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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증상입니다

(3화)



해철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다열을 흘깃하고는 긴장한 얼굴로 우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해철아. 쟤 때린 게 너니?”

“네? 아…… 저 자식이 너무 까불어서.”

“그랬구나.”

우연이 일동에게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그 모습에 다열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닌자를 떠올렸다. 등에 칼을 엑스 자로 걸고 표창을 던지며 날아다니는 검은 옷, 긴 흑발의 여자 닌자. 그런데 그 허황되고 생뚱맞은 생각을 다열 혼자만 한 건 아닌가 보았다. 해철의 어깨가 움찔하는 게 다열의 눈에 들어왔다.

“해철아. 내가 두 가지를 얘기할 건데 들어 줄 거니?”

“어어…… 네.”

“먼저. 해철이 너, 나 고아라는 거 알고 있지?”

해철은 대답을 머뭇거렸고 다열은 꽤 놀랐다. 모르는 이야기였다. 하긴 우연과는 늘 노래에 대해서만 말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어느 친절하신 분 댁에 얹혀산다는 것도 알고 있지?”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긍정의 침묵이었다. 다 아니까 조용한 것이리라.

“그래서 난 하루빨리 돈을 벌 생각이거든. 그래야 은혜도 갚고 나도 당당하게 살고. 그런데 해철아.”

다열의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목소리에 깨진 유리라도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네가 까분다고 때린 쟤가 내 돈벌이 밑천이었어. 내가 쟤를 이용해서 돈을 벌 생각이었다고.”

무리들로부터 흡, 허, 흑, 같은 여러 감탄사들이 숨죽여 튀어나왔다.

“그런데 해철이 네가 내 밑천에 흠집을 냈네? 그래서 내가 지금 대단히 속상해.”

해철의 등이 뻣뻣하게 굳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 난 네가 주먹을 쓰긴 해도 신사인 줄 알았거든. 그래서 난 네가 무섭지 않았어. 내가 널 피한 적이 있었니?”

해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열은 그때부터 아예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선 돌아가는 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말라깽이 여자아이 하나한테 휘둘리고 선 사내아이들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네 행동은 뭐랄까, 너무 깡패 같았어. 그래서 실망스러워. 참 안타까운 일이야.”

우연은 정말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해철아. 난 너를 언제까지나 신사로 기억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부탁하자. 내 밑천 건드리지 말아 줬으면 해. 그래 줄 수 있겠니?”

해철이 천천히 고개를 두 번 끄덕였고, 해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리들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여 댔다. 우연이 말했다.

“고맙네.”

우연이 반듯한 걸음으로 다열에게 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다친 데는?”

다열이 고개를 저으며 우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다른 경우였다면 ‘나 혼자 일어날 수 있어. 손 치워.’ 했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냉큼 잡은 것이다. 우연이 손을 잡은 채로 다열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주욱 살폈다. 그러곤 손을 놓았다.

“가자.”

패거리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우연을 따라 교실로 돌아가며 다열은 생각했다.

‘저거 봐, 저거 봐. 간 빼놓고 다니는 거 맞네.’

어쨌거나 그날 이후, 다열은 그 누구에게서도 간섭받지 않고 학창 시절을 지낼 수 있었다. 해철이 졸업한 후 짱 자리를 물려받은 건혁도 다열을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다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훗날, 우연을 한참이나 더 겪고서야 다열은 비로소 납득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내아이들의 반응이 일종의 ‘경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의 후원으로 공부와 생활을 이어 가는 고아이면서, 그 사실을 애써 숨기거나 연민의 도구로 쓰지 않는 초연함과 당당함, 게다가 어여쁜 데다가 머리마저 좋으니 그들로서도 ‘언터처블’이었던 것이다. 하물며 해철은 우연을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우연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해철인 나를 좋아했어. 당연히 나를 해칠 리가 없지. 그 정도는 파악했으니까 움직인 거야. 무기는 결코 남이 쥐여 주지 않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지는 거야.’



