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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너스 레퀴엠 1권(22화)
06.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2)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부속군 숙소 1층 중앙 홀
7월 9일 14:18

작전사령부로 이어진 군 숙소 1충 중앙 홀에는 고대영 준장 일행들이 싸 놓은 짐을 꺼내 모아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짐은 오후 3시쯤 짐꾼 로봇들이 대한민국함으로 옮겨 줄 것이다.
“제가 내부 감찰 임무로 몇 년간 정보부에 위장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되어 버려서… 오늘 짐 가지러 갔더니… 분위기가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전희연 중령은 한숨을 쉬었다. 기존의 전차 승무원들은 아예 기록이 없어 새로 쓰면 됐지만 전희연 중령은 이미 정보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좀 복잡하게 일처리가 된 모양이었다.
“낄낄. 막 경례하고 그럽니까?”
분위기를 상상하던 고대영 준장은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부하인 줄 알았는데 자신보다 높은 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대장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 안 봐도 선했다.
“예, 무엇보다 죄송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무섭던 분이 으으.”
하루 아침에 카리스마를 상실한 소대장에게 마음으로 깊은 유감을 표한 고대영 준장은 이어지는 전희연 중령의 말에 배를 잡고 뒹굴었다.
“간부 중에 진짜 밉살이던 선배가 하나 있었는데 그 선배가 제 앞에서 쩔쩔 맬 때는 솔직히 통쾌했습니다.”
“히히힉!”
한참을 웃던 고대영 준장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무릎을 찧고는 고통에 겨워했다. 전희연 중령의 말보다 고대영 준장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흡족해하며 웃던 다른 일행 중 이민채 대령이 대표로 뒤통수를 맞았고 이민채 대령은 고대영 준장에게 항의했다.
“다른 애들도 웃었지 말입니다!”
퍽!
다시 한 번 뒤통수에 크리티컬 데미지가 꽂힌 이민채 대령은 상당히 아팠는지 두 손으로 맞은 부위를 문질러 댔다.
“고자질하는 놈이 제일 얄미운 거 아냐?”
버럭 화내는 고대영 준장이었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문질러 대서 그런지 전혀 위엄 있지 않았다.
“쉴 만큼 쉬었으니 남은 짐들 챙기러 가자고.”
고대영 준장이 절뚝거리며 일어나자 다른 일행들도 방에 있는 나머지 짐들을 가지고 나오기 위해 일어섰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좀 그렇네.’
자기 방까지 걷는 내내 군 숙소 이곳저곳을 훑어보던 고대영 준장은 아쉬움을 느꼈다. 4개월간 정들었던 장소를 떠나려니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삑!
301호라 적인 문이 열리고 방 안에 들어선 고대영 준장은 마지막 짐을 손에 들고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쳐다보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미래에 도착해 정신이 없었을 때. 전희연을 처음 만났을 때. 우주군 교육을 받느라 머리가 터져 나갔을 때. 하나하나 옛 기억들을 떠올리던 고대영 준장은 두 눈을 감았다.
‘새로운 시작이다! 힘내자!’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좀 민망해 속으로 그렇게 외친 고대영 준장은 다시 눈을 뜨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걸어 나왔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함대 함대사령관실
7월 9일 15:23

