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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3화
1. 초여름 (3)
“너네 집 어디야?”
주택가가 보이자 놈이 다시 질문을 해 왔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서 걸을 차례였다. 그래 봤자 우산의 그늘 안에서지만.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가자 놈이 내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골목 안쪽에 있었다. 버스 정거장에서 제일 먼 집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다.
“집 좋다.”
집 앞에 도착한 한태경이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수입이 좋은 편이었다. 문을 열기 전 나는 놈에게 우산을 건네받았다. 집에 들어오라고 해야 하나? 친구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관계이지만 누군가를 집 앞까지 데리고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외에 있을 때에는 종종 왕래하긴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친구다운 친구는 사귀지 않았다.
“내가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들어오란 말도 안 하냐?”
이번에도 먼저 선수를 친 건 놈이었다. 타박하는 말투였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다. 내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놈이 나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대답을 하는 대신 카메라로 얼굴을 들이대자 문이 열렸다.
“나 간다.”
놈은 그제야 내게 가방을 건네주었다. 든 것이라곤 카메라랑 필통, 공책 몇 개뿐인 가벼운 가방이었다. 건네받은 순간 이상하게 손이 허리 아래로 훅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무겁지 않은 걸 알고 있는데도.
“……너.”
처음으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막 걸어가려던 한태경이 나를 돌아본다.
“너는 어디 사는데.”
내 말에 무표정했던 놈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웃었다. 한쪽 뺨이 퉁퉁 부어 볼썽사나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놈은 슬쩍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비밀.”
“…….”
나는 인상을 쓰고 한태경을 노려보았다. 고작 주소 따위가 뭐라고, 그것 하나 알려 주지 않겠다고 인색하게 구는 놈이 짜증스러웠다. 놈은 불만 어린 내 표정을 즐거운 얼굴로 지켜보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기서 10분 거리 아파트에 살아.”
그러곤 놈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아마도 그게 작별 인사 대신이었는지, 놈은 다른 제스처 없이 씩씩하게 왔던 길을 도로 걸어갔다. 그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길 뿐이었다.
“내일 보자.”
재수 없어.
***
어머니는 평소처럼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별일 없었니?”
그리고 평소처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늘 그렇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실 테이블에는 어제와 다른 꽃이 화병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면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곤 했다. 꽃꽂이도 그 취미 생활의 일환이었다.
“오늘은 해가 오래 떠 있던데 괜찮았니? 날이 좋아지는 건 괜찮은데 해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영 걱정스러워서.”
나는 대답 대신 괜찮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학교에 가고 아버지가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녀는 취미가 여러 가지였고,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취미 생활 외 대부분의 시간은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데 보냈다.
나를 낳기 전, 어머니는 형제나 자매, 혹은 남매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내가 태어나면서 모든 계획이 바뀌었다. 날 때부터 특이한 나를 돌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가질 예정이던 동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나의 편의를 위해 부모님이 들이는 돈이나 시간을 떠올리면 내심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녁으로 해물찜 했는데 괜찮겠니? 해산물을 선물로 받았는데 꽤 싱싱하더구나.”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이나 감정은 무뎌지는 법이었다. 어머니의 호의와 애정은 때로는 취미 생활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인 후 방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한태경에게 건네받은 가방이, 또 한 손에는 한태경이 들어 주었던 우산이 들려 있었다. 그 모든 걸 끌어안은 채로 침대로 쓰러졌다. 오늘은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였다. 옥상에 한태경이 왔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한태경이 누군가를 무자비하게 패는 것을 보았으며 심지어 함께 집에 왔다. 정확히는 놈이 일방적으로 우리 집 앞까지 따라온 것이지만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인 것은 사실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전부 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고작해야 한쪽 뺨이 부어오른 모습으로 억지로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는 한태경의 얼굴뿐이었다.
우산을 대충 침대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곤 괜히 손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더듬거렸다. 금세 우산이 다시 손에 잡혔다. 굳이 손잡이를 찾아 손에 쥐었다. 여기로 오는 내내 놈이 우산을 들고 왔던 게 떠올랐다.
이상한 하루였다.
***
다음 날, 한태경은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나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거나 의미 없는 말을 하며 웃었다. 나는 대화를 하는 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 놈의 말을 무시했지만, 놈은 어떻게든 내게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은 건지 계속 시비를 걸었다. 참다 참다 화가 나서 노려보거나 짜증 섞인 말을 내뱉으면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치한 말싸움 끝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언제부턴가 놈은 매점에서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어느 날은 우유, 어느 날은 빵을, 어느 날은 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 왔다. 탱탱 불은 라면을 주면서 밥 안 먹을 거면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내가 급식을 먹지 않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성의를 생각해 먹는 시늉만 했다.