*



학교를 마치면 다열은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은 우연을 키워 주고 있는 분의 아들, 오영휘가 다양한 용도로 쓰고 있는 주택의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주택은 여러모로 독특한 공간이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노후 주택을 리모델링했다는데, 지하는 소극장, 1층은 전시장 겸 플라워카페, 2층은 연습실과 녹음실, 그리고 3층은 사무실과 회의실, 그야말로 어디 한 군데 빈틈이라곤 없이 꽉꽉 들어찬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인 영휘도 주택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이었다. 문화 예술 사업 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30대 중반의 남자로, 옛날에 태어났다면 한량으로 평생을 살았을 인물이었다. 인상도 좋고 넉살도 좋고 요령도 좋고 인심도 좋고 배포도 좋고, 심지어 먹성도 좋았다. 상대방이 무장 해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꽤 신경질적이고 까탈스러운 다열조차도 영휘와 있을 땐 모든 걸 다 잊고 제 나이에 맞게 굴고는 했다.

“저, 아저씨. 연습하는 거 구경 좀 오지 마세요.”

“이렇게 아늑한 데서 쫓겨나고 싶냐? 구립 놀이터 그늘, 지하 보일러실 구석, 옥상 물탱크 옆, 그런 데서 연습하고 싶어? 그리고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나 아저씨 아니고, 형. 리피트 애프터 미, 형.”

“그런 후진 발음으로 영어 쓰는 건 범죄예요, 아저씨.”

“내가 너한테 관심이 얼마나 많은데 자꾸 땍땍거려. 좀 상냥하게 굴어 봐. 플리즈, 카인드 투 미, 열.”

다열이 진심으로 진저리를 쳤다.

“아, 열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징그러워요.”

“열아. 내가 말이다. 국산 노래를 거의 안 들었거든. 요즘 노래에는 최백호 님의 ‘낭만에 대하여’ 같은 그런 낭만이 없어서 말이지. 근데 열이 네 목소리 말이야. 뭔가 막. 이렇게 막. 어? 막.”

영휘의 어깨와 두 손이 엇박자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막 그렇게 땡기는 게 있단 거거든.”

“아, 뭐래요. 아저씨는 하는 행동이며 말이며 하나같이 다 저렴해요.”

“물론 노래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긴 한데.”

“그건 뭐, 우연 선배한테 다 생각이 있겠죠. 일단 아저씨는 좀 가요. 방해되니까.”

“야. 너 가수 되면 엄청스럽게 많은 사람 앞에서도 불러야 해. 나는 껌이어야지.”

“아저씨처럼 이상 망측한 껌 필요 없으니까, 가세요.”

“에이, 그러면 내가 가슴 아프지. 난 열이랑 끈적거리면서 질척거리는 돈독한 사이가 되고 싶은데.”

“아우, 소름 끼쳐요.”

그렇게 실랑이하다 보면 우연이 자율 학습을 마치고 들렀다. 그럼 영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심각 모드로 바꾸고 연습실을 빠져나갔고, 다열은 다열대로 진지 서린 표정으로 차렷했다.

“지금까지 총 11킬로그램 줄었어. 다른 건 없이 내가 말한 것만 안 먹었는데도 이만큼 된 거지?”

“네.”

“힘들지 않아? 스트레스 안 받아?”

“네.”

힘들 리 없었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아니었다. 먹고 싶어서 먹은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뭐랄까, 할 게 없어서 먹었달까, 먹는 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먹었달까. 무엇보다도 먹고 나면 잠이 잘 왔다. 베개에 머리만 대도 곯아떨어질 나이에 불면이라니. 어쨌거나 그게 다열이 처한 상황이었다.

“다행이야.”

다열은 새삼 궁금했다. 고3이 도대체 무슨 시간이 있어 자신을 챙기고 다니는 건지.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겠지. 설마 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전에 비해 부피가 좀 줄어들어 보이는 우연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그 또한 묻지 않았다.

‘간 다음은 위 차롄가? 뭐, 알아서 하겠지. 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에게 불려 갔던 부반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선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 냈다.

“야, 야. 대박! 교무실 뒤집어졌어. 강신이 법대 안 간다고 했대.”

다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4대 천왕 중 성적 최상위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진학과 관련해 널리 공유된 사실이 있었다. 학교 차원의 결정이랄까. 박사 서재필은 의대, 강신 강우연은 법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바였다. 그런데 법대를 아니 간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왜’를 쏟아 냈다.

“모르지. 강신 담탱이랑 3학년 학주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더라고. 슈발. 심부름 갔다가 놀래 뒤지는 줄.”

