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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염기 1권(25화)
第九章 만남은 이별을 낳고(5)
한령마검과 순찰각주는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인면마의의 뒤로 신형을 옮겼다. 데려온 수하들이 대부분 죽거나 중상을 입은 탓에 그들이 의지할 곳은 인면마의뿐이었기 때문이리라.
한편, 천 노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산공분의 작용에 내심 당황할 지경이었다. 한곳으로 독기를 모아 배출해 보려 시도했지만, 산공분에 닿은 내력이 바람에 흩어지는 안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서둘러야겠군.’
그러나 천 노인은 손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혈궁에서 왔느냐?”
“그렇소.”
“그렇다면, 한 놈은 살려 둬야겠군.”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력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의 양손에 검은 불꽃이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에 인면마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로 수십 명의 흑영들이 손에 원통을 하나씩 들고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 노인을 겨냥하였다.
한눈에도 암기를 쏘아 낼 것이 분명한 원통을 본 천 노인이 이마를 찌푸렸다.
“별의별 것을 다 동원하는군.”
“선배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하지 않겠소?”
“건방진 놈. 누가 네놈의 선배란 말이냐.”
끌어올린 진기(眞氣)가 흡입한 산공분의 영향으로 조금씩 흩어지는 것을 느낀 천 노인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쉽지 않겠군.’
차가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 천 노인이 별안간 신형을 날려 인면마의에게 다가왔다.
“차앗.”
슈악―
인면마의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가볍게 신형을 뒤로 날리며 소매를 떨쳤다. 그의 소맷자락에서 붉고 푸른 독분이 다가오는 묵염무영마를 향해 뿜어졌다.
“탓.”
파라라락.
천 노인은 이미 산공분을 경험한 탓에 뿌려진 독분을 경시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산형비뢰보(散形飛雷步)를 펼쳤다. 그러자 그의 신형은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부드럽게 방향을 바꾸더니 아래로 뚝 떨어졌다. 바닥에 착지한 천 노인이 소매를 신경질적으로 그리고 거칠게 떨쳤다.
펄럭.
휘이잉―
천 노인의 소매에서 떨친 강맹한 바람이 날아오던 독분을 허공에 분분히 흩어 버렸다. 그러나 그 틈을 이용해 멀찌감치 몸을 날린 인면마의를 놓쳤다.
‘쩝. 쥐새끼 같은 놈…….’
거리를 벌린 인면마의가 원통을 든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발사!”
원통을 겨눈 흑영들이 천 노인에게 일제히 격발했다.
펑― 펑― 펑―
슈슈슉.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원통에서 날카로운 침들이 검은깨 뿌린 듯 허공을 가득 채우며 쏘아졌다. 그 모습을 본 인면마의의 입가에 희미한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한 대만 허용해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극독이 발린 침첨(針尖)이 시리게 파르스름한 빛을 머금은 채 쇄도했다. 붉은 날개가 달린 침은 장풍을 거슬러 오르도록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호신강기(護身|氣)를 뚫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아무리 묵염무영마라 할지라도 하늘을 뒤덮은 저 많은 침을 전부 막아 낼 수 없으리라.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아오는 암기를 바라보던 천 노인은 대붕이 날개를 펴듯 양팔을 활짝 펴 부드럽게 휘저었다. 그의 동작은 부드러웠으나 반응하는 주변의 기운은 맹렬하게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바닥에 깔렸던 해묵은 낙엽들이 휘감아 도는 기운에 솟구치더니 으스러져 가루로 변한 채 허공으로 비산했다.
인면마의는 놀람에 눈이 커졌다. 날아간 암기들도 용오름 치는 기운에 휩쓸려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장풍으로 막는 것을 방지하려 만든 날개가 도리어 휘감아 도는 기운에 쉽게 휩쓸리게 한 것이었다.
‘저, 저런…….’
그러나 인면마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불행하게도 천 노인의 진기가 산공분의 방해로 일순 끊어졌고, 그 짧은 틈을 파고든 하나의 침이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윽.’
천 노인은 순식간에 잠식해 오는 지독한 독기를 느끼며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적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기세를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경륜이 뛰어난 인면마의조차 천 노인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투두둑. 툭. 툭.
마지막 침 하나까지 바닥에 떨어지자 천 노인의 몸을 휘감아 돌던 기운이 바람에 흩어졌다.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묵염무영마의 기세에 인면마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비책까지 사용했음에도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한 자신으로서는 더 쓸 수단도 없었다. 그런데 묵염무영마는 산공독마저 극복한 듯 보이지 않는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노려보는 상대의 모습에 한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무위를 보아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리라. 상대할 방법을 생각하려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인면마의는 몰려드는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순찰각주, 합공하세. 그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우리가 모두 합공하면,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걸세.”
상대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순찰각주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인면마의는 한령마검에게 전음을 날렸다.
“가기야, 순찰각주가 공격하면, 재빨리 도망쳐라. 지금 우리로서는 그의 상대가 아니다.”
“네, 사부님.”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인면마의는 원통을 든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공격해라. 공격!”
“존명.”
그의 명을 받은 한 흑영이 수하들에게 다시 전달하였다.
“공격.”
원통을 바닥에 버린 흑영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들의 뒤로 순찰각주가 몸을 날렸다. 그러나 수하들을 자신들의 도주를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한 인면마의는 한령마검과 함께 은밀하고 신속하게 신형을 뽑아 올렸다. 물론 수하들과 반대 방향으로.
천 노인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비겁한 의도를 읽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도 막을 수는 없었다. 평소라면, 충분히 피라미들을 쉽게 피하며 놈들을 잡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산공분이 자신의 몸을 완전히 잠식하기 전에 놈들을 모두 처리해야만 했다. 시간이 빠듯했던 천 노인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천 노인의 안광이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뽑아 든 안시도에서 천하 무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흉험한 검은 불꽃이 이글거렸다.
