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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초식동물 앞의 포식자처럼 위압감을 주는 그의 얼굴은 제법 탁월한 균형미를 갖추고 있었다. 압도적인 그의 분위기로 인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스무 살의 반항적인 표정과 서른 살의 무게감이 섞여 있어선지 나이는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뭐야.”

그가 입을 다물고 있었음에도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퍽이나 공격적으로 들리는.

“어, 이, 인사를 드리려고요. 새로 온 알바생입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재빨리 카트를 잡아당겼다. 등으로 칼날 같은 눈길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며칠 더 겪어 본 창고의 남자는 무섭지 않았다. 무엇보다 건성으로 식자재를 실어 주는 것 같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희주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운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주야, 니는 안 무섭냐?”

안 여사가 속달거리며 물었을 때, 희주는 생긋 웃었다.

“무섭긴요. 은근히 자상하던걸요.”

“아이구, 다행이다. 다른 야들은 창고엘 안 가려 들어서 내가 고생했지 뭐야.”

안 여사는 멀리 있는 신 사장을 힐긋 본 뒤 말을 이었다.

“말이 없어서 그러지 삼촌이 나쁜 사람은 아니야. 사실은 그 양반이…….”

젊은 남자를 삼촌이라고 호칭했던 안 여사는 문득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을 삼켰다. 다시금 신 사장을 힐긋거리고는 속달거렸다.

“사장한테 들었을 테지만 여기 일은 밖에다 말하고 다니진 말거라.”

“예.”

희주에게 윤 여사도 계약을 하기 전에 그런 말을 했었다. 사는 집에 관해 바깥에 말을 퍼트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희주 또한 받은 은혜가 있어 그런지 신의를 지키려 애썼다.

“휴우, 사장 팔자도 참.”

안 여사는 신 사장을 보며 긴 한숨을 토했다. 안 여사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창고의 남자 직원은 신 사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자는 주방이나 홀로 들어오지 않은 채 오로지 창고에만 머물렀다.

식당을 나간 지 닷새째 되는 날의 하늘은 종일 흐렸다. 손발에 좁쌀처럼 돋아난 땀띠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까닭에 저녁 무렵엔 어지럽고 몸이 휘청거렸다. 신 사장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악착같이 감당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썰미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아파 보이네?”

“아녜요. 더워서 잠을 좀 못 자서요.”

애써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신 사장은 믿지 않는 듯했다.

“쉬엄쉬엄해라.”

퇴근 무렵에는 왁자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저 차 타고 가라.”

신 사장이 출입문 바깥의 승용차를 가리켰다.

“버스 타도 되는데요.”

사실 너무 견디기 힘겨워 식당을 벗어난 뒤엔 택시라도 불러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나마 금요일이어서 다행이다. 주말에 컨디션을 추스르면 월요일엔 다시 씩씩하게 출근할 수 있으리라.

“우리 아들이 지금 시내 나간다니 타고 가라.”

“아드님이…….”

아들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어서 타라.”

떠밀리다시피 차에 올라타고 보니, 창고의 남자가 운전대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거뭇거뭇한 수염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그가 신 사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희주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무심코 눈에 담은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묵묵히 전방을 주시하던 그가 휙 고개를 틀었다. 희주는 황망히 반대편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왜 이리 어지럽고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다. 빗물을 밀어 내는 와이퍼의 분주한 동작이 심장의 박동과 그 크기를 같이 했다. 문득 그가 집을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제가 사는 동네를 아세요?”

그는 전방을 주시한 채 고개를 까닥했다. 가는 동안 빗방울이 잦아들자, 와이퍼의 속도도 줄어들었다. 그가 음악을 틀었다. 투명한 피아노 선율이 차 안에 흐르자 신기하게도 가쁜 숨이 진정되었다.

그가 희주가 안고 있는 한약방 가방을 힐끗 보았다. 희주는 얼굴을 붉혔다. 가방에서부터 반찬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나 보다. 희주는 가방 입구를 최대한 막고는 배에 찰싹 붙였다. 그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운전대에만 집중했다. 그러고 보니 몸에서도 시큼한 냄새가 가득했다. 종일 땀을 흘리고 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사정을 다 알고 있을 텐데 나 혼자 왜 이리 신경이 쓰일까. 바보 같은 성격을 정말이지 바꾸고 싶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심장이 다시금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어지럼증도 심해져서 옆으로 눕고 싶었다. 참고 또 참았더니 이번에 기어이 구역질이 터져 나오려 했다. 창을 열면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았지만 빗물이 들어오게 할 순 없었다. 여느 때보다 일찍 어두워진 거리를 살피며 익숙한 풍경이 빨리 나오길 기도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을 즈음 예전에 살았던 도심으로 진입했다. 바깥 공기가 시급했다. 머리를 식힌 후 택시를 타면 될 터였다.

“여기서 내려 주세요.”

태연한 척 말을 쥐어짰다. 그가 속도를 줄이며 힐끔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괜찮아?”