우연은 공부를 잘했다. 오죽하면 피아노 치는 뇌섹녀겠는가. <기하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재필에 이어 전교 2등을 도맡아 했고, 모의고사 성적도 전국권이어서 학교에서 거는 기대가 컸다. 잘하면 세상에 일반고 ‘기하’라는 이름이 연거푸 드러날 기회이기도 했다. 영휘도 어찌나 자랑스러워하던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그거 강신이 다 생각 있어 그러는 거 아니야? 법대 없어진다며.”

“나도 들었어. 법학전문대학원인지 뭔지, 그런 걸로 다 바뀐다는 말 있다고.”

“아직 확실한 거 아니잖아.”

“그러니까 학교에선 보낼 수 있으면 보내려고 하겠지.”

“그렇지. 학교는 지금 당장 어디에 학교 이름을 올리느냐가 중요하니까. 학교가 언제 우리 나중까지 신경 써 주는 거 봤냐?”

대화가 심각해지려던 순간, 질문 하나로 분위기가 원상 복귀 되었다.

“그래서 어딜 간다는데?”

“아. 그게 나도 어이가 없어 가지고. 작곡과래.”

다열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네 노래는 내가 만들 거야.’



*



매월 1일 자정마다 동영상 하나가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다. 다열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연이 만든 곡을, 우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다열이 부르는 모습을, 영휘가 촬영한 영상이었다.



‘네 노래는 내가 만들 거야.’



정말이었다. 우연은 수능을 마치고부터 매달 곡을 하나씩 내어 놓았다. 영휘가 경악했다.

“이걸 우리 쪼꼬맹이가 다 썼다고?”

“뭘 금시초문인 것처럼 놀라고 그래요?”

“그럼 이게 다 그거야?”

영휘는 더 경악했다. 우연은 어려서부터 곡 쓰는 게 취미이자 놀이였다. 뭐에 그렇게 골똘한가 싶어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 십중팔구 악보에 콩나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취미이자 놀이였던 작곡이 삶의 목표가 되면서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영휘도 영휘지만, 다열 또한 진심으로 할 말을 잃었다.

‘강신, 강신 하더니 뭐냐? 너, 진짜 신이냐?’

<다열의 노래> 조회 수는 날로 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먼저, 우연이 만든 노래가 훌륭하다는 사실이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노래를 제 것처럼 부른 다열의 목소리와 감성도 더할 나위 없었고, 그 목소리와 감성을 받쳐 준 피아노 반주도 근사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다열의 외모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연이 제법 날씬해진 다열을 ‘청순한 소년’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것이다.

안경을 벗기고, 밤송이 같던 머릿결을 정돈시키고, 몇 개 남지 않은 여드름은 메이크업으로 가리고, 파스텔 톤의 얌전한 스타일로 옷을 입히고, 그래 놓으면 다열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다열의 예전 모습을 속속들이 아는 건혁이 영상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어글리 주제에, 이 무슨 재수 똥 싸는 여우 짓이야. 우웩!”

그 과정에서 노래를 부른 다열뿐만 아니라 반주자 우연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동영상 속에서 우연은 언제나 뒷모습으로만 등장했는데도 말이다. 우연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은 물론,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선이 분산돼선 안 된다는 게, 시선은 오로지 다열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는 게 우연의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은 화면 밖에 있고 싶었지만, 다열만 찍어 놓고 보니 덩그러니 뻘쭘해 보이기만 하는 것이 화면이 영 예쁘지 않았던 것이다.

날이 지나면서 우연을 가리키는 묘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 ‘비밀의 여인’이라는 진부한 묘사도 있었고, 뒷모습이 가늘고 곱다는 데서 비롯된 ‘뒤태엘프’라는 유치한 묘사도 있었고, 늘 흰 티에 청바지 차림이라는 데서 비롯된 ‘여자 스티브잡스’라는 단순한 묘사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하나로 고정되었다. 바로 ‘허다열’이었다. ‘다열의 그녀’라는 뜻으로 ‘her’를 붙여 ‘허다열’ 말이다. 그때는 이미 <기하고등학교>를 졸업한 <겨레대> 작곡과 1학년 강우연이라고 신상이 털린 후였음에도 ‘허다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열이 고3이 되었을 때, 다열은 제각각 다른 노래를 담은 동영상 12개에, 압도적인 조회 수와 어마어마한 수의 팔로워를 보유한 막강 유튜버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다열>이라는 이름의 팬카페도 생겼다. 그것은 곧 팬들이 하다열과 허다열, 그러니까 다열과 우연을 하나로 묶어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