딱히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낑낑거리며 두 개를 들고 왔을 모습을 떠올리니 모른 척하기도 좀 미안해서. 불은 라면은 도무지 넘어가지 않아 정말 젓가락질만 하다 말았지만. 이제는 놈이 사들고 오는 게 익숙해져서 그냥 주는 대로 대충 먹었다. 오랜만에 점심을 먹게 되니 속이 더부룩했지만 그냥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햇볕 진짜 강하네.”
그늘에만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와 달리 놈은 어슬렁거리며 옥상을 구석구석 살폈다. 물탱크 맞은편에 놓여 있는 낡은 매트리스를 찾은 것도 한태경이었다. 놈은 먼지가 낀 매트리스를 그늘 안에 펴곤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던 건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너도 앉을래?”
눈에 보일 정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먼지를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놈은 내 반응을 보고 어깨를 으쓱거리곤 말았다.
그다음 날에는 안 입는 체육복을 가지고 왔다. 정확히는 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쓰인 체육복을.
“앉을래?”
체육복을 매트리스에 깐 후에 놈이 다시 물었다. 나는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체육복 주인의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것을 깔고 앉았다.
***
“나 내일부터 며칠 못 온다.”
놈이 드러누운 채로 말했다. 한태경의 교복 소매는 벌써 짧아졌다. 그사이에 벌써 하복 혼용 기간이 되었고, 놈은 바로 하복을 꺼내 입었다. 나 역시 비교적 면이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소매는 길지만.
반사적으로 왜 못 오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떠올랐다. 2학년 한태경 교내 폭력으로 인한 사회봉사 n시간. 내가 목도한 바로 그 사건이었다. 정작 놈은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지만.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놈이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린다.
“아쉬운 척 좀 해 줘라.”
그 말에 나는 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도대체 왜 내가 아쉬워해야 하지? 문득 머리를 스친 의문을 제기하려다가 귀찮아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하네. 놈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만스러운 반응이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놈이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 없어도 꼬박꼬박 뭐라도 챙겨 먹어. 알겠지?”
“귀찮아.”
도대체 그런 걸 왜. 신경을 쓰는 것도 우스웠고 그 말을 새겨듣고 열심히 매점에 가서 먹을 걸 사 오는 것도 이상했다. 내 반응을 들은 척도 안 할 생각인지, 놈은 계속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집에 혼자 간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그 말에는 조금 할 말이 없어졌다. 그간 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문 앞에서 슬쩍 따라붙어 우리 집까지 같이 가곤 했는데, 당연한 듯이 내 손에서 우산을 뺏어 들 뿐 아니라 굳이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반복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짓이라 몇 번인가 물어볼 생각도 했지만 딱히 귀찮아하지 않는 눈치라 그냥 놔두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내가 먼저 교문 앞에서 놈을 기다리고 말았다. 우산을 든 채로 멍하니 서서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서 나오는 한태경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나 기다렸어?’
놈은 대단한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무척 즐거워하며 집에 가는 내내 이죽거렸다. 볼일이 있어 늦게 나왔다는 설명도 친절히 곁들였다.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하길래 그냥 갔을 줄 알았더니.’
그렇게 말을 하는 목소리가 어딘가 들떠 있어서 나는 입을 다문 채 놈을 아예 모르는 체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놈이 사뭇 여유로운 태도로 따라붙으며 다음부터는 꼭 일찍 나오겠다며 일방적인 약속을 해 버렸다. 짜증 나게.
“오늘 하늘 파랗다.”
놈이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더니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자연히 내 시선도 위를 향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하늘이 맑았다. 황사가 가시고도 대기 질이 좋지 않아 내내 하늘이 희뿌옜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층층이 쌓인, 부피가 몹시 탐스러운 구름이 인상적인 하늘이었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런 날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한태경이 옥상으로 출석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카메라를 들고 오는 것을 잊었다. 또 이게 무어냐며 놈이 관심을 보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도 안 찍을 가능성이 더 컸지만 그래도 하늘을 보니 내심 아쉬웠다. 이따 수업이 끝나고도 이 하늘을 찍을 수 있을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예비종이 울렸다. 놈은 오늘따라 이른 것 같다고 중얼거리면서 먼저 일어났다. 내가 뒤따라 일어나자 놈은 익숙한 듯이 매트리스를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아니고, 굳이 찾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매트리스를 갖다 두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늘 안에 서서 놈이 매트리스를 옮기는 걸 보았다.
