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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으음…….”
얼굴 위로 부서지는 햇살에 살며시 눈이 떠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알코올이 좀 과했나 싶다. 이래서 술은 백해무익하다는 거다.
잠깐, 술?
“헉!”
간밤의 일을 떠올린 보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믿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네, 몸짱이요. 몸 되게 좋은 남자.’
‘주세요. 돈이요.’
‘딸기 우유가 결제되었습니다. 끄하핫!’
“말도 안 돼…….”
입술을 멍하니 벌린 보미는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조각조각 떨어져 있던 기억들이 맞춰질수록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어제 유정의 말을 이후로 내내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평소엔 잘하지도 않던 술을 찾았다.
대학 동기들로부터 제 진상 술버릇을 들은 이후로, 그녀가 술을 마신 건 부친의 기일, 딱 하루뿐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자제를 하지 못했다.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꿈일 거야. 꿈이야 이건.”
하하하.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
보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현실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모든 건 그녀의 합리화에 불과했다.
‘어이, 거기. 내 말 안 들려? 야. 야!’
‘그만하시죠.’
‘넌 또 하는 새낀데 참견…….’
하다하다 남자가 수표를 꺼내는 장면까지 떠오르자 보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현실이다. 그것도 아주 리얼한.
“미쳤어! 미쳤어 평보미!”
두 발을 있는 힘껏 뻗어 파닥파닥 거린 보미가 이불 킥을 시작했다.
그 남자는 어찌나 자기를 미친 여자로 생각할까.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후우. 보미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했다. 긴 숨을 뱉고 나니 이성이 조금은 돌아왔다.
“일단 침착하자.”
조금 전보다 차분한 페이스를 찾은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날 처음 본 남자에게 진상, 진상, 개진상을 떤 것은 맞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앞으로 그 남자와 다시 부딪칠 일은 없다.
고로, 혼자만의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하면 될 일이라는 소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놀라우리만큼 평온해졌다.
보미는 그제야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휴대폰을 들었다. 전원이 켜지자마자 어제 날짜로 나비의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술 깨면 전화해. 나 오늘 철수랑 외박.]
나비의 외박은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문자 창을 껐을 때였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발신인이 영하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점심 약속이 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거라 그녀가 알람까지 맞춰 놓았었다.
“못 살아 내가.”
보미는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하필 약속 시간이 딱 1시였다.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한 손으로는 영하에게 전화를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양치를 하는 보미는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쾌속 양치질이 끝날 때까지 영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야. 혹시 그냥 간 건가?”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5분 만에 세수와 코디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는 빠르게 현관을 나섰다.
✧ ✦ ✧
바깥 전망이 훤히 보이는 고즈넉한 카페.
짤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보미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빛이 훤히 비치는 창가 쪽에 앉은 영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소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영하의 앞에 멈춰 섰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1시 30분. 그렇게 빨리 준비했는데 30분이나 늦고 말았다.
미안함에 입술을 질끈 물고 있는 제 여자 친구를 영하는 다소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 또한 무미건조했다.
“어. 늦었네.”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보미는 영하에게 시선을 맞췄다.
차라리 짜증이라도 내라는 듯이.
하지만 그는 중요한 업무라도 있는 모양인지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지각한 잘못이 있는 그녀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꼭 물어야 했다.
유정이 말했던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
“저기, 영하야.”
영하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보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어제 뭐 했어?”
“…….”
침묵이 이리도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게 선명히 들어왔다.
“뭐 하긴. 회사에 있었지.”
“누구랑?”
영하의 입술이 삐뚤어졌다. 못마땅할 때마다 그가 하는 행동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러다간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보미는 차라리 본론을 꺼냈다.
“사실 내가 어제 너 봤거든. 여자랑 같이 있는 거.”
일절의 동요도 없던 영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삐딱하게 다리를 꼬는 태도가 의연하다.
“아, 그거. 그냥 직장 상사야. 이번에 맡게 된 프로젝트 팀장이고.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아아. 그렇구나.”
보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영하의 동공과 위태롭게 넘어가는 목울대가 보였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럼 그렇지, 영하가 그럴 리가 없지.
습관처럼 합리화가 시작됐다.
“우리, 뭐부터 시킬까?”
“난 생각 없어. 아침을 많이 먹었더니.”
“그래? 사실 나도 생각 없어.”
오늘따라 온도차가 심하다. 아니다. 사실 이렇게 된 건 한 달 남짓 정도 됐다.
