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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4화
1. 초여름 (4)
내게 닿는 그 시선이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나를 쫓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화를 내며 불편한 티를 내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넘어가는 게 속이 편했다.
“야, 뭘 봐.”
그러나 놈은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시비조의 목소리에 잠시 멈추어 섰다. 내 옆에 서 있던 놈은 나를 쳐다보는 대학생에게 험악한 얼굴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사람 처음 보냐? 기분 나쁘게 빤히 쳐다보고 지랄이야.”
놈은 키가 꽤 컸다. 180대 초반인 나보다도 한 뼘은 더 컸다. 안 그래도 크고 덩치도 좋은 놈이 대놓고 시비를 걸며 욕을 하니 상대방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황급히 지나갔다.
“…….”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뜻밖의 상황에 할 말을 잃고 놈을 쳐다보았다. 놈은 슬쩍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슈퍼마켓을 가리켰다. 냉동고 앞에는 아이스크림은 50% 상시 할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놈은 늘 그렇듯 내 의견은 묻지 않고 그대로 나를 끌고 슈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쏜다. 콘 먹을래?”
놈은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서 멋대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딱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놈은 콘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바를 하나 더 꺼내서 계산을 하고 왔다. 먹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자.”
놈은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예 포장을 찢어 버리곤 내게 건네주었다. 굳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놈을 쳐다봤는데 내 시선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놈은 선 자리에서 초콜릿 바를 몇 번 씹어 먹더니 입 안에 왕창 집어넣은 후에 콘 아이스크림의 봉지를 뜯었다. 둘 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문 채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 뭘 보냐니까.”
아무래도 오늘따라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는 것 같은 게 우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으름장을 놓았다. 놈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내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왜?”
막 중년의 남자에게 쓰읍, 협박조의 소리를 낸 놈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꽤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놈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냐고 묻던 것과 꼭 닮은 얼굴로 왜 그러냐고 말하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아, 설마.”
“…….”
“내가 너무 잘생겨서 쳐다봤구나.”
그리고 여전히 뻔뻔했다. 굳이 설명을 해 줘도 안 들을 것 같아 나는 그냥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원래 좀 잘생기긴 했잖아. 어? 막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하는 게 느껴진다니까.”
“시끄러워.”
“아, 하여튼 시기 질투란. 내가 참아야지.”
“뭐래.”
자화자찬하는 꼴이 우스워서 결국 한마디를 나도 모르게 툭 내뱉자 놈이 신이 난 듯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니 금세 우리 동네에 다다랐다. 동네에는 나무를 많이 심은 편이었다. 그늘이 진 곳이 많은 걸 확인하곤 놈이 우산을 접었다. 햇볕이 강한 날에는 항상 신경을 쓰는 편이긴 했지만 놈은 좀 과했다. 꼭 내가 햇볕을 쬐면 녹아 버리는 좀비인 양 구는 걸 보면 복잡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집 앞이었다. 놈의 손에는 콘 아이스크림의 포장지가 들려 있었다. 가방을 건네받으면서 놈의 손에 들려 있던 쓰레기를 가져갔다. 놈은 제 손에 있는 걸 내가 빼 가니 얼떨떨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웃고 말았다.
“야, 임선우.”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놈이 나를 불렀다.
“나 없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그러지 마.”
놈의 말에 나는 놈을 올려다보았다. 저런 말을 왜 하는 건지, 꼭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놈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쳐다만 보는데 놈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나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돼.”
“…….”
“자. 나 보고 싶을 때마다 봐.”
놈이 내 손에다가 무언가를 꼭 쥐여 준다. 놈의 반응에 도무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까 싶어 가만히 서 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니? 놈이 숨죽여서 큭큭거리며 웃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저 멀리로 뛰어갔다.
“버리면 안 돼, 너!”
놈은 멀리 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부피감이 거의 없으면서도 모서리가 까칠한 작은 종잇조각이 잡혔다. 증명사진이었다. 아무래도 학교 제출용으로 찍은 것 같았다. 사진 속 한태경은 내 눈앞에 있는 모습보다 아주 약간 앳되었고 좀 더 반듯해 보였다. 저 멀리서 내 반응을 지켜보던 놈은 내가 고개를 들자 손끝으로 머리를 콕 찍어 커다란 하트를 그렸다.
“나중에 봐!”
