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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부 프롤로그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모두 최현도를 지목할 것이다. 최현도는 땀 냄새를 폴폴 풍기며 시답잖은 농담이나 해 대는 또래 남자애들과는 외모부터 확실히 달랐다. 홀로 조용히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가끔 여자애들에게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오게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최현도가 유명한 이유는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1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던 애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마치 화내는 기계와도 같다고 했다. 인상을 쓰고 있을 때가 무척 많아서 말을 거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라고. 워낙 종잡을 수가 없으니 최현도는 자연스럽게 일진들도 건드리지 않는 또라이가 되었다.

전교에 유명한 그의 별명은 화또.

―화내는 또라이였다.

얼마나 또라이인가 하면, 처음에 얼굴만 보고 쫓아다녔던 순진한 여자애들도 다 떨어져 나갈 만큼 또라이였다.

그런데,

일이 잘못된 것 같다.

까깡깡깡―!

시연이 손에 들고 있던 콜라 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글보글 흘러나온 검은 콜라가 하얀 실내화와 교복 바지 끝단을 물들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화또의 실내화와 화또의 바지였다.

시끄러운 깡통 소리가 멎고 부글거리는 탄산 소리마저 멈추자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화또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울상일 것이 분명했다. 복도에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쏟아졌다.

“너.”

그녀의 팔을 아플 정도로 움켜쥔 그가 주위를 휙휙 돌아보았다.

“왜, 왜 이래.”

잡힌 팔을 빼 보려고 해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팔은 시큰시큰 아팠고 화또의 시선은 무거웠다. 꼭 그녀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두려움에 빠진 시연이 그녀가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이 순간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그가 그녀의 팔을 휙― 놓았다. 화또답게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시연은 잠깐 휘청거렸다. 화또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혼잡했던 복도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그가 꽉 움켜쥐었던 팔이 아린 것이 아마 멍이 든 것 같았다. 시연은 팔을 주무르며 이상한 행동을 한 최현도가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난 1년간 최현도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눠 본 적 없었다. 점점 흉흉해지는 그에 대한 소문으로 인해 일부러 그를 피해 다녔으니까. 그런데 오늘 행동은 뭐란 말인가.

“화또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거 처음이야.”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민지가 참았던 숨을 내쉬며 속삭이듯 말했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는 민지의 호들갑을 들으며 시연은 생각했다. 최현도에게 그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고.

“근데 화또가 시비도 잘 걸었었나?”

민지가 여태껏 들은 소문을 샅샅이 회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랬을까. 무서운 눈을 하고 주위를 살피는 최현도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뭘 찾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다가 바닥에 처참히 나뒹구는 콜라 캔과 그의 젖은 실내화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다. 실내화가 젖은 것을 이유로 해코지를 하려나 싶어 정말 무서웠었다. 길을 잘 가고 있는 그녀의 팔을 낚아챈 것은 그쪽이면서.

어쨌든 정말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시연은 이제 조금 더 공들여 화또를 피해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우리…… 우리…… 화또랑 같은 반이다?”

민지의 떨리는 음성에 시연은 반 배정 명단을 훑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시야에 이름 하나가 들어왔다.

‘최현도.’

재앙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던 화또는 유난히 그녀를 싫어하는 것 같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같은 반이 되고 얼마 후, 그녀에게로 불똥이 튄 것이다.

“더럽게 진짜.”

쓰레기가 나뒹구는 복도에 주저앉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최현도가 말했다. 스치듯 닿은 시선이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 만큼 싸늘했다.

대체 왜?

누군가 그녀를 이토록 싫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헌데 화또는 능력을 쓰면 쓸수록, 그녀에게 더욱더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