연락이 뜸해진 것도, 대화가 줄어든 것도, 묻는 말마다 단답으로 일관하는 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변했다. 한창 연애할 땐 유머집을 사 달달 외우며 쉼 없이 웃겨 주더니 이젠 쉼 없이 입을 다문다.
이 모든 게 이별의 징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보미.”
그의 부름으로 길었던 회상이 뚝 끊겼다. 보미는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영하를 마주 보았다.
“너 요즘 살찐 것 같다. 피부도 더 상하고.”
갑작스러운 2연타 공격에 보미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갑자기 무슨 뜬구름 잡는가 싶어 머뭇거리다가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집에만 있었더니 그런가.”
오늘 처음으로 제게 묻는 말이 외모 공격이라니 보미는 잠시 씁쓸해졌다.
변했다. 그는 확실히 변했다.
그녀의 속에 잠재워져 있는 모든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두 차례 울린 휴대폰의 진동에 보미의 상념이 다시금 깨졌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좀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평보미님 서류심사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 뒤로도 면접 장소와 자세한 공지가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오직 한 문장만 들어찼다.
합격이다. 합격!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하던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찼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는 그녀의 변화에 영하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 1차 서류 합격했어.”
“그렇게 노력하더니 결국 합격했네. 축하해.”
오늘 만나고 처음으로 영하가 엶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보미는 서운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한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방방 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성심껏 축하해 줄 거라 생각했다.
예전부터 누구보다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던 그였으니까.
2년 전, 네가 취업을 하면 축하파티 제대로 열자고 호언장담하던 그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 변하는 건 참 한순간이었다.
아니다. 그동안 내가 둔했던 걸까.
씁쓸한 생각에 잠긴 보미는 애써 표정을 고쳤다.
“고마워.”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다. 당장이라도 시원한 얼음물을 원 샷하고 싶을 만큼.
보미는 생각을 옮기려 의자를 끌고 일어났다. 그러다 실수로 테이블을 건드려 영하의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든 그녀가 사과를 하기도 전 영하는 정색부터 했다.
“아, 진짜. 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미안해, 라고 말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보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카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물을 가득 따라 순식간에 비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이 어째 쓰기만 하다.
“…….”
그녀는 가만히 영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다짐했다.
이별은 안 된다고. 다시는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고.
“으음…….”
얼굴 위로 부서지는 햇살에 살며시 눈이 떠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알코올이 좀 과했나 싶다. 이래서 술은 백해무익하다는 거다.
잠깐, 술?
“헉!”
간밤의 일을 떠올린 보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믿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갔다.
‘네, 몸짱이요. 몸 되게 좋은 남자.’
‘주세요. 돈이요.’
‘딸기 우유가 결제되었습니다. 끄하핫!’
“말도 안 돼…….”
입술을 멍하니 벌린 보미는 한참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조각조각 떨어져 있던 기억들이 맞춰질수록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어제 유정의 말을 이후로 내내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평소엔 잘하지도 않던 술을 찾았다.
대학 동기들로부터 제 진상 술버릇을 들은 이후로, 그녀가 술을 마신 건 부친의 기일, 딱 하루뿐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자제를 하지 못했다.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꿈일 거야. 꿈이야 이건.”
하하하.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
보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현실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모든 건 그녀의 합리화에 불과했다.
‘어이, 거기. 내 말 안 들려? 야. 야!’
‘그만하시죠.’
‘넌 또 하는 새낀데 참견…….’
하다하다 남자가 수표를 꺼내는 장면까지 떠오르자 보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현실이다. 그것도 아주 리얼한.
“미쳤어! 미쳤어 평보미!”
두 발을 있는 힘껏 뻗어 파닥파닥 거린 보미가 이불 킥을 시작했다.
그 남자는 어찌나 자기를 미친 여자로 생각할까.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후우. 보미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했다. 긴 숨을 뱉고 나니 이성이 조금은 돌아왔다.
“일단 침착하자.”
조금 전보다 차분한 페이스를 찾은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날 처음 본 남자에게 진상, 진상, 개진상을 떤 것은 맞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앞으로 그 남자와 다시 부딪칠 일은 없다.
고로, 혼자만의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하면 될 일이라는 소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놀라우리만큼 평온해졌다.
보미는 그제야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휴대폰을 들었다. 전원이 켜지자마자 어제 날짜로 나비의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술 깨면 전화해. 나 오늘 철수랑 외박.]
나비의 외박은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문자 창을 껐을 때였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발신인이 영하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점심 약속이 있다는 게 뒤늦게 떠올랐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거라 그녀가 알람까지 맞춰 놓았었다.
“못 살아 내가.”