미친놈. 이상한 자식.
***
“아, 덥다.”
“에어컨 좀 틀어 주지.”
반 녀석들이 투덜거리며 복도로 나갔다. 날은 금세 더워졌다. 가뜩이나 운동량 많은 사내놈들만 모여 있는데 날씨까지 더우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기가 후끈했다. 선풍기에 에어컨까지 다 동원했지만 더위를 내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에어컨은 잘 틀어 주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더위를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놈들은 더위를 더위로 이겨 낼 요량인지 더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절정은 점심식사 후 5교시였다.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 동안 학교 안과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활개를 친 탓에 교실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 온 창문을 다 열고 앞뒷문까지 모두 열었지만 냄새는 피할 수 없었다.
“오늘 저녁 뭐냐?”
“제육볶음.”
“또?”
먹을 게 제육볶음밖에 없느냐는 투덜거림이 들렸다. 내 손에는 국어 수업 인쇄물을 모아 놓는 쫄대 파일이 들려 있었다. 이 시기에 긴 셔츠를 입고 수업을 듣는 학생은 전교에 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부모님이 가장 먼저 처리한 것이 내 교복과 머리 문제였으므로. 익숙하게 진단서와 사유서를 제출하고 교장의 허락까지 받았기에 지금의 복장이 가능한 것이었다.
여름에 입는 교복은 통풍이 잘되고 시원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덥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스팩으로 몸을 문지르는 대신 파일을 부채질하듯 흔들었다. 아직 여름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더운데 7월, 8월이 되면 얼마나 푹푹 찔까.
문득 한태경이 떠올랐다. 오늘은 뭘 하고 있을까. 사회봉사를 나가면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우려나.
한태경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게 벌써 나흘째였다.
***
“나 매점 간다.”
“어, 나도.”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니는 애들도 많이 늘었다.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매점에 가서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입 안이 마르면 나 역시도 차가운 것이 먹고 싶었다. 정수기의 물은 미지근해서 마시면 오히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점심시간, 공부를 하는 한두 명을 제외하곤 교실이 텅 비었다. 날이 더워졌다는 건 야외로 나돌아 다니기 적절해졌다는 의미다. 나는 영어 독해 문제집을 끄적거리다가 일어났다. 허기가 졌다. 이럴 때마다 한태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라도 챙겨 먹으라고 말하던 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놈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며칠 사이 점심에 뭔가를 먹는 게 버릇이 들었는지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팠다.
복도가 한적해질 때쯤 천천히 나와서 매점에 갔다. 놈이 일전에 사 온 적 있는 소시지 빵과 시원한 이온 음료를 사서 계산하여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옥상에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놈은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모를 매트리스를 펴서 앉을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나는 그렇게 의욕이 넘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힘을 쓰는 것도 싫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내게는 그게 훨씬 편했다. 빵을 봉지에서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한태경이 아니었으면 먹어 볼 일이 없었을 음식이었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강렬한 인스턴트의 맛과 온갖 소스의 조합에 머리가 아찔했다. 놈은 이걸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낯설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어이, 병신.”
나를 향한 적의가 담긴 그 말에는 본의 아니게 익숙해졌다.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억양이나 어투를 들을 때마다 지루해지곤 했다. 박상식의 괴롭힘은 대부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사내가 되다 만 어린 치기의 희생양 비슷한 것이었다.
“야, 뒤졌냐?”
어떻게든 시비를 걸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놈이 내 신경을 긁는 레퍼토리는 대부분 비슷했고, 너무 비슷해서 그것들은 대체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때때로 내가 앉은 자리 뒤에서 원인 모를 바람이 불곤 했다. 그러면 박상식과 붙어 다니는 놈이 멀리에서 낄낄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퍽.
“아, 거기에 있는 줄 몰랐네.”
그러다 재수가 없으면, 뒤통수에 잔뜩 힘이 실린 놈의 손이 스치고 지나갔다. 실수인 양 말을 꾸며 댔지만 그것이 고의라는 것쯤은 알았다. 박상식은 꽤나 힘을 실어 나를 때렸다. 심기가 불편할 때에는 일부러 연달아 서너 번을 때리기도 했다.
“야. 적당히 해.”