일전에도 언뜻 느꼈지만 한태경은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한 듯했다. 그것도 아니면 원래 힘이 센 편이던가. 매트리스를 척척 접어서 거뜬하게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켜 본 게 여러 번이다. 하복을 입어서인지 힘을 줄 때마다 팔에 근육이 도드라지는 게 인상 깊었다. 한태경은 시큰둥한 얼굴로 매트리스를 정리하고 손을 털며 돌아왔다.
“가자.”
놈은 그렇게 말하며 옥상 문을 열어젖히고 턱짓을 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옥상에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서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었다. 계단을 두 개씩 내려와 교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옥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위를 흘끔 한번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갔다. 예비종이 울렸지만 애들은 절반뿐이었다.
교과서를 가지러 사물함으로 다가갔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우리 학교는 가나다순으로 학번을 부여했다. 그리고 내 번호는 보통 중간에 속하거나 그보다 조금 뒤쪽이었고, 사물함 위치 역시 비슷했다. 위치상으로도 거의 중앙. 내 위아래로 앞뒤 번호 아이들의 사물함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사물함은 찌그러져 있었다. 내 사물함만.
“…….”
“이야, 이거 왜 이래?”
“무슨 일이야? 왜 이것만 찌그러졌냐?”
“그러게. 이 새끼가 부쉈나 보지.”
이맘때쯤의 사내놈들은 종종 짐승 같은 구석이 있었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늘. 이성을 갖춘 상식보다 힘의 논리가 더 가깝고 익숙해서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설명보다는 주먹이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더 편하고 간단할 때가 있었다.
물론, 서열을 정하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눈에 보이는 속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늘상 있었다. 첫 번째는 힘이고 두 번째는 돈.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면 타인의 머리를 짓밟고 감히 왕좌에 오만하게 앉을 수 있었다. 성향에 따라 자본의 맹위 앞에 무릎을 꿇는 권력자도 있겠으나 자본가와 손을 잡거나 그들의 방식대로 자본가를 짓밟기도 했다.
그 방식은 저열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무리 사이에서는 어디서나 행해지는 일이어서 상식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나는 힘의 논리로 지성을 짓밟는 천박한 무리를 잘 알았다. 단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혹은 자신을 과시하겠다는 유아기적인 욕구에 따라 그런 행위를 일삼는 이들은 세상에 많았다.
“어떡하나. 완-전- 못 쓰겠는데?”
마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놈처럼.
이름은 박상식이었다. 놈은 작년에도 내게 시비를 걸었다. 같은 반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와 말을 붙이고 신경을 긁어 대니 모를 수 없었다. 놈이 굳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아니고선 자신을 과시할 수 없으니까. 말하자면 나는 박상식 스스로가 힘의 논리에 통용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골라잡은 표적이었다.
“이 새끼 장애인인데 주먹에 힘이나 있겠어? 비실비실해서 맨날 아픈 척이나 하는데.”
“왜 머리로 쳤나 보지. 머리는 단단하잖아.”
박상식의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놈이 낄낄거리며 사물함을 붙잡고 머리를 박아 대는 시늉을 했다. 행동거지며 흉내 내는 것이며 하나같이 요란하고 정신없었다. 그 모습을 가리키며 낄낄거리는 박상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하고 찌그러진 사물함의 자물쇠를 풀어 억지로 열었다. 다행히도 내용물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다음 수업의 교과서를 꺼내고 사물함의 문을 힘주어 욱여넣었다. 끽끽거리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리라. 자물쇠로 잠그고 나서 다시 뒤를 돌아보니 박상식과 그의 따까리가 영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박상식은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또한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왔다.
“이런, 씨발!”
쾅! 꽤 험악한 파괴음이 복도에서 울렸다. 저렇게 세게 걷어차면 제 발이 아프지 않을까.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물함이 망가졌다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가지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 때문인지는 굳이 쓰지 않았다. 고작 이런 일로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낱낱이 고하는 것은 담임에게 너무나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일일 테다.
