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화
999살, 노땅 이무기 고이룡
“99살? 99살짜리가 승천한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현은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참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는 이룡이 바로 두통의 원인이었다.
“말이 안 될 건 또 뭐랍니까.”
“내 나이가 999살이다. 근데 날 제치고 새파랗게 어린 것이……. 아아아악! 미치고 환장하겠네.”
미치고 환장하겠는 건 바로 저랍니다.
저 안하무인 철딱서니가 어딜 봐서 999살인 건지. 현은 차마 뱉지 못한 말을 한숨으로 대신했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어린 이무기들 승천하는 소식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 좀 내려놓으시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과 티라미수 한 조각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현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그 녀석들은 여의주를 어떻게 이렇게 잘도 찾는 거야?”
“그냥 느낌이 딱 온다니까요. 때가 되면.”
“아니 그러니까 그놈의 느낌이 딱 언제 오는 거냐고. 아는 이무기 있어? 나보다 나이 많은 이무기? 없지? 없잖아! 근데 왜 난 아직까지도 그놈의 느낌이라는 게 안 드는 거냐고!”
이젠 숫제 의자에 앉아 어린애처럼 발을 바동거리는 이룡을 보고 현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저 진상을 조용히 시키려면 이제 이 방법뿐이다.
“있잖아요. 도련님보다 나이 더 많은 이무기.”
“누구? 어디?”
이룡이 반짝이는 눈으로 몸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도련님 앞에요!”
이룡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푹 주저앉았다.
“에이, 그건 아니지. 현은 여의주를 물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제 발로 뻥 차 버린 사람이고.”
“네. 누구 때문에 그랬지요. 이무기 일생에 한 번뿐일 수 있다는 그 기회를.”
현이 쟁반을 챙겨들고 천천히 싱크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샐쭉한 표정으로 이룡에게 면박을 줬다.
이룡의 입을 막기 위해선 이 이야기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현은 씁쓸함을 곱씹어야 했지만.
“윽! 그, 그거야……. 아, 그러니까 내가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있잖아!”
얼씨구! 되레 적반하장 목소리를 높이는 이룡이다.
현은 언제는 저 남자가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던가 싶으면서도 매번 저런 식이니 이룡이 얄밉고 또 얄밉다. 단번에 현의 미간에 주름이 맺혔다.
“네네. 퍽도 고마우십니다. 그거나 드시고 어서 일하러 가시죠! 아시죠? 저 많이 먹는 거. 절 먹여 살리시려면 부지런지 버셔야 할 거 아닙니까.”
가시 돋친 현의 비아냥거림에 이룡이 움찔거렸다.
“게다가 요즘 ‘여주’라는 경쟁 업체도 생겨서 일도 줄어드는 판이데, 더 열심히 하셔야죠.”
“으으으! 이 악덕 집사. 집주인을 이렇게 부려 먹는 집사가 어딨어?”
“2절까지 할까요? 제가 어쩌다 여의주를 잃어버리고 깡철이가 됐는지?
현이 정색한 얼굴로 이룡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룡이 움찔거리며 몸을 사렸다. 알고 있었다. 이 이상 현을 자극해 이로울 게 없다는 걸. 작전상 후퇴다!
“돼, 됐거든. 나가면 될 거 아냐!”
이룡은 한 입에 티라미수를 털어 넣고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앗뜨뜨뜨뜨!”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 것 같다. 급히 커피 잔을 내려놓다가 바지와 손에도 쏟았다.
“앗뜨! 앗뜨!”
이룡이 바지에 흘린 커피를 급하게 손으로 털어 냈다. 화끈한 기운이 다리로 파고들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좋아는 티라미수와 함께 느긋하게 지냈을 이 황금 같은 시간을…….
괜히 아침에 ‘이무기 소사이어티’를 들여다봐서는.
‘이무기 소사이어티’는 이무기들 세계의 이야기를 엮은 월간 인터넷 잡지 같은 거였다.
