동 굴렀다. 더군다나 내성적인 성격이라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가면 될 것을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벌써 지나가는 사람을 놓친 것만 해도 6명이나 되었다.
시계를 바라보던 채아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 버렸다. 입학식이 시작되기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다. 약속 시간에는 늘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지만,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조금 부지런을 떨어 볼까 해서 오히려 여유롭게 나왔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전부 길을 찾는 데 소비해 버렸다.
“아, 어떻게 해. 진짜 미치겠네.”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채아의 앞에 있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안에서 몇 명이 내리며 각자 갈 길을 가기 위에 흩어졌다. 그러나 한 남자만이 그런 채아를 바라보는 것 같더니, 점점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서 멈췄다.
남자의 존재를 느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안 우네요.”
“……네?”
“우는 것 같아서, 울지 말라 하려고 했거든요.”
그는 평범하게 청바지에 후드티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는 절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키는 컸고, 얼굴은 한 주먹이나 될 법한데 그 안에는 눈, 코, 입이 잘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눈썹을 살짝 가린 앞머리 아래의 이목구비는 뚜렷한 데다가 미소까지 완벽했다.
그런 남자가 제 앞에 서서 말을 걸어오자, 채아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곤 대답했다.
“……아, 안 울어요.”
“다행이네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남자에게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시 눈이 마주치자 채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내성적인 자신의 이런 성격이 지금은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채아를 알아차렸는지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혹시, 제서대 학생?”
자신이 입학을 할 학교 이름이 들리자, 고개를 숙이며 침울해 있던 채아가 고개를 냉큼 들었다. 여전히 웃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 미소에 안도한 채아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 맞아요!”
채아는 뛸 듯이 기뻐서 남자의 손을 하마터면 붙잡고 감격한 제 감정을 표현할 뻔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제서대에 가는데. 같이 갈래요?”
“네…… 네!”
‘제발 같이 가요!’
그러나 채아는 그 말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초면인 남자 앞에서 너무 친한 척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얼마나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보였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잘생긴 남자 앞에서 추태라니!
말없이 남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남자를 향해 슬쩍 고개를 들어 보았다. 옆모습도 끝내주게 잘생겼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이렇게 잘생긴 선배와 친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어차피 저런 잘생긴 남자가 자신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여자였기에.
“저기.”
그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광경을 배경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크게 되물으며 뒤를 돌자, 벚꽃이 팔랑이며 떨어지는 동시에 남자가 부드럽게 웃는 것이 보였다. 순간 채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가 어떻게 돼요?”
“과…… 아, 경영학과요.”
“진짜? 나도 경영인데. 근데 같은 수업 들을지는 모르겠네요.”
하긴, 경영이 사람이 많긴 하다. 같은 과인게 어디인가 싶지만 채아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이 보이는 것 같아 의아했다. 또다시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채아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여기가 제서대예요. 신입생?”
“아, 아아. 네. 그쪽은…….”
“난 복학생이에요.”
멋쩍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모습도 참 잘 어울렸다. 거기다가 벚꽃이 휘날리는 배경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계를 보던 채아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꾸벅,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저, 저기! 감사했어요! 늦어서 이만……!”
남자가 분명 입을 열려고 들썩이는 것을 보았지만 3분밖에 남지 않아서 채아는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학교 약도는 미리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남자는 채아가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는, 제 시야에서 채아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따르르릉―
멋없고 단조로운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던 채아가 침대 위에서 꿈틀대다 벌떡 일어났다. 몽롱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휙휙, 강아지가 물을 털듯이 고개를 젓고서 눈을 번쩍 떴다.
“……꿈을 꾼 것 같은데.”
무언가 하늘하늘했던 것도 같은데.
하품을 하던 채아는 기지개를 펴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꼭 예쁘게 하고 나오라던 친구 영은의 말이 떠올랐다. 뭐냐고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씩 웃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무언가 저에게는 켕기는 일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저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것을 믿기에 채아는 그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우선 그녀는 어제 들어온 문자를 확인했다.
“12시, 레스토랑 Shangri―La.”
설마, 밥을 사 주려고 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스크루지 영감의 후예가?”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일단 영은을 믿고서 채아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며 멍하니 화장대 거울을 바라보다 간단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화장을 하지 않지만 예쁘게 하고 오라는 그 말에 연하게라도 뭔가 발라야 할 것 같았다.
옷장 앞에 선 채아는 무엇을 입을까, 바라보다 단아한 원피스 하나를 골랐다. 편하다고 청바지만 자주 입고 다녀서 그런지 치마 종류는 불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영은의 말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거면 다시는 말 안 들을 거야.”
중얼거리던 채아는 옷을 갈아입고서 구석에 세워 놓은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늘씬한 몸매는 단아한 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마침 오늘 쉬는 날이기에 망정이지.”
좋은 학교, 좋은 과를 나왔지만 그저 성적에 맞춰서 가장 좋은 곳을 들어갔던 것뿐이다. 당연히 흥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다니다 보면 생기겠지,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명문 학교라 불리는 제서대에, 더군다나 경쟁률 높기로 유명한 과 중 하나인 경영학과에 당당히 합격을 했으니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흥미가 없으니 문제였다. 그래도 다시 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다시 해서 가고 싶은 과는 없었다. 채아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릴 적 티브이에 나온 대기업 회장 비서의 우아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반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성격상 업무 외의 부분에서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입시를 준비할 즈음 비서의 꿈을 묻어 두었지만 다른 데에 흥미가 갈 리 없었다.
흥미가 없어도 일단 들어갔고,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열심히 하기는 했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으니 서류 전형은 충분히 잘할 수 있지만 문제는 면접이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내성적이었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시고 의기소침했을 때 운명처럼 채용 정보가 들려왔다. 제서대의 재단을 운영하는 제서 그룹이었다. 운 좋게도 이력서 위주로 본 데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떨면서도 준비한 대답을 마쳐 채아는 당당하게 회계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음, 이 정도면 되겠지?”
