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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긴 여정의 시작 (3)
타앙!
성현이 경고사격 하듯 좀비 부근 차량에 한 발을 쐈다.
150m에 접근해도 알아채지 못하던 좀비가 일제히 성현이 있는 곳을 돌아본다. 그리고 차량을 밟고 거칠게 뛰어온다.
멈칫!
그르릉. 크아앙!
그림자와 햇빛 경계에 다다라 멈추어 선 좀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으르렁댔다.
“오호. 안 나오신 다라.”
성현은 의도적으로 첫 탄을 빗나가게 쏘고 좀비들의 반응을 살핀 것이다.
어떤 상황일 때 좀비들이 태양 빛에 노출되어도 상관치 않고 나오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래도?”
탕!
퍼걱.
8마리의 좀비 중 한 마리의 어깨에 큼지막한 관통상을 냈다.
좀비의 상체가 뒤로 크게 꺾이더니 차에서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끈적끈적한 핏물이 뚫린 상처를 타고 흘러내린다.
크워오오.
총상을 입은 좀비의 괴성에 남은 좀비들이 일제히 성현을 향해 돌진했다.
“오호라. 이 정도의 동족의식은 있다는 거네. 알았어. 거기까지.”
성현은 조정간 단발에서 연사로 바꾸고, 선두에 다가오는 좀비부터 노렸다.
타타탕!
퍼퍼펑. 선두 좀비의 두개골이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형체조차 알 수 없게 폭발했다. 그리고 뒤따르던 좀비는 관통된 총탄에 가슴을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구오오오.
넘어진 좀비가 분노에 찬 포효를 지르자 공기마저 쩌렁대며 떨려왔다.
꽝. 타탓. 쾅.
땅을 박찬 좀비들이 격렬한 몸짓으로 차량을 밟고 달려온다.
타타탕! 타타탕!
연속되는 성현의 속사가 시작되었다. 달려오던 좀비 중 4마리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차량에 충돌하고, 아스팔트에 처박혀 굴렀다.
퍼퍽! 퍼거걱.
50여 미터까지 접근한 2마리의 좀비 중 한 마리는 안면이 절반 이상이 사라져 뇌가 흘러내린다. 옆에 같이 달려오던 좀비는 가슴에 큼지막한 총상에도 불구하고 보폭을 더욱 크게 하며 달려왔다.
타타탕.
목 언저리와 가슴을 연달아 맞은 좀비의 목이 옆으로 크게 꺾이고 곧 떨어질 듯 위태롭다.
결국 몇 발자국 오다 꼬꾸라졌다.
그리고 한 마리를 더 처리한 성현은 조금 뒤에 뛰어오는 좀비를 바라봤다.
“네가 마지막이다. 빠이-!”
타타앙!
흐느적거리는 한쪽 팔을 뒤로 젖히고 달려오던 좀비는 두 발의 탄환이 머리를 헤집으면서 끝을 맺었다.
철컥. 탁.
성현은 다 쓴 탄창을 창고에 넣고 새 탄창을 결합했다.
탕! 펑!
성현은 확인 사살을 하며 일일이 좀비들의 남은 머리를 터트리며 걸어갔다.
“우웁, 웩!”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움켜쥔 용칠이 성현을 뒤따르다 구역질을 했다.
“으익, 드러!”
해미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남자가 되어가지고 우리 아저씨쯤 되어야 어디 말이나 하지. 약해빠졌어. 쯔쯔.”
용칠은 억울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해미가 이상한 거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헤헤. 제, 제가 좀 그렇죠.”
“아이고. 아이고. 맞습니다. 어디 박 선생님 같은 분이 있나요. 하하.”
용칠은 억지웃음을 짓고, 두식은 특유의 ‘아이고’를 연발하며 해미의 말을 두둔한다.
“흥.”
해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성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저씨, 뭐 하세요?”
“어, 왔니? 이놈들 혹시 햇볕 오래 쐬면 죽나 안 죽나 확인하려고.”
그제야 해미의 눈에도 성현의 발에 깔린 좀비가 보였다.
팔다리에 모두 총상을 입어 너덜너덜했고, 엎드린 체 목을 밟혀, 소리도 ‘끄어어’ 하며 작은 소리만 겨우 내고 있었다.
