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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만나, 형 1화







1. 멀쩡한 사람을 돌게 해서 멱살 잡고 키스하게 만든 것





“구름 위에서 만나, 형.”

마스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구름 위? 뭔 소리? 마스가 하는 말은 종종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고민이 필요했다.

힙합인가? 정상에서 만나, 브로(Bro),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되려나?

아니면, 살인 예고? 칼빵 받으시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는 건가?

난 그 말이 낭만적인 뉘앙스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스와 낭만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스가 한 번 더 그 말을 했을 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고, 난 그게 구름처럼 폭신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식, 넌 숨 쉬듯이 플러팅이구나! 하고 비웃으려는 순간, 마스는 진지한 얼굴을 했다.

이윽고 마스가 내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서 발로 땅을 힘껏 굴렀고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구름 위로 떠올라 우주가 된 도시의 밤을 날았다.

물론 여기까지는 전부 다 내 꿈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가 마스와 처음 만나는 날로부터 시작된다.



***



오늘 우리 대학교에서 연기과로 전과를 시도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한지롱 씨?”

“네! 저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자 연기과 조교로 보이는 사람이 날 무덤덤하게 보고 있었다.

아, 일어날 필요까진 없었다. 조교는 오늘 전과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 명단을 체크하러 온 것이었으며 지금 이 복도에 대기하는 것은 나뿐이었으니까.

조교는 내 이름 한 줄이 적힌 명단을 뚫어져라 보았다. 한지롱, 22세, 국문학과 3학년. 평점은 4.3이고 우수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어느 학과로 전과하더라도 무리가 없는 상태다. 단, 그 학과가 학점이 높건 낮건 상관없는 연기과만 아니면 말이다.

내 스펙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날 쳐다보는 조교 탓에 긴장이 돼서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그는 뿔테안경으로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눈이 예뻤다. 샤프한 눈매 안에서 동공이 짙은 눈이 빛을 빨아들였다. 작은 얼굴과 큰 키, 적당한 어깨 너비와 근육으로 균형 잡힌 그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배우 지망생다웠다.

그는 외모만으로도 내게 연기과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알려 주는 것 같았다. 기죽지 않으려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전과 면접 보러 온 거 맞죠?”

“예. 지금 들어가나요?”

“한 10분만 있다가 바로요. 안에 교수님 세 분 계시고요, 면접 시간은 30분 정도 될 텐데 그보다 길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군요.”

“질문 있으세요?”

조교는 형식적으로 물었다. 이럴 때 보통 지원자라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흔들 것이다. 실제로 조교도 물음과 동시에 이미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난 절실하다. 이렇게 그를 보낼 생각이 없다. 덥석, 하고 그의 옷소매를 잡자 그는 예기치 못한 접촉인 듯 눈을 크게 떴다.

“저기, 조교님.”

민망해서 목을 큼, 한번 다듬었다.

“연기과 선배신 거죠?”

조교는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눈꺼풀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눈매가 점점 휘어졌다. 어느새 그는 온 얼굴을 다 써서 웃고 있었다.

“저 나이 들어 보이나요?”

“아뇨”

난 조금의 틈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조교는 푸우웃,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다’라서 0.1초 만에 대답한 건데, 조교는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 내가 각종 아르바이트에서 구르면서 사회생활 하나는 잘 배웠다고.

실제로도 조교는 매우 어려 보였다. 저 연기과 점퍼와 뿔테안경만 벗고 교복만 입히면 고등학생 역할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부 관리를 어찌나 잘했는지 하얗고 보들보들한 것이 숨구멍 하나 보이지 않았고 장난스레 입꼬리까지 올려놓으니 딱 학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얼굴이었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 복도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빛이 그에게만 조명을 뿌리는 것 같았다.

내가 남자인데도 어찔했다. 이 사람, 데뷔하면 분명 여심을 사로잡는 배우가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아…….”

“질문이 뭔데요?”

조교는 내 아부 덕분인지 자애로워졌다. 나도 그의 외모에 홀려 날아갔던 정신을 바로 챙겨서 물었다.