점점 힘이 실릴 즈음에는 놈의 친구인지 뭔지 모를 놈이 말리는 척을 했다. 이 모든 행위가 너무 일상적인 탓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누구도 박상식이 하는 짓을 따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반 아이들은 넘치는 혈기를 풀기 위해 희한한 짓들을 많이 했다. 단순한 이유로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창문은 한 달에 몇 번씩도 사소한 이유로 깨지곤 했다. 놀다가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학기 초에 몇 녀석이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너무 사소한 이유였으므로 대체로 기억할 수 없었다. 그놈들은 내가 반응을 받아 주지 않자 또라이 취급을 하곤 말아 버렸다. 재미가 없다며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 새끼 요즘 좀 특히 시체 같지 않아?”
그와 달리, 박상식은 나를 자극하는 일에 꽤 열심이었다. 때로는 관심을 받고 싶어 주변의 반응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놈의 열성적인 시다바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드렁해서 그나마도 쉽지 않았다.
놈의 시비를 무시하고 몇 교시를 더 버티자 수업이 완전히 끝났다. 있으나 마나 한 담임의 종례를 들은 후 가방을 챙겨 나왔다. 하교 시간인지라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나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것을 폈다.
내 손으로 우산을 펴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은 시각에 집에 가는 것도. 한태경이 있었을 때는 미적미적 교실에서 천천히 빠져나오곤 했는데, 녀석이 사라지니 굳이 시간을 때울 이유도 없어졌다.
“…….”
우산을 펴 드니 주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학교를 다닌 지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꽤 맛있는 가십거리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이 꽤 익숙해졌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놈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놈은 매번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갔지만, 제집이 어디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가에는 슈퍼도 있고 분식집도 있으니까 한 번 정도는 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릴없이 흘리는 시간이 30분 정도가 되면 자괴감에 혼자 웃곤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왜 며칠째 하는 건지, 나는 놈의 주소는커녕 연락처도 몰랐다. 어디에서 무슨 봉사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상가 건물을 빙글빙글 돌다가 지겨워질 즈음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한태경은 만나지 못했다.
놈이 없는 동안 나는 사진을 찍었다. 놈이 옥상 구석에 가져다 둔 매트리스와 놈이 주로 사 주던 매점의 간식들과, 옥상의 문과 난간, 그리고 하늘까지. 그다지 의미는 없었지만 그냥 찍었다.
“이 새끼 또 혼자 있네.”
텅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사진을 돌려 보는데 깐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가 들릴 때 즈음이면 박상식이 알아서 등장했다. 박상식과 붙어 다니는 놈은 혼자 있을 때는 굳이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뭐 하냐?”
아니나 다를까, 바로 뒤이어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퍽 가까운 사이처럼 들리는 그 물음에 내가 굳이 대답해 줄 이유는 없다. 카메라를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박상식은 내 책상의 대각선 방향에 서서 비딱한 자세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비를 걸 만한 것을 찾는 태도였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괜히 교과서를 꺼내어 펼쳤다.
최근 들어 내 스스로가 전에 비해 예민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괜히 짜증이 나고 진저리가 나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특별한 원인도 없는데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한폭탄처럼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 원인도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이 귀찮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다만 나는, 오늘이 지나면 주말이 오고, 또 주말이 지나면 한태경이 다시 올 것을 알았다. 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얼굴로 싱글벙글 웃으며 뻔뻔한 말을 할 것이다. 놈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재생되면서 머리가 좀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
종례가 끝난 후 맡은 구역을 청소하러 갔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청소를 하는 놈들은 몇 되지도 않았다. 청소 담당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사라지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담임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아차릴 정도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일부만 단체 생활에 합류하고 일부는 하지 않는, 부조리함을 낱낱이 고하며 정의를 세워 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빨리 사라지는 편이 더 나았다. 때문에 나는 그냥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말 뿐이었다.
복도 끝 계단을 대충 걸레질한 후 집에 가려는 찰나였다. 책상 한쪽에 걸어 둔 가방이 예상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렌즈에 바디까지 집어넣었는데 이 정도 무게감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교실을 빠져나가려다가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필통과 문제집 한두 권, 그리고 우산뿐이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 뭐 하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미친놈처럼 사물함으로 달려갔다. 내 사물함은 새로 수리한 이후로 특별히 고장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급히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풀고 열었지만 카메라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카메라를 사물함에 집어넣지 않았다.
“야, 임선우. 왜 그러냐니까.”