채아는 전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집을 나섰다. 여유롭게 집을 나선 채아는 약속 시간 15분 전에 영은이 말을 해 주었던 레스토랑 Shangri―La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게 간판을 바라보며 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 금방 전화를 받았다.
― 어, 채아야! 벌써 도착했어?
“아, 응. 너 어디야?”
― 일단 안으로 들어와. 내 이름 대면 알아서 안내해 줄 거야.
“……오고 있는 중이구나?”
― 뭐…… 그렇지.
키득거리며 대답을 해 오는 영은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리며 영은의 이름을 댔다. 그러자 웨이터가 안내를 해 주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봐서는 굉장히 비싼 것 같은데. 역시 비싼 점심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박영은. 네가 무슨 일로 이런 비싼 곳을 사려고 해?”
― 채아야.
“진지하게 부르니까 무섭네. 알았어. 반씩…….”
그러나 채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웨이터가 안내를 해 준 자리에 한 남자가 이미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빛나는 갈색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남자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눈을 깜빡이던 채아가 조심스럽게 웨이터에게 물었다.
“저……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박영은 씨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는 저곳이 맞습니다, 손님.”
낮게 한숨을 쉰 채아는 통화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고서 다시 귀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박영은. 뭐야, 이건……?”
― 스물여덟 살이나 되어서 홀로 늙어 가는 네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주는 선물.
“뭐, 뭐야?”
마침 고개를 돌린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딱, 눈이 마주치자마자 낯설지 않은 그 얼굴에, 채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 너도 알 거야. 우리 학교 다니던 시절에 유명했던 사람이니까.
“…….”
― 아무튼 잘해 봐! 굿 럭!
뚝―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허탈한 기분이 들어 채아는 핸드폰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서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이 웃고 있는 남자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말을 마치자마자 채아가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어색한 웃음이 아니었다.
“……선배.”
그는 오랜만에 만나는 채아의 동아리 선배였다.
01
채아는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타입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도 먼저 말을 걸지 못해서 놓치기 일쑤였다. 막상 친해지고 나면 말도 재미있게 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수다쟁이가 되니 첫인상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런 자신의 성격을 열다섯 살 때 깨달아서 고치려고 해 봤지만, 원래 고치기 힘든 것이 타고난 성격이다. 이미 오랫동안 굳어 왔기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기 전에 많이 걱정을 했었다. 대학교는 전국에서 모이지 않던가? 거기다 나이도 다양하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신입생 환영회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과 입학식 때부터 친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은과, 영은의 고등학교 친구라던 소라.
그렇게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복도를 지나다니다 동아리 홍보 게시판 앞에서 세 사람은 멈췄다. 친구들이 열심히 홍보지를 살펴보았기에 채아도 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나는 이거 할래! 영화 감상 동아리!”
“고등학교 때 했으면 충분하지, 뭘 더 한다고 그래? 채아야, 너는?”
채아가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기에 소라에게 타박을 주던 영은이 물었다. 채아는 정신을 차리며 손을 쭉 뻗어 한 동아리 홍보물을 가리켰다. 영은과 소라는 채아를 따라가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채아가 가리킨 동아리는 천문학 동아리였다.
“저거…… 정말로?”
“응! 나, 저기 들고 싶어.”
홍보물을 보는 순간 늘 갖고 있던 작은 바람이 하나 떠올랐다. 시골에 내려갔을 때, 맑은 밤공기와 더불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머리 위에서 총총히 빛나는 별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지나가는 세월에만 몸을 맡겼다. 꿈도 없었다. 사소하게 해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기를 벌써 스무 살. 채아는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마치 산삼을 캐러 들어갔다가 산삼 무더기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음, 더 재미있어 보이는 동아리가 많은데?”
소라의 목소리에 채아는 고개를 가로로 젓고서 홍보물에 적힌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긴 했지만 채아는 심마니의 기분을 맛보며 가슴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바로 대학 생활이구나!’
그리고 곧장 날아온 답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당장 면접을 보러 와도 된다는 말.
“우와……. 은채아, 추진력 빠르네.”
“그러니까. 아주 스피드야. 저거, 선배들 번호겠지? 답장 왔지? 뭐래?”
궁금한 게 많은 영은의 질문에, 채아가 씩 웃으며 답장을 보여 주었다.
“오오! 면접 보러 같이 가 줄까?”
“응, 응! 떨린다, 막!”
그렇게 채아는 친구들과 함께 천문학 동아리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공고를 올린 지 일주일이 지난 후라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도 같아 긴장이 되기도 했다.
“아, 여기다.”
어느새 면접을 볼 동아리실 앞에 도착했다. 영은과 소라는 채아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채아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소리에 안으로 들어갔다. 남들 앞에 서기 전에는 잘할 수 있다, 생각을 하면서 막상 차례가 되면 목소리가 덜덜 떨려 왔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오늘은 잘하리라, 평소보다 더 굳게 다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유롭게 앉아 있는, 선배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혹시 아까 전에…….”
“네, 맞아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채아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에 번뜩 고개를 들었다.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에 채아는 걸음을 옮기며 슬쩍 안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다 한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아!”
남자가 놀라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뭐야. 형,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뭐…….”
남자가 말끝을 흐리며 채아와 다시 눈을 마주쳐 왔다. 그 순간 분명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외모이기도 했다.
그 남자는 대략 일주일 전에 학교 앞에서 마주쳤던, 채아를 학교 앞까지 안내해 주었던 친절한 귀공자였다.
채아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시한 뒤, 여자 선배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런 채아를 바라보는 남자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 한 자락이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