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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연장전 1화

1. 용인 태권도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이상!”

“감사합니다!”

태권도장 이름은 용인 태권도였다. 단순히 관장님이 용인 대학교 출신이어서였다. 동네 태권도장답게 같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그중 나는 그곳에 가장 오래 다닌 원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아이들은 태권도에 흥미를 잃었지만 내게 있어 태권도를 관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태권도는 운명 같은 거창한 거였다. 나는 지역 태권도의 샛별 같은 존재였고 국가 대표를 준비하진 않았지만 어디서 쥐어 터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태권도장에 다닌 건 초등학교 5학년 브리지 머리 때문이었다. 몰래 친구 누나네 염색약을 빌려 앞머리만을 노랗게 물들였을 때 엄마는 내 정신머리에 문제가 있다며 엉덩이를 발로 차 태권도장에 보냈다. 공부에는 재능이 없으니 운동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당시 그게 유행이라고 바득바득 우겼지만 엄마의 눈엔 철없이 저지른 미친 머리통 정도였다.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아니에요. 우선 도복부터 입을까?”

관장님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다. 용인 대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태권도에 눈을 뜬 건 사부 때문이었다.

동네 장사가 그렇듯 입소문이 나면 당연히 사람이 몰렸다. 관장님은 인상이 좋았고 다정했지만 그 밑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인 진원 사부는 그렇지 않았다.

“넌 머리가 왜 그러냐.”

“상관 마요.”

“어린놈이. 머리는 샛노래 가지고.”

진원 사부는 열아홉이었다. 진원 사부에게 들은 건 아니었고 관장님이 그렇게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체대 수시 합격을 하고서 잠시 짬을 내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거라고 했었는데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특출 나게 사람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잘 가르치긴 개뿔. 내가 봐도 가르치는 거에 재능 따윈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왼발을 차라고 했다가 다시 오른발을 차라고 하는 둥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술을 왜 우리에겐 못하냐며 퍽이나 답답해하던, 말이 안 통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진원 사부를 쫓아다니게 된 건 그해 가을이었다. 학원 버스가 아이를 내려 주던 사이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들른 순간 나는 버스 구석에서 꾸벅꾸벅 선잠을 자다 잠이 들고 말았다. 샛노란 머리도 그대로였고 용인 태권도를 다닌 지 고작 한 달째였다.

걸어갈 수 있었는데. 엄마는 걱정이 많아 버스에서 아이들과 함께 내리길 원했다. 나를 깨운 건 진원 사부였다. 그가 이미 다시 돌고 돌아 학원 앞에 도착한 버스 안에서 나를 발견해 흔들었다.

“야. 성준아. 최성준.”

진원 사부가 나를 흔들어 겨우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부의 등에 업혀 있었다. 별일이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나보다 시선이 훨씬 높았고 바닥에서 떨어진 발과 맞닿지 않은 땅을 내려다보며 어딘가 업혀 있구나, 그리 생각했다.

“사부. 나 어디 가요?”

“일어났냐. 너 때문에 진짜.”

“나 집에 가요?”

“도장에서 어쩐지 팔팔하다 했다.”

“왜 업어 줘요?”

“안 예뻐서 업어 주지. 걸을래?”

진원 사부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려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되는 나를 엄마가 업어 줄 수 없었고. 아빠는 없어서 진원 사부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진원 사부의 등은 열이 올라 뜨끈했다. 더울 텐데. 도복을 입고 한없이 우리 아파트까지 걷는 사부에게 고마웠지만 말은 하지 못했다.

“콧물 묻는다.”

우는 걸 눈치챈 진원 사부가 그리 말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아니라고 말했지만 진원 사부가 내게 대꾸할 리 없었다. 그저 달을 보며 겨울이 다 되어 가는 날이면서 덥다고 이야기하는 진원 사부의 등에 묵묵히 고개를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성준이가 자고 있어서요.”

