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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4화)
06.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4)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소속 대한민국함 중앙사령실
7월 10일 14:30

우주 시대 개막 이후 실질적인 우주군이 창설되며 우주 전투함정들이 각 우주군에 배치되기 시작했고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혈맹국인 대한민국와 미합중국은 우주에서 합동 교전 훈련을 해 왔다.
이 훈련은 1년 주기로 실시되는 훈련으로 대한민국 우주군 1개 함대와 미합중국 우주군 1개 함대 간의 가상 교전 및 합동 기동 훈련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훈련 장소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이 1년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결정하는데 이번 년도는 미국이 직접 훈련 장소를 정하는 시기였다.
다른 때면 연료 절약이나 비상시를 대비해 자국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태양계 내부에서만 훈련을 실시해 왔으나 이번에는 독특하게도 지구와 한참 떨어진 미국 소유의 F―12행성 인근 반경 1만 km를 훈련 장소로 결정했다.
물론 멀리 항해한다고 곧바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한국은 훈련 장소에 아무 말 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그 훈련을 위해 F―12 행성 인근으로 향하기 위해 대한민국함의 중앙사령실에서는 많은 군인들이 첫 함대 출항에 바짝 긴장해 있었다.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출항 예정 시각입니다. 전투함 수용소 상부 출입구가 전면 개방되었습니다.
슈퍼컴퓨터의 목소리가 중앙사령실에 퍼지고 함장석에 앉아 지긋이 중앙 모니터를 쳐다보던 고대영 준장이 조용히 물었다.
“흠. 준비되었나?”
고대영 준장의 물음에 슈퍼컴퓨터는 함 내 준비 상태를 함장석 앞에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함 내 모든 구역에 문제 없음.
“총원 제3배치! 지구 영향권 외부까지 함대 순항 속도로 이탈한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대한민국 우주군의 전투함 배치 절차는 총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제4배치는 평화 경계 배치로 주로 자국 내 혹은 전함의 수용 장소 변경 및 단순 보급 상황으로 일반 경계 이하의 상태를 말한다.
제3배치는 경계 수위를 약간 올리고 급격한 기동 그리고 허용 한도 내에서 제한된 무기 체계를 사용하는 상태를 말하고 제2배치는 적과 대치 중이거나 위험 수준이 상당 부분까지 올라가게 될 경우 실시하게 되는 배치로 적 공격이 관측될 때 제한 없이 반격, 응사할 수 있는 배치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제1배치는 당연히 적 공격 시 발령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전투배치라 한다.
슈퍼컴퓨터의 대답이 끝나고 대한민국함은 제2함대 소속의 다른 전투함들을 따라 거체를 일으켰다.
느리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제2전투함 수용소를 빠져나온 대한민국함은 보다 빠른 속도로 선회해 임시 집결 장소인 지표면으로부터 500km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오호, 전차장님 함장 다 되셨네.”
김대국 중령은 전함을 지휘하는 고대영 준장을 지켜보며 옆에 서 있던 전이석 소령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지막하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전이석 소령이 씨익 웃었다.
“가상 교전할 때부터 이미 위엄 쩌셨습니다. 후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민채 대령은 얼핏 가상 교전을 떠올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전이석 소령처럼 히죽 웃었다.
이길 수 없을 거라던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쥔 고대영 준장. 아무리 전략이 뛰어나고 정보가 뛰어나더라도 지휘력이 모자라게 된다면 제때 함대를 기동시키지 못해 가상 교전에서 패배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고대영 준장의 지휘력은 충분히 함장이 될 정도로 대단했다.
미소 짓는 이민채 대령의 생각을 읽었는지 전희연 중령은 고대영 준장을 보며 전이석 소령과 이민채 대령을 따라 미소지었다. 그렇게 그들이 잡생각과 잡담을 하는 사이 대한민국함음 임시 집결 장소에 도착했다.
삣!
작은 소음과 함께 중앙 모니터에 제2함대의 함대사령관 민석규 중장의 얼굴이 비춰졌다.
―……하게 전한다. 본 함대는 미국 우주군 함대와 합동 훈련을 위해 주둔지인 지구를 2주간 떠난다. 그렇다고 축 처지지 말고 훈련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내 주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우주군 작전사령부에서 이번에 좋은 성과를 내면 보너스가 있다더군. 험험. 그럼 이상!
통신이 종료되고 충무공 이순신함이 선두로 우주 항해를 시작했고 그 뒤를 다른 전투함정들이 줄줄이 따라 종렬진을 형성했다. 고대영 준장은 부기함이자 2전대의 전대함인 광개토대왕함 꽁무늬만 잘 따라다니면 된다고 슈퍼컴퓨터와 조타수에게 말하고는 함장석에 다시 몸을 파묻었다.
