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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 이 남자는!

놀란 하루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다들 언제 스테이지로 나갔는지, 아치형의 소파는 전부 비어 있었다.

당황해하는 하루가 흥미롭다는 듯 남자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러곤 그녀를 따라 엎드려 있던 상체를 천천히 들었다.

보랏빛 조명 아래의 이 남자는 분명…….

“어지러워요?”

흘러드는 음성이 미성이었다. 까맣다 못해 검푸른 눈동자는 청수처럼 투명하고 깊었다.

“아까부터 혼자 엎드려 있길래.”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언제부터 그에게 무방비한 얼굴을 보였단 말인가.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이런 상황이 어색한 것은 아닌데, 처음 겪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보니 왜 별명이 생쁨이인지 잘 알겠다. 유려한 콧날이나 매끄러운 얼굴선이 잘생기고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아름다운 남자다. 당장 연예인이 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외모에 뭔가 묘한 분위기를 지녔다. 하루는 저도 모르게 훅, 숨을 들이켰다.

“오랜만이에요.”

“네?”

“오래 기다렸는데.”

뭐가 오랜만이라는 거야? 하루는 크게 뜬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잘못 들은 것인가. 하긴, 좀 시끄러워야지. 잘못 들은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남자는 턱을 괸 채 나른하게 눈을 내리떴다.

“지루해 보여요.”

“……아닌데요.”

“나갈래요?”

“저한테 하는 말이에요?”

“그럼 여기에 또 누가 있지?”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정말 꿈이 아닐까. 하루는 둔감한 눈두덩에 간신히 힘을 주고 그를 마주 보았다.

미묘했다.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어디에서 또 봤을 리가 없는데…….

“내 얼굴이 마음에 드나 봐요.”

그가 담배를 빼 물며 말했다. 그제야 너무 집요하게 쳐다봤다는 생각에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작은 마찰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눈앞을 흐렸다. 담배라면 질겁을 하는 평소와 달리, 이상하게도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원한다면 더 자세히 보여줄 수 있는데.”

내리깐 눈동자가 오롯이 하루를 담았다.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가 유혹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 위로 퍼졌다.

하루는 여전히 꿈을 꾸는 기분으로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 * *



살면서 스스로를 충동적인 성향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오히려 차분한 편이었다. 그러니 ‘홧김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오하루의 인생에서 극히 드문 사건이었다.

게다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이런 상황은 더욱이.

“몇 살이에요?”

하루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팬티 한 장 걸치고 있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자신이 부끄럽거나 자괴감이 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인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매끈한 몸으로 여유 있는 미소를 그렸다.

“몇 살로 보여요?”

남자는 하루를 유유히 데리고 나오더니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운 호텔로 향했다. 모든 행동엔 익숙한 듯 여유로움이 넘쳤다. 그 모습에 제가 오늘 그의 원나잇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렇게 눈부신 외모로 담백하게 술만 마실 리 없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물론 그녀도 일회성 관계에 순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 보이는데.”

“흐음.”

“혹시 미성년자는…… 아니죠?”

하루가 느리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픽 웃더니 콘돔을 물었다.

이로 껍질을 찢는 모습이 저렇게 야할 수 있다니. 그녀의 얼굴에 경외심이 비쳤다.

“나중에 알려 줄게요.”

“내 나이는 안 물어봐요?”

“알고 싶은 건 나이가 아니라서.”

“그럼 뭘 알고 싶은데요?”

평소답지 않게 하루는 입을 쉬지 않았다. 안 그랬다가는 그에게 잡아먹힐 것만 같아서. 나체인 채 느끼는 감상치고 모순적이었지만.

“당신의 몸.”

그때 남자의 입에서 상냥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날 얼마나 맛있게 씹고 조일지, 흔들어 댈지.”

“…….”

“예쁘게 앙앙 우는 것도 좋아해요.”

“혹시…… 변태예요?”

“변태적인 섹스, 지향하죠.”

말을 마친 그가 혀로 입술을 훑었다. 콘돔을 입은 성기는 놀라울 만큼 컸다. 굳이 이 순간에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전 남자 친구와 비교하면…….

하루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거의 두 배의 크기다. 너무 예쁜 외모라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의 키와 체구를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사이즈였다. 아니, 그래도 조금 더 큰가.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곳에서 떠날 줄 몰랐다.

“생각보다 적극적인데.”

남자는 쑥스럽다는 듯이, 그러나 전혀 쑥스러워 보이지 않는 얼굴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누운 하루의 몸을 타고 천천히 올라왔다.

그가 제 위를 덮치듯이 점령하는 순간, 그녀는 등줄기에 소름이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난 축축하고 따뜻한 걸 좋아해요.”

하루는 그가 정말 연예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만으로 전하고자 하는 모든 걸 전달하니까. 그가 발음하는 글자 하나하나가 피부에 들러붙어 애무하는 느낌이었다.

길고 단단한 검지가 하루의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들어올 듯 말 듯 애태우다가 천천히 파고들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녀의 입술이 반항할 새도 없이 벌어졌다.

“빨아 볼래요?”

검지가 그녀의 말캉한 혓바닥을 지그시 눌렀다.

“으읍…….”

자극당한 침샘이 혀 밑을 흥건하게 적시고, 타액이 그의 손가락을 질척하게 감쌌다. 기다란 손가락이 헤엄치듯이 움직였다. 입천장을 쓸고 어금니, 치열의 안쪽까지 하나하나 훑는다.

