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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미남입니다

(3화)



접시에 연어를 차곡차곡 쌓고 있자니, 재필이 다가와 피식거렸다.

“뭐! 왜!”

“서재형은 참 일관되게 촌스럽구나 싶어서.”

“신경 꺼.”

“풀떼기 좀 데코해서 들고 가. 다른 여자들은 알록달록 예쁘게도 담아 가는구만.”

재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스시 쪽으로 향했다. 졸업 기념 외식 장소로 해산물뷔페를 고집한 사람이 바로 재형이었다. 단순했다. 재형은 가장 좋아하는 연어를 비롯해 물에서 나온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재필이 설렁설렁 따라갔다.

“근데…….”

“뭐! 왜!”

“우해강이 찾아갔었다며.”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쯤은 재형도 알고 있었다. 평소 학교생활에 대해 재형과 가타부타 말을 섞지 않는 재필이기는 해도, 분명 한마디쯤은 해 올 거라고 이미 예상한 터였다.

“그래서 뭐.”

“우해강 매너 좋은 거야 원래부터 익히 아는 바지만, 그렇게 배려심까지 깊은 자식인 줄은 미처 몰랐거든.”

“뭐래.”

“그렇잖아. 한창 학교 다닐 때 그랬어 봐. 너 나이트 멤버들한테 머리털 다 쥐어뜯겼어.”

<나이트>, 그러니까 는 <기하고등학교>에 존재하는 퀸 우해강의 팬클럽 이름이었다. 여왕을 지키는 기사 집단, 뭐 그런 의미였는데, 여왕이 남자고 기사가 여자라는 게 역설적이기는 했다. 해강이 졸업했으니 곧 해체될 게 뻔했다.

어쨌거나 맞는 말이었다. 일찍이 4대 천왕과 얽혀서 좋게 끝난 경우가 없었다. 여자아이들이 네 명을 대상으로 갖은 팬픽을 만들어 내면서, 그 누구도 개별적인 접근을 용납지 않은 때문이었다.

한동안 홍일점인 강신 강우연이 셋 중 하나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추측과 의심이 떠돌았던 적이 있기는 했다. 대장 민주한이 우연을 은근히 챙긴다는 소문이 나돌면서였다. 하지만 그 ‘챙김’의 수준이란 것이 이상한 거머리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주변 정리를 해 주는 정도였던 데다, 당사자인 우연이 언제나 음악실에 홀로 틀어박혀 있던 관계로 곧 수그러들고야 말았다.

아무튼 네 사람은 사사로이 어울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각자의 개성이 유난히 강하기도 했고, 재필을 제외한 세 사람은 같은 문과였음에도 모두 반이 달라서였다. 학교에서 손을 쓴 것이었으리라. 아울러 그 가진 특성에 따라 나름대로의 팬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극성스러운 집단이 바로 <나이트>였다.

“난 남의 손엔 안 죽어. 내가 알아서 죽으면 몰라도.”

재필의 얼굴에 실금이 그어졌다. 재형이 죽음의 문턱에 걸려 헛소리하던 밤, 아버지와 엄마가 울지도 못하고 하얗게 굳어 있던 밤, 어쩐지 자신의 심장도 찢어질 듯 아팠던 밤, 그 밤에 들었던 그 말. 죽어도 잊지 못할 그 말. 어린 가슴을 난도질했던 그 말.

‘배 속에 있을 때 오빠가 다 뺏어 먹어서 동생이 그런가 보다. 괴롭히지 말고 좀 나눠 주지 그랬니. 혹시 살아나면…….’

하지만 재형은 흐뭇한 표정으로 참치 뱃살이 덮인 스시를 골라 담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재필은 서둘러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다.

“서재형.”

“뭐! 왜!”

“우해강이 왜 그랬는지 알아봐 줘?”

“3년 내내 말 한 번 안 섞어 본 사인 거 뻔히 아는데 뭘 어떻게 알아 온다고.”

“현기 있잖아.”

“지금껏 없었던 말을 새삼 만들어 준다고? 송현기가? 그 녀석 입 무거운 거는 본인이 더 잘 알면서 뭐래.”

재필이 재형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뭐, 그거 말고 방법 없을까 봐서?”

“됐네요. 사내자식들 장난에 장단 맞춰 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장난 아니면 어쩌려고.”

“그럼 더 못 맞춰 주지. 나한테 관심은 아닐 거고, 무슨 속셈인지 알 게 뭐야.”

