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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5화)
07. 훈련구역으로 가는 길(2)
태양계 초광속 이동 구역 내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제1격납고
7월 10일 16:12 [지구 시각]
참모 숙소는 방이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어 1인 1실을 사용한다. 참모 전이석 소령이라 적혀 있는 방 안에 마련되어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전이석 소령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복잡한 설계도가 놓여져 있었는데 전이석 소령은 고대영 준장이 “필살기”를 만들라고 했던 예상 밖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한창 설계 작업 중에 있었다. 기계를 좋아하는 전이석 소령이다 보니 작업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흠흠흠흠흠∼ 흠 흠흠 흠 흠흠흠 흠∼”
전이석 소령이 듣고 있는 곡은 바트 하워드가 메이 벨머서라고 하는 여자 가수를 위해 1954년에 만든 곡으로 원제는 ‘In Other Words.’다.
당시만 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던 이 곡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62년 조 허넬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편곡을 하고 곡명을 ‘Fly Me To The Moon’으로 바꾸고 난 후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우주 계획이 한창이던 미국의 분위기를 잘 탄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 어떤 것도 확실치는 않다.
전이석 소령이 이 노래를 알고,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일본의 어떤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던 도중 엔딩 곡으로 이 곡이 나왔기 때문이다.
상당히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 전이석 소령은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져 힘들게 음악 재생기에 파일을 넣는데 성공했다.
Fly me to the moon
날 달로 날아가게 해 줘요.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별들 사이를 누비며,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의 봄은 어떤지 보게 해 줘요.
In other words, hold my hand
다시 말한다면, 내 손을 잡아 주세요.
In other words, darling kiss me
다시 말한다면, 내게 입맞춤을 해 주세요.
Fill my heart with song
내 맘을 노래로 채우고,
and Let me sing for ever more
영원히 그 노래를 부르게 해 주세요.
You are all I long for all I worship and adore
그댄 내가 갈망하고, 숭배하며 동경하는 사람이죠.
In other words, please be true
그러니 진심으로 날 대해 줘요.
In other words, I love you
그 말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설계 잡업을 하며 곡을 감상하고 있던 전이석 소령은 중간중간 피식 웃었다. 뜻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지금 우주에 나와 있다.
당시에는 그저 바람이었던, 감성적인 노래 가사였던 우주 여행이 지금은 버스 타고 이웃 동네 놀러가듯 손쉬워졌고 돈 몇 푼이면 달을 비롯해 태양계 내부의 모든 행성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삑!
그렇게 전이석 소령이 히죽거리고 있는 와중, 방문이 열리며 어떤 형체가 알 수 없는 포스를 풍기며 걸어 들어왔다.
“뭐하냐?”
“함장님,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전이석 소령을 보며 이가 드러나게 웃어 보인 고대영 준장은 들고 온 맥주 캔들과 안주거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는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넌 술 들고 와서 뭐하겠냐? 관상하겠냐?”
“아, 그건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 끼어도 될까요?”
갑자기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린 전이석 소령은 문 틈에 빼꼼히 얼굴만 내민 전희연 중령을 보았다. 어색한 두 군인을 보며 고대영 준장은 혀를 찼다.
“전 중령! 내가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다시 쫓아 내겠어?”
기존에는 서로 존댓말을 썼던 터라 반말하기가 고대영 준장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존대를 할 때마다 전희연 중령이 잔소리를 해 댔고 그 덕분에 단기간에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아, 예.”
중앙사령실을 지키고 있던 고대영 준장과 전희연 중령은 제1격납고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홀로 빠져나와 중앙사령실에 들른 김대국 중령에게 당직을 맡기고 전희연 중령과 함께 제1격납고의 술 파티를 참가하러 갔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드넓은 인상을 주던 제1격납고가 좁다고 느껴질 만큼 다른 부서에서 놀러 온 군인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대부분 작업을 마친 휴식 인원들이라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 고대영 준장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을 싫어했고 그와 마찬가지 성향을 지니고 있던 전희연 중령은 고대영 준장과 함께 무알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혼자 심심해 할 전이석 소령의 방에 놀러와 주었다.
“오다가 한 모금 먹어 봤는데 예전 카X 있지? 그 맛 그대로더라. 빨리 먹자.”
예전에 먹었던 술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고대영 준장의 얼굴에서 전이석 소령은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찾아내었다.
평소에 무서운 사람으로만 인식되던 고대영 준장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리움을 품으며 살고 있다는 것에 약간 놀랐다.
“와, 웬일이십니까? 직접 다 사오시고.”
