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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3화)
06.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3)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7월 10일 13:01

승조원들의 행복한 식사 시간을 방해, 아니, 파탄 내 버린 그들은 승조원들의 슬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얼거리며 각자 숙소로 해산했다. 다른 함정들 같으면 지금이 제일 바쁠 시기였지만 이미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일찍 모든 일처리를 끝낸 덕택에 모두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이었는데 고대영 준장은 다른 일행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방인 함장실이 아니라 중앙사령실을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많이 먹었나?”
중앙사령실 출입구 바로 앞에서 멈춰선 고대영 준장은 과식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일을 몰아서 하다 보니 배가 상당히 고팠고 덕분에 폭식을 했다.
“확인 완료. 함장님, 안녕하십니까?”
“응.”
슈퍼컴퓨터의 물음에 자기도 모르게 답한 고대영 준장은 출입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갑작스러운 함장의 등장에 대한민국함으로 발령된 지 얼마 안 된 군인들은 바짝 긴장해 제자리에서 일어서 경례를 했다.
고대영 준장은 경례하는 군인들에게 오른손을 휘두르며 됐다고 말하고는 무뚝뚝하게 함장석까지 걸어가더니 함장석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끄응, 왜 이리 인생 스케쥴이 빡빡하다냐.’
보통 취역한 지 얼마 안 된 함정들은 승조원들이 함정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간을 주기 때문에 취역 바로 다음날 훈련 출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2함대 사령관은 실제 상황 같은 훈련을 초반부에 겪으면 겪을수록 빠른 적응은 물론이고 함 내 승조원들의 단합이 잘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어 고대영 준장과 승조원들이 보다 빠르게 단합하는 것을 돕기 위해 대한민국함 역시 우주군 훈련에 동참시켰다.
“흠, 훈련 출항까지 얼마나 남았지?”
―출항까지 1시간 34분 10초 남았습니다. 훈련 개시 시각까지는 앞으로 7일…….
“됐어.”
만사 귀찮아진 고대영 준장은 컴퓨터의 말을 가로막고는 크게 하품을 했다. 긴 하품을 하던 도중 고대영 준장은 물을 것이 생겼다는 듯 두 눈을 크게 치켜 떴다.
“슈퍼컴퓨터!”
―부르셨습니까? 함장님?
친절하게 대답하는 슈퍼컴퓨터에게 고대영 준장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각 전투함마다 약간씩 일부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함정이 많잖아? 물론 다 무장이나 체계가 비슷비슷하겠지만 혹시 전투함 중에 특이하게 필살기 같은 것이 존재하는 전투함이 있나?”
우주군 사관 교육 당시 만화나 영화처럼 필사기 같은 것을 떠올리며 기대했던 고대영 준장은 관련 교육을 듣고 ‘기본 무장이 다 비슷비슷하다니! 뭔가 멋지지가 않잖아!’라고 좌절했던 적이 있었고 문득 그때 기억이 떠올랐는지 고대영 준장은 슈퍼컴퓨터에게 작게 물었다.
슈퍼컴퓨터는 좀 쓸데없는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함장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없습니다. 특수 장비를 탑재한 전투함을 제외한 모든 전투함의 기본 주 무장은…….
설명이 길게 늘어질거라 예측한 고대영 준장은 설명 중간에 파고들어 다시 질문했다.
“그럼, 배틀X루저의 야마X 캐논이라던지 뭐 그런 것도 없나? 뻘짓으로 어떤 국가에서 한 번쯤 만들어 봤을 법도 한데?”
―현재 함장님께서 질문하신 답을 구성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다른 질문을…….
“에이∼ 빼지 말고 말해봐∼”
―다른 질문을…….
슈퍼컴퓨터에게 장난을 치던 고대영 준장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중지와 엄지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오! 그래! 우리가 만들면 어떨까? 전이석 소령 호출해!”
―기술 고문을 위해서는 전이석 소령보다 무장 부서나 함 내 공병…….
고대영 준장과 슈퍼컴퓨터가 작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없었지만 중앙사령실에서 고대영 준장을 흘깃거리며 쳐다보던 두 남녀 군인은 고대영 준장의 모습을 보며 작게 수근거렸다.
