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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아닌 사이

1화



Trrrr Trrrr.

― 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의 사정에 의해 당분간…….

“후―”

윤진은 일주일째 같은 말만 내뱉는 핸드폰의 종료 버튼을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패션 매거진 ‘엣지스(EDGES)’의 4월호 커버 화보 촬영을 위해 흥을 돋을 목적으로 틀어 놓은 록 음악이 흥 대신 두통을 선사했다.

“어이! 어시 어딨어! 저 재킷 좀 갖고 와 봐. 이 원피스에는 저 재킷이 어울리겠는데?”

게다가 짜증이 잔뜩 섞인 포토그래퍼의 고함도 한몫 더하는 중이었다.

“아니다. 좀 전의 그 옷이 낫네. 저 노랑 점퍼 다시 갖고 와 봐.”

그때 엣지스의 부편집장이자 윤진의 대학교 선배인 선영이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어디 아파?”

“좀.”

윤진은 쉴 새 없이 말을 바꾸는 포토그래퍼를 바라보며 오른쪽 관자놀이를 검지와 중지로 꾹꾹 눌렀다.

“네 의상들 컷은 끝났으니 가 봐.”

“그래도 다들 촬영하는데 어떻게 저만 가요. 근데, 저 인간은 어디서 주워 온 거예요?”

어디서 저런 개뼈다귀 같은 걸, 이란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팔짱을 낀 윤진이 선영과 나란히 서서 포토그래퍼를 바라보았다.

“우리 주님의 초이스. 프랑스 유학파시란다.”

선영이 말하는 주님이란 엣지스의 사주이며 편집자를 의미했다.

그때, ‘이 옷에 저 구두 매치해 봐. 아니, 그거 말고 그 전 것으로 다시 해 봐.’라는 포토그래퍼의 지시에 옷을 가져오던 막내 어시가 두 눈이 시뻘게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분노를 넘어 고통의 단계에 다다른 표정.

보통 포토그래퍼들은 잡지사와 스타일리스트가 잡은 콘셉트와 의상에 따라 사진을 찍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편집자의 백으로 들어왔다던 이 포토그래퍼는 계획된 콘셉트가 아닌 자신만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이 초짜 포토그래퍼의 5분마다 바뀌는 영감으로 인해 촬영은 이미 두 시간 넘게 초과되었고, 모델들뿐만 아니라 메이크업팀, 의상팀, 소품팀, 어시스턴트, 에디터까지 모두의 얼굴에 피곤함이 한가득이었다.

어쩜 저렇게 주변 사람들 생각도 안 하고 일을 하시는지.

“너무하시네, 진짜.”

“나도 미치겠다. 우리 딸내미는 엄마 언제 오느냐고 난리인데. 아, 전화 또 왔다.”

딸에게서 온 전화를 확인한 선영이 마치 빚 독촉 전화라도 받는 얼굴로 스튜디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포토그래퍼 한 번,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본 윤진이 조금 전 전화를 받지 않은 남주에게 문자를 남겼다.

물론 이 문자에 답이 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지난 일주일간 전화만 수십 번, 문자만 열 개 넘게 보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답도 받지 못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란 심정으로 틈날 때마다 전화를 걸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말을 바꾸는 포토그래퍼보다 그녀를 빡치게 하는 건 남주였다.

“뭘 하는데 이렇게 바쁘시나? 혹시 나 몰래 연애라도 하는 건 아니지?”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는 뷰티팀의 최희준 에디터였다.

평상시라면 웃으면서 응대를 하겠지만 오늘은 내가 연애를 하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세요, 한마디 톡 쏘아 주고만 싶다. 하지만 여긴 직장이니까.

“에이, 설마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상큼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엣지스에서 일하고 난 뒤부터 희준은 몇 번 분위기 좋은 바를 알고 있다며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신호를 줬다.

물론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했고. 근데 눈치가 없는 건지 계속 저러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면 잘라 내기가 편할 텐데, 일로 엮인 사람이라 쉽지가 않다.

“오늘 끝나고 시간 있어?”

“…….”

못 들은 척, 손으로는 꾹꾹 문자를 눌러 찍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치대시네. 곽남주 때문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좋은 말로 대꾸해 줄 힘도 없다.