앞으로 훈련구역까지 초광속 비행하는 7일간은 당직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자유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당직 사관 빼고 모두 개인 정비, 아니, 자유 시간이다! 그동안 푹 쉬어라.”
자신의 말에 대부분의 군인들이 중앙사령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일어서려던 고대영 준장이 얼굴을 두 손에 파묻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군인들이 나갈 때까지 감정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으윽. 무중력 상태를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안 돼.”
일반적으로 우주선은 지구를 벗어나며 선내에 탑재된 중력 시스템을 자동으로 작동시킨다. 그렇게 되면 함 내의 모든 인간이 받는 중력이 지구와 똑같아지고 지구 내에서의 환경과 그리 달리질 것이 없다.
하지만 직접 무중력 상태를 겪어 보고 싶었던 고대영 준장은 출항 직전 훈련이라는 핑계로 30분간 중력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려 했는데 잔뜩 긴장하며 함 지휘를 하느라 그 명령을 까먹어 버렸다.
이미 대한민국함은 중력 시스템을 자동으로 작동시켰으니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안타까워 하고 있는 사람이 고대영 준장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으허허헝!”
성격과 특기가 가지 각색인 이민채 대령과 김대국 중령, 전이석 소령이 이번 일만은 고대영 준장과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울상을 짓고 있었고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이 간 전희연 중령은 여전히 안 돼! 라고 끙끙거리는 고대영 준장의 곁에 다가가 귓가에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돼.”
“으익!”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깜짝 놀란 고대영 준장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함장석의 왼쪽 손잡이 부분으로 몸을 피신한 뒤 전희연 중령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괴성을 질렀다.
“으와왁!”
그 모습을 보며 두 손을 가지런히 입가에 모아 픽픽거리며 웃던 전희연 중령은 고대영 준장뿐만 아니라 부함장과 다른 참모진들도 왠지 모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자 놀라면서도 계속 웃었다(?).



07. 훈련구역으로 가는 길(1)


태양계 초광속 이동 구역 내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제1격납고
7월 10일 15:13 [지구 시각]

대한민국함 승무원 대부분이 아직 마치지 못한 작업을 서두르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이민채 대령은 제1격납고에서 보급 중대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햐! 무 알콜 맥주라는 게 이렇게 진짜 맥주맛이었나? 누가 발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박이네.”
“에이, 그래도 진짜 맥주만 하겠습니까?”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캔 맥주는 알코올 0%의 무알콜 맥주였다. 그런데 술자리란 모름지기 알코올로 도배되어야 하는데 알코올이 없기 때문에 이민채 대령은 지금 이 자리가 술자리인이 음료수 자리인지 좀 애매했다.
“보급 1소대장!”
“푸흡! 예! 부르셨습니까?”
비교적 자리 구석에 있어 불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현재 소위는 갑자기 자신이 불리자 놀라 마시던 맥주를 분수처럼 뿜었고 느닷없이 나타난 맥주 분수에 술자리를 함께하던 군인들이 낄낄거렸다.
“여기 내 인식 카드 줄 테니까 마실 거랑 안주거리 마음 껏 사 와∼”
다른 군인들의 환호성에 이현재 소위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제1격납고 구석에 위치한 자판기로 잽싸게 뛰어갔다.
이민채 대령은 고대영 준장에게 前 대기 13중대, 現 대한민국함 제1격납고 보급 중대원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어 그들이 그리 낯설지 않았고 K1A1 전차를 보느라 자주 제1격납고에 들러 그들과 안면도 튼 사이였기에 짧은 시간에 비교적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1격납고 보급 중대원들은 이민채 대령을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부함장” 이라는 큰 벽이 그들과 이민채 대령을 가로막고 있어서인데 그 벽을 이참에 좀 무너뜨려 보자는 생각에 이민채 대령이 제1격납고에 술판을 벌였다.
“1소대장이 내 주간치 월급 다 턴다에 한 표.”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이민채 대령이 외치자 여기저기서 투표에 참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주치에 10만원 겁니다.”
“무서워서 적당히 사올 것 같지 말입니다. 한 반 주치?”
“인식 카드 들고 날르지 않겠습니까?”
인식 카드 들고 도망친다는 의견에 대한민국함 구명선을 타고 지구로 도주하는 이현재 소위를 떠올리며 이민채 대령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사왔습니다! 부함장님!”