“어후, 내가 다 미안하지.”

“그럼 가 보겠습니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뇨. 근데 제가 실례되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들어와요.”

엄마는 싹싹하지 못한 진원 사부를 좋아했다. 그냥 아들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관장님처럼 나긋한 말로 사람을 타이를 줄도 모르는 사람이 뭐가 그리 좋다고. 엄마는 제가 한 갈비를 진원 사부 앞에 두고 밥을 먹였다. 진원 사부는 체육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복스럽게 잘 먹었다.

엄마가 진원 사부를 보내고 내게 말했다.

“너도 저렇게만 커.”

“진원 사부가 뭐가 좋아. 완전 무뚝뚝하잖아.”

“말이 많아서 득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엄마의 맹목적인 지지와 함께 나도 어딘가 진원 사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말 많아서 득 보는 사람이 없는 건 맞았다. 어린 나이의 내가 그거 하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말이 많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진원 사부의 묵묵함이 엄마의 맘에 든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엄마가 신경 쓰여 하는 진원 사부를 배로 살피기 시작했다.

“사부. 사부도 대학 가요?”

“대학 가지.”

“어디? 관장님이랑 같은 대?”

“다른 곳 간다. 왜.”

“사부는 태권도 사부잖아요.”

“그렇지, 뭐.”

“사부는 뭐 하는데요?”

“알면. 뭐 칭찬이라도 해 주리?”

싸가지 없기만 하구만. 나는 엄마에게 진원 사부 이야기를 하는 게 낙이었다. 도장에서 돌아와 엄마한테 그에 대해 말했고 엄마는 진원 사부 이야기를 들으며 매번 칭찬했다. 엄마가 원하는 아들은 저런 느낌인가.

진원 사부를 보며 생각했다. 나보다 한참 큰 키였고 훨씬 까맸다. 운동을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는데 꾸준히 하는 모습이 부지런했다. 진원 사부는 나보다 늦는 법이 없었고 단 한 번도 도장에 결석하지 않았다.

겨울이 되고 아이들이 태권도장을 하나씩 관두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게 도장에 계속 다닐 거냐고 물었다. 엄마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도장은 유일한 이야깃거리였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을 수 없었으니 가장 마음 편히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는 거기가 유일했다.

“다들. 주목. 오늘부터 김진원 사부는 이곳을 떠난다.”

진원 사부가 앞으로 나와 우리에게 인사했다. 관장님이 진원 사부에게 박수를 보내라고 말했다. 나의 짧은 관찰 일기가 끝을 맺던 순간이었다. 진원 사부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선 우리를 둘러봤다. 열 명 남짓한 도장의 아이들이 진원 사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는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목.”

진원 사부는 평소와 같았다. 섭섭해 보일 거라 생각했던 얼굴은 오히려 평소 수업할 때와 같았다. 장난스럽지도 않았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천천히 생각하고 있었다. 나보다 배는 큰 키를 한 진원 사부는 도복이 잘 어울렸다. 도복 안에 받쳐 입은 검은 티도 멋있었고 추워서 입는다던 롱패딩도 잘 어울렸다.

“그동안 재미없는 수업 따라와 줘서 고맙다. 내가 너희한테 뭘 가르쳤나 싶은데, 개인적으로 배운 게 더 많은 시간이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진원 사부도 마찬가지였다. 건조한 도장에서 흐르는 건 적막이었다. 진원 사부는 그에 자신이 할 말만을 했다. 나는 정좌로 앉아 진원 사부의 목소리를 듣다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찬 바람이 발가락을 간질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아직 어리니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라. 내 신념 같은 거지만 남이 다 바르지 않은 길로 간다고 해서 너희도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답답한 사람은 결국 그 길만의 답을 찾기 마련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라. 이상.”

아이들이 모두 사부를 끌어안았다.