“걔한테 뭘 바라고 말을 거냐?”
“…….”
카메라는 비싼 것이 아니었다.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사진은 달랐다. 아직 사진을 옮기지 못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카메라를 찾으러 다녔다. 들어가 있을 리 없는 책상 서랍을 뒤지고, 또다시 사물함을 열고, 혹시 내가 못 찾은 게 아닌가 싶어 가방도 열었다.
“저 새끼 왜 저래?”
“모른다니까.”
아직 하교하지 않은 애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들렸다. 그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 하지만 그 안에 든 사진들은 다시 구할 수도 없었다. 메모리칩만 다시 구할 수 있다면.
“아, 너 뭐 해?”
교실 안을 구석구석 뒤지다가 청소 도구함을 열었다.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열 때부터 말썽이 많더니 억지로 열어젖히자 그 안에 든 빗자루며 대걸레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두 동강이 난 렌즈와 바디까지.
“야, 병신. 너 진짜 미쳤냐?”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뭐 하냐? 놈이 시비조로 물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굳이 찾지 않아도 누가 한 짓인지 뻔히 보였다. 황급히 카메라를 집어 들어 확인했지만 메모리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커녕 카메라도 만져 보지 못한 주제에 칩을 꺼내는 것만큼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저게 뭐야. 저게 왜 도구함에서 나와?”
“모르지. 저기다 넣었나.”
“누가 저기에 자기 물건을 둬?”
“야, 물건 간수를 얼마나 못 했으면 그런 데서 찾아?”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밀어 내고 박상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심 좀 해. 애새끼도 아니고. 퍽 나무라는 어투로 말하면서도 비죽 웃는 꼴이 더러웠다. 놈은 어깨에 힘을 주고 낄낄 웃으며 항상 붙어 다니는 자식과 어슬렁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카메라는 망가져도 괜찮았다. 다시 사면 되고, 어차피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메모리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은.
“아아악!”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샌가 내 손에는 대걸레가 들려 있었다. 걸레를 달아 놓지 않은 빈 자루를 집어 들고 놈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놈은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복도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숨을 몰아쉬며, 놈이 두 손으로 감싸 쥔 머리통으로 자루를 한 번 더 내리쳤다.
“아악!”
손가락에 맞았는지, 놈이 화들짝 머리에서 손을 빼며 비틀거렸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걸레 자루를 아무렇게나 내려쳤다. 그리 무겁지는 않은데 휘두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퍽, 퍽 타작 소리에 손이 시원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한참을 맞고 있던 놈이 희뜩 눈을 뜨곤 발길질을 했다. 나는 그런 공격을 막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고작 스쳐 지나가는 발길질에 휘청거렸다. 박상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내 손에서 자루를 빼앗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네가 나한테, 이 사이코 새끼!”
형세는 금세 역전되었다. 놈은 나보다 몇 배는 좋은 힘과 빠른 속도로 자루를 내리쳤다. 나는 바닥에 넘어져서 온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마대 자루가 나를 후려칠 때마다 몸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박상식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던가? 그러면 뭐 하나. 어차피 사진은 없는데. 어차피 메모리칩은 없을 것이다. 이미 사진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너 뭐 하는 거야!”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상식은 담임이 오건 말건 내게 마대 자루를 휘둘렀다.
“박상식!”
“이 씨발새끼!”
담임이 이름을 부르자 놈은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나를 내리쳤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퍽, 퍽.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놈이 온갖 욕을 지껄이며 더더욱 속도를 냈다.
“뭐 하는 거야, 따라와 이 새끼야!”
담임이 오자마자 파열음이 들렸다. 그 뒤로 짜증 섞인 박상식의 목소리도 언뜻 들었지만 담임이 놈의 뒤통수를 때리자 금세 조용해졌다. 놈이 사라지고 난 복도는 퍽 조용했다. 미묘한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
놈이 사라졌던 방향을 멍청하게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왔다. 나를 향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지금 카메라 때문에 저러는 거야?”
다리가 저렸다.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리를 절며 바닥에 내팽개쳐진 카메라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어차피 쓸모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햇볕이 뜨거웠다.
1. 초여름 (4)
내게 닿는 그 시선이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때로는 나를 쫓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화를 내며 불편한 티를 내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넘어가는 게 속이 편했다.
“야, 뭘 봐.”