우주군 작전사령부에는 작전사령부 각종 부서들을 비롯해 작전사령부 소속 함대들의 함대사령관실이 존재한다.
전투함 내부 시설이 워낙 좋아 이 함대사령관실은 잘 쓰이지 않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이 몇 명 들어차 있었다.
“준장 고대영! 제2함대 2전대로 발령을 명받았기에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고대영 준장 일행 중 고대영 준장이 대표로 외치며 경례를 하자 다른 일행들도 따라 경례를 했고 건너편 책상에 앉아 있던 제2함대 함대사령관 민석규 중장은 흐뭇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쉬게. 군기 잡힌 모습이 정말 보기 좋네. 하하!”
열중쉬어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고대영 준장 일행을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던 민석규 중장은 갑자기 히죽거렸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네. 난 대한민국 우주군에서 자네들 비밀을 아는 10명 중 한 명이고 2함대에서는 나 혼자 자네들 비밀을 알고 있으니 적어도 여기서는 편하게 있어도 된다네.”
그러니까 더 긴장해야 하지 말입니다! 라고 고대영 준장은 외쳐 주고 싶었지만 괜히 말 잘못했다가 처음부터 찍힐까 땀만 줄줄 흘렸다.
“오늘 아침에 자네들 가상 교전 자료를 받았네만. 꽤나 인상 깊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대영 준장의 대답을 들으며 인자하게 웃음 지은 민석규 중장은 예리한 눈빛으로 고대영 준장을 꿰뚫듯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실전은 가상 교전과는 다를 거야. 그러니 부함대사령관 밑에서 많이 배워 놓게. 아! 부함대사령관은 자네 과거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언행에 주의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옛 속담처럼 고대영 준장이 대답을 마치자마자 함대사령관실 문이 열리고 부함대사령관 김대엽 소장이 걸어 들어왔다.
“필승! 함대사령관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나 대신 고대영 준장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게. 난 훈련 회의 때문에 작전사령관님을 뵈러 가야 해.”
“예! 알겠습니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서류 가방을 챙긴 민석규 중장은 말을 마치고는 곧장 함대사령관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초면이라 그런지 부함대사령관과 고대영 준장 일행 사이에는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필승! 준장 고대영! 제2함대 2전대로 발령을 명받았습니다.”
“필승, 부함대사령관 김대엽 소장일세. 반갑네.”
악수를 주고받은 두 장성과 고대영 준장과 함께 온 일행들은 근처 쇼파에 앉아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확히 어디로 배치되는지, 어떻게 명령 계통이 이어져 있는지, 함대 전통이 어떤지에 대해 김대엽 소장은 고대영 준장 일행들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고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저녁 식사 직전까지 길게 이어졌다.

대한민국 서울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7월 9일 19:43

제2전투함 수용소 안에는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소속 전투함들을 비롯해 새로 취역한 대한민국함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곧 우주군 훈련 일정이 잡힐 예정이라 각 전투함정에는 물자 하역 작업으로 부산스러웠고 그것은 대한민국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급 물자를 싣던 군인들은 대한민국함을 향해 한 무리의 군인들이 걸어오자 그들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작업을 멈추었다.
“헙! 함장님이다!”
가장 먼저 그들이 누군지 알아챈 위관급 장교 한 명이 재빠르게 대한민국함 우현 승무원 출입구 인근에 설치된 함 내 방송 마이크의 스위치를 올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함장님 승함!”
필승!
직접 눈으로 함장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혹은 장소에 있던 대한민국함 승조원들은 모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고대영 준장을 향해 경례를 했고 고대영 준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례를 하고는 우현 승조원 출입구를 통해 대한민국함 내부로 들어섰다.
―함장님, 안녕하십니까?
평안한 목소리로 슈퍼컴퓨터가 인사했지만 고대영 준장은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 받을 시간도 없다는 듯 슈퍼컴퓨터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함 내 각 부서장들과 담당관들에게 중앙사령실로 집합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함장님.
대답한 슈퍼컴퓨터는 고대영 준장의 명령대로 곧바로 함 내 방송을 실시했다.
―함 내 모든 부서장들 및 구역 담당관들은 지금 바로 중앙사령실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함 내…….
“짐 푸는 건 아무래도 밤 늦게부터 가능할 것 같구만.”
힘없는 목소리로 고대영 준장은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2함대사령관실에서 부함대사령관은 곧 있을 훈련에 대비해 확실히 준비를 마치라고 말했고 그 명령을 받든 고대영 준장은 함 내 승조원들과 친해질 기회도 없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상황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일이 들이닥치는 기분이라 고대영 준장 일행들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단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었기에 쉴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곧바로 각 부서장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중앙사령실에서 열린 회의는 밤늦게까지 지속되었고 고대영 준장 일행이 회의를 마치고 각자 머물 방에 도착한 시간은 9일이 지난 10일 새벽 1시였다.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부기함 광개토대왕함
7월 10일 12:21