“뭐, 뭐가요.”

“안색이.”

“괜찮…… 어서 내려 주세요.”

그가 다시금 찡그리며 차를 세웠다. 서둘러 차 문을 여는 희주에게 우산을 쥐여 주었다.

“괜찮은데…….”

“사장님이 준 거야.”

그가 우산을 도로 집어넣는 게 귀찮은 양 팔랑팔랑 팔을 저으며 떠밀었다.

“고맙습니다.”

희주는 힘겹게 인사를 건네고는 우산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오래 걷지는 못했다. 우산을 놓치며 풀썩 스러지는 와중에도 집에서 기다리는 진우가 떠올라 이를 악물었다. 쓴물을 토해 내고 심호흡을 했더니 머리가 가벼워졌다. 일어났다가 다시금 비틀거렸다. 그때 휘뚝거리는 몸을 누군가 불쑥 받치더니 그대로 안아 들었다.

“괜찮기는! 제기랄!”

그는 희주의 이마에 우직한 손바닥을 대 보고는 투덜거렸다.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는 공포감과 부끄러움이 바삐 다투었다.

“괜찮…… 내려…….”

말을 뱉은 기운도 모아지지 않았다.

“가만있어!”

성난 그의 외침이 또 하나의 오싹한 한기를 보탰다. 그는 희주를 안은 채 빗길을 가르며 지척의 병원을 향해 달렸다. 아파서 흘린 눈물과 빗물이 시야를 덧씌워서 모든 사물이 물에 잠긴 듯 흔들렸다. 한순간 하늘로 붕 떠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밀착된 그의 가슴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고, 지척에서 들려오는 그의 숨결에서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정신을 놓지 않고자 안간힘을 쏟으며 그에게 몸을 맡겼더니 어느덧 응급실 침상에 누워 있었다.

“다 젖었잖아. 옷부터 갈아입자고.”

돌아선 채 짜증스레 환자복을 건네주는 그의 도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온열 질환의 일종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링거를 맞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다. 시종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에게 몇 가지 바람을 간곡히 웅얼거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응급실이 아닌 1인실 병실이었다. 침대 옆에 마련된 의자에는 희멀건 피부에 살짝 마르고 키가 큰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과 주름이 잡힌 이마와 큼직하고 맑은 눈동자, 그리고 오뚝 솟은 콧등이 꽤나 이국적인 느낌의 남자였다. 그리고 어쩐지 낯이 익었다. 두리번거리는 희주를 향해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재하는 일이 있어서 갔어.”

갸름한 외모만큼이나 맑은 목소리였다.

“재하…….”

“응. 박재하가 학생을 병원에 데려왔잖아?”

식당에선 ‘삼촌’으로 통하던 남자의 이름을 비로소 알았다. 희주는 잠시 기억을 정리해 보고는 눈앞의 남자를 향해 물었다.

“누구신데…….”

“난 재하 친구, 하주원이야. 카페에서 재하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를 여기로 변경하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신경 쓰지 마. 덕분에 재하가 착한 일 했잖아.”

번쩍 안아 들며 투덜거리던 재하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귀찮은 일에 엮였다는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 모습이 야속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신세를 졌다. 희주는 머리맡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과연 진우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진우와 통화를 한 듯 보였다. 주원이 설명했다.

“동생한테 전화 왔었어. 좀 늦는다고 하고 안심시켰어.”

“아, 네. 고맙습니다. 근데 의사샘은 뭐라 말씀하세요?”

“응. 탈수 증상 외엔 빈혈이 좀 있을 뿐 크게 이상한 곳은 없다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 다행이네요, 다행이다.”

희주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주원의 선한 눈매가 희주의 긴장을 한층 풀어 주었다. 과연 살짝 몸을 일으켜 보았더니 어지럼증은 가신 것 같았다. 물론 말할 기운도 회복되었다. 주원에게 아직 3분의 1이 남은 링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만 맞아도 될 것 같은데요.”

“다 맞아야 해.”

“꼭 그래야 할까요?”

“그걸 감시하려고 내가 지키고 있는 거잖아.”

주원의 웃음은 매혹적일 만큼 요염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고질적인 낯가림 증세가 발동하지 않아서 희주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내 걱정이 밀려왔다.

“재하…… 삼촌은 언제 오시나요?”

“안 올 수도 있어.”

“어, 꼭 부탁할 게 있는데.”

잠이 들기 전에 웅얼웅얼 건넸던 부탁을 그가 확실히 들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부탁할 거 있으면 나한테 해. 집까진 내가 태워다 줄게.”

“아니에요. 가까우니 혼자 갈 수 있어요.”

“내가 안 괜찮아. 재하를 대신해 널 책임져야 해.”

“어, 재하 삼촌은 책임질 일 없는데요. 제가 도리어 신세만…….”

“재하네 가게 직원이잖아. 학생이 잘못되면 재하 어머닌 악덕 업주가 되겠지?”