“적당히 튕겨요. 이제 서른인데. 빨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그러다가 이 바닥 노처녀들처럼 됩니다.”

무시해야 하는데. 이렇게 불난 데 부채질하는 인간은 정말.

문자를 찍던 스마트폰 화면에 엄지손톱이 드르륵 긁혔다.

시끄러운 금속성의 음악, 일주일 내내 전화를 받지 않는 곽남주와 이랬다저랬다 똥개 훈련을 시키는 포토그래퍼, 거기에 희준의 깐족거림까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던 신경 줄이 결국, 툭 하고 끊겨 버렸다.

“수영아!”

윤진은 자신의 보조인 수영을 급히 불렀다.

“왜요, 언니?”

스튜디오 저편에 있던 수영이 윤진 쪽으로 몸을 일으키며 쳐다보았다. 윤진은 몸을 희준 쪽으로 고정한 채 얼굴만 수영 쪽으로 돌렸다. 그러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수영에게 수어(手語)로 대화하려는 듯.

재빨리 바뀌는 손동작 중에서 손등을 자신에게 향하고 중지를 치켜드는 동작에 희준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때까지 나름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보여 주던 예의 따위, 개나 주라지.

“윤진 씨 설마 그거 나한테 하는 욕이야?”

회심의 미소를 지은 윤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설마요. 이거 수어로 산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요즘 너무 짜증 나는 일이 많아서 수영이한테 주말에 등산이나 가서 좋은 경치 보며 스트레스 좀 풀자고 한 거예요.”

“아니, 옆에 있으면서 무슨 수어?”

“스튜디오가 너무 시끄러워서 제가 잘 못 알아듣거든요. 저희 그래서 종종 촬영할 때는 수어로 대화해요. 확실하거든요.”

누굴 바보로 아나. 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으니 따질 수도 없다. 희준의 얼굴이 벌게졌다.

수영이 윤진 쪽으로 걸어오며 맞장구를 치자 희준은 더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꺼림칙하지만 딱히 증거가 없다. 그는 씩씩대며 스튜디오 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으로 다가온 수영이 주머니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초콜릿 하나를 꺼내 윤진의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차라리 단것 좀 먹으며 기분 푸는 건 어때요?”

“그 초콜릿 하나가 몇 칼로리인지 아니? 스트레스만 더 쌓일걸.”

“언니. 그래도 작작 해요. 그러다가 누구 수어 알아보는 사람 있으면 개망신당해요.”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낸 초콜릿 하나를 제 입안에 쏙 넣으며 수영이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10년 넘게 했지만, 아무한테도 안 걸렸어. 내가 다 사람 가려 가면서 한다니깐.”

속 시원한 마음으로 머리를 한 번 털어 주었다. 조명 아래 강하게 웨이브 진 붉은색 머리카락이 사자의 갈기처럼 반짝였다.

곽남똥 때문에 열받은 것까지 한 번에 푼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길래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래? 흥.

“후우!”

그녀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깟 손가락 욕으로 제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 법이다. 윤진은 다시 도도한 얼굴을 하고 허리를 폈다.

160대 초반의 키에 살짝 마른 몸매, 그리고 그 마른 몸과 대조되는 볼륨 있는 가슴을 돋보이게 하는 깊게 파인 블랙 V넥 티.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과 10센티는 족히 될 만한 부티 부츠는 윤진을 한 마리의 섹시한 표범처럼 보이게 했다.

게다가 살짝 올려 뺀 아이라인 때문에 고양이 같은 눈망울, 오뚝한 코, 빨간 립스틱을 발라 도드라지는 앵두 같은 입술은 천박하거나 야하기보다는 당당해 보였다.

윤진은 작은 얼굴을 감싸는 긴 웨이브 머리를 흔들며 포토그래퍼 쪽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 * *



“피고 김형석은 불호캐피탈의 최진한 상무를 만난 적 있죠?”