이무기 인증을 한 회원들에게만 공개하는 비공개 사이트로, 누가 만들고 운영하는지 몰라도 이무기들 사는 이야기, 혹은 승천에 관한 소식들이 제법 실하게 업로드 되었다.
이룡의 이야기도 몇 번 올라왔었다. 현존하는 가장 나이 많은 이무기로.
그때 얼마나 화가 나고 창피했는지, 당장이라도 편집자 찾아 멱살잡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무기 사회 특성상 신분에 대한 비밀 보장이 생명인 만큼 몇 달을 매달렸어도 그 웹사이트 작성자가 누군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볼 때마다 우울하고 조바심 나는 거 왜 들여다보냐며 현은 핀잔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999살이 되도록 승천은커녕 승천에 대한 단서도 못 찾고 있는 이룡으로서는 그쪽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즐기며 살자는 주의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이 그를 등진 듯했다. 기분은 우울모드로 치닫고 있고 커피는 뜨겁고. 경쟁 업체 하나 생긴 게 그게 눈엣가시처럼 일을 야금야금 빼 가니 티라미수 한 조각도 맘 편하게 즐길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뜨거운 커피에 덴 손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아이구! 조심 좀 하시지. 다리 어떠세요? 덴 것 같지는 않으세요?”
현이었다. 재빠르게 물티슈를 챙겨와 이룡의 옷과 손을 닦아 내고 살폈다. 쏘아보던 싸한 기운은 언제 사라진 건지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쭈그리고 앉아 걱정스럽게 이룡의 손을 바라보던 현이 고개를 불쑥 들어 이룡을 올려다보았다.
“손은 괜찮은 것 같은데 다리는 어떠세요? 바지 벗어 보세요. 한 번 보게.”
이룡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괜히 창피해진 이룡이 어눌하게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야! 괜찮아. 그렇게 뜨겁지 않아.”
“그래도 확인 한 번 하는 게…….”
“괜찮다니까.”
머쓱해진 이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현이 이룡의 손목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도련님!”
“어?”
현이 이룡에게 한 발 다가왔다. 현은 이룡보다 머리 하나 만큼 키가 컸다. 그러니 이룡은 자연 올려다 볼 수밖에.
“이거…….”
현의 손이 이룡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어……?”
그가 머뭇하는 사이 현의 손이 이룡의 입가를 쓸었다. 이룡이 흠칫거렸다. 이런, 위험하다.
“어린앱니까? 얼굴에 이런 거나 묻히고? 머리는 이게 또 뭡니까? 아침에 샤워하신 거 맞아요? 클라이언트가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첫인상은 신뢰를 쌓는데 가장 큰 몫을 담당한다고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래서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사로잡으시겠어요? 어서 가서 바지 갈아입으시고. 아! 셔츠도 좀 갈아입으시죠? 셔츠는 푸른 계열로, 아시죠? 푸른 색상이 신뢰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부각시켜 준다는 연구결과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현의 잔소리 융단 폭격!
저 잔소리는 끝이 없다. 이룡이 제대로 차려입고 움직이기 전에는 저 잔소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 오늘은 정말 세상이 날 외면하는구나!’
이번엔 이룡의 머리가 지끈거릴 차례였다.
* * *
“아흐, 졸려! 춥기도 하고. 미치겠네.”
이룡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는 눈물이 찔끔 맺힌 눈가를 손등으로 슥슥 비비댔다.
5월. 꽃 피는 봄이라지만 밤기운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특히 이룡은 추위에 너무 약했다. 밤까지 일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옷을 얄팍하고 입고 나온 게 문제였다.
망할 파란색 셔츠에 얇은 재킷 하나 걸치고 추위에 옹송그리며 이룡은 현을 저주했다.
‘이기적인 집사! 악덕 집사! 흥이다! 밥 먹다가 돌멩이나 씹어 버려라!’