“저……. 괜찮으시면 팁 좀…….”

“팁이요?”

“제가 연기과 면접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도 없고……. 보통 교수님들이 어떤 걸 여쭤보시는지 아세요?”

조교는 대체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멍청히 봤다. 그 덕에 나도 멍해졌다. 조교는 아, 하고 스스로 사고 회로를 정리한 뒤 깨달음을 얻었는지 곧 입을 열었다.

“떨리세요?”

“조금요…….”

“그렇구나. 떨릴 수 있겠구나.”

조교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마치 태어나서 한 번도 안 떨어 봐서 이런 걱정을 하는 보통 사람 따위를 처음 만나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친절하게 굴었다. 복도 벽에 명단을 대 놓고 그 위에 연필로 슥슥 그림을 그렸다.

“들어가시면 지롱 씨 왼쪽이 촬영쌤, 오른쪽이 연출쌤, 가운데가 연기쌤이에요. 연기쌤이 학장이고 화내면 좀 무서워서 가운데 앉아 있어요.”

“명왕수 교수님 말씀이죠……?”

“어, 아시네요. 검색해 보셨죠?”

명왕수 배우님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배우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난 그런 배우님조차 쌤이라고 부르는 연기과의 위엄에 좀 감동했다. 조교가 네모난 책상과 동그라미 머리통을 그리고서 하나씩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세 분 다 연세가 있으신데 촬영쌤은 미국에서 공부해서 그나마 좀 깨어 있고요. 연출쌤이 완전 꼰대예요. 예의 바른 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90도 인사하면 흐뭇해할 거예요.”

“아……. 박계호 연출님이요? 저 명동에서 한 연극 봤는데.”

“그걸 보셨다고요? 어땠어요? 완전 지루했죠! 저희 다 잤잖아요!”

조교가 온 복도가 울리도록 쩌렁쩌렁 말해서 난 입을 다물었다. 나름대로 재밌었고 대단원에서 눈물의 기립 박수까지 쳤기 때문이다. 조교의 악평이 얇은 나무문 하나로 가로막혀 있는 면접관 대기실까지 흘러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 것도 챙겨 보고, 똑똑하신가 보다.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왕수를 감동시키는 거예요.”

조교가 종이 한가운데를 차지한 명왕수 배우님을 가리켰다. 급기야 이름을 막 부르다니.

“왕수는 무조건 메소드(Method). 열정적이면 좋아해요. 그렇다고 기어 다니거나 눈 뒤집지는 마세요. 과하면 마이너스니까. 근데 지롱 씨, 연기 좀 하세요?”

“부족할 겁니다…….”

“처음엔 다 그렇죠, 뭐. 그래도 지롱 씨는 똑똑하니까 그런 거 어필하면 좋아할 거예요. 연극 대사 외우는 거 많아요?”

“셰익스피어 전 대본 다 외우는 정도…….”

그 순간 조교가 연필을 떨어뜨렸다.

툭, 또르르르.

뭐가 잘못됐나 싶을 때 그가 내 어깨를 잡고서 흔들었다.

“뭐라고요? 진짜요? 천재 아니에요?”

“아닌데요…….”

“와, 난 단편 영화 대사도 못 외워서 지어 말하고 그러는데. 멋있다.”

난 어깨를 붙들린 덕분에 정면으로 그와 마주했다. 그는 빈말을 하는 게 아닌 듯했다. 눈을 반짝이며 정말 내게 ‘멋있다’고 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셰익스피어 대본 외우는 게 뭐가 대수라고. 혼자서 배우의 꿈을 키워 가며 읽고 또 읽은 대본이니 자연스럽게 뇌리에 새겨진 건데. 그걸 시간 낭비가 아니라 멋있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난 면접을 앞둔 긴장 때문인지 발화점이 낮아져서 그의 진심 어린 표정만으로도 울컥했다.

“어쨌든 쫄지 마세요! 저 사람들, 교수라고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몰라요. 지롱 씨가 훌륭한 배우가 될지, 아니면 그냥 좀 하다 관두고 치킨집이나 할지…….”