폐부까지 훑는 듯한 날카로운 남주의 시선에 그때까지 여유롭던 김형석의 어깨가 움찔했다. 남주의 시선을 외면하며 김형석이 변호인단 측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변호인이 김형석에게 아무 반응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아닙니다. 이는 대한그룹에서 자금을 담당하는 피고 김형석이 착오가 아닌 재산 은닉의 목적으로 불호캐피탈의 최진한 상무를 만났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24호 증거 확인 부탁드립니다.”

미처 증거 목록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눈에 띄게 당황해 했다. 피고인 측 방청객 자리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공판은 다음 주 수요일로 잡겠습니다.”

판사의 한마디에 쥐 죽은 듯 조용하던 법정이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김형석과 그의 변호인이 남주를 죽일 듯 노려보고 법정을 떠났다.

하지만 그런 건 그의 작은 관심도 끌지 못했다. 재판에 사용된 자료들을 챙겨 코팅이 모두 벗겨진 지 오래인 낡은 서류 가방에 주워 담았다.

1시부터 시작된 재판 준비를 하느라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된장찌개 백반을 주문했다.

쟁반을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한석기 부장 검사였다. 대학 직속 선배이기는 했지만, 다른 지검에 있어 평상시에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지는 않은 인물인데.

“네. 전화받았습니다.”

― 어이, 곽검. 나 한 부장이야.

“네. 잘 지내고 계십니까?”

― 그래, 나야 잘 지내지. 우리 시간 날 때 한번 봐야 하는데 말이야. 곽검이 도통 필드에도 안 나오니까.

“이번 사건 끝나고 인사드리겠습니다.”

― 어허, 사람이 뭐 그리 바빠.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 검찰청 근처에 있는 한미가에서 술 한잔 어떤가? 내가 긴히 할 얘기도 있고 말이야.

혹시나 했는데. 다급하게 만나자고 하는 말에서 그의 의중을 읽었다.

이놈의 대한그룹은 손을 안 뻗는 데가 없군.

“죄송합니다, 부장님. 지금 진행 중인 재판 때문에 제가 요새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이 건 끝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 다급하게 ‘이봐, 어허, 이 사람 보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대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검사로 일하다 보면 때때로 모르는 사람들이나 혹은 소식이 뜸했던 인물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피의자들 측근의 협박 전화나 죄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피의자 가족의 전화, 그리고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돈의 팔촌까지.

그에게는 모두 업무에 방해가 되는 전화일 뿐이다.

특히 이번처럼 거물급 인사와의 소송이 진행될 때면 온갖 인맥을 동원해 접근해 오기 일쑤였다.

못마땅한 얼굴로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다.

그런데 두 번째 숟가락을 뜨기도 전, 같은 법정에 있던 피의자 측 변호인단 중 한 명인 김인호가 맞은편에 앉았다.

“수사 검사가 수사나 맡지, 바쁘다면서 공판엔 왜 껴?”

“대한그룹 처넣고 나중에 승진 길 막히면 언론 플레이 좀 하려고.”

남주가 된장찌개의 두부를 꺼내 흰밥에 비볐다. 꾹꾹 눌러 힘으로 일그러뜨리는 두부를 꼭 대한그룹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네. 인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 안 바쁘냐? 다른 사건도 많을 거 아냐. 대한그룹 좀 그만 물고 늘어져.”

“그렇게 바쁜 게 걱정이 되면 대한그룹 자금 세탁 자료라도 넘겨주든가.”

그가 두부에 비빈 밥을 크게 한입 떠 야무지게 씹었다.

“그런 게 어딨다고 자꾸 그러냐?”

“그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찾아서 구경시켜 줄게.”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인호는 남주를 노려보았다.

대학교 동기인 남주와는 한때 같이 스터디를 할 정도로 친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남주에게 내쳐진 느낌이랄까.

앞에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교수님과 동기들의 관심은 온통 눈앞에 있는 놈을 향해 있었다. 말로 현란한 너 같은 놈과는 달리 진중한 매력이 있다나 뭐라나. 개풀 뜯어 먹는 소리라 치부했다.

하지만 여자 선후배와 동기들까지 뭐에 홀린 듯 남주의 옆에서만 넘쳐 났다. 나보고는 헤어스타일을 바꿔 보라는 둥, 그린색 컬러가 얼굴에 안 받는다는 둥 별의별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4학년이 될 때까지 새내기 오티 때 맞춘 맨투맨을 입고 다니고, 한여름 그의 집에서 열린 스터디에 모시 적삼을 입고 나타난 것에 대해 동기들에게 얘기하자, 돌아온 말이라고는.