“오? 전 일병, 소령 달았다고 이젠 비꼬네? 낄낄.”
“전 이거!”
멍하니 둘을 바라보던 전희연 중령이 무알코올 맥주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회사의 맥주를 낚아챘고 그 순간부터 그들끼리 남아 있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헐, 그거 내가 먹을 거였는데… 그거 하나가 마지막인데. 내 덕에 중령 달았으면 그 정도는 양보하지?”
안주를 질겅질겅 씹던 고대영 준장이 장난스럽게 말했고 맥주를 마시던 전희연 중령은 마시던 맥주를 잠시 빤히 보더니 고대영 준장에게 건넸다.
자연스럽게 맥주 캔을 받아든 고대영 준장을 보며 전이석 소령이 음흉하게 웃었다.
“오오∼ 간접 키스! 오오!”
전이석 소령의 장난에 맥주 캔를 건네준 전희연 중령과 그 맥주 캔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든 고대영 준장까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오? 너 많이 컸다? 너 혹시 살면서 뼈와 살이 분리되는 느낌을 받은 적 있냐? 지금 특별히 받게 해 줄게.”
둘이 티격태격거리는 도중에도 전희연 중령은 얼굴이 빨갛게 된 상태로 손가락만 꿈지럭거렸다. 소심증이 재발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전이석 소령의 묶고 있는 방은 몇 시간 동안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로 시끌벅적거렸다.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중앙사령실
7월 11일 14:55 [지구 시각]
대한민국함은 훈련구역 도착까지 제3배치로 운영되기에 군인들은 3교대로 번갈아 가며 함을 운영한다. 그 운영 인원 중에는 대한민국함의 지휘부도 포함되는데 지휘부 역시 3교대로 운영되며 오늘은 고대영 준장이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그는 함장석에 몸을 늘어지게 파묻고 슈퍼컴퓨터와 잡담을 떨었다.
“프로X스 같은 게 있으면 신기할 텐데 안 그래?”
―현재 함장님께서 하신 질문의 답을 구성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다른 질문을 해 주십시오.
“에이, 기밀이라 말 안 하는 거냐? 교육 교재에서는 지금까지 외계 종족과의 조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한데 지금은 대 우주 시대라고! 기밀 사항에 속할 뿐이고 사실은 외계 종족을 발견한 거 아냐?”
장난으로 묻는 것이 확실했지만 슈퍼컴퓨터는 함장을 보좌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질문 하나하나에 진지하게 답했다.
―함장님은 우주군 장성으로 우주군 고급 기밀 정보를 30% 열람하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권한에 따라 고급 기밀 정보 일부를 열람, 검색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자료에도 외계인의 존재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대영 준장은 친절하게 설명하는 슈퍼컴퓨터의 말을 한쪽 귀로 흘려보내며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외계 문명과의 격돌!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난 프로X스가 나타났으면 좋겠어. 그들은 캐리어로 인터셉터를 날리고 난 그 캐리어를 빔포로 줄줄 녹여 버리고.”
―프로X스라는 종족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함장님. 프로X스의 캐리어라는 것은 가상의 적입니까?
“없다며? 귀찮게 그런 것을 왜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냐?”
쓸데없는 잡담으로 일관하는 고대영 준장과 그 쓸데없는 잡담에 쓸데없이 답하는 슈퍼컴퓨터를 중앙사령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들의 눈에는 마치 함장이 열심히 함 내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군인들은 함장을 본받자며 더 열심히 근무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제3격납고
7월 11일 15:10 [지구 시각]
김대국 중령과 전이석 소령은 이현재 소위의 안내를 받으며 전차와 전투 로봇들로 가득한 제3격납고에 들어섰다.
그들의 눈에는 K―21 전차 50대, 무인 전투 로봇 참개구리 전차 20대, 일반 전차용 소형 빔포에 비해 훨씬 강력한 빔 전차포를 탑재하고 있는 고강도 빔포 장착형 K―21B 전차 10대, 인간형 전투 로봇 K―1011 15기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제3격납고에 배치된 군인들은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15:00가 돼서야 늦은 점심이라도 해결하러 간 모양인지 제3격납고에는 배치된 군인이 아무도 없었다.
이 시대의 전차들은 대부분 4족 보행 기술을 채택하고 있고 디자인 자체도 멋지다기보다는 신비로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우주군 교육 도중 듣고 배웠던 김대국 중령과 전이석 소령은 훈련구역까지 당직 시간을 제외하고 자유 시간이 주어지자 딱히 할 일이 없었 차에 27세기의 전차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함 내에 배치되어 있는 기갑 차량을 보기 위해 제1격납고에서 막 작업을 마치고 쉬고 있던 이현재 소위에게 기갑 차량이 주로 수용되어 있는 제3격납고 안내를 부탁했다.