네 또래의 애들이 다 그렇지 않냐,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고 크고 그러는 게 아니냐. 이번 기회에 너도 우리 반 아이들과 친해지면 좋지, 안 그래? 담임은 내 편의를 봐주었지만 그 정도 수준이었다. 굳이 내가 또래 관계에서 겪는 일까지 앞장서서 해결해 줄 정도로 정의감 넘치고 적극적인 어른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사물함을 고쳐 달라는 요청과, 그에 대한 비용을 알려 달라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행정실에 다시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 수고는 기꺼이 할 만한 것이었다.
놈은 남은 시간 내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복도 쪽 맨 뒷자리에 앉아 있고 놈은 창가 자리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정성이었다. 수업 중에 교실 밖에서 사물함 특유의 끽끽거리는 소리나 쇠로 된 사물함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쉬는 시간이 되어 나가 보니 사물함이 새것처럼 고쳐져 있었다. 언뜻 본 박상식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 건물 입구에 서 있는데 골대 근처에서 놀던 한태경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은 웬일로 축구부 연습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대신 골대 근처에는 교복을 입은 애들이 몇 더 보였다. 그리고 보통, 한태경도 그곳에 있었다. 놈은 교복 입은 무리들과 함께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내게로 왔다.
“나 간다.”
“야, 한태경!”
이름 석 자를 부르는 목소리에 내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나와 달리 한태경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지만.
“너 조심해!”
“난 늘 조심해.”
꽤 먼 거리인데도 욕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한태경을 돌아보았지만 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갔다. 한 번도 먼저 부탁한 적 없었지만 놈은 늘 내게서 가방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가방을 든 채로 무조건 빨리 걷기만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우산을 꺼내 씌워 주기까지 했다.
놈이 씌워 주는 우산을 쓴 채로 가면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낯 뜨거운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놈과 달리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못했다. 우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한태경은 달리기가 생각보다 꽤 빨라서 그냥 제멋대로 하게 놔두고 있었다.
“내가 좋은 거 갖고 왔어.”
놈은 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는 대신 커다란 장우산을 내게 보여 주었다. 좋은 거라고 하기에는 그냥 시커멓기만 한 평범한 우산이었다. 어쩌라는 건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자 놈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잠금쇠를 푼 후 그대로 버튼을 눌러 활짝 펴 보였다. 불행히도 우산이 하늘을 향해 펴지는 순간, 놈이 왜 ‘좋은 것’이라고 지칭했는지 이해해 버렸다.
“짜잔.”
“…….”
놈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겉면과 안쪽의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우산과 달리 놈이 들고 온 우산은 겉의 디자인과 안쪽이 확연히 달랐다.
“예쁘지? 산뜻하고.”
“…….”
놈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내 반응을 살폈다. 내가 보인 반응이 마치 삶의 낙이라도 된 듯이, 한태경은 나를 꽤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곤 했다.
“우산 쓰는 건 좋은데 하늘을 못 봐서 슬프잖아. 아까 하늘도 진짜 예뻤는데.”
점심시간, 하늘이 꽤 좋다는 놈의 혼잣말이 떠올랐다. 무척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우산 안쪽에는 새까만 겉면이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런 거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우산 쓰는 건 내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햇볕이 강하지 않는 날에는 우산을 안 쓰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안 가?”
저렇게 질문하면 안 간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발걸음을 떼자 놈이 익숙하게 내 보폭에 맞추어 걸어왔다.
“원래 검은색이 자외선 차단에 제일 좋다며.”
갑자기 저 얘길 왜 하지? 어디 계속해 보라는 의미로 놈을 쳐다보자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서 내가 겉을 까만 걸로 골라왔지.”
검은색은 빛도 제일 잘 흡수하는데……. 그건 잘 몰랐나. 놈에게 대꾸를 해 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괜히 대꾸를 해 주었다가 대화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놈이 자꾸 나를 흘깃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크게 관심도 없는데……. 무시하려고 했는데 눈이 마주쳤다. 놈이 보란 듯이 눈꼬리를 접으며 씨익 웃는다.
“좋네.”
“그렇지?”
되묻는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칭찬을 받은 것처럼 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날씨였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그런 날씨. 커다란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나와 놈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길가의 행인들은 한태경이 들고 있는 우산을 한번 보고, 그 아래에 서 있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또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1. 초여름 (3)
“너네 집 어디야?”
주택가가 보이자 놈이 다시 질문을 해 왔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서 걸을 차례였다. 그래 봤자 우산의 그늘 안에서지만.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가자 놈이 내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골목 안쪽에 있었다. 버스 정거장에서 제일 먼 집이 바로 내가 사는 곳이었다.