속으로 한바탕 타박과 질타를 쏟아 내놓고 나니 다시 몸이 와르르 떨리며 코에서 말간 콧물이 흘러나왔다. 이룡은 콧물을 손으로 쓰윽 훔쳤다.
현이 봤다면 또 기함하며 잔소리를 쏟아 냈으리라. 핏대를 세우며 한바탕 일장연설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룡은 피식 웃으며 골목 건너편의 파란 대문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시하고 있는 집의 창문에서는 불빛이 환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
이룡의 직업은 ‘찾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찾아드립니다’를 모토로 정말 별걸 다 찾아다녀 본 그였다. 사람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애완동물과 여러 가지 물건들. 심지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까지 해 봤으니까.
사실 무언가를 찾는 일은 이룡을 늘 들뜨게 만들었다. 자료를 모으고, 정보를 분류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이룡은 말로 다 못 할 희열을 느꼈다.
게다가 이룡은 이 일에 재능도 있었다.
사람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와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고 상황을 읽는 혜안이 좋았다. 상황과 사람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치밀한 면도 있었고 진심인 척 가장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력도 출중했으며, 때론 육탄전도 불사하는 강인함까지 갖췄다.
그리고 이무기인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 능력.
전화(電化).
낙뢰에서 태어난 그는 한마디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였다.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작동시킬 수 있었으며 전기 전자 신호를 타고 세상 어느 곳으로든 의식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세상 모든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집에 앉아서 열람할 수 있었다. 설사 그 자료가 한 나라의 최고 기밀이라 해도 온라인으로 연결만 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처리 속도는 말 그대로 광속이었다.
‘찾는 일’에 재능도 있고, 아주 적절한 특이 능력도 있었으며 심지어 적성 또한 궁합이 잘 맞는다. 지금까지 뭔가를 찾는 일에 있어서 실패란 없었던 이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주는 찾을 수가 없으니. 이룡은 답답하고 또 답답할 수밖에.
아, 한 가지 더 있군. 망할 ‘이무기 소사이어티’ 운영자.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자기도 모르게 잇소리가 새어 나온다.
‘망할!’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엔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를 훌쩍 넘겼고, 세상은 어둠이라는 요람에 싸여 잠들어 가고 있었다.
사실 이 집 앞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딱히 다음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모든 답은 나와 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과연 이 집 안에 무엇이 있는 건지.
오르고 올라 달에 가깝다 하여 달동네라 했던가.
한없이 이어지던 시멘트 계단은 달동네 한구석에 자리한 파란 대문으로 이룡을 안내했다. 모든 데이터의 종착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여긴가?’
이룡은 즐거운 마음으로 대문을 두드려 집주인을 불러냈다. 그러나 파란 대문 집의 집주인은 대뜸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혔다.
“이것 보쇼! 그런 도자기가 나한테 있었으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안 살지! 생사람 도둑놈 만들지 말고 썩 꺼지쇼!”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에게 이룡은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설득을 시도했다.
“도둑으로 모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장물이었던 물건이니 세상 이목 몰래 제가 먼저 구매하겠다는 겁니다. 값은 후하게 쳐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항아리 좀 보여 주십시오.”
그러나 집주인은 막무가내로 이룡을 내쫓기만 했다.
‘이걸 바란 건 아니다 이거지?’
일단 집주변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게 뭐지? 떡밥을 따라오긴 했는데.’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인 듯했다.
좋아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몰래 들어가 내용만 확인하고 올 참이었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는데 이룡은 불법 침입은 해도 절대 물건을 훔치지는 않는다. 그의 일은 ‘찾는’ 일이지 ‘회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집 대문이 열리더니 낮에 봤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집 창문에는 여전히 불이 켜진 상태였다.
‘집에 누가 남아 있나? 혼자 사는 것 같았는데…….’