“오!”
“대박이지 말입니다.”
김대국 중령은 이현재 소위에게 제3격납고 구석에 있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커다랗고 불도저 같이 생긴 6족 보행 기갑 차량에 대해 물었고 이현재 소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단순히 일꾼 로봇이지 말입니다?”
“아차.”
우주군 교재에서 그것을 봤던 기억을 상기한 김대국 중령은 간단한 것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된 것 같아 얼굴을 붉혔고 일꾼 로봇에 대해 뒤늦게 떠올린 전이석 소령은 먼저 묻지 않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국군의 기갑 차량들은 모두 포스가 줄줄 풍기네.”
민망함을 벗어나려고 그렇게 말한 김대국 중령은 원래 목적대로 전이석 소령 그리고 안내직을 맡은 이현재 소위와 함께 제3격납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기갑 차량들을 모두 구경한 그들은 전투기들이 수용되어 있는 제4격납고로 향했다.
“오!”
이번에도 감탄사를 터뜨리는 김대국 중령과 전이석 소령의 목소리에 제4격납고 내부가 그들의 목소리로 메아리쳤고 그 감탄사에 정비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정비병들이 상관 2명을 보고 급히 경례를 했다.
“필승!”
“필승.”
느긋하게 답례한 김대국 중령은 긴장해 빳빳이 굳어 있는 정비병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유 시간이잖나? 폭 쉬어.”
“옙!”
김대국 중령이 쉬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원래 자리로 돌아가 그나마 어색한 잡담이라고 하기 시작한 군인들을 멋쩍게 바라보던 김대국 중령은 눈을 돌려 전투기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더 대단했다.
“와! 전 소령, 이 전투기들 우리 때 전투기하고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냐?”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7세기 전투기들은 대부분 외형이 21세기의 공군 전투기의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물론 알맹이들은 완전 다르겠지만 얼핏 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잘못 들었습니다.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현재 소위가 묻자 김대국 중령과 전이석 소령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제4격납고로 다시 고개를 돌린 그들의 눈에는 전투기들과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로봇손들이 마치 풍경화처럼 눈 속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7월 12일 18:32 [지구 시각]
대한민국함의 승조원 식당에는 오늘도 장교 식당이 아닌 승조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고대영 준장 일행이 있었다.
그런데 고대영 준장이 승조원 식당으로 자주 식사를 하러 오자 바뀐 것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계급에 따라 승조원 식당, 장교 식당으로 나뉘던 구분이 없어져 부사관 이하 계급의 승조원이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장교가 승조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고대영 준장이 들어서면 얼어붙던 분위기도 지금은 아예 흔적조차 사라져 승조원들은 고대영 준장 일행을 부드럽게 맞이해 줄 정도가 되었다.
“헐! 모 대위, 닭 다리가 내 것보다 커! 우리 교환 좀 합시다? 특별히 내 닭 다리를 줄 테니 니 닭다리를…….”
“함장님 남의 밥상에 눈독 들이면 안 돼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 그랬나? 난 몰랐는데?”
뻔뻔한 표정으로 들어 본 적 없다고 말하는 고대영 준장을 보며 이민채 대령이 사레 들렸고 이민채 대령이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며 훈훈해 하던 고대영 준장이 입을 열었다.
“부함장!”
“예! 부르셨습니까?”
호출에 놀라 고대영 준장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민채 대령은 고대영 준장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자 승조원 식당 천장에 무슨 문제라고 생겼나? 라고 생각하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천장은 멀쩡했고 시선을 다시 내려보니 고대영 준장이 이민채 대령의 식판에 올려져 있던 닭다니를 낚아채 천연덕스럽게 물어 뜯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은 모름지기 잔머리가 있어야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법이야.”
“모범을 보이셔야 할 함장님이… 아? 저게 모범이란 말인가!”
한동안 그들의 식탁에는 닭다리 쟁탈전이 벌어졌고 그 모습을 보며 전희연 중령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광경이 묘하게 웃겼고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꾹 참던 그녀는 킥킥거리다 결국 참고 참던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승조원들은 일반 승조원들과 화목하게 어울리는 지휘부들이라고 훈훈해 했는데 그들의 오해(?)가 풀리려면 좀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렇게 그들이 웃고 즐기고 있을 때 미합중국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