그러나 놈은 나와 달랐던 모양이다. 시비조의 목소리에 잠시 멈추어 섰다. 내 옆에 서 있던 놈은 나를 쳐다보는 대학생에게 험악한 얼굴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사람 처음 보냐? 기분 나쁘게 빤히 쳐다보고 지랄이야.”
놈은 키가 꽤 컸다. 180대 초반인 나보다도 한 뼘은 더 컸다. 안 그래도 크고 덩치도 좋은 놈이 대놓고 시비를 걸며 욕을 하니 상대방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황급히 지나갔다.
“…….”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뜻밖의 상황에 할 말을 잃고 놈을 쳐다보았다. 놈은 슬쩍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슈퍼마켓을 가리켰다. 냉동고 앞에는 아이스크림은 50% 상시 할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놈은 늘 그렇듯 내 의견은 묻지 않고 그대로 나를 끌고 슈퍼로 데리고 갔다.
“내가 쏜다. 콘 먹을래?”
놈은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서 멋대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딱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놈은 콘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바를 하나 더 꺼내서 계산을 하고 왔다. 먹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자.”
놈은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아예 포장을 찢어 버리곤 내게 건네주었다. 굳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놈을 쳐다봤는데 내 시선을 뭐라고 생각한 건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놈은 선 자리에서 초콜릿 바를 몇 번 씹어 먹더니 입 안에 왕창 집어넣은 후에 콘 아이스크림의 봉지를 뜯었다. 둘 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문 채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 뭘 보냐니까.”
아무래도 오늘따라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보는 것 같은 게 우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으름장을 놓았다. 놈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내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왜?”
막 중년의 남자에게 쓰읍, 협박조의 소리를 낸 놈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꽤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놈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냐고 묻던 것과 꼭 닮은 얼굴로 왜 그러냐고 말하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아, 설마.”
“…….”
“내가 너무 잘생겨서 쳐다봤구나.”
그리고 여전히 뻔뻔했다. 굳이 설명을 해 줘도 안 들을 것 같아 나는 그냥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원래 좀 잘생기긴 했잖아. 어? 막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하는 게 느껴진다니까.”
“시끄러워.”
“아, 하여튼 시기 질투란. 내가 참아야지.”
“뭐래.”
자화자찬하는 꼴이 우스워서 결국 한마디를 나도 모르게 툭 내뱉자 놈이 신이 난 듯 웃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니 금세 우리 동네에 다다랐다. 동네에는 나무를 많이 심은 편이었다. 그늘이 진 곳이 많은 걸 확인하곤 놈이 우산을 접었다. 햇볕이 강한 날에는 항상 신경을 쓰는 편이긴 했지만 놈은 좀 과했다. 꼭 내가 햇볕을 쬐면 녹아 버리는 좀비인 양 구는 걸 보면 복잡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집 앞이었다. 놈의 손에는 콘 아이스크림의 포장지가 들려 있었다. 가방을 건네받으면서 놈의 손에 들려 있던 쓰레기를 가져갔다. 놈은 제 손에 있는 걸 내가 빼 가니 얼떨떨한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웃고 말았다.
“야, 임선우.”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놈이 나를 불렀다.
“나 없다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그러지 마.”
놈의 말에 나는 놈을 올려다보았다. 저런 말을 왜 하는 건지, 꼭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놈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쳐다만 보는데 놈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나 보고 싶다고 울면 안 돼.”
“…….”
“자. 나 보고 싶을 때마다 봐.”
놈이 내 손에다가 무언가를 꼭 쥐여 준다. 놈의 반응에 도무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까 싶어 가만히 서 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니? 놈이 숨죽여서 큭큭거리며 웃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저 멀리로 뛰어갔다.
“버리면 안 돼, 너!”
놈은 멀리 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부피감이 거의 없으면서도 모서리가 까칠한 작은 종잇조각이 잡혔다. 증명사진이었다. 아무래도 학교 제출용으로 찍은 것 같았다. 사진 속 한태경은 내 눈앞에 있는 모습보다 아주 약간 앳되었고 좀 더 반듯해 보였다. 저 멀리서 내 반응을 지켜보던 놈은 내가 고개를 들자 손끝으로 머리를 콕 찍어 커다란 하트를 그렸다.
“나중에 봐!”
미친놈. 이상한 자식.
***
“아, 덥다.”
“에어컨 좀 틀어 주지.”