“집 좋다.”
집 앞에 도착한 한태경이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수입이 좋은 편이었다. 문을 열기 전 나는 놈에게 우산을 건네받았다. 집에 들어오라고 해야 하나? 친구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관계이지만 누군가를 집 앞까지 데리고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외에 있을 때에는 종종 왕래하긴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친구다운 친구는 사귀지 않았다.
“내가 여기까지 데려다줬는데 들어오란 말도 안 하냐?”
이번에도 먼저 선수를 친 건 놈이었다. 타박하는 말투였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다. 내가 어정쩡하게 서 있자 놈이 나 대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대답을 하는 대신 카메라로 얼굴을 들이대자 문이 열렸다.
“나 간다.”
놈은 그제야 내게 가방을 건네주었다. 든 것이라곤 카메라랑 필통, 공책 몇 개뿐인 가벼운 가방이었다. 건네받은 순간 이상하게 손이 허리 아래로 훅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무겁지 않은 걸 알고 있는데도.
“……너.”
처음으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막 걸어가려던 한태경이 나를 돌아본다.
“너는 어디 사는데.”
내 말에 무표정했던 놈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를 그리며 웃었다. 한쪽 뺨이 퉁퉁 부어 볼썽사나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놈은 슬쩍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비밀.”
“…….”
나는 인상을 쓰고 한태경을 노려보았다. 고작 주소 따위가 뭐라고, 그것 하나 알려 주지 않겠다고 인색하게 구는 놈이 짜증스러웠다. 놈은 불만 어린 내 표정을 즐거운 얼굴로 지켜보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기서 10분 거리 아파트에 살아.”
그러곤 놈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아마도 그게 작별 인사 대신이었는지, 놈은 다른 제스처 없이 씩씩하게 왔던 길을 도로 걸어갔다. 그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길 뿐이었다.
“내일 보자.”
재수 없어.
***
어머니는 평소처럼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별일 없었니?”
그리고 평소처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늘 그렇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실 테이블에는 어제와 다른 꽃이 화병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면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곤 했다. 꽃꽂이도 그 취미 생활의 일환이었다.
“오늘은 해가 오래 떠 있던데 괜찮았니? 날이 좋아지는 건 괜찮은데 해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영 걱정스러워서.”
나는 대답 대신 괜찮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학교에 가고 아버지가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녀는 취미가 여러 가지였고,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취미 생활 외 대부분의 시간은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데 보냈다.
나를 낳기 전, 어머니는 형제나 자매, 혹은 남매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내가 태어나면서 모든 계획이 바뀌었다. 날 때부터 특이한 나를 돌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가질 예정이던 동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나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나의 편의를 위해 부모님이 들이는 돈이나 시간을 떠올리면 내심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녁으로 해물찜 했는데 괜찮겠니? 해산물을 선물로 받았는데 꽤 싱싱하더구나.”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이나 감정은 무뎌지는 법이었다. 어머니의 호의와 애정은 때로는 취미 생활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인 후 방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한태경에게 건네받은 가방이, 또 한 손에는 한태경이 들어 주었던 우산이 들려 있었다. 그 모든 걸 끌어안은 채로 침대로 쓰러졌다. 오늘은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였다. 옥상에 한태경이 왔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한태경이 누군가를 무자비하게 패는 것을 보았으며 심지어 함께 집에 왔다. 정확히는 놈이 일방적으로 우리 집 앞까지 따라온 것이지만 평소보다 피곤한 하루인 것은 사실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전부 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고작해야 한쪽 뺨이 부어오른 모습으로 억지로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는 한태경의 얼굴뿐이었다.
우산을 대충 침대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곤 괜히 손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더듬거렸다. 금세 우산이 다시 손에 잡혔다. 굳이 손잡이를 찾아 손에 쥐었다. 여기로 오는 내내 놈이 우산을 들고 왔던 게 떠올랐다.
이상한 하루였다.
***
다음 날, 한태경은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나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거나 의미 없는 말을 하며 웃었다. 나는 대화를 하는 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 놈의 말을 무시했지만, 놈은 어떻게든 내게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은 건지 계속 시비를 걸었다. 참다 참다 화가 나서 노려보거나 짜증 섞인 말을 내뱉으면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치한 말싸움 끝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언제부턴가 놈은 매점에서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어느 날은 우유, 어느 날은 빵을, 어느 날은 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 왔다. 탱탱 불은 라면을 주면서 밥 안 먹을 거면 이거라도 먹으라고 했다. 내가 급식을 먹지 않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성의를 생각해 먹는 시늉만 했다.