나만이 정좌로 앉아 사부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더 이상 사부를 보지 못하겠구나. 나는 왜 그제야 울었던 걸까. 도대체 왜 사부가 간다는 사실에……. 관장님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진원 사부 옆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진원 사부가 내 머리 위로 제 손을 올렸다.

“성준아. 뭘 울고 그러냐.”

진원 사부 말이 맞았다. 뭘 울고 그랬을까. 어려서 그랬을 게 확실했지만 나는 관장님이 다음 주 뽑아 온 사진을 한 장 받아 들고 다시 또 울음을 삼켰다.

나는 진원 사부를 적어도 길을 가다 한 번쯤 만날 거라 생각했다. 어떤 방향으로도 상관없었는데.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당연히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진원 사부를 그 뒤로 만날 수 없었다.

“진원 사부 여기 안 와요?”

“진원이? 군대 간 지가 언제냐.”

“군대 갔어요?”

6학년 때 용기 내서 관장님에게 물은 진원 사부는 군대에 갔다고 했다. 나는 태권도에 제법 재미를 붙였었다. 진원 사부 때문은 아니었고 익숙해진 태권도에 재능 같은 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겨우 시 대회에 나가서 동메달 정도 따 오는 게 전부였다. 관장님은 그 시기의 나를 빠르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한 건지 나를 데리고 여러 대회에 내보냈다.

“관장님. 나 태권도 대표 시켜 주게요?”

“내가 언제 그런다고 했냐. 넌 그냥 우리 용인 태권도 간판 같은 거지.”

“도복비도 꼬박꼬박 받잖아요.”

“이제 안 받을게. 연습만 나와라.”

“동메달이라도 상관없어요?”

관장님은 나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관장님의 헛웃음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비웃고 있던 거였다. 고작이 아니라 그런 메달을 따고서도 가치조차 모르는 내가 한심해 그랬던 게 분명했다.

어리다는 핑계로 나는 메달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일등 자리까지 오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건 더욱 아니었다. 적당히. 적당히 메달을 따고 운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

“동메달은 메달이 아닌 게 되냐?”

사부는 나를 용인 태권도장의 간판스타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고 엄마는 내가 태권도 하는 걸 적극 찬성했다. 공부 머리는 포기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관장엔 새로운 사부가 왔다. 새로운 사부는 진원 사부보다 훨씬 다정했고 내게 살가운 사람이었다. 나는 사부에게 덤덤히 인사했고 다시 태권도를 배워 나갔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그제야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학원을 다니기 바빴을 때 나는 도장에서 품새 배우기에 전념했다.

내 이름이 붙은 플래카드가 학원 차량에 붙었다. 도장엔 다시 사람이 북적였다. 중학교 반은 여섯 명이 전부였다. 나는 그맘때 책에 흥미를 붙였다. 공부 같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 그러니까 거창하게 말하면 문학 작품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지 않으니 운동을 끝내고 도복을 입고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읽었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엄마.”

“어?”

“나 태권도 계속할까.”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정말로?”

“정말.”

“내가 공부한다고 하면?”

엄마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해 본 말이었다. 엄마가 퇴근하고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소중했다. 학교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내게 있어 엄마와의 대화는 유일한 소통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며 딴 메달이 다섯 개가 넘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당연히 태권도를 하는 게 옳았고 또 그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일지도 몰랐다.

“엄마. 기억나? 엄마가 좋아했던 사부.”

“누구. 영준 사부?”

“아니. 진원 사부.”

“아, 이목구비 진했던 애?”

“엄마 그 사부 좋아했잖아.”

“너한테 잘해 주니까 좋았지.”

“그게 잘해 준 거야?”

“애 업고 집에 들어오면 잘해 준 거지. 말도 얼마 없어서 과묵하고. 열아홉 안 같았잖아, 걔. 꼬박꼬박 허리 숙여 인사하고. 비위 맞추기 힘든 사람들한테도 묵묵히 알겠다고 수긍하고.”

“난 진원 사부처럼 될 수 있을까.”