“해미야, 저기 다리 밑에 좀비 있나 한번 확인해줄래? 저 양반들 데리고 먼저 좀 가 있어라. 좀비 한두 마리는 해미가 처리할 수 있지?”
“네, 걱정 마세요.”
해미가 두식과 용칠을 데리고 먼저 그늘이 있는 다리 밑으로 갔다.
지켜보니 다행히 더 이상 좀비는 없는 듯 해미가 팔을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 위로 표시했다.
끄어어.
“흐음. 죽지는 않는 건가?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그럼 어디···.”
와장창.
성현은 바로 옆에 있던 차량의 조수석 창을 개머리판으로 깨고 안전벨트를 길게 끊어내어 좀비의 목에 칭칭 감았다.
질질질.
그리고 개 끌 듯 끌고 다리 아래로 향했다.
“허헙. 바, 박 선생님 저건 왜 가지고 오신 겁니까?”
성현이 다리 근처까지 끌고 온 좀비를 내버려 두고 일행에게 다가가자 두식이 물었다.
“햇볕에 죽나 안 죽나 확인 좀 할 겁니다. 원래는 한 10분 쉬어 갈랬는데··· 저놈이 죽으면 바로 떠나고, 안 그렇다면 1시간 정도 있다 출발할 테니 좀 쉬세요.”
두식은 두려움 반 존경 반의 시선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자신이나 동생인 용칠은 살기에 급급했지 좀비들을 상대로 이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성현은 강하고 또한 냉철했다. 그런 그가 심히 무섭지만 그만큼의 존경심이 또 생긴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성현 같은 이가 되어야 한다고 두식은 내심 생각했다.
성현도 그런 두식의 시선을 봤음인지 좀 부담스러웠다. 저 시선 속에 담긴 뜻이 대충 어떤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 * *
해미가 어디 소풍 온 듯 돗자리를 펴고 간식거리를 꺼내었다.
아삭아삭.
과자를 맛깔나게 먹으며, 성현 옆에서 재잘댄다.
“두식 씨나 용칠 씨도 간식 좀 들지 그래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는 별생각이 없어서요.”
두식은 용칠 만큼은 아니지만, 속이 메스꺼웠다.
좀비 시체에는 최대한 시선을 두지 않고 왔음에도 그랬다.
“아··· 저는 아직 아침 먹은 게 소화가 덜되어서··· 헤헤.”
“에엑? 아까 저어기 앞에 다 쏟아 놓고 뭔 말이래?”
해미의 핀잔에도 용칠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헤헤거린다.
“흐음.”
성현은 손목에 찬 시계를 한번 보고 좀비를 바라봤다.
이제 30분이 갓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예정했던 시간은 반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아 저 박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박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존대하시는데··· 편하게 하시면 안 될까 해서요. 저희보다 연장자시고 더군다나 살려주시기까지 했는데 너무 예를 안 차리셨으면 합니다.”
“저도 두식이 형님 말씀과 같습니다. 자꾸 존대하시니까 제가 다 민망합니다.”
성현은 두식과 용칠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성현은 그런 두 사람의 눈을 한동안 가만히 지켜봤다.
진정성이 있는 건지 그냥 자신한테 잘 보이려 어떻게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건 아닌지 하고.
“······그래 좋아. 그럼 지금부터는 말을 편히 하도록 할게.”
“아이고, 박 선생님.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아, 예예. 그럼요. 헤헤.”
뭐가 그리 좋은지 두식과 용칠이 서로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식욕이 생기는지 해미가 꺼내준 간식거리에 손이 갔다.
“으응?”
성현은 돗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리 밖으로 걸어간다.
“아저씨 왜 그래요?”
“좀비한테서 연기가 나네.”
성현의 말에 모두 일어나서 따라온다.
끄어어!!
스스스스. 화악!
허연 연기가 좀비의 전신에서 점점 더 짙어지더니 한순간에 불이 붙어 버렸다.
“이거였군. 놈들이 빛을 피하는 이유가.”
좀비들은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피부층에 변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자연발화가 일어남을 성현은 알게 되었다.
한번 불이 붙으니 상당히 강한 화력을 가진 연료처럼 아주 잘 타들어 갔다.