남자는 대문을 잠그고는 휘적휘적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차림새가 잠깐 나갔다 오는 폼은 아닌 듯했다. 낮에 다 늘어난 누런 러닝셔츠 바람으로 이룡을 맞았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남자가 골목 아래로 사라지자 이룡이 그늘진 곳에서 빠져나와 집 주변으로 다가섰다. 집 쪽으로 귀를 기울였으나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등은 방범용으로 그냥 켜놓고 나온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한 번 들어가 볼까?’
이룡이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담벼락을 잡고 멋지게 몸을 날리려는 찰나였다.
“어? 그 안에는 없는데?”
“우와아아악!”
이룡이 기겁하여 몸을 돌리려다 그대로 담벼락을 들이받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이룡의 이마에 벌건 혹이 하나 부풀어 올랐다.
“어머! 괜찮으세요? 아프시겠다.”
웃음을 참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픔과 놀람에 정신이 없던 이룡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긴 머리였다.
이마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이룡을 들여다보려고 여자가 허리를 숙이자 긴 머리카락이 이룡에게로 쏟아졌다.
향긋한 샴푸 냄새가 이룡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너, 너 뭐야?”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여자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야? 악수하자고? 아님 잡고 일어나라고?’
이룡이 놀란 눈으로 여자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에이 뭐야, 사람 손 민망하게.”
이룡이 제가 내민 손을 잡을 생각은 않고 희번덕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무안했는지 여자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이룡은 여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160cm 정도의 키에 허리까지 미치는 긴 생머리,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압도적인 인상을 차지하는 하얀 얼굴, 파란색 야구 잠바에 스키니 청바지, 운동화. 등에는 검은색 백팩.
보이는 대로 단어만 나열하자면.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여자였다.
여전히 말문이 막힌 채 일어설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이룡을 보며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명색이 ‘이무기’인데 너무 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이무기’라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쿠구궁!
이룡의 심장은 다시 한번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렸다.
999살, 노땅 이무기 고이룡
“99살? 99살짜리가 승천한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현은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참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는 이룡이 바로 두통의 원인이었다.
“말이 안 될 건 또 뭐랍니까.”
“내 나이가 999살이다. 근데 날 제치고 새파랗게 어린 것이……. 아아아악! 미치고 환장하겠네.”
미치고 환장하겠는 건 바로 저랍니다.
저 안하무인 철딱서니가 어딜 봐서 999살인 건지. 현은 차마 뱉지 못한 말을 한숨으로 대신했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어린 이무기들 승천하는 소식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 좀 내려놓으시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과 티라미수 한 조각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현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그 녀석들은 여의주를 어떻게 이렇게 잘도 찾는 거야?”
“그냥 느낌이 딱 온다니까요. 때가 되면.”
“아니 그러니까 그놈의 느낌이 딱 언제 오는 거냐고. 아는 이무기 있어? 나보다 나이 많은 이무기? 없지? 없잖아! 근데 왜 난 아직까지도 그놈의 느낌이라는 게 안 드는 거냐고!”
이젠 숫제 의자에 앉아 어린애처럼 발을 바동거리는 이룡을 보고 현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저 진상을 조용히 시키려면 이제 이 방법뿐이다.
“있잖아요. 도련님보다 나이 더 많은 이무기.”
“누구? 어디?”
이룡이 반짝이는 눈으로 몸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도련님 앞에요!”
이룡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푹 주저앉았다.
“에이, 그건 아니지. 현은 여의주를 물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제 발로 뻥 차 버린 사람이고.”
“네. 누구 때문에 그랬지요. 이무기 일생에 한 번뿐일 수 있다는 그 기회를.”
현이 쟁반을 챙겨들고 천천히 싱크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샐쭉한 표정으로 이룡에게 면박을 줬다.
이룡의 입을 막기 위해선 이 이야기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현은 씁쓸함을 곱씹어야 했지만.
“윽! 그, 그거야……. 아, 그러니까 내가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있잖아!”