‘환경을 생각하는 거지. 남주가 환경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걔는 잘생긴 애가 참 정신이 바르지 않니?’

‘원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야. 그 얼굴에 뭔들 안 어울리겠니.’



이성이라고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평가라니.

하여간 존재 자체만으로 인호의, 아니 모든 남자 동기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키던 그였다.

곽남주가 그보다 먼저 사법 고시를 패스한 것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연수원 기수도 안 맞으니 부딪칠 일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웬걸.

기업 전문 유명 로펌에 들어간 후에도 이 개자식에게 깨지는 선배들의 재판 소식에 곽남주 이야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귀에 꽂혔다.

다행히 아직 주니어 변호사라 직접적으로 부딪친 일은 없지만, 곧 시니어로 올라가 이 자식과 부딪칠 일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차라리 대표 말마따나 어서 빨리 이 자식을 섭외해 같은 편이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곽남주가? 신입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검사가 되겠다고 밝힌 이놈이 그럴 일 없다는 걸 아니 더욱 불퉁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또 어떻게 찾았어?”

“뭘?”

“알면서 그런다.”

인호가 못마땅하다는 듯 검지로 톡톡 테이블을 쳤다. 햇빛에 반사된 값비싸 보이는 손목시계가 유난히 번쩍였다. 그 모습에 남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꼬라지는 어디 90년대에서 온 것같이 구식으로 생겨서는 증거 수집과 일 처리는 아주 발 빠르게 해내고 있다.

“적당히 해. 그냥 대충 집행 유예 6개월 선에서 합의 좀 보자.”

“합의는 무슨.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무슨 합의를 봐.”

단호한 남주의 목소리에 인호가 ‘어휴, 저 꼴통.’ 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린 후 다시 몸을 테이블 쪽으로 당겨 앉았다.

“너 맨날천날 검사로 있다가 끝낼 거야? 나중에 너도 검사 그만두면 사회 나가서 살아야 할 것 아냐. 대한그룹이랑 친분 좀 쌓아 두면…….”

드르륵.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남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인호의 시선도 그의 핸드폰 화면으로 향했다.



[오빠. 나 윤진이에요.]



라는 팝업창 메시지에 인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그 순간, 기억을 떠올린 인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저 윤진이 그 이윤진이냐?”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 없이 남주는 계속 식사를 했다.

“맞구나, 이윤진?! 너 걔 아직 만나? 예전에도 예뻤는데, 가만있어 보자. 걔가 올해 몇 살이더라. 우리보다 네 살 어리니까 스물여덟 살인가? 한창 예쁠 때네.”

인호가 테이블 위로 한껏 몸을 숙이며 흥미를 보였다. 교복만 입어도 시선을 잡아끌게 예뻤는데, 지금은 얼마나 더 예뻐졌을지. 갑자기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사이 남주와 윤진이 사귀었나? 에이, 말도 안 되지.

그러면서도 인호는 호기심에 슬쩍 남주를 떠보았다.

“안 사겨? 그럼 내가 한번 만나 볼까? 나한테 연락처 넘겨 봐.”

싹싹. 스테인리스 밥공기를 긁는 소리가 꽤 요란했다. 그런다고 포기할 김인호가 아니다.

“아까 전화번호가 뭐였더라. 010 2307 5…….”

기억을 더듬으며 나머지 번호를 떠올리는데.

“보이스 피싱.”

어느새 식사를 마친 남주가 테이블 위에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 두면서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보이스 피싱?”

“김미영 팀장 같은 존재란 소리지.”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묻던 인호는 그의 대답에 ‘미친.’ 욕설을 내뱉으며 머릿속 번호를 털어 냈다.

“간다.”

그 말만 남기고 남주는 핸드폰과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 잘 가라.”

얼결에 인사를 한 뒤에도 인호는 뭔가 뒤가 찜찜했다.

보이스 피싱이라니. 아닌 거 같은데.

“뭐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