“우리 함장님 성실하신 것 같지 않아? 내 동기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함장이 출발 시간에만 똥폼 잡고 나타나고 작업은 전부 자기들한테 떠맡긴다는데. 우리 함장님은 미리 와서 슈퍼컴퓨터와 훈련 일정을 논의하시는 것 보니 존경스럽달까?”
젊은 여성 간부의 말에 같은 짬의 남성 군인이 훨씬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어제 오셔서 밤새 회의하시고 아침에도 체크하시느라 동분서주하셨다는데. 게다가 승조원들의 식사하고 영양 상태 체크한다고 장교 식당이 아니라 직접 승조원 식당에서 식사하셨다더라.”
그렇게 고대영 준장은 과장과 오해가 절묘하게 조화된 소문 덕분에 고대영 준장 일행을 의심하거나 아니꼽게 보던 시선들이 모두 사라졌다. 당연히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이민채 대령, 전희연 중령, 김대국 중령, 전이석 소령은 배를 잡고 뒹굴었다.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7월 10일 13:38

부함장실에서 30분 가까이 밍기적대던 이민채 대령은 딱히 할 일이 없자 괜스레 K1A1 전차의 모습이 보고 싶어져 제1격납고로 향했다.
처음 K1A1 전차를 습득한 국방 과학 연구소는 K1A1 전차를 서울에 있는 전쟁 기념관에 보내려 했으나 군 숙소에 머무는 고대영 준장을 비롯한 전차 승무원 일행의 결사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우주군 상륙 부대 격납고에 얌전히 보관되었다.
대한민국함 발령이 확정난 고대영 준장은 이후 K1A1 전차를 대한민국함의 마스코트로 써먹겠다는 건의를 작전사령부에 올렸고 어차피 자리만 차지하지 쓸데도 없었던 K1A1 전차를 고대영 준장에게 넘겨 다시 대한민국함 제1격납고로 수용시켜 주었다.
참고로 대한민국함의 마크는 이민채 대령의 건의대로 K1A1 전차의 디자인이 참고되어 만들어졌는데 사실 따져 보면 마스코트로 보관하겠다는 고대영 준장의 말이 그다지 틀릴 것은 없었다.
지잉.
제1격납고 내부 출입구가 열리고 이민채 대령이 통로에서 제1격납고로 들어서자 갑자기 출현한 중간 보스의 등장에 제1격납고에 배치된 군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경례를 붙였다.
“필승!”
건성으로 경례에 답한 이민채 대령은 느린 걸음으로 K1A1 전차가 주차되어 있는 격납고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곧 얼마 되지 않아 희미한 조명 아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힘껏 포신을 들고 있는 K1A1 전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K1A1 전차에는 몇 개월전 있었던 우주 해적과의 교전으로 생긴 작은 상처들이 즐비했는데 이민채 대령은 그 상처들도 K1A1 전차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 부함장님! 저게 뭡니까?”
중간 보스 주변에 출현한 저렙 몬스터(?)인 제1격납고 보급 중대원이 물었고 그 물음에 마치 ‘좋은 질문이에요 학생.’ 하는 표정으로 이민채 대령이 말했다.
“오, 좋은 질문인데? 그런데 딱 보면 몰라?”
부함장의 말에 부하 군인들은 딱딱하게 굳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차라리 저를 죽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듯이 외쳤다.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하긴 뭘 시정해. 저건 21세기형 육군 전차인 K1A1 전차다.”
“문화재급 유물이라는 것은 소대장이 말해 줘서 알긴 압니다만, 왜 저런 문화재급 유물이 여기 있는 겁니까?”
소대장이라는 말에 자기를 불렀냐고 멀리서 빤히 쳐다보는 이현재 소위를 1격납고 보급 중대원은 인식하지 못했다.
모지윤 대위의 대기 13중대는 기존 병과가 보급이었기에 고대영 준장에 의해 대한민국함으로 오게된 그들은 제1격납고로 배치되었다.