반 녀석들이 투덜거리며 복도로 나갔다. 날은 금세 더워졌다. 가뜩이나 운동량 많은 사내놈들만 모여 있는데 날씨까지 더우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기가 후끈했다. 선풍기에 에어컨까지 다 동원했지만 더위를 내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에어컨은 잘 틀어 주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더위를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놈들은 더위를 더위로 이겨 낼 요량인지 더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절정은 점심식사 후 5교시였다.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 동안 학교 안과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활개를 친 탓에 교실에서는 땀 냄새가 진동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 온 창문을 다 열고 앞뒷문까지 모두 열었지만 냄새는 피할 수 없었다.
“오늘 저녁 뭐냐?”
“제육볶음.”
“또?”
먹을 게 제육볶음밖에 없느냐는 투덜거림이 들렸다. 내 손에는 국어 수업 인쇄물을 모아 놓는 쫄대 파일이 들려 있었다. 이 시기에 긴 셔츠를 입고 수업을 듣는 학생은 전교에 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부모님이 가장 먼저 처리한 것이 내 교복과 머리 문제였으므로. 익숙하게 진단서와 사유서를 제출하고 교장의 허락까지 받았기에 지금의 복장이 가능한 것이었다.
여름에 입는 교복은 통풍이 잘되고 시원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덥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스팩으로 몸을 문지르는 대신 파일을 부채질하듯 흔들었다. 아직 여름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더운데 7월, 8월이 되면 얼마나 푹푹 찔까.
문득 한태경이 떠올랐다. 오늘은 뭘 하고 있을까. 사회봉사를 나가면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우려나.
한태경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게 벌써 나흘째였다.
***
“나 매점 간다.”
“어, 나도.”
아이스크림을 물고 다니는 애들도 많이 늘었다.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매점에 가서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입 안이 마르면 나 역시도 차가운 것이 먹고 싶었다. 정수기의 물은 미지근해서 마시면 오히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점심시간, 공부를 하는 한두 명을 제외하곤 교실이 텅 비었다. 날이 더워졌다는 건 야외로 나돌아 다니기 적절해졌다는 의미다. 나는 영어 독해 문제집을 끄적거리다가 일어났다. 허기가 졌다. 이럴 때마다 한태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라도 챙겨 먹으라고 말하던 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놈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며칠 사이 점심에 뭔가를 먹는 게 버릇이 들었는지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팠다.
복도가 한적해질 때쯤 천천히 나와서 매점에 갔다. 놈이 일전에 사 온 적 있는 소시지 빵과 시원한 이온 음료를 사서 계산하여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옥상에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놈은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모를 매트리스를 펴서 앉을 만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나는 그렇게 의욕이 넘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힘을 쓰는 것도 싫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내게는 그게 훨씬 편했다. 빵을 봉지에서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한태경이 아니었으면 먹어 볼 일이 없었을 음식이었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강렬한 인스턴트의 맛과 온갖 소스의 조합에 머리가 아찔했다. 놈은 이걸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낯설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어이, 병신.”
나를 향한 적의가 담긴 그 말에는 본의 아니게 익숙해졌다.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억양이나 어투를 들을 때마다 지루해지곤 했다. 박상식의 괴롭힘은 대부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저 사내가 되다 만 어린 치기의 희생양 비슷한 것이었다.
“야, 뒤졌냐?”
어떻게든 시비를 걸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놈이 내 신경을 긁는 레퍼토리는 대부분 비슷했고, 너무 비슷해서 그것들은 대체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때때로 내가 앉은 자리 뒤에서 원인 모를 바람이 불곤 했다. 그러면 박상식과 붙어 다니는 놈이 멀리에서 낄낄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퍽.
“아, 거기에 있는 줄 몰랐네.”
그러다 재수가 없으면, 뒤통수에 잔뜩 힘이 실린 놈의 손이 스치고 지나갔다. 실수인 양 말을 꾸며 댔지만 그것이 고의라는 것쯤은 알았다. 박상식은 꽤나 힘을 실어 나를 때렸다. 심기가 불편할 때에는 일부러 연달아 서너 번을 때리기도 했다.
“야. 적당히 해.”