조교는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더니 면접관 대기실로 발길을 옮겼다.

“어차피 다 감이에요. 자신감 가지시고요. 혹시 떨어져도 연기 계속하시고요.”

“감사합니다, 조교님.”

떠나기 직전까지 참 다정하다. 그는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기 직전에 날 돌아봤다.

“근데요. 저 조교 아니에요.”

조교가 아니면 뭐지? 그래도 선배이긴 할 거라는 생각에 고쳐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러자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명단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숨죽이고 웃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롱 씨, 기린 좋아하세요?”



***



면접은 망했다.

그래도 조교의 조언은 도움이 많이 됐다. 들어가자마자 90도로 인사했더니 오른쪽 박계호 연출님이 좋아했다.

이어지는 질문 세례는 힘들었다. 세 교수 모두 독하게 면접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왜 국문과 학생이 연기를 하려고 하나?”

“연기하면 다 화려한 배우가 될 줄 아나?”

“차라리 국문과로 졸업장 따서 돈 벌고, 연기는 취미로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이렇게 남의 인생 걱정을 대신 해 주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한지롱 학생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특출 난 게 뭔가?”

“외모? 인간적인 매력?”

“연기 많이 해 보았나?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던가?”

난 국문학회와 교회 수련회에서 했던 연기를 떠올리며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교수들이 평가표에 낮은 점수를 쓰는 것이 뻔히 보였다.

“전 기억력이 좋습니다.”

내가 셰익스피어 전 대본을 다 외운다고 하자 중앙의 명왕수 배우님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까 선배님도 그렇고, 극강의 암기력이 배우들에게 감동을 주나 보다. 난 이로써 자신감을 조금 회복했다.

질문 세례가 어느 정도 멎었을 때 난 연기를 준비했다. 내 캐릭터에 어울리는, 적당한 길이의 독백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른 자세로 서서 대사를 뱉으려던 순간 명왕수 배우님이 손을 들어 날 제지했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배우의 눈으로 날 노려보더니 이야기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즉흥 연기일세. 한지롱 학생. 지금 이 자리에서 기린을 연기할 수 있겠나?”

기린을 연기하라.

기린. 목이 긴 기린. 목을 쭉 뻗어 나뭇잎을 따먹는 기린. 난 그제야 선배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지롱 씨, 기린 좋아하세요?’

멍하니 있을 틈이 없었다. 난 온 힘을 다해서 몸을 길게 늘려 기린이 되었다.



***



“하아.”

기린 연기는 내 흑역사가 되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기린 흉내를 내던 내 모습이 떠올라 제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거지 같은 연기는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상처를 남긴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전과 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별 볼 일 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에서 그날의 기억은 강렬한 것이어서, 난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거나 기말고사를 치면서도 예고도 없이 멍해지기 일쑤였다. 논술형 시험지에 그날 못 읊은 독백 대사를 줄줄줄 쓰기도 했다.

아무리 국문학과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지만 그래도 과탑으로서 교수님들 볼 면목이 없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답안지를 던지듯 교탁에 올려놓고서 핸드폰으로 연기과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다.

아직 아무런 공지도 없었다.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하며, 기린 연기나 한 주제에 기대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기말고사 기간의 캠퍼스는 한가했다. 난 패딩 옷깃을 여미면서 밖으로 나가, 흡연 구역으로 정해져 있어서 담배 나무라고 불리는 곳 아래가 휑한 것을 보았다. 터덜터덜, 벤치에 앉았다. 길을 등지고 건물을 향했다. 나무도 앙상하고 기분도 울적하니, 누구와 마주쳐서 인사할 기분도 아니었다.

툭툭, 담뱃갑을 털어서 한 개비 빼던 그때였다.

“한지롱 씨!”

목 뒤가 묵직했다. 난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질렀다. 깜짝 놀라는 것에 약한 난 한번 당하고 나면 간이 벌렁벌렁대서 한동안 진정도 안 됐다. 국문학도 중에 나한테 이 정도로 무례하게 구는 이가 있었단 말인가?

“하하하!”

뒤를 돌자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