얼씨구! 되레 적반하장 목소리를 높이는 이룡이다.
현은 언제는 저 남자가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던가 싶으면서도 매번 저런 식이니 이룡이 얄밉고 또 얄밉다. 단번에 현의 미간에 주름이 맺혔다.
“네네. 퍽도 고마우십니다. 그거나 드시고 어서 일하러 가시죠! 아시죠? 저 많이 먹는 거. 절 먹여 살리시려면 부지런지 버셔야 할 거 아닙니까.”
가시 돋친 현의 비아냥거림에 이룡이 움찔거렸다.
“게다가 요즘 ‘여주’라는 경쟁 업체도 생겨서 일도 줄어드는 판이데, 더 열심히 하셔야죠.”
“으으으! 이 악덕 집사. 집주인을 이렇게 부려 먹는 집사가 어딨어?”
“2절까지 할까요? 제가 어쩌다 여의주를 잃어버리고 깡철이가 됐는지?
현이 정색한 얼굴로 이룡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룡이 움찔거리며 몸을 사렸다. 알고 있었다. 이 이상 현을 자극해 이로울 게 없다는 걸. 작전상 후퇴다!
“돼, 됐거든. 나가면 될 거 아냐!”
이룡은 한 입에 티라미수를 털어 넣고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앗뜨뜨뜨뜨!”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 것 같다. 급히 커피 잔을 내려놓다가 바지와 손에도 쏟았다.
“앗뜨! 앗뜨!”
이룡이 바지에 흘린 커피를 급하게 손으로 털어 냈다. 화끈한 기운이 다리로 파고들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좋아는 티라미수와 함께 느긋하게 지냈을 이 황금 같은 시간을…….
괜히 아침에 ‘이무기 소사이어티’를 들여다봐서는.
‘이무기 소사이어티’는 이무기들 세계의 이야기를 엮은 월간 인터넷 잡지 같은 거였다.
이무기 인증을 한 회원들에게만 공개하는 비공개 사이트로, 누가 만들고 운영하는지 몰라도 이무기들 사는 이야기, 혹은 승천에 관한 소식들이 제법 실하게 업로드 되었다.
이룡의 이야기도 몇 번 올라왔었다. 현존하는 가장 나이 많은 이무기로.
그때 얼마나 화가 나고 창피했는지, 당장이라도 편집자 찾아 멱살잡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무기 사회 특성상 신분에 대한 비밀 보장이 생명인 만큼 몇 달을 매달렸어도 그 웹사이트 작성자가 누군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볼 때마다 우울하고 조바심 나는 거 왜 들여다보냐며 현은 핀잔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999살이 되도록 승천은커녕 승천에 대한 단서도 못 찾고 있는 이룡으로서는 그쪽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즐기며 살자는 주의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이 그를 등진 듯했다. 기분은 우울모드로 치닫고 있고 커피는 뜨겁고. 경쟁 업체 하나 생긴 게 그게 눈엣가시처럼 일을 야금야금 빼 가니 티라미수 한 조각도 맘 편하게 즐길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뜨거운 커피에 덴 손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아이구! 조심 좀 하시지. 다리 어떠세요? 덴 것 같지는 않으세요?”
현이었다. 재빠르게 물티슈를 챙겨와 이룡의 옷과 손을 닦아 내고 살폈다. 쏘아보던 싸한 기운은 언제 사라진 건지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쭈그리고 앉아 걱정스럽게 이룡의 손을 바라보던 현이 고개를 불쑥 들어 이룡을 올려다보았다.
“손은 괜찮은 것 같은데 다리는 어떠세요? 바지 벗어 보세요. 한 번 보게.”
이룡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괜히 창피해진 이룡이 어눌하게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야! 괜찮아. 그렇게 뜨겁지 않아.”
“그래도 확인 한 번 하는 게…….”
“괜찮다니까.”
머쓱해진 이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현이 이룡의 손목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잠깐만요. 도련님!”