약 3분이 흐르자 좀비는 아스팔트에 허연 재만 남기고 있었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와, 대박! 근데 저기 시체는 그대로네요. 살아있는 좀비들만 이렇게 태워지나 봐요.”
해미는 저 멀리 있는 시체를 가리키고 예리한 지적을 했다.
“그러네. 아마 좀비가 살았을 때와 달리 죽으면 무슨 변화가 있나 보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움직이자.”
성현의 말에 충분히 쉰 두식과 용칠이 힘을 내어 대답하고, 이전과 같이 해미가 앞장섰다.
* * *
“방금 총소리 아닙니까?”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아파트에 모여 있었다.
“총소리 맞는 거 같습니다.”
“이거 참. 뭐가 보여야 보던지 하지.”
“고 씨. 어차피 안 보여.”
고 씨라 불리 40대 중년인이 창문에서 가로수 사이로 어떻게든 밖을 보려 하지만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이고 최상층이 5층인 터라 한강변에 있는 도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경찰이나 군대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경찰보다 군대가 아닐까 합니다. 총소리가 자동소총 소리가 맞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조금 어린 20대 청년이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되는지 자신 있게 말했다.
웅성웅성.
다들 저마다 친한 이들과 이야기하며 떠들어대니 중구난방이 따로 없었다.
“자자, 모두 조용히 좀 합시다.”
“박사님 말씀하신답니다. 모두 좀 조용히 하세요.”
김원일 박사가 주변을 환기했다. 그럼에도 소란이 가시지 않자.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모두의 주의를 끌어줬다.
“모두 알다시피 여기 있다간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시기가 문제지 여길 나가야 합니다. 그때를 좀 앞당길 때가 바로 지금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김원일 박사의 남다른 기지로 위험을 피할 수 있었고, 운도 따른 탓에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극초신성의 여파가 지구를 덮친 날, 여기 있는 이들은 인근 대형 빌딩의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의학박사인 김원일 박사가 일종의 발작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전염을 우려해, 모두 한 장소에 모아둔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발작증상이 좀비화가 진행 중인 것을 몰랐지만, 변한 이들을 본 후 다들 김원일 박사를 리더로 따르는 눈치였다.
“좀 더 기다리면 구하러 올 텐데 왜 나간 데?”
아직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한 한 아줌마가 딴죽을 건다.
“그게 싫은 서 여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 여기 계시면 됩니다.”
“아니, 내가 싫다고 했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네. 잘났네. 잘났어. 참내!”
표독스런 눈빛으로 김원일 박사를 째려본 서 여사는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우선, 모두가 나갈 수는 없습니다. 대표로 몇 명만 뽑아 상황을 보고 도움 청을 하는 게 우선입니다.”
“자기가 갈 것도 아니면서 유세는. 쳇!”
조용하게 말한다고 했지만, 서 여사의 목소리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크흠. 우선 지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손드시고 없다면 제비뽑기로 세 명만 뽑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손을 드는 이가 없었고, 모두의 찬성하에 별수 없이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다.
“난 안가! 난 처음부터 안 간다고 했어. 놔 이거. 난 안 간다고!!”
서 여사가 바닥에 드러눕고 안 간다고 버텼다.
자신도 찬성한 제비뽑기에서 걸렸음에도 버팅기고 있는 것이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누군가고 싶어 가나!”
이때 제비뽑기에 걸린 한 남자가 참다 참다 한마디 했다.
“뭐? 아니 어린놈이 새끼가 어따 대고!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넌 애비 애미도 없냐!”
“뭐? 뭐! 이 아줌마가 진짜!”
사람들이 말리고 난리도 아니다.
“이러다 좀비들이 몰리면 어쩌려고!! 모두 입 좀 다무시오!”
“흥! 자기 목소리에 다 몰려오겠네.”
끝까지 한마디 하는 서 여사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우-. 이보게, 철원이.”
“예. 박사님.”
“내가 갔다 올 테니 여길 좀 부탁함세.”
“아니, 박사님 제가 갈 테니 여기 계십시오. 한 살이라도 젊은 제가 가겠습니다.”
철원이 급구 김원일 박사를 말린다.
“아니네. 내가 가는 게 맞아. 가서 만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 할 듯 하이.”