“아녜요.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요.”

“그렇지. 참 좋은 분이시지.”

“전 거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간절함을 읽었는지 주원의 눈빛에 연민이 걸렸다.

“으음. 재하한테 부탁할 게 있다는 게 혹시…….”

“예, 사장님껜 제가 아팠던 일 비밀로 해 주셔야 되거든요. 진짜 평소엔 엄청 튼튼하거든요.”

“으음.”

그가 손으로 턱을 괸 채 희주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좋아. 내가 돕지.”

그의 흔쾌한 대답에 희주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훤칠한 외모의 남성이 여성적인 부드러운 매력을 갖춘 탓일까. 짧은 시간에 이렇듯 편하고 포근한 사람은 일찍이 만난 적이 없었다. 문득 땀과 빗물로 절어 악취가 날 것 같은 몸이 신경이 쓰였다. 종일 장화를 신어서 꿉꿉한 발 냄새도. 그런데 가려움증으로 애를 먹이던 발이 이상하게 시원했다. 맙소사. 양말이 벗겨져 있었다.

주원이 휴대폰을 들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떡 일어나 담요를 들추고는 양쪽 발을 살폈다. 종아리부터 발가락까지 투명하게 어떤 약이 발라져 있었다. 곰곰이 살폈더니 약을 바르기 전에 깨끗하게 씻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굴까. 어림해 보는 와중에 침상 밑으로 놓인 가방에서 반찬 냄새가 올라왔다. 재하는 그 와중에 반찬 가방도 착실히 챙겨 놓은 듯했다. 고마웠던 마음이 문득 자괴감으로 돌변했다. 왜 이리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사는 것일까.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주원은 링거를 다 맞을 때까지 병실을 지켰다. 그러고는 기어이 집까지 태우고 가겠다며 버텼다.

“같은 집인데 뭘.”

“예?”

“이름이 오희주 맞지?”

희주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계약서 봤어. 앞으로 잘 지내 봐. 난 재하 친구이면서 학생 집 주인이기도 해.”

“아! 군대 가셨다던.”

과연 그의 얼굴에서 윤 여사의 모습이 엿보였다.

“어제 제대했어.”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인연의 고리들을 가늠해 보며 병원을 나선 희주는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그의 차에 올라탔다. 일단은 집주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와이퍼의 움직임을 바라보자니 엉뚱하게도 한 가지를 당장 묻고 싶었다.

혹시 제 발을 닦아 주셨어요?

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다.



* * *




집에 들러 진우의 잔소리를 감당한 뒤 샤워를 했다. 발코니로 나갔더니 아래층에서 불빛이 새 나오고 있었다. 정원 모서리의 어둠을 도려낸 오렌지색 불빛으로 투명한 빗방울이 그어져 내렸다. 한껏 무성한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를 두드려 대는 빗소리가 여느 음악 못잖게 달달했다. 고층아파트에선 들을 수 없었기에 소중한 소리이기도 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빨리 자야 한다는 부담감과 빗소리를 더 듣고 싶은 욕심을 저울질하다가 발코니 문을 활짝 열어 두고 거실에 누웠다.

살 속 깊이 잦아드는 한기에 깨어났다. 발코니 안쪽 문을 닫으려는 순간 번쩍, 번개가 내리꽂혔다. 천둥소리가 이어지더니 거친 빗물이 쏟아졌다. 재빨리 문을 마저 닫으려다가 아래층의 불빛이 보여서 멈칫했다. 아직까지 안 자고 무얼 하실까? 희주는 문득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히 노랫소리였다. 그것도 귀에 익은 헨델의 ‘라르고’였다.

노래는 소란스러운 빗소리를 뚫고 희주의 귓불로, 가슴으로 감미롭게 날아들었다. 빗방울은 여전히 사방의 다른 소리들을 삼키는 중이다. 지금의 노래는 결코 멀리서 날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도 아니었다. 아래층 발코니 앞으로 서면 플라타너스 숲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보일 터였다. 순간 윤 여사의 집에서 설핏 보았던 가족사진 속의 청년과 방음부스, 성악가인 큰딸, 그리고 오래전 새벽녘에 들었던 아름다운 노래 등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아, 그분이 바로 이분이셨어!”

집중할수록 빗소리는 걸러지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만 마음 깊이 스미었다. 노래가 끝난 지 한참 뒤에야 희주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감동을 주는 노래에 더해 가장 힘들었던 날에 위로를 주었던 노래의 주인공을 찾아냈다는 희열로 몸이 떨렸다.

병원 신세를 질 만큼 지친 상태에서 잠까지 설쳤는데도 도리어 몸이 가볍고 머리는 맑았다. 드문드문 갈색으로 번져 가던 널찍한 플라타너스 이파리는 모처럼 비 온 뒤 맑게 갠 햇살 아래 싱그럽게 흔들렸고, 노래로 정화된 희주의 마음은 공연히 들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