딱히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낑낑거리며 두 개를 들고 왔을 모습을 떠올리니 모른 척하기도 좀 미안해서. 불은 라면은 도무지 넘어가지 않아 정말 젓가락질만 하다 말았지만. 이제는 놈이 사들고 오는 게 익숙해져서 그냥 주는 대로 대충 먹었다. 오랜만에 점심을 먹게 되니 속이 더부룩했지만 그냥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햇볕 진짜 강하네.”
그늘에만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와 달리 놈은 어슬렁거리며 옥상을 구석구석 살폈다. 물탱크 맞은편에 놓여 있는 낡은 매트리스를 찾은 것도 한태경이었다. 놈은 먼지가 낀 매트리스를 그늘 안에 펴곤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던 건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너도 앉을래?”
눈에 보일 정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먼지를 보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놈은 내 반응을 보고 어깨를 으쓱거리곤 말았다.
그다음 날에는 안 입는 체육복을 가지고 왔다. 정확히는 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쓰인 체육복을.
“앉을래?”
체육복을 매트리스에 깐 후에 놈이 다시 물었다. 나는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체육복 주인의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것을 깔고 앉았다.
***
“나 내일부터 며칠 못 온다.”
놈이 드러누운 채로 말했다. 한태경의 교복 소매는 벌써 짧아졌다. 그사이에 벌써 하복 혼용 기간이 되었고, 놈은 바로 하복을 꺼내 입었다. 나 역시 비교적 면이 얇고 바람이 잘 통하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소매는 길지만.
반사적으로 왜 못 오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떠올랐다. 2학년 한태경 교내 폭력으로 인한 사회봉사 n시간. 내가 목도한 바로 그 사건이었다. 정작 놈은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지만. 시큰둥한 표정을 짓자 놈이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린다.
“아쉬운 척 좀 해 줘라.”
그 말에 나는 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도대체 왜 내가 아쉬워해야 하지? 문득 머리를 스친 의문을 제기하려다가 귀찮아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하네. 놈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만스러운 반응이었으나 그것도 잠시뿐, 놈이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 없어도 꼬박꼬박 뭐라도 챙겨 먹어. 알겠지?”
“귀찮아.”
도대체 그런 걸 왜. 신경을 쓰는 것도 우스웠고 그 말을 새겨듣고 열심히 매점에 가서 먹을 걸 사 오는 것도 이상했다. 내 반응을 들은 척도 안 할 생각인지, 놈은 계속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집에 혼자 간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그 말에는 조금 할 말이 없어졌다. 그간 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문 앞에서 슬쩍 따라붙어 우리 집까지 같이 가곤 했는데, 당연한 듯이 내 손에서 우산을 뺏어 들 뿐 아니라 굳이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수고로움을 반복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짓이라 몇 번인가 물어볼 생각도 했지만 딱히 귀찮아하지 않는 눈치라 그냥 놔두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내가 먼저 교문 앞에서 놈을 기다리고 말았다. 우산을 든 채로 멍하니 서서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서 나오는 한태경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나 기다렸어?’
놈은 대단한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무척 즐거워하며 집에 가는 내내 이죽거렸다. 볼일이 있어 늦게 나왔다는 설명도 친절히 곁들였다.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 하길래 그냥 갔을 줄 알았더니.’
그렇게 말을 하는 목소리가 어딘가 들떠 있어서 나는 입을 다문 채 놈을 아예 모르는 체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놈이 사뭇 여유로운 태도로 따라붙으며 다음부터는 꼭 일찍 나오겠다며 일방적인 약속을 해 버렸다. 짜증 나게.
“오늘 하늘 파랗다.”
놈이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더니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자연히 내 시선도 위를 향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하늘이 맑았다. 황사가 가시고도 대기 질이 좋지 않아 내내 하늘이 희뿌옜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층층이 쌓인, 부피가 몹시 탐스러운 구름이 인상적인 하늘이었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런 날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한태경이 옥상으로 출석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카메라를 들고 오는 것을 잊었다. 또 이게 무어냐며 놈이 관심을 보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도 안 찍을 가능성이 더 컸지만 그래도 하늘을 보니 내심 아쉬웠다. 이따 수업이 끝나고도 이 하늘을 찍을 수 있을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예비종이 울렸다. 놈은 오늘따라 이른 것 같다고 중얼거리면서 먼저 일어났다. 내가 뒤따라 일어나자 놈은 익숙한 듯이 매트리스를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아니고, 굳이 찾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매트리스를 갖다 두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늘 안에 서서 놈이 매트리스를 옮기는 걸 보았다.