보미는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시.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하필 약속 시간이 딱 1시였다. 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한 손으로는 영하에게 전화를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양치를 하는 보미는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쾌속 양치질이 끝날 때까지 영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야. 혹시 그냥 간 건가?”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5분 만에 세수와 코디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는 빠르게 현관을 나섰다.
✧ ✦ ✧
바깥 전망이 훤히 보이는 고즈넉한 카페.
짤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보미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빛이 훤히 비치는 창가 쪽에 앉은 영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소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영하의 앞에 멈춰 섰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1시 30분. 그렇게 빨리 준비했는데 30분이나 늦고 말았다.
미안함에 입술을 질끈 물고 있는 제 여자 친구를 영하는 다소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 또한 무미건조했다.
“어. 늦었네.”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보미는 영하에게 시선을 맞췄다.
차라리 짜증이라도 내라는 듯이.
하지만 그는 중요한 업무라도 있는 모양인지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지각한 잘못이 있는 그녀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꼭 물어야 했다.
유정이 말했던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
“저기, 영하야.”
영하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보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어제 뭐 했어?”
“…….”
침묵이 이리도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게 선명히 들어왔다.
“뭐 하긴. 회사에 있었지.”
“누구랑?”
영하의 입술이 삐뚤어졌다. 못마땅할 때마다 그가 하는 행동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러다간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다. 보미는 차라리 본론을 꺼냈다.
“사실 내가 어제 너 봤거든. 여자랑 같이 있는 거.”
일절의 동요도 없던 영하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삐딱하게 다리를 꼬는 태도가 의연하다.
“아, 그거. 그냥 직장 상사야. 이번에 맡게 된 프로젝트 팀장이고.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아아. 그렇구나.”
보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영하의 동공과 위태롭게 넘어가는 목울대가 보였지만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럼 그렇지, 영하가 그럴 리가 없지.
습관처럼 합리화가 시작됐다.
“우리, 뭐부터 시킬까?”
“난 생각 없어. 아침을 많이 먹었더니.”
“그래? 사실 나도 생각 없어.”
오늘따라 온도차가 심하다. 아니다. 사실 이렇게 된 건 한 달 남짓 정도 됐다.
연락이 뜸해진 것도, 대화가 줄어든 것도, 묻는 말마다 단답으로 일관하는 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변했다. 한창 연애할 땐 유머집을 사 달달 외우며 쉼 없이 웃겨 주더니 이젠 쉼 없이 입을 다문다.
이 모든 게 이별의 징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보미.”
그의 부름으로 길었던 회상이 뚝 끊겼다. 보미는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영하를 마주 보았다.
“너 요즘 살찐 것 같다. 피부도 더 상하고.”
갑작스러운 2연타 공격에 보미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갑자기 무슨 뜬구름 잡는가 싶어 머뭇거리다가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집에만 있었더니 그런가.”
오늘 처음으로 제게 묻는 말이 외모 공격이라니 보미는 잠시 씁쓸해졌다.
변했다. 그는 확실히 변했다.
그녀의 속에 잠재워져 있는 모든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두 차례 울린 휴대폰의 진동에 보미의 상념이 다시금 깨졌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좀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평보미님 서류심사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그 뒤로도 면접 장소와 자세한 공지가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오직 한 문장만 들어찼다.
합격이다. 합격!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울하던 마음이 환희로 가득 찼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는 그녀의 변화에 영하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 1차 서류 합격했어.”
“그렇게 노력하더니 결국 합격했네. 축하해.”
오늘 만나고 처음으로 영하가 엶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보미는 서운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가 원한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방방 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성심껏 축하해 줄 거라 생각했다.
예전부터 누구보다 그녀의 꿈을 응원해 주던 그였으니까.
2년 전, 네가 취업을 하면 축하파티 제대로 열자고 호언장담하던 그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 변하는 건 참 한순간이었다.
아니다. 그동안 내가 둔했던 걸까.
씁쓸한 생각에 잠긴 보미는 애써 표정을 고쳤다.
“고마워.”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다. 당장이라도 시원한 얼음물을 원 샷하고 싶을 만큼.
보미는 생각을 옮기려 의자를 끌고 일어났다. 그러다 실수로 테이블을 건드려 영하의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든 그녀가 사과를 하기도 전 영하는 정색부터 했다.
“아, 진짜. 넌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미안해, 라고 말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보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카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물을 가득 따라 순식간에 비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이 어째 쓰기만 하다.
“…….”
그녀는 가만히 영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다짐했다.
이별은 안 된다고. 다시는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