“차앗.”
흑의인들이 지척에 다가오자 천 노인의 안시도가 거칠게 허공을 베어 갔다.
화르르.
성둥.
“크악.”
그의 도를 막지 못한 흑영의 목이 허무하게 잘렸다. 붉은 피가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쳤다.
쨍강.
“헉.”
그의 도를 막은 병장기는 두부처럼 잘렸다. 병장기의 주인은 놀람에 헛숨을 들이키며 서둘러 몸을 피했다. 그는 행운이었다. 비록 그 행운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쨍강.
서걱.
“큭.”
그의 도가 검과 가슴을 동시에 갈랐다. 불운한 흑의인은 화끈한 통증을 마지막 기억으로 생을 마감했다. 벌어진 그의 가슴에서 붉은 선지피가 울컥울컥 뿜어졌다.
일방적인 도살이 펼쳐졌다. 천 노인은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더할 수 없이 빨랐다. 그의 움직임이 점차 흐름을 타기 시작하자 그의 도는 눈이라도 달렸는지 흑의인들의 병장기를 피하며 피를 탐했다.
서걱.
“으악.”
살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비명만이 가득했다. 흑의인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했다. 실지로 상대의 신형을 눈으로 쫓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크아악.”
천 노인의 안시도가 지나가는 궤적에 걸린 모든 것을 순식간에 동강 냈다. 눈이 달린 그의 도를 막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불꽃을 향해 뛰어든 하루살이같이 불운한 흑영들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댕겅.
서걱.
“으악.”
몸을 사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순찰각주는 묵염무영마의 전설이 진실임을 절감했다.
‘상, 상대가 안 된다.’
수하들이 모두 당하면 자신의 목숨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살아남은 흑영들을 독려하며 이리저리 몸을 날리면서도 자신은 절대 묵염무영마의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한꺼번에 덤벼라.”
“몸을 사리면, 모두 죽는다. 공격.”
서걱.
“크아악.”
소용이 없었다. 온몸을 땀으로 목욕한 순찰각주는 문득 인면마의의 움직임이 없음을 느꼈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인면마의뿐 아니라 한령마검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어렵지 않게 상황을 짐작한 순찰각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죽일 놈들.’
서걱.
“으악.”
용을 쓰며 수하들을 닦달하던 순찰각주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수십의 흑영이 토막 난 것은 불과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남은 순찰각주는 이를 악물고 묵염무영마와 마주 섰다. 검을 든 그의 손이 저절로 떨렸다. 평소에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경지가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진 그는 결국 떨리는 음성을 흘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천 노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잠시 상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렇게 살고 싶으냐?”
천 노인의 음성에서 생로라도 찾은 듯 순찰각주가 다급히 대답했다.
“네, 네. 살고 싶습니다.”
천 노인이 싸늘한 음성을 흘렸다.
“네놈들의 본거지가 어디냐?”
애절한 표정을 짓던 순찰각주가 천 노인의 질문에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것은…….”
도를 허공에 거칠게 그어 묻은 피를 털어 낸 천 노인이 두려운 미소를 지었다.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천 노인의 도가 보이지 않는 빠르기로 허공과 순찰각주를 베었다.
서걱.
“으악.”
마지막 남은 순찰각주가 세로로 양단되어 피분수를 뿌렸다. 그의 몸이 결국 바닥에 무너짐으로 마무리된 싸움터에 두 다리로 굳건히 선 이는 천 노인이 유일했다. 그의 주변에 신음 한 줄기조차도 흐르지 않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절명한 것이리라. 지옥의 진정한 모습이 이럴까? 잘린 시체들과 아직도 김이 피어오르는 붉은 피가 가득한 주변은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순식간에 수십의 목숨을 빼앗은 천 노인의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하얗게 탈색된 안색이며 입가에 흐른 한 줄기 핏줄기가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그가 순찰각주를 더 닦달하지 않고 단호하게 손을 쓴 것은 자신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다. 더 있으면, 내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몰랐다.
수장으로 보이던 놈이 도망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심장에 머물던 독기와 아까 당한 독기가 상승 작용이라도 하는지 따가운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놈들을 추격할 수는 없었다.
‘놈. 내 기어이…….’
다시 이를 으드득 간 천 노인이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멀어지는 그의 신형이 잠깐 휘청거렸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몸을 옮긴 천 노인은 주변을 살피다 작은 동굴을 발견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안이 깨끗하고 산짐승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인 없는 동굴이었다.
‘이곳에서 독기를 제거해야겠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원공진심법(天元空振心法)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천원공진심법은 내력과 주변지기를 동시에 운용하는 놀라운 심법이었다. 운기를 시작한 천 노인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서서히 꿈틀거렸다.
운기를 통해 독기를 몰아내려던 천 노인은 기맥을 흐르는 독기가 거세게 반항하자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심장에 자리한 효로의 독기도 제독(制毒)하려는 그의 시도에 위협이라도 느낀 것인지 강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계속 무리하게 밀고 나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천 노인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함부로 독을 몰아내지도 못하겠군.’
천 노인은 조심스럽게 독기를 다독이며 몸의 한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당장 제독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잔소리를 들으며 다시 초목성수의 도움을 얻어야 하리라. 손자에게 위해를 끼친 놈들을 잡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서둘러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젠장. 그냥 돌아가야겠다.’
운기를 마친 천 노인은 몸을 일으켜 손자가 있는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미안하다. 내 나중에 반드시 놈들을 찾으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놈들에게 복수를 하리라. 천 노인은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