“어?”
현이 이룡에게 한 발 다가왔다. 현은 이룡보다 머리 하나 만큼 키가 컸다. 그러니 이룡은 자연 올려다 볼 수밖에.
“이거…….”
현의 손이 이룡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어……?”
그가 머뭇하는 사이 현의 손이 이룡의 입가를 쓸었다. 이룡이 흠칫거렸다. 이런, 위험하다.
“어린앱니까? 얼굴에 이런 거나 묻히고? 머리는 이게 또 뭡니까? 아침에 샤워하신 거 맞아요? 클라이언트가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첫인상은 신뢰를 쌓는데 가장 큰 몫을 담당한다고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래서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사로잡으시겠어요? 어서 가서 바지 갈아입으시고. 아! 셔츠도 좀 갈아입으시죠? 셔츠는 푸른 계열로, 아시죠? 푸른 색상이 신뢰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부각시켜 준다는 연구결과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현의 잔소리 융단 폭격!
저 잔소리는 끝이 없다. 이룡이 제대로 차려입고 움직이기 전에는 저 잔소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 오늘은 정말 세상이 날 외면하는구나!’
이번엔 이룡의 머리가 지끈거릴 차례였다.
* * *
“아흐, 졸려! 춥기도 하고. 미치겠네.”
이룡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는 눈물이 찔끔 맺힌 눈가를 손등으로 슥슥 비비댔다.
5월. 꽃 피는 봄이라지만 밤기운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특히 이룡은 추위에 너무 약했다. 밤까지 일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옷을 얄팍하고 입고 나온 게 문제였다.
망할 파란색 셔츠에 얇은 재킷 하나 걸치고 추위에 옹송그리며 이룡은 현을 저주했다.
‘이기적인 집사! 악덕 집사! 흥이다! 밥 먹다가 돌멩이나 씹어 버려라!’
속으로 한바탕 타박과 질타를 쏟아 내놓고 나니 다시 몸이 와르르 떨리며 코에서 말간 콧물이 흘러나왔다. 이룡은 콧물을 손으로 쓰윽 훔쳤다.
현이 봤다면 또 기함하며 잔소리를 쏟아 냈으리라. 핏대를 세우며 한바탕 일장연설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룡은 피식 웃으며 골목 건너편의 파란 대문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시하고 있는 집의 창문에서는 불빛이 환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
이룡의 직업은 ‘찾는 일’이었다.
‘무엇이든 찾아드립니다’를 모토로 정말 별걸 다 찾아다녀 본 그였다. 사람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애완동물과 여러 가지 물건들. 심지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까지 해 봤으니까.
사실 무언가를 찾는 일은 이룡을 늘 들뜨게 만들었다. 자료를 모으고, 정보를 분류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이룡은 말로 다 못 할 희열을 느꼈다.
게다가 이룡은 이 일에 재능도 있었다.
사람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와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고 상황을 읽는 혜안이 좋았다. 상황과 사람을 이용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치밀한 면도 있었고 진심인 척 가장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력도 출중했으며, 때론 육탄전도 불사하는 강인함까지 갖췄다.
그리고 이무기인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 능력.
전화(電化).
낙뢰에서 태어난 그는 한마디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였다.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작동시킬 수 있었으며 전기 전자 신호를 타고 세상 어느 곳으로든 의식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세상 모든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집에 앉아서 열람할 수 있었다. 설사 그 자료가 한 나라의 최고 기밀이라 해도 온라인으로 연결만 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처리 속도는 말 그대로 광속이었다.
‘찾는 일’에 재능도 있고, 아주 적절한 특이 능력도 있었으며 심지어 적성 또한 궁합이 잘 맞는다. 지금까지 뭔가를 찾는 일에 있어서 실패란 없었던 이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주는 찾을 수가 없으니. 이룡은 답답하고 또 답답할 수밖에.