일전에도 언뜻 느꼈지만 한태경은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한 듯했다. 그것도 아니면 원래 힘이 센 편이던가. 매트리스를 척척 접어서 거뜬하게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켜 본 게 여러 번이다. 하복을 입어서인지 힘을 줄 때마다 팔에 근육이 도드라지는 게 인상 깊었다. 한태경은 시큰둥한 얼굴로 매트리스를 정리하고 손을 털며 돌아왔다.
“가자.”
놈은 그렇게 말하며 옥상 문을 열어젖히고 턱짓을 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옥상에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서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었다. 계단을 두 개씩 내려와 교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을 때 옥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위를 흘끔 한번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갔다. 예비종이 울렸지만 애들은 절반뿐이었다.
교과서를 가지러 사물함으로 다가갔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우리 학교는 가나다순으로 학번을 부여했다. 그리고 내 번호는 보통 중간에 속하거나 그보다 조금 뒤쪽이었고, 사물함 위치 역시 비슷했다. 위치상으로도 거의 중앙. 내 위아래로 앞뒤 번호 아이들의 사물함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사물함은 찌그러져 있었다. 내 사물함만.
“…….”
“이야, 이거 왜 이래?”
“무슨 일이야? 왜 이것만 찌그러졌냐?”
“그러게. 이 새끼가 부쉈나 보지.”
이맘때쯤의 사내놈들은 종종 짐승 같은 구석이 있었다. 아니, 종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늘. 이성을 갖춘 상식보다 힘의 논리가 더 가깝고 익숙해서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설명보다는 주먹이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더 편하고 간단할 때가 있었다.
물론, 서열을 정하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눈에 보이는 속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늘상 있었다. 첫 번째는 힘이고 두 번째는 돈.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면 타인의 머리를 짓밟고 감히 왕좌에 오만하게 앉을 수 있었다. 성향에 따라 자본의 맹위 앞에 무릎을 꿇는 권력자도 있겠으나 자본가와 손을 잡거나 그들의 방식대로 자본가를 짓밟기도 했다.
그 방식은 저열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무리 사이에서는 어디서나 행해지는 일이어서 상식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나는 힘의 논리로 지성을 짓밟는 천박한 무리를 잘 알았다. 단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혹은 자신을 과시하겠다는 유아기적인 욕구에 따라 그런 행위를 일삼는 이들은 세상에 많았다.
“어떡하나. 완-전- 못 쓰겠는데?”
마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놈처럼.
이름은 박상식이었다. 놈은 작년에도 내게 시비를 걸었다. 같은 반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와 말을 붙이고 신경을 긁어 대니 모를 수 없었다. 놈이 굳이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아니고선 자신을 과시할 수 없으니까. 말하자면 나는 박상식 스스로가 힘의 논리에 통용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골라잡은 표적이었다.
“이 새끼 장애인인데 주먹에 힘이나 있겠어? 비실비실해서 맨날 아픈 척이나 하는데.”
“왜 머리로 쳤나 보지. 머리는 단단하잖아.”
박상식의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놈이 낄낄거리며 사물함을 붙잡고 머리를 박아 대는 시늉을 했다. 행동거지며 흉내 내는 것이며 하나같이 요란하고 정신없었다. 그 모습을 가리키며 낄낄거리는 박상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하고 찌그러진 사물함의 자물쇠를 풀어 억지로 열었다. 다행히도 내용물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다음 수업의 교과서를 꺼내고 사물함의 문을 힘주어 욱여넣었다. 끽끽거리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리라. 자물쇠로 잠그고 나서 다시 뒤를 돌아보니 박상식과 그의 따까리가 영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박상식은 벌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또한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왔다.
“이런, 씨발!”
쾅! 꽤 험악한 파괴음이 복도에서 울렸다. 저렇게 세게 걷어차면 제 발이 아프지 않을까.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물함이 망가졌다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가지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 때문인지는 굳이 쓰지 않았다. 고작 이런 일로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낱낱이 고하는 것은 담임에게 너무나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일일 테다.