“음.”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해 하던 이민채 대령은 고대영 준장이 외친 “대한민국함의 마스코트화!” 가 얼핏 떠올랐지만 그렇게 말하면 자신도 병신(?) 취급받을 것 같다는 오묘한 느낌에 약간 색다른 답변을 내놨다.
“함장님의 개인적인 취미 정도? 함장님은 대한민국함의 마스코트화다 뭐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냥 대한민국함의 부적 정도로 생각해. 그런데 저거 아무도 손 못 대게 했지? 내가 인심 팍팍 쓸 테니 직접 구경해 봐. 아! 만져 봐도 된다.”
이민채 대령의 말에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던 보급 중대원들은 모두 싱글벙글거렸다. 박물관에서는 건드리지도 못하는 유물이니 그만큼 신기했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K1A1 전차에게 달려들었다.
“뭔 덩치는 산만 한 놈들이 동심에 찬 표정이다냐.”
실눈을 뜨고 K1A1 전차를 향해 달려가는 보급 중대원들을 보며 낮게 중얼거린 이민채 대령은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함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7월 10일 13:39

고대영 준장의 호출에 참모 숙소에서 빈둥거리다 온 전이석 소령은 “대한민국함의 필살기를 만들어봐라.”라고 말하는 고대영 준장의 말에 약간 모자란 것 같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필살기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밑도 끝도 없는 필살기 발언에 그는 다시 한 번 고대영 준장에게 물었고 고대영 준장은 전이석 소령이 이해하기 쉽게 추가 설명을 첨부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스타크X프트에서 나오는 유닛 중에 배틀X루저라고 있잖아? 그 녀석이 쓰는 야X토 캐논 같은 걸 한 번 만들어 보라고.”
“아, 그러니까 한 번에 적을 격파시킬 만한 가공할 위력의 무기 말입니까?”
“응.”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을 짓는 고대영 준장에게 전이석 소령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저야 만들면 재밌으니 좋긴 합니다만, 함선 개조는 군법 재판 감 아닙니까?”
얼굴에 걸리면 똥 됩니다. 라고 적힌 전이석 소령이 약간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고대영 준장은 이가 드러나도록 히죽 웃었다.
“대한민국함은 다른 전투함들과 달라서 내가 가지는 권한이 비교적 많아. 그러니 교묘하게 피해 가며 만들면 괜찮을 것 같은데? 한 번 머리 써 봐.”
“헉! 못 피해서 만들면 저 영창행 아닙니까?”
함선 개조는 중죄로 걸릴 경우 영창에서 썩어야 한다. 이제 막 임관(?)했는데 영창에서 썩기 싫다고 전이석 소령은 고개를 도리질쳤다.
“걸리면 나도 좋을 건 없지. 반드시 하라는 건 아니지만 한 번 알아봐. 다만.”
5초 가까이 아무 말 없이 전이석 소령을 노려보던 고대영 준장이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못 알아보면 재미 없을 거야.”
빌린 돈을 갚으라고 깽판을 부리는 깡패의 표정을 고스란히 재현한 고대영 준장에게 전이석 소령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그러면 그와 관련해서 몇 가지 조사를 하고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재미난 장난감이 하나 늘었다고 흥얼거리는 고대영 준장을 뒤로하고 전이석 소령은 중앙사령실을 빠져나왔다.
‘분명 재밌긴 하겠는데… 아악, 짜증 나!’
설계하고 만드는 것은 재미있을 터였지만 걸리면 똥 된다. 이성은 하면 안 돼! 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감성은 한 번 해 보렴. 이라고 유혹하자 전이석 소령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조언부터 받으러 가 봐야지.’
교육이나 훈련에서 남는 시간 동안에는 27세기 과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가 머리가 제법 비상한 전이석 소령이었지만 경험자에게 협조를 받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했고 곧장 시설관리부, 즉, 공병단이 작업 중인 함 내 시설 관리 구역으로 걸어갔다.
보통 주 함포 및 부 함포를 다루는 승조원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단순히 함포를 다루는 방법만 아는 군인들일 뿐이고 본격적으로 수리를 하기 위해 기본 설계를 잘 알고 있는 공병에게 조언을 구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전이석 소령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