점점 힘이 실릴 즈음에는 놈의 친구인지 뭔지 모를 놈이 말리는 척을 했다. 이 모든 행위가 너무 일상적인 탓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누구도 박상식이 하는 짓을 따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반 아이들은 넘치는 혈기를 풀기 위해 희한한 짓들을 많이 했다. 단순한 이유로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창문은 한 달에 몇 번씩도 사소한 이유로 깨지곤 했다. 놀다가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학기 초에 몇 녀석이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너무 사소한 이유였으므로 대체로 기억할 수 없었다. 그놈들은 내가 반응을 받아 주지 않자 또라이 취급을 하곤 말아 버렸다. 재미가 없다며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 새끼 요즘 좀 특히 시체 같지 않아?”
그와 달리, 박상식은 나를 자극하는 일에 꽤 열심이었다. 때로는 관심을 받고 싶어 주변의 반응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놈의 열성적인 시다바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드렁해서 그나마도 쉽지 않았다.
놈의 시비를 무시하고 몇 교시를 더 버티자 수업이 완전히 끝났다. 있으나 마나 한 담임의 종례를 들은 후 가방을 챙겨 나왔다. 하교 시간인지라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무척 많았다. 나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다른 사람들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것을 폈다.
내 손으로 우산을 펴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은 시각에 집에 가는 것도. 한태경이 있었을 때는 미적미적 교실에서 천천히 빠져나오곤 했는데, 녀석이 사라지니 굳이 시간을 때울 이유도 없어졌다.
“…….”
우산을 펴 드니 주변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학교를 다닌 지 1년 하고도 반년이 더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꽤 맛있는 가십거리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이 꽤 익숙해졌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놈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놈은 매번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갔지만, 제집이 어디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가에는 슈퍼도 있고 분식집도 있으니까 한 번 정도는 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릴없이 흘리는 시간이 30분 정도가 되면 자괴감에 혼자 웃곤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왜 며칠째 하는 건지, 나는 놈의 주소는커녕 연락처도 몰랐다. 어디에서 무슨 봉사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상가 건물을 빙글빙글 돌다가 지겨워질 즈음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한태경은 만나지 못했다.
놈이 없는 동안 나는 사진을 찍었다. 놈이 옥상 구석에 가져다 둔 매트리스와 놈이 주로 사 주던 매점의 간식들과, 옥상의 문과 난간, 그리고 하늘까지. 그다지 의미는 없었지만 그냥 찍었다.
“이 새끼 또 혼자 있네.”
텅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사진을 돌려 보는데 깐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가 들릴 때 즈음이면 박상식이 알아서 등장했다. 박상식과 붙어 다니는 놈은 혼자 있을 때는 굳이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뭐 하냐?”
아니나 다를까, 바로 뒤이어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퍽 가까운 사이처럼 들리는 그 물음에 내가 굳이 대답해 줄 이유는 없다. 카메라를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박상식은 내 책상의 대각선 방향에 서서 비딱한 자세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비를 걸 만한 것을 찾는 태도였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괜히 교과서를 꺼내어 펼쳤다.
최근 들어 내 스스로가 전에 비해 예민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괜히 짜증이 나고 진저리가 나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특별한 원인도 없는데 몸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한폭탄처럼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 원인도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이 귀찮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다만 나는, 오늘이 지나면 주말이 오고, 또 주말이 지나면 한태경이 다시 올 것을 알았다. 놈은 또 아무 일 없었던 얼굴로 싱글벙글 웃으며 뻔뻔한 말을 할 것이다. 놈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재생되면서 머리가 좀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
종례가 끝난 후 맡은 구역을 청소하러 갔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청소를 하는 놈들은 몇 되지도 않았다. 청소 담당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사라지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담임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아차릴 정도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일부만 단체 생활에 합류하고 일부는 하지 않는, 부조리함을 낱낱이 고하며 정의를 세워 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빨리 사라지는 편이 더 나았다. 때문에 나는 그냥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말 뿐이었다.
복도 끝 계단을 대충 걸레질한 후 집에 가려는 찰나였다. 책상 한쪽에 걸어 둔 가방이 예상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렌즈에 바디까지 집어넣었는데 이 정도 무게감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교실을 빠져나가려다가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필통과 문제집 한두 권, 그리고 우산뿐이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 뭐 하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미친놈처럼 사물함으로 달려갔다. 내 사물함은 새로 수리한 이후로 특별히 고장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급히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풀고 열었지만 카메라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카메라를 사물함에 집어넣지 않았다.