네 또래의 애들이 다 그렇지 않냐,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고 크고 그러는 게 아니냐. 이번 기회에 너도 우리 반 아이들과 친해지면 좋지, 안 그래? 담임은 내 편의를 봐주었지만 그 정도 수준이었다. 굳이 내가 또래 관계에서 겪는 일까지 앞장서서 해결해 줄 정도로 정의감 넘치고 적극적인 어른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사물함을 고쳐 달라는 요청과, 그에 대한 비용을 알려 달라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행정실에 다시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 수고는 기꺼이 할 만한 것이었다.
놈은 남은 시간 내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복도 쪽 맨 뒷자리에 앉아 있고 놈은 창가 자리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정성이었다. 수업 중에 교실 밖에서 사물함 특유의 끽끽거리는 소리나 쇠로 된 사물함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쉬는 시간이 되어 나가 보니 사물함이 새것처럼 고쳐져 있었다. 언뜻 본 박상식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 건물 입구에 서 있는데 골대 근처에서 놀던 한태경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은 웬일로 축구부 연습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대신 골대 근처에는 교복을 입은 애들이 몇 더 보였다. 그리고 보통, 한태경도 그곳에 있었다. 놈은 교복 입은 무리들과 함께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내게로 왔다.
“나 간다.”
“야, 한태경!”
이름 석 자를 부르는 목소리에 내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나와 달리 한태경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지만.
“너 조심해!”
“난 늘 조심해.”
꽤 먼 거리인데도 욕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한태경을 돌아보았지만 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갔다. 한 번도 먼저 부탁한 적 없었지만 놈은 늘 내게서 가방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가방을 든 채로 무조건 빨리 걷기만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우산을 꺼내 씌워 주기까지 했다.
놈이 씌워 주는 우산을 쓴 채로 가면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낯 뜨거운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놈과 달리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못했다. 우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한태경은 달리기가 생각보다 꽤 빨라서 그냥 제멋대로 하게 놔두고 있었다.
“내가 좋은 거 갖고 왔어.”
놈은 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는 대신 커다란 장우산을 내게 보여 주었다. 좋은 거라고 하기에는 그냥 시커멓기만 한 평범한 우산이었다. 어쩌라는 건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자 놈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잠금쇠를 푼 후 그대로 버튼을 눌러 활짝 펴 보였다. 불행히도 우산이 하늘을 향해 펴지는 순간, 놈이 왜 ‘좋은 것’이라고 지칭했는지 이해해 버렸다.
“짜잔.”
“…….”
놈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묻어났다. 겉면과 안쪽의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우산과 달리 놈이 들고 온 우산은 겉의 디자인과 안쪽이 확연히 달랐다.
“예쁘지? 산뜻하고.”
“…….”
놈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내 반응을 살폈다. 내가 보인 반응이 마치 삶의 낙이라도 된 듯이, 한태경은 나를 꽤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곤 했다.
“우산 쓰는 건 좋은데 하늘을 못 봐서 슬프잖아. 아까 하늘도 진짜 예뻤는데.”
점심시간, 하늘이 꽤 좋다는 놈의 혼잣말이 떠올랐다. 무척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우산 안쪽에는 새까만 겉면이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런 거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우산 쓰는 건 내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햇볕이 강하지 않는 날에는 우산을 안 쓰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렇다.
“안 가?”
저렇게 질문하면 안 간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어렵게 발걸음을 떼자 놈이 익숙하게 내 보폭에 맞추어 걸어왔다.
“원래 검은색이 자외선 차단에 제일 좋다며.”
갑자기 저 얘길 왜 하지? 어디 계속해 보라는 의미로 놈을 쳐다보자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서 내가 겉을 까만 걸로 골라왔지.”
검은색은 빛도 제일 잘 흡수하는데……. 그건 잘 몰랐나. 놈에게 대꾸를 해 주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괜히 대꾸를 해 주었다가 대화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수도 있었다. 놈이 자꾸 나를 흘깃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크게 관심도 없는데……. 무시하려고 했는데 눈이 마주쳤다. 놈이 보란 듯이 눈꼬리를 접으며 씨익 웃는다.
“좋네.”
“그렇지?”
되묻는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칭찬을 받은 것처럼 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날씨였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그런 날씨. 커다란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나와 놈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길가의 행인들은 한태경이 들고 있는 우산을 한번 보고, 그 아래에 서 있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또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