아, 한 가지 더 있군. 망할 ‘이무기 소사이어티’ 운영자.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자기도 모르게 잇소리가 새어 나온다.
‘망할!’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엔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를 훌쩍 넘겼고, 세상은 어둠이라는 요람에 싸여 잠들어 가고 있었다.
사실 이 집 앞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딱히 다음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모든 답은 나와 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과연 이 집 안에 무엇이 있는 건지.
오르고 올라 달에 가깝다 하여 달동네라 했던가.
한없이 이어지던 시멘트 계단은 달동네 한구석에 자리한 파란 대문으로 이룡을 안내했다. 모든 데이터의 종착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여긴가?’
이룡은 즐거운 마음으로 대문을 두드려 집주인을 불러냈다. 그러나 파란 대문 집의 집주인은 대뜸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혔다.
“이것 보쇼! 그런 도자기가 나한테 있었으면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안 살지! 생사람 도둑놈 만들지 말고 썩 꺼지쇼!”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남자에게 이룡은 최대한 정중한 자세로 설득을 시도했다.
“도둑으로 모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장물이었던 물건이니 세상 이목 몰래 제가 먼저 구매하겠다는 겁니다. 값은 후하게 쳐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항아리 좀 보여 주십시오.”
그러나 집주인은 막무가내로 이룡을 내쫓기만 했다.
‘이걸 바란 건 아니다 이거지?’
일단 집주변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게 뭐지? 떡밥을 따라오긴 했는데.’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인 듯했다.
좋아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몰래 들어가 내용만 확인하고 올 참이었다.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는데 이룡은 불법 침입은 해도 절대 물건을 훔치지는 않는다. 그의 일은 ‘찾는’ 일이지 ‘회수’가 아니었으니까.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집 대문이 열리더니 낮에 봤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집 창문에는 여전히 불이 켜진 상태였다.
‘집에 누가 남아 있나? 혼자 사는 것 같았는데…….’
남자는 대문을 잠그고는 휘적휘적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차림새가 잠깐 나갔다 오는 폼은 아닌 듯했다. 낮에 다 늘어난 누런 러닝셔츠 바람으로 이룡을 맞았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남자가 골목 아래로 사라지자 이룡이 그늘진 곳에서 빠져나와 집 주변으로 다가섰다. 집 쪽으로 귀를 기울였으나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등은 방범용으로 그냥 켜놓고 나온 모양이었다.
‘좋아. 그럼 한 번 들어가 볼까?’
이룡이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담벼락을 잡고 멋지게 몸을 날리려는 찰나였다.
“어? 그 안에는 없는데?”
“우와아아악!”
이룡이 기겁하여 몸을 돌리려다 그대로 담벼락을 들이받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이룡의 이마에 벌건 혹이 하나 부풀어 올랐다.
“어머! 괜찮으세요? 아프시겠다.”
웃음을 참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픔과 놀람에 정신이 없던 이룡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긴 머리였다.
이마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이룡을 들여다보려고 여자가 허리를 숙이자 긴 머리카락이 이룡에게로 쏟아졌다.
향긋한 샴푸 냄새가 이룡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너, 너 뭐야?”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여자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야? 악수하자고? 아님 잡고 일어나라고?’
이룡이 놀란 눈으로 여자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에이 뭐야, 사람 손 민망하게.”
이룡이 제가 내민 손을 잡을 생각은 않고 희번덕거리기만 하고 있으니 무안했는지 여자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이룡은 여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160cm 정도의 키에 허리까지 미치는 긴 생머리, 동그랗고 커다란 눈이 압도적인 인상을 차지하는 하얀 얼굴, 파란색 야구 잠바에 스키니 청바지, 운동화. 등에는 검은색 백팩.
보이는 대로 단어만 나열하자면.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여자였다.
여전히 말문이 막힌 채 일어설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이룡을 보며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명색이 ‘이무기’인데 너무 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이무기’라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쿠구궁!
이룡의 심장은 다시 한번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