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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팀장의 더럽고 지저분한 술버릇 이야기, 어느 팀 대리와 부장이 눈 맞았다는 이야기. 사내 커플이, 커플이 아닌 척 연기하는 걸 직원들이 못 본 척해 주는 이야기, 들어온 신입들 중 누가 잘났고 누가 싱글이고 하는 이야기.
그다지 중요한 얘기들도 아니건만 직원들 사이에선 가장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소식들로 웃음꽃이 피었을 때 수민은 무심코 직원 하나가 누군가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걸 보았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이름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귀에 거슬렸기 때문일까. 수민은 절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휙.
정말로 그런 소리가 날 정도로 이름이 불려졌던 남자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민은 그가 자신을 보고서 고개를 돌린 거라 확신했다. 눈이 마주쳤는데 흠칫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뭐야.’
사무실로 돌아온 수민은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기겁할 만한 진상 상사도 아니고 그렇게 정색하며 고개를 돌려 버리다니. 고개를 돌렸던 직원은 그때 그 광고 영상을 함께 보았던 무시무시한 덩치의 신입이 분명했다.
‘혹시 그때 그 영상 때문에?’
회사 변태로 찍힌 건가. 순간 납득도 됐지만 괜한 오해를 샀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졌다. 그러고도 비슷한 사건은 두어 번 더 발생했다. 우연이었지만 눈이 부딪쳤고 덩치의 신입은 또 획 소리 나게 고개를 틀었다. 명백한 의도였다. 나 너 지켜보지만 마주하긴 싫다는.
수민은 마침내 분노하고 말았다.
‘너무해!’
그게 뭐라고! 건전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보는 것을!
‘……이 아니라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인데. 후웃.’
한없이 기분이 처진다.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할 텐데. 한편으론 너무 반응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토커처럼 음험하게 쳐다볼 줄이야. 남자는 신입들 사이에서도 무섭고 말수가 없기로 유명했다.
미소가 예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 곱게 하며 여직원의 관심과 호감을 독차지하는 이번 신입의 에이스와는 무척이나 다른 인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음침한 시선이 특징인 큰 덩치에 우락부락 느낌이 나는 직원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과장과 부장이 그만 보면 몸을 움찔하는 게 이해될 정도였다.
‘나한테 억하심정이 있나?’
수민은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땐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그 영상 하나로 변태 동료로 찍히고 말다니. 수민은 그를 찾아가 따져 물어볼까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소심한 편이었고 분란을 내어 일을 크게 만드느니 모든 분란을 감싸 안고 혼자 끙끙 앓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심각해지면 맞붙어서라도 오해를 풀어야지.’
수민은 조용히 다짐하며 애써 오늘도 느껴지는 시선을 모른 척했다. 그의 책상은 그녀의 뒤쪽 라인에, 그녀의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남자는 등치가 커서 움직일 때마다 책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떨리곤 했다. 팀장 하나는 자네 ‘운동했나? 역도? 씨름?’이라고 진지하게 물었을 정도로 그는 압도적으로 컸다.
‘안 되겠어.’
수민은 메신저 창을 열어서 동기에게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보를 캐긴 개뿔. 동기의 음담패설이 또 시작됐다.
[몸이 크면 성기도 크대.]
수민은 메신저를 보고 움찔 굳고 말았다. 자신은 한 덩치 하는 신입의 평소 평판이 어떠냐고 물은 것인데 이런 답변이 오다니! 적당히 해, 이 에로에로한 것아! 수민은 얼굴이 빨개져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동기와의 메신저 창을 닫았다.
“대리님.”
“!”
그 순간 수민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섬뜩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대리님.”
“아, 예? 네?”
무저갱처럼 까만 시선이 달려온다. 아까만 해도 컴퓨터 앞에서 웅크리고 있던 음험한 남자가 어느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민은 겁먹었다는 걸 애써 숨기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의 거대한 몸 그림자에 자신의 몸이 완전히 가려지자 위압감은 더욱 커졌다.
“뭐, 뭐죠? 광일 씨?”
자자. 진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이건 그저 야생 곰일 뿐이야! 아, 아니! 곰 같은 남자! 수민은 잠시 이름표에 시선을 두었다.