“갑자기 그 옛날이야기를 왜 해?”

미안해서 그런다고 말하고 싶었다. 남은 다 공부할 때 나 혼자서 체육관에서 땀이나 뻘뻘 흘리며 운동을 했다. 관장님이 돈은 필요 없다고 해도 엄마는 꼬박꼬박 학원비를 보냈다. 가르침엔 당연히 정당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나 비겁해?”

엄마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날의 난 돌이켜 봐도 이상했다. 아마 버스를 타고 내리는 아이들을 마중 나온 부모가 부러워서 그랬을지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또래 아이들은 내게 무관심했고 내가 관심이 있는 건 고작 태권도와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내 물음에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답했다.

“성준이 네가 왜 비겁해.”

엄마는 나를 믿었다. 나는 엄마의 믿음에 답하기 위해 운동을 계속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비겁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기껏 운동한 걸로 같은 반 아이를 때리지 않았고 누군가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정당한 이유에서 그에 대한 응징을 했다. 그건 내 신념이었다. 진원 사부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진원 사부를 다시 본 건 열일곱 때였다. 열여섯의 나는 체육 고등학교를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엄마는 남몰래 울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태권도 말고 내가 잘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 여기 오고 싶었어.”

교복 단추를 잠그며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이었다. 학교랑 집이랑 가까우니까. 그게 유일한 이유였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병원을 찾았다. 무릎 아래와 발목이 너무 아파 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입학식에서 고작 몇 시간 서 있었다고 다리가 저려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어야만 했다. 앉을 때 무릎이 굽어져 아려 오기 시작한 통증은 끝없이 이어졌다.

“입원하는 게 좋겠는데.”

“입원이요?”

“성장통 같은데.”

“성장통으로도 입원을 해요?”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

“저도 그래야 해요?”

“내 소견은 성준 씨가 입원하는 게 좋겠다는 거니까.”

8인실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 같은 사람이 없었다. 다들 치료를 받는다고 병원 구석구석을 움직였다. 나는 입원을 하고 병실 TV가 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TV 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틀어도 괜찮으니까.

낮에 뉴스를 틀어 놓거나 앞뒤 내용을 모르는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엔 사람들이 돌아오면 함께 일일 드라마와 뉴스를 보다 TV를 껐다. 관장님은 병문안을 와 내 다리를 주물렀다. 3월에 있던 시 대회엔 결국 출전할 수 없었다.

“쉰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난 괜찮은데 관장님은 괜찮아요?”

“성준이 너 180 넘겠다.”

“운동하는 데 문제 있어요?”

“체급 문제 있겠지, 뭐. 다시 조정하면 되는 거고.”

“라이트 가는 게 좋나.”

“거긴 빡세지. 차라리 운동해서 웰터를 가든가.”

“몸 키우기 싫은데.”

“왜. 난 학교 다닐 때 미들이었어.”

“싫다, 그런 거.”

“멋있는 거겠지.”

내 다리를 주무르는 관장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천천히 주무르던 무릎 아래가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페더급을 떠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막연하게 키는 여기서 멈춘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열일곱의 성장통은 꽤나 아팠다. 경기 중 얻어맞았을 때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진원 사부는 몇이었어요?”

“페더급이었지.”

“거봐. 나도 페더가 좋다니까.”

“넌 진원이 너무 좋아한다.”

“멋있잖아요.”

“잘생기긴 했지.”

“신념이 멋있다는 거지, 뭐.”

“친구 한 명도 안와?”

“친구 없어요.”

“왜. 운동해서?”

“네. 운동해서 없지, 뭐.”

“넌 예쁘장하게 생겨 놓고 몸이 이게 뭐냐.”

관장님이 내가 입고 있던 환자복 옷깃을 손끝으로 젖혔다. 잘 다져진 몸이라고 생각했지만 갈비뼈가 드러나 앙상했다. 병원 밥. 너무 맛없지 않나 인간적으로. 그냥 맛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관장님. 나 밥 좀 먹여 줘요.”

