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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야. 이거 봤어?]

반짝반짝. 메신저 대화창이 빛난다. 동기의 말에 수민은 생각 없이 링크된 사이트를 눌렀다.

― 자고로 남자는 힘!

그을린 살결. 툭 불거진 가슴살. 상반신부터 치골에 이르기까지 쓸데없는 살은 없다. 근육으로 짜인 완벽한 육체. 남자는 가슴팍을 드러낸 채 야시시한 눈빛을 빛냈다. 이내 그의 손은 다리 사이 그곳을 가리켰다.

― 힘은 곧 정력이다!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모든 남성의 히어로가 온다! 손가락을 튕기면 약골은 사라지고 파워 발기!

꾹!

수민은 황급하게 마우스를 눌렀다. 소리를 줄여 놓긴 했지만 누군가 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곧 있을 교육으로 대다수의 직원들이 빠져나간 상태. 같은 팀에는 팀장만이 남아서 전화 통화를 하느라 바빴다.

[너 회사 메신저로 뭘 보내는 거야!]

[이거 영상 웃기지 않아? 누가 인터넷에 올린 건데 보고서 빵 터졌다니까? 근데 댓글이 더 웃겨. 여자들이 단 거 같은데, 이거 어디서 파나요. 인생템이네요. 제 월급 올인합니다. 남편에게 바로 링크했습니다. 손가락 튕기면 남편도 사라졌음 좋겠네요. 아주 센스들이 넘쳐.]

수민은 고개를 들어 사무실 저편에서 킥킥거리고 있는 동기를 노려보았다. 대화창을 끄려는데 팀장이 다급하다는 듯이 손짓을 했다.

“이 대리. 얼른 가서 1층 경비실에서 택배 받아 와.”

“네, 팀장님.”

수민은 창을 아래로 끌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기의 장난에도 쉽사리 웃음이 안 나온다. 오늘따라 몸 상태가 영 별로라서일까. 어제 늦게 잔 것도 아닌데. 피로 회복이 잘 안 되는 몸은 나이 탓인지 새삼스럽게 서럽다. 수민은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응, 뭐지?’

지나치면서 본 2층 대합실에서는 한창 신입 사원들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중이었다. 때마침 사회자가 재치 있는 말을 던졌고 사원들 사이에서 폭포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합실이 화사해지는 순간이었다.

‘저 때가 좋긴 좋구나!’

젊고 의욕 넘치는 신입들을 부럽다는 듯이 훑어보고는 수민은 고개를 돌렸다.

‘한약을 지어 먹어 볼까?’

어쩌면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보약이나 영양제하고는 상관없을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이제는 아니다. 누가 어떤 게 몸에 좋다더라, 어디에는 그게 최고더라 하면 귀가 번뜩 뜨인다. 불현듯 인터넷 검색창을 켜고 제품을 찾는다. 후기까지 읽고 나면 사진 않더라도 안심이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요가나 반신욕을 다시 해 봐?’

몸이 개운해지면 한결 의욕이 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비실에서 기다리는데 수위 아저씨가 창고에서 택배 상자를 들고 왔다.

“……아저씨?”

“여기 있네요.”

수민은 말을 더듬었다.

“이, 이거 공장에서 온 샘플 맞아요? 어디 가구 회사로 가려던 게 잘못 온 거 아니고요?”

“네, 기획2팀 이주영 팀장 앞으로 배달인데요? 사인하고 가져가세요.”

이럴 수가. 뭘 개발하고 있는 거야. 우린 핸드폰 부품 회사인데.

‘잠수함 만드나?’

수민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사인을 했다. 그리고 두 팔로 상자를 껴안아 보았다. 수민의 상체만 한 큰 상자는 부피도 부피지만 무겁기까지 했다. 으라차차. 약간 시대가 지난 함성을 내며 위로 들어 올리자 허리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육중한 무게에 다리가 휘청.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수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수위 아저씨가 감탄했다.

“어어, 아가씨가 힘이 장사네.”

“무, 무거워 죽겠거든요……!”

“허허, 곧 익숙해질 거야. 힘내요.”

“그, 그게 무슨 경우에 안 맞는 조언…….”

“그럼 수고해요.”

가지 마요. 안 돼요―! 수민은 간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수위는 외출한다는 팻말을 걸고는 멀어져 갔다. 어쩔 수 없이 구두 신은 발을 옮겼다. 굽이 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상자 무게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았다.

[점검 중]

수민은 인상을 왈칵 구겼다. 일이 꼬였다고 생각하면서 힘겹게 방향을 틀었다. 계단으로 올라서자 아까보다 훨씬 허리와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한 계단 한 계단 신경 써서 오르고 있는데 때마침 아는 직원이 지나갔다.

“어머, 조심.”

“…….”

“부딪칠 뻔했잖아.”

직원은 새초롬하게 경고하는 그녀를 슥 피해 지나갔다. 그때 중후한 남자 목소리가 훅 들어왔다.

“와아, 이번 샘플은 엄청나네.”

“……과장님.”

“뭘 개발하고 있는 거야, 그치?”

개발팀 과장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당신네 팀이 잘 알 것 아니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그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 후였다. 수민은 애초에 지원을 요청할 걸 그랬나 후회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겨우 2층에 올라섰는데, 때마침 대합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

일정이 끝난 건지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새가 정겹다. 그사이 친해진 건지 신입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수민은 숨을 몰아쉬며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들이 지나간 뒤 올라가려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흠칫.

왜 놀랐을까. 남자는 신입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체구를 자랑했다. 눈빛 또한 강렬하면서도 음험했다. 수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빛과 자세만 보면 여기 회사에 미수금 받으러 온 조폭 아저씨 같은데 목에는 신입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수민은 그가 다가오자 굳어 버리고 말았다.

“형, 같이 안 가요?”

멈춰 선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산뜻한 미소를 달고 있는 미남자. 깔끔한 외모가 돋보이는 신입이었다.

“먼저 가.”

“어, 네.”

미남자는 수민을 흘깃 보고 형이란 사내를 다시 보고는 알 만하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친해진 여직원들을 낀 채 그가 사라지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제가.”

남자의 입매가 무겁게 열렸다.

“도와드릴게요.”

“아니, 괜찮은데…….”

“알겠습니다.”

예의상 말했는데 남자가 진심으로 알아들었는지 팍 방향을 틀었다. 수민은 얼른 외쳤다.

“근데 도와주면 고맙죠! 반대편 들어 주시면 같이 들게요!”

“혼자 들겠습니다.”

“아니에요, 엄청 무거워서…….”

번쩍.

남자는 두 팔로 상자 윗부분을 꽉 잡더니 아주 손쉽게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