모두의 시선이 이삿짐 보따리 싸듯 바리바리 사들고 온 이현재 소위의 모습에 박혔다.
이현재 소위가 이민채 대령에게 인식 카드를 돌려주었고 그 카드를 건네받은 이민채 대령은 카드 표면에 뜬 잔액 표시 화면을 보고 얼어붙었다.
“헐!”
이민채 대령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제1격납고에 울려 퍼졌고 다른 중대원들은 그것을 보며 굳어 버렸다.
다른 중대원들이 왜 이리 돈을 썼냐고 힐난하듯 이현재 소위를 째려보았고 이민채 대령의 반응과 전우들의 썩은 시선에 땀을 뻘뻘 흘리는 이현재 소위를 보며 이민채 대령은 다시 배를 잡고 굴렀다.
“하하! 반 주치도 안 썼잖아? 1주치는 써야지! 얼른 가서 더 사와!”
십년감수한 보급 중대원들이 식은땀을 훔쳐 냈고 가장 긴장하고 있던 보급 중대장 모지윤 대위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 놀랐지 말입니다. 그런데 부함장님. 저거 굴러가긴 합니까?”
의심 섞인 모지윤 대위의 물음에 이민채 대령이 유쾌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하하하! 그럼 지금 보시겠습니까?”
“헉?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무슨 RC카마냥 전원 켜면 바로 움직이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모지윤 대위를 보며 더 크게 웃은 이민채 대령은 손목에 찬 다목적 컴퓨터를 이용해 슈퍼컴퓨터와의 통신을 연결했다.
“부함장이다. 제1격납고에 위치한 K1A1 전차의 훈련 기동이 있겠다. 장소는 제1격납고.”
―알겠습니다. 부함장님.
군인들이 과거 유물의 기동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K1A1 전차가 몇 번 움직여 주는 것은 대한민국함의 마스코트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 같은게 아니겠나?” 라고 이미 사전에 고대영 준장이 K1A1 전차의 기동을 직접 허가해 주었다.
이민채 대령의 통신이 끝나고 1초도 되지 않아 함 내 방송이 시작됐다.
―삐이! 함 내 기동 훈련 안내 방송입니다. 제1격납…….
뭔가 빼먹은 것 같은 기분에 멍하니 방송을 듣고 있던 이민채 대령은 아차! 하더니 다시 다목적 컴퓨터로 통신을 시작했다.
“어이, 김대국!”
―음? 아! 예!
김대국 중령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이민채 대령이 물었다.
“응? 너 화장실이냐? 아니면 샤워실?”
하루 아침에 똥싸개라는 별명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대국 중령은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샤워실입니다!
“왠 샤워실? 비누 주우러 갔냐?”
히죽거리는 이민채 대령에게 김대국 중령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함 내 시설 시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제1격납고 기동 훈련이 뭡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통신했어. 1격납고 보급 중대원들한테 눈 호강시켜 주려고 K1A1 전차 기동을 보여 주려 하는데 전차는 조종수가 조종해야 제 맛이잖아? 급한 일 없으면 빨리 와!”
제1격납고 기동 훈련의 실체를 알게 된 김대국 중령은 K1A1 전차를 너무 장난감처럼 써먹는 게 아니냐고 투덜거리려다 딱히 할 일도 없던 차라 이민채 대령의 요청을 수락했다.
―금방 가겠습니다.
통신을 마치고 1분도 되지 않아 김대국 중령이 구보하는 군인처럼 걸어 들어왔다. 아무래도 제1격납고 인근 샤워실을 시찰하고 있었던 듯했다.
“애들 목 빠지겠다 얼른 타!”
보급 중대원들 곁에 서서 팔짱을 낀 채로 이민채 대령이 외쳤고 이제 막 제1격납고에 도착한 김대국 중령은 닦달하는 이민채 대령의 눈빛에 못이겨 급히 K1A1 전차 운전석에 앉았다.
부앙!
K1A1 전차는 즉응성이 좀 떨어지는 디젤 엔진을 사용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시동이 걸렸고 거센 굉음과 함께 제1격납고 내부를 들쑤시고 다녔다.
압도되는 광경에 이민채 대령을 제외한 다른 군인들은 넋이 나가 버렸다.
“오! 클래식한 웅장함이 있습니다!”
어째 고대영 준장 일행은 항상 자신을 놀라게 하는지 의문이라고 생각한 모지윤 대위는 K1A1 전차의 기동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이민채 대령은 자식 자랑하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으하하! 그렇습니까? 남자는 모름지기 거함 거포 그리고 전차 아니겠습니까? 으하하하!”
이민채 대령의 호탕한 웃음에 보급 중대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