부함대사령관이 함장을 겸임해 직접 관리하는 60만 톤급 전투함 승조원 식당에서 부함대사령관 김대엽 소장은 다른 함장들이 잘하지 않는 행동, 장교용 식당이 아닌 부사관 이하 군인들이 이용하는 승조원 식당에서 부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부함장의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부함대사령관이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자 함장의 옆자리에서 식사 중이던 부함장이 약간 볼멘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새로 대한민국함 함장이 된 고대영 준장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솔직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 나이에 70만 톤급 함장이라니…….”
한참 웃던 김대엽 소장은 부함장 박연수 대령이 화재를 돌리자 웃던 얼굴을 어떻게든 침착하게 바꾸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거 참,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게. 자료를 읽어 봤는데 비공개 교전에서 엄청난 공을 세우고 그 기량을 인정받아 준장으로 급승진한 케이스라 적혀 있던데? 뭐 군은 먹은 짬만큼 인정해 주는 것이 보통이라 해도 사람은 나이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돼. 그것도 모르나 부함장?”
“하긴 그렇습니다. 특히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짬이나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지 말입니다.”
납득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박연수 대령의 말에 김대엽 소장은 눈웃음을 지었다.
소수의 2함대 장교들과 짬 좀 먹었다는 승조원들은 고대영 준장에 대해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낙하산이 아니냐? 실력은 확실하냐? 라고 자기들끼리 수근댔는데 이 정도 소문이야 시간이 약간 흐르면 무마될 터였다.
물론 고대영 준장의 능력이 확실하다면 말이다. 그에 반해 김대엽 소장은 소중한 동료가 늘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편한 작전사령부 식당은 내버려 두고 왜 여기서 밥을 먹는지 아나? 부함장?”
식사를 마치고 김대엽 소장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박연수 대령은 김대엽 소장의 물음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음, 약 2시간 뒤 있을 출항 때문입니다.”
“그래 맞아. 약 2시간 뒤야, 중앙사령실 가서 각 구역 체크하고 슈퍼컴퓨터 점검하고 와!”
“예, 옙!”
김대엽 소장의 호통 아닌 호통에 박연수 대령은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마냥 잽싸게 승조원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대엽 소장은 다른 승조원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식사 빨리하자고, 곧 출항이니 마지막 점검들 해야지?”
“예!”
짧지만 무수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김대엽 소장의 말에 군인들은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는 출항 준비를 위해 각 부서로 내달렸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며 승조원들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던 김대엽 소장은 슬슬 자기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한민국 우주군 작전사령부 제2전투함 수용소
대한민국 우주군 제2함대 2전대 대한민국함
7월 10일 12:31

회의는 물론 각 부서장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오전 내내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덕분에 배가 등가죽에 붙은 고대영 준장 일행은 김대엽 소장처럼 승조원 식당 내에서 다른 승조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엽 소장처럼 승조원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 단순히 승조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편해서였다.
“무슨 쩝쩝, 적응이 꿀꺽! 안 돼냐. 쩝쩝.”
장교 식당에는 각 위관급, 영관급 장교들이 식사하고 있어 왠지 적응이 안 돼 승조원 식당으로 온 고대영 준장은 입안에 음식을 가득 구겨 넣으며 중얼거렸고 고대영 준장의 승조원 식당 출현에 군인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경직된 상태로 있었다.
10분 전 갑작스럽게 등장한 고대영 준장 일행은 경례하는 승조원들에게 됐다는 간단한 손짓만 하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높은 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편할 리 없는 승조원들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힘겨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물우물, 오! 함장님! 이 닭고기 쩝니다!”
식사로 받은 닭고기를 뜯던 이민채 대령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닭다리를 뜯은 미식사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꿀꺽. 부함장, 닥치고 처먹어라, 뭔 말이 그리 많냐? 쩝쩝.”
입에 잔뜩 들어찬 음식물이나 삼키고 말하라고 타박하는 고대영 준장이었지만 그도 이민채 대령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함장님! 장교는 품위 있게 식사를 해야 합 냠냠 니다.”
그게 뭐냐는 듯 김대국 중령에 입을 열었지만 그 역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김 중령. 너부터 이쁘게 식사하는 게 어떨까?”
“홤좡뉨 마스이 마스미다. 쩝쩝.”(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전 소령, 넌 처먹든지 아니면 말하든지 하나만 해 주면 안 될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전희연 중령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대영 준장과 단둘이서 먹을 때는 괜찮았지만 고대영 준장과 같은 식사 자세를 가진 군인이 3명이나 부록에 참여해 있자 참기 곤란해진 모양이었다.
“제발 좀 천천히 식사해 가면서 이야기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다른 부하들 보기 민망합니다.”
“어허! 쩝쩝. 전 중령! 쩝쩝 식사할 때는 조용히 좀 합시다. 냠냠.”
더 이상 대꾸할 힘도 남아 있지 않던 전희연 중령은 더 이상 식사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출장 보낸 이들과 대화하기 보다는 조용히 식사에 전념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고대영 준장이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대로면 위엄 있는 지휘부가 되긴 글렀다고 전희연 중령은 생각했는데 앞으로 그들을 대한민국함 지휘부로써 위엄 있는 군인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