[추광일]
이름도 참…… 뭐라 말하기 애매하다. 분명 저 이름은 80년대 암흑계를 주름잡았을 조폭의 제1 행동 대장의 이름이거나 추노의 본명이거나.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수민은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두껍고 커다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3시까지, 주신다고.”
“뭘요?”
“기획1팀에서 넘어온 재무관련 서류요. 이 대리님께 받으라고 들었습니다.”
“저한테요? 잠시만요.”
수민은 전화를 돌렸다. 기획1팀과 재무팀, 인사팀까지 거치고 나자 수민은 진이 빠져서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었거든요. 내일 줘도 될까요?”
“중요한 서류입니다.”
묵직하게 찔러 오는 목소리. 남자는 여느 때보다 매섭게 눈을 빛냈다.
“오늘 저녁까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이름을 빠뜨린 게 틀림없었다. 누군가의 실수를 자신이 덮어 써야 한다는 게 짜증 났지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쓴 물도 삼켜야 할 때가 있는 법. 수민은 마음을 다잡았다.
“알겠습니다.”
스토커 주제에. 수민은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며 그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오늘 저녁까지, 야근을 해서라도, 꼭 드리죠.”
“좋습니다.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남자는 물 흐르듯이 대답했다. 잠깐.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새 나가는 거지?
수민이 당황하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같이 밤을 새야 하니까요.”
미쳤다. 수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의 표현에 이상한 생각을 하고 만 건 순전히 동기의 메신저 때문이다.
[……성기가 커.]
숨이 막힌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입 안의 침이 말랐다. 동시에 파워 발기란 단어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수민은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오해 말자. 그는 날 싫어해. 내가 성욕에 안달 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수민은 그에게서 오해를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가 그런 여자가 될 거냐며 제 자신을 일깨웠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남자를 한 번 힐끔 노려보면서 수민은 중요한 데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지금 중요한 건 업무를 해결하는 거였다.
팀장의 더럽고 지저분한 술버릇 이야기, 어느 팀 대리와 부장이 눈 맞았다는 이야기. 사내 커플이, 커플이 아닌 척 연기하는 걸 직원들이 못 본 척해 주는 이야기, 들어온 신입들 중 누가 잘났고 누가 싱글이고 하는 이야기.
그다지 중요한 얘기들도 아니건만 직원들 사이에선 가장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소식들로 웃음꽃이 피었을 때 수민은 무심코 직원 하나가 누군가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걸 보았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이름을 부르는 직원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귀에 거슬렸기 때문일까. 수민은 절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휙.
정말로 그런 소리가 날 정도로 이름이 불려졌던 남자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민은 그가 자신을 보고서 고개를 돌린 거라 확신했다. 눈이 마주쳤는데 흠칫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뭐야.’
사무실로 돌아온 수민은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기겁할 만한 진상 상사도 아니고 그렇게 정색하며 고개를 돌려 버리다니. 고개를 돌렸던 직원은 그때 그 광고 영상을 함께 보았던 무시무시한 덩치의 신입이 분명했다.
‘혹시 그때 그 영상 때문에?’
회사 변태로 찍힌 건가. 순간 납득도 됐지만 괜한 오해를 샀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착잡해졌다. 그러고도 비슷한 사건은 두어 번 더 발생했다. 우연이었지만 눈이 부딪쳤고 덩치의 신입은 또 획 소리 나게 고개를 틀었다. 명백한 의도였다. 나 너 지켜보지만 마주하긴 싫다는.
수민은 마침내 분노하고 말았다.
‘너무해!’
그게 뭐라고! 건전한 여성이라면 당연히 보는 것을!
‘……이 아니라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인데. 후웃.’
한없이 기분이 처진다. 오해를 풀어 주어야 할 텐데. 한편으론 너무 반응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토커처럼 음험하게 쳐다볼 줄이야. 남자는 신입들 사이에서도 무섭고 말수가 없기로 유명했다.