하루는 거부하지 않았다. 처음 해 보는 것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입술을 모아 그의 손가락을 빨았다. 사탕을 먹는 것처럼 힘을 주기도 하고 혓바닥을 이용해 감싸기도 했다. 그의 손가락에서 단맛이 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흘러넘친 타액이 턱을 타고 흘렀다. 서서히 벅차기 시작했으나 손가락을 조여 물 때마다 그의 미간이 좁아지는 게 좋았다.

“잘하네요.”

남자가 속삭이며 웃었다. 다정한 칭찬에 하루는 묘하게도 기쁨을 느꼈다. 입안에 성감대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그가 어금니를 긁어내릴 때마다 목줄기가 오싹하게 일어났다.

“하아!”

잠시 후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하루가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터뜨렸다. 남자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제 검지를 자신의 입속으로 가져갔다. 맛있는 사탕을 먹는 아이처럼 입안에 깊숙이 넣고 천천히 빨았다.

그 모습에 하루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아찔함을 느꼈다. 남자를 보고 자신이 이렇게 흥분할 수 있다는 것, 시각적인 자극에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맛있어.”

만족스럽게 휘는 눈꺼풀 속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까맸다. 다만 끌어올린 입술에서 그녀를 향한 정복욕을 엿볼 수 있었다.

남자는 상을 내리듯 고개를 숙여 젖은 입술에 지그시 입을 맞췄다. 헐떡이는 가슴을 천천히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다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부드럽게 감싸 쥐자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뽀얀 살이 튀어나왔다.

“예뻐요.”

그가 건네는 말 하나, 만지는 손길 하나에도 온몸이 들썩였다. 이런 경험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이렇게 말랑한 감촉이라니…….”

“으읏.”

“여긴, 포도알처럼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느른하게 웃어 보인 남자가 양손으로 하루의 양쪽 가슴을 애무했다.

“누르면.”

“하읏!”

“터질 것처럼.”

탱탱하게 부푼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능숙하게 자극했다. 격렬한 쾌감이 몰려오는 것도 아닌데 하루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아직 술에서 깨지 못했는지 시야가 어지러웠다. 이 혼돈 속에서도 두 눈에 박혀 들어오는 얼굴만은 놀랍도록 선명했다.

하루는 신음하면서도 생각했다. 분명 이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연예인과 헷갈리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대체 어디에서 본 것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눈에 띄는 얼굴을 잊을 리가 없는데…….

“무슨 생각해요?”

그때 남자가 몸을 낮추었다. 팔꿈치로 지탱하자 아랫배가 닿는다. 수북한 음모가 문질러지고 뜨겁고 단단한 것이 하루의 회음부를 찔렀다. 그것만으로 꽃잎 사이에서 미끈한 꿀물이 흘러나왔다.

“내 생각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쪽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남자는 뜻밖의 답에 놀랐는지 곧 해사하게 눈을 접었다.

“무슨 생각?”

“……나도 나중에 알려 줄게요.”

“아아, 하루 씨.”

크게 웃음을 터뜨린 그가 벅찬 듯 소곤거렸다.

그에게 제 이름을 알려 줬던가. 하지만 의문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가 하루의 다리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빈말이 아닌지 그는 다소 들뜬 음성으로 속삭이고는 뜨거운 이마를 목덜미에 비볐다.

부드러운 머리칼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풍겼다. 하루는 저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다. 살갗은 부드럽고 근육은 탄탄했다. 이렇게 멋진 몸은 처음이었다.

“많이 해 봤어요?”

그가 뺨에 입술을 대고 물었다.

“얼마나 많이 했지?”

“그런 걸 묻는 건 실례 아니에요?”

그녀의 날 선 반응에 그가 조소했다. 붉어진 귓바퀴로 흘러들어 오는 숨소리가 축축했다. 하루가 짧게 신음했다. 이제는 한계다. 그가 내뿜는 묘한 기운에 절절히 흥분하고 있었다. 건드리지도 않은 비부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질투 나잖아요.”

가지런한 앞니가 귓불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매끈한 혀가 귓바퀴를 핥고 귓속을 헤집자 하루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뜨렸다.

“어떤 새끼가 이곳에 먼저 좆질했는지.”

중지로 질척해진 곳을 더듬어 내릴 땐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상상만 해도 화가 나 미칠 것 같거든요.”

“좀 거치시네요.”

“그래서 싫어요?”

“먼저 대답하면 말할게요.”

하루가 가슴을 들썩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들고 유려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난 처음이에요.”

가슴을 만지던 손이 이마에 붙은 하루의 머리카락을 떼어 옆으로 넘겨주었다.

“지금까지 하루 씨만을 기다렸죠.”

“다른 여자들한테는 그런 수법 쓰지 마요. 하나도 안 통하거든요.”

그러자 그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것보다 먼저 든 생각은 또 제 이름을 불렀다는 것.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가지 못했다. 그가 입술을 덮어 버리는 바람에.

하루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제 20대가 비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섹스를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나 이런 남자와 잘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뿐거리고, 여유 넘치고, 가끔은 하루를 놀리듯 짓궂게 굴었다.

본격적으로 불이 붙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갈 듯한 긴장과 쾌락 속을 유영했다. 지금까지의 섹스는 무의미하다 느낄 만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