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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결혼식을 2주 앞두고 지석이 죽었다.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졸음운전을 한 지석의 차가 중앙선을 넘으면서 마주 오던 차와 충돌 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된 것이었다.

그 사고로 지석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조수석에 타고 있었던 윤소는 크게 다쳤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둘만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준비하느라 지석은 거의 매일 밤 야근을 했다. 그날도 지석은 피로누적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았지만 윤소를 데리러 갔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차 안은 따뜻했고, 낮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조수석의 윤소는 이미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지석이 저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는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그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했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차체에 다리가 끼어 거의 부스러지다시피 한 윤소는 6개월 가까이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했다. 다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장기 손상도 꽤 심각했다.

윤소가 조금씩 의식을 찾기 시작할 무렵, 지석의 엄마인 영란이 매일같이 찾아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간호사들과 같은 병실 안 보호자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윤소는 매번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고, 아픈 몸 여기저기를 얻어맞으며 종잇장처럼 힘없이 나부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지석은 자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모자식간의 인연을 끊게 하면서까지 결혼을 하려고 했고 결국은 죽게 만들었다. 그가 피곤과 졸음과 싸우는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편하게 자고 있었다.

다 나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통제가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살아 있는 쪽이 훨씬 더 고통이었다.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천수만 번 생각했지만 따라 죽지도 못했다.

경찰을 불러 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다시는 지석을 만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얻어맞고 비난을 받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란이 처음으로 찾아왔던 날 이후, 윤소는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졌다.



남자 잡아먹은 재수 없는 여자.



그날의 사고로 네 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윤소, 한 명 뿐이었다.











1. 너를 찾아서











윤소의 하루는 꽃에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물을 주며 한 번씩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들에 쉽게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 그녀였지만 식물은 예외였다. 윤소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오직 식물에게만 쏟았다.

“오셨어요?”

시간을 들여 꽃에 물을 주고 커피콩을 갈고 있는데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신우가 들어왔다. 신우는 윤소가 일하는 카페의 바리스타로 세계 대회에서 몇 번이나 우승한 적이 있는 실력자였다. 덕분에 카페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윤소는 이곳에서 커피 외의 음료를 만들고, 꽃에 물을 주거나 청소 등의 잡다한 일을 했다. 서빙은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아주 작은, 신우의 배려 같은 거였다.

“아침 안 드셨죠?”

스포츠 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걸로 보아선 운동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신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소는 카야 잼을 바른 토스트를 한 쪽 건넸다.

“오늘은 어쩐지 비가 올 것 같네요. 날이 꾸물꾸물한 게.”

윤소가 내려 준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신우가 말했다.

겨울도 이제 막바지였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가 떠나고 맞은 몇 번째인가의 겨울.

윤소는 희미한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에, 비가 아닌 눈이 내리기를 바라본다.

지금도 가끔 그날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뒤집어진 차 안에서 이미 숨을 거둔 지석과 함께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몇 십 분간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윤소를 괴롭혔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 늘어진 손끝, 굳게 닫힌 두 눈.

몸을 압박해 오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이름만을 불렀다.



“지석 오빠, 제발 눈 좀 떠 봐. 오빠. 오빠, 제발…….”



밀물처럼 밀려드는 기억에 윤소가 흠칫 몸을 떨었다. 신우는 그런 윤소를 힐끔 보고는 토스트를 먹던 손을 탈탈 털었다.

“자, 이제 장사 준비해 볼까요?”

부러 크고 밝게 말하는 신우에, 정신을 차려본다. 윤소는 오늘 들어온 신선한 과일들을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 머신을 점검하는 동안 신우는 윤소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카페 앞에 버려진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신우는 아무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의 윤소는 차마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내버려 두면 금방이라도 눈 속에 스며들어 사라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카페 안으로 들였다. 창고를 정리해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주고 카페에서 일도 할 수 있게 도왔다.

함께 지낸 지도 벌써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신우는 윤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큰 사고를 당했었고, 그로 인해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다는 것 정도가 신우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신우는 그때의 결정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조금씩이나마 변해 가는 윤소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이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곁에 있고 싶었다.

딱 지금만큼만, 가끔 웃기도 하고 농담도 건네는 윤소를 지켜 주고 싶었다.



* * *



─승객 여러분, 저는 기장 김기태입니다.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저희 비행기는 곧 목적지인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현재 인천광역시의 날씨는 맑으며, 기온은 8도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해인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제가 떠나온 샌프란시스코와 크게 다르지 않아 아직까지는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 떠날 때만 해도 다시 돌아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해인은 다시 눈을 감고 3년 전 그날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한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약속이었다. 해인의 가족은 화목했지만 일이 바빠 자주 집을 비우곤 하는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가족끼리의 외식은 참 오랜만이라 모두 들떠 있었다. 집 안 전체에 퍼져 있던 행복한 기운이 유난히 선명했던 날이었다.

해인은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잠시 외출한 아버지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에 예약해 두었던 식당으로부터 확인 전화도 받았다. 예약 시간이 다가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대답을 듣고 방에 들어가 겉옷을 챙기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친구 민수로부터 온 전화였다.

“어, 민수야.”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붙인 채 해인이 코트를 꿰어 입으며 말했다.

─너 오늘 시간 좀 있냐?

휴대폰 너머의 민수가 다짜고짜 물어 왔다.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어 해인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고쳐 잡았다.

“저녁 약속 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아, 그래? 알겠어.

“무슨 일인데 그래?”

─아무 일도 아니야. 나중에 얘기할게. 그럼 끊는다.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불안하게 떨리던 목소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해인은 다시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딘데? 지금 갈게.”

─약속 있다며.

“너 보고 가면 되지. 어디야.”

민수가 불러 준 곳의 주소를 받아 적은 해인이 방을 나왔다.

“잠깐 친구 좀 보고 올게요.”

“지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바로 식당으로 갈게요.”

“왜, 친구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요.”

“꼭 지금 만나야 돼?”

어머니의 말투에서 아쉬움이 묻어나 해인은 잠시 망설였다. 해인의 망설임을 눈치챈 어머니는 더 이상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웃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너무 늦지 않게 와.”

“네, 그럴게요.”

집에서 나와 만난 민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담배를 몇 개비나 태우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진정이 된 듯 말문을 열었다.

“여자를 임신시켰어.”

“여자라니……. 누구? 은하 씨 말하는 거야?”

은하는 민수의 약혼녀로 두 사람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아니, 회사 후밴데 나도 모르겠어.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해인은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마음으로 물었다.

“은하가 알면 날 용서하지 않겠지.”

“…….”

“청첩장도 다 돌렸는데.”

“그래도 말해야 해. 힘들겠지만 그게 최선이야.”

“그래, 그래야겠지.”

긴 한숨을 뱉고서 민수가 덧붙였다.

“미안하다. 전화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지금 당장 누구한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어.”

“잘했어.”

“실망시켜서 면목이 없다.”

“그런 소리 마.”

“가. 다시 연락할게.”

“더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해.”

“가라니까. 괜찮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제겐 친구라서 해인은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해인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해인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예약 석 어디에도 가족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도, 벌써 식사를 끝마치고 갔다고 하기에도 둘 다 말이 되지 않았다.

직원에게 묻자 아직 오지 않았다고 전해 듣고 해인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해인은 뭔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안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 해인의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가 액정에 떠 있었다.

받고 싶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OO 병원입니다. 지금 가족분들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가 나서…….

해인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힘없이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