미소가 예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 곱게 하며 여직원의 관심과 호감을 독차지하는 이번 신입의 에이스와는 무척이나 다른 인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음침한 시선이 특징인 큰 덩치에 우락부락 느낌이 나는 직원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 과장과 부장이 그만 보면 몸을 움찔하는 게 이해될 정도였다.
‘나한테 억하심정이 있나?’
수민은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그땐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그 영상 하나로 변태 동료로 찍히고 말다니. 수민은 그를 찾아가 따져 물어볼까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소심한 편이었고 분란을 내어 일을 크게 만드느니 모든 분란을 감싸 안고 혼자 끙끙 앓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심각해지면 맞붙어서라도 오해를 풀어야지.’
수민은 조용히 다짐하며 애써 오늘도 느껴지는 시선을 모른 척했다. 그의 책상은 그녀의 뒤쪽 라인에, 그녀의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남자는 등치가 커서 움직일 때마다 책상이 흔들리는 것처럼 떨리곤 했다. 팀장 하나는 자네 ‘운동했나? 역도? 씨름?’이라고 진지하게 물었을 정도로 그는 압도적으로 컸다.
‘안 되겠어.’
수민은 메신저 창을 열어서 동기에게 정보를 캐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보를 캐긴 개뿔. 동기의 음담패설이 또 시작됐다.
[몸이 크면 성기도 크대.]
수민은 메신저를 보고 움찔 굳고 말았다. 자신은 한 덩치 하는 신입의 평소 평판이 어떠냐고 물은 것인데 이런 답변이 오다니! 적당히 해, 이 에로에로한 것아! 수민은 얼굴이 빨개져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동기와의 메신저 창을 닫았다.
“대리님.”
“!”
그 순간 수민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섬뜩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대리님.”
“아, 예? 네?”
무저갱처럼 까만 시선이 달려온다. 아까만 해도 컴퓨터 앞에서 웅크리고 있던 음험한 남자가 어느새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민은 겁먹었다는 걸 애써 숨기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의 거대한 몸 그림자에 자신의 몸이 완전히 가려지자 위압감은 더욱 커졌다.
“뭐, 뭐죠? 광일 씨?”
자자. 진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이건 그저 야생 곰일 뿐이야! 아, 아니! 곰 같은 남자! 수민은 잠시 이름표에 시선을 두었다.
[추광일]
이름도 참…… 뭐라 말하기 애매하다. 분명 저 이름은 80년대 암흑계를 주름잡았을 조폭의 제1 행동 대장의 이름이거나 추노의 본명이거나.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수민은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두껍고 커다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3시까지, 주신다고.”
“뭘요?”
“기획1팀에서 넘어온 재무관련 서류요. 이 대리님께 받으라고 들었습니다.”
“저한테요? 잠시만요.”
수민은 전화를 돌렸다. 기획1팀과 재무팀, 인사팀까지 거치고 나자 수민은 진이 빠져서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었거든요. 내일 줘도 될까요?”
“중요한 서류입니다.”
묵직하게 찔러 오는 목소리. 남자는 여느 때보다 매섭게 눈을 빛냈다.
“오늘 저녁까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이름을 빠뜨린 게 틀림없었다. 누군가의 실수를 자신이 덮어 써야 한다는 게 짜증 났지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쓴 물도 삼켜야 할 때가 있는 법. 수민은 마음을 다잡았다.
“알겠습니다.”
스토커 주제에. 수민은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며 그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오늘 저녁까지, 야근을 해서라도, 꼭 드리죠.”
“좋습니다.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남자는 물 흐르듯이 대답했다. 잠깐.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새 나가는 거지?
수민이 당황하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같이 밤을 새야 하니까요.”
미쳤다. 수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의 표현에 이상한 생각을 하고 만 건 순전히 동기의 메신저 때문이다.
[……성기가 커.]
숨이 막힌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입 안의 침이 말랐다. 동시에 파워 발기란 단어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수민은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흔들었다.
‘오해 말자. 그는 날 싫어해. 내가 성욕에 안달 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수민은 그에게서 오해를 받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가 그런 여자가 될 거냐며 제 자신을 일깨웠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남자를 한 번 힐끔 노려보면서 수민은 중요한 데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지금 중요한 건 업무를 해결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