“야, 임선우. 왜 그러냐니까.”
“걔한테 뭘 바라고 말을 거냐?”
“…….”
카메라는 비싼 것이 아니었다.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든 사진은 달랐다. 아직 사진을 옮기지 못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카메라를 찾으러 다녔다. 들어가 있을 리 없는 책상 서랍을 뒤지고, 또다시 사물함을 열고, 혹시 내가 못 찾은 게 아닌가 싶어 가방도 열었다.
“저 새끼 왜 저래?”
“모른다니까.”
아직 하교하지 않은 애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들렸다. 그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어떻게 되든 괜찮았다. 하지만 그 안에 든 사진들은 다시 구할 수도 없었다. 메모리칩만 다시 구할 수 있다면.
“아, 너 뭐 해?”
교실 안을 구석구석 뒤지다가 청소 도구함을 열었다.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열 때부터 말썽이 많더니 억지로 열어젖히자 그 안에 든 빗자루며 대걸레가 와르르 쏟아졌다. 그리고 두 동강이 난 렌즈와 바디까지.
“야, 병신. 너 진짜 미쳤냐?”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뭐 하냐? 놈이 시비조로 물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굳이 찾지 않아도 누가 한 짓인지 뻔히 보였다. 황급히 카메라를 집어 들어 확인했지만 메모리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사진은커녕 카메라도 만져 보지 못한 주제에 칩을 꺼내는 것만큼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저게 뭐야. 저게 왜 도구함에서 나와?”
“모르지. 저기다 넣었나.”
“누가 저기에 자기 물건을 둬?”
“야, 물건 간수를 얼마나 못 했으면 그런 데서 찾아?”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밀어 내고 박상식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심 좀 해. 애새끼도 아니고. 퍽 나무라는 어투로 말하면서도 비죽 웃는 꼴이 더러웠다. 놈은 어깨에 힘을 주고 낄낄 웃으며 항상 붙어 다니는 자식과 어슬렁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카메라는 망가져도 괜찮았다. 다시 사면 되고, 어차피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메모리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은.
“아아악!”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샌가 내 손에는 대걸레가 들려 있었다. 걸레를 달아 놓지 않은 빈 자루를 집어 들고 놈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놈은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복도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숨을 몰아쉬며, 놈이 두 손으로 감싸 쥔 머리통으로 자루를 한 번 더 내리쳤다.
“아악!”
손가락에 맞았는지, 놈이 화들짝 머리에서 손을 빼며 비틀거렸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걸레 자루를 아무렇게나 내려쳤다. 그리 무겁지는 않은데 휘두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퍽, 퍽 타작 소리에 손이 시원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한참을 맞고 있던 놈이 희뜩 눈을 뜨곤 발길질을 했다. 나는 그런 공격을 막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고작 스쳐 지나가는 발길질에 휘청거렸다. 박상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벌떡 일어나 내 손에서 자루를 빼앗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네가 나한테, 이 사이코 새끼!”
형세는 금세 역전되었다. 놈은 나보다 몇 배는 좋은 힘과 빠른 속도로 자루를 내리쳤다. 나는 바닥에 넘어져서 온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마대 자루가 나를 후려칠 때마다 몸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렀다.
박상식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던가? 그러면 뭐 하나. 어차피 사진은 없는데. 어차피 메모리칩은 없을 것이다. 이미 사진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너 뭐 하는 거야!”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상식은 담임이 오건 말건 내게 마대 자루를 휘둘렀다.
“박상식!”
“이 씨발새끼!”
담임이 이름을 부르자 놈은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껏 나를 내리쳤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퍽, 퍽.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놈이 온갖 욕을 지껄이며 더더욱 속도를 냈다.
“뭐 하는 거야, 따라와 이 새끼야!”
담임이 오자마자 파열음이 들렸다. 그 뒤로 짜증 섞인 박상식의 목소리도 언뜻 들었지만 담임이 놈의 뒤통수를 때리자 금세 조용해졌다. 놈이 사라지고 난 복도는 퍽 조용했다. 미묘한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
놈이 사라졌던 방향을 멍청하게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왔다. 나를 향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지금 카메라 때문에 저러는 거야?”
다리가 저렸다. 너무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리를 절며 바닥에 내팽개쳐진 카메라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어차피 쓸모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햇볕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