“뭐 예쁘다고.”

“내가 관장님 태권도장 이사도 시켜 줬잖아요.”

“그건 내가 잘해서야.”

“내가 이름 걸게 해 줬잖아요.”

“어이고, 자.”

한낮의 병원은 한산했다. 병실에선 여전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듯 들은 그 목소리에 나는 관장님이 내민 숟가락을 입에 넣지 못했다.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 아주 천천히 그곳을 봤다. 관장님은 제가 내민 숟가락을 내 입에 억지로 넣었다. 나는 숟가락을 문 채 TV를 응시했다.

“뭐야. 진짜 진원이야?”

‘지난 19일 대학교 인근 편의점 강도를 잡은 대학생 김 군은 공부를 하다 도서관에서 나와 도망하던 자를 발견하고 쫓아가 제압한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김 군은…… 아르바이트생의 고함을 듣고 본능적으로 범인을 잡았다며 당연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관장님은 TV를 보며 꽤 놀란 눈치로 말했다. TV에 나오는 건 사부였다. 진원 사부가 안경을 끼고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름 옆에 자막으로 띄워진 대학교 이름과 차분히 인터뷰를 이어 나가는 말투가 낯설었다. 거짓말쟁이. 진원 사부는 거짓투성이였다. 아래에 자막으로 뜬 대학은 체육 대학교가 아니었다.

‘놀란 것보다 우선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겁하지 않은 사람. 진원 사부가 이야기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사부의 말이 맞았다. 사부는 아주 조용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왜 운동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더 이상 메달을 딸 수 없을 거라고, 재능이 있는 이들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야, 성준아. 밥 먹다가 왜 울어?”

진원 사부의 인터뷰는 끝이었다. CCTV 영상 속 흐릿하게나마 진원 사부가 강도를 제압한 뒤 뛰쳐나온 직원에게 신고를 하라며 손짓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진원 사부이니 만큼 당연할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살고 있는 그는 상상과 정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맞다. 진원 사부는 아주 담백했었지.

“괜찮아요.”

입에 넣었던 숟가락을 빼 내 손으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퇴원하면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태권도를 해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메달을 따는 게 익숙해져서, 더 높은 곳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동메달에 만족하는 내가 억울해 그랬다.



***



“180……4.”

184센티미터. 키가 그렇게 커 버렸다. 병원은 꾸준히 나오는 게 좋을 거였고 내 무릎은 성장이 멈출 때까지 아플 거라고 했다. 당연한 일이니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퇴원했다.

운동이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175센티미터였던 키가 한 번에 크고 나서 엄마는 나를 낯설어했다.

“예전엔 귀여웠는데.”

“내가?”

“예쁘장해서, 좋았단 말이야.”

“그때가 마음에 쏙 들었어?”

“그럼.”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있던 짐을 정리했다. 엄마는 나 때문에 회사를 조퇴했다. 괜히 미안해졌지만 엄마는 오히려 내게 눈치를 줬다.

퇴근하고 아들이랑 같이 가는 길이 즐겁다고 말하며 내 어깨를 치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 먹을 게 없다며 점심이나 한 끼 하자고 갈비탕집에 들어갔다. 나는 엄마와 함께 갈비탕 두 개를 시켰다.

“나 대학 가려고.”

“안 가려고 했어?”

“어느 대학 갈지 정했어.”

“벌써?”

“응.”

“운동 계속할 거야?”

“아마도.”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냥…….”

애매한 답변을 흘렸다. 엄마와 함께 먹는 갈비탕이 모자라 한 그릇 더 시켰다. 엄마는 갈비탕을 후후 불어 먹는 나를 보며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쓸모없는 이야기.”

아버지를 닮았다느니 하는 건 우리에게 있어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내 기억 속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 기억 속 아버지이니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