“서재형이 어디가 어때서.”

“갑자기 우애 돋는 소리 하시네. 냉철하시고 객관적이신 서재필 님께서.”

“진심인데.”

재형이 한참 스시를 말고 있는 요리사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러곤 재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뭣보다 중요한 건…….”

“서재형은 잘생기고 똑똑한 것들을 싫어한다는 거지. 나 서재필을 포함해서.”

“잘 아네. 입 아프게 여러 말 시키지 마.”

재형과 재필은 거기서 입씨름을 중단하고 얌전히 테이블로 향했다. 둘에게는 무언의 철칙이 있었다. 부모님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부모님을 울릴 일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재형과 재필의 부모님, 그러니까 <서정약국>의 서장군 약사와 정미인 약사는 재형이 병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평생에 흘려야 할 눈물을 몰아서 다 흘린 이들이었다. 재형이 재필과 처음으로 몸싸움을 벌인 날, 동시에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던 두 사람은 그 시각 이후 적어도 겉으로는 울지 않았다. 물론 미인은 여전히 재형이 기침만 해도 놀라는 엄마였고, 장군 또한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 재형이 곤히 자는 모습을 확인해야만 하는 아빠였지만 말이다.

재필이 재형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우해강. 흠…… 행동 개시인 거냐?’

그럴 만했다. 재형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재필은 재형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놓은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당부가 있기도 했고, 재필 스스로도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재형의 주변에서 번번이 해강이 발견되었다. 재형을 맴돌고 있음이 확실했다. 나중에는 재형의 기분에 따라 해강의 기분이 널을 뛴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너무도 은밀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재필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기가 재필에게 물어 오는 것들 중에 재형에 관한 질문들이 제법 많았다. 처음에는 현기가 재형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았다. 현기가 <알타이르> 부원이라는 사실이 그 뒷받침을 했다. 하지만 현기는 파일럿과 전투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현기 또한 하늘이 좋아서 <알타이르>에 들어갔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뻔했다. 해강과 중학교 적부터 절친이었다는 현기가 해강을 위해 스파이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흐뭇하기도 했다. 열혈 팬덤까지 거느린 잘난 녀석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동생에게 꽂혔다는데, 그게 싫을 리 없었다. 그래서 모른 척했다. 해강이 재형에게 딱히 해가 될 만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관찰해 본 결과 너무 잘생겨서 탈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썩 괜찮은 녀석이라는 것이 나름의 평가였다. 하지만 그건 ‘썩 괜찮은 녀석이긴 한데 너무 잘생겨서 탈’로 바꿔 말할 수도 있는 거였다. 사실 말이지, 정말 탈이기는 했다.

‘쓸데없이 너무 잘생겼지. 사내자식 별명이 퀸이 뭐야, 퀸이. 그렇게까지 잘생길 필요가 뭐 있어? 무난한 거 좋아하는 서재형이 진저리 치지 않을 수가 없는 조건인 건 맞지.’

재필의 시선을 느낀 재형이 왼손을 움찔하더니 혀를 내밀며 ‘메롱’ 했다. 재필이 픽, 했다. 둘만 있었다면 가운뎃손가락이 하늘을 찌를 타임이었던 것이다.

‘뭐. 일단은 굿이나 보고. 맛난 떡도 먹어 주고. 판을 엎을지 말지는 나중에.’



*



그 시간, 해강은 아버지 한진과 대작 중이었다. 싱글몰트위스키를 꺼내 드는 한진을 보고 양숙 여사가 조그맣게 잘라 담아 준 연어 안주와 함께였다. 명절이나 해강 엄마의 기일이면 부자 사이에 소소한 술자리가 만들어지곤 했지만, 그럴 때 아니고는 처음이었다.

“달라질 일은 없는 거냐?”

“네.”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라는 것쯤은 한진도 잘 아는 바였다. 해강이 단 한 번도 재형을 놓은 적이 없다는 것은 한진뿐만 아니라 해강의 친가와 외가에서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서재형’이라는 아이는 해강의 친인척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였던 것이다.

그래도 한진은 기회가 있을 적마다 확인해 두고 싶었다. 청춘의 변덕은 상식과 합리를 벗어날 때가 많은 법이니까. 아들인 해강도 소중했지만, 한진에겐 재형도 그 못지않게 귀한 사람이었다. 가만히 잘 살고 있는 재형을 해강이 들쑤셔 문제를 일으키는 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