김원일 박사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자진해서 나갈 뜻을 세웠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이끌고 온 사람들이었다.
일말의 책임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타앙!
성현이 경고사격 하듯 좀비 부근 차량에 한 발을 쐈다.
150m에 접근해도 알아채지 못하던 좀비가 일제히 성현이 있는 곳을 돌아본다. 그리고 차량을 밟고 거칠게 뛰어온다.
멈칫!
그르릉. 크아앙!
그림자와 햇빛 경계에 다다라 멈추어 선 좀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으르렁댔다.
“오호. 안 나오신 다라.”
성현은 의도적으로 첫 탄을 빗나가게 쏘고 좀비들의 반응을 살핀 것이다.
어떤 상황일 때 좀비들이 태양 빛에 노출되어도 상관치 않고 나오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래도?”
탕!
퍼걱.
8마리의 좀비 중 한 마리의 어깨에 큼지막한 관통상을 냈다.
좀비의 상체가 뒤로 크게 꺾이더니 차에서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끈적끈적한 핏물이 뚫린 상처를 타고 흘러내린다.
크워오오.
총상을 입은 좀비의 괴성에 남은 좀비들이 일제히 성현을 향해 돌진했다.
“오호라. 이 정도의 동족의식은 있다는 거네. 알았어. 거기까지.”
성현은 조정간 단발에서 연사로 바꾸고, 선두에 다가오는 좀비부터 노렸다.
타타탕!
퍼퍼펑. 선두 좀비의 두개골이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형체조차 알 수 없게 폭발했다. 그리고 뒤따르던 좀비는 관통된 총탄에 가슴을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구오오오.
넘어진 좀비가 분노에 찬 포효를 지르자 공기마저 쩌렁대며 떨려왔다.
꽝. 타탓. 쾅.
땅을 박찬 좀비들이 격렬한 몸짓으로 차량을 밟고 달려온다.
타타탕! 타타탕!
연속되는 성현의 속사가 시작되었다. 달려오던 좀비 중 4마리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차량에 충돌하고, 아스팔트에 처박혀 굴렀다.
퍼퍽! 퍼거걱.
50여 미터까지 접근한 2마리의 좀비 중 한 마리는 안면이 절반 이상이 사라져 뇌가 흘러내린다. 옆에 같이 달려오던 좀비는 가슴에 큼지막한 총상에도 불구하고 보폭을 더욱 크게 하며 달려왔다.
타타탕.
목 언저리와 가슴을 연달아 맞은 좀비의 목이 옆으로 크게 꺾이고 곧 떨어질 듯 위태롭다.
결국 몇 발자국 오다 꼬꾸라졌다.
그리고 한 마리를 더 처리한 성현은 조금 뒤에 뛰어오는 좀비를 바라봤다.
“네가 마지막이다. 빠이-!”
타타앙!
흐느적거리는 한쪽 팔을 뒤로 젖히고 달려오던 좀비는 두 발의 탄환이 머리를 헤집으면서 끝을 맺었다.
철컥. 탁.
성현은 다 쓴 탄창을 창고에 넣고 새 탄창을 결합했다.
탕! 펑!
성현은 확인 사살을 하며 일일이 좀비들의 남은 머리를 터트리며 걸어갔다.
“우웁, 웩!”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움켜쥔 용칠이 성현을 뒤따르다 구역질을 했다.
“으익, 드러!”
해미가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남자가 되어가지고 우리 아저씨쯤 되어야 어디 말이나 하지. 약해빠졌어. 쯔쯔.”
용칠은 억울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해미가 이상한 거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헤헤. 제, 제가 좀 그렇죠.”
“아이고. 아이고. 맞습니다. 어디 박 선생님 같은 분이 있나요. 하하.”
용칠은 억지웃음을 짓고, 두식은 특유의 ‘아이고’를 연발하며 해미의 말을 두둔한다.
“흥.”
해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성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저씨, 뭐 하세요?”
“어, 왔니? 이놈들 혹시 햇볕 오래 쐬면 죽나 안 죽나 확인하려고.”
그제야 해미의 눈에도 성현의 발에 깔린 좀비가 보였다.
팔다리에 모두 총상을 입어 너덜너덜했고, 엎드린 체 목을 밟혀, 소리도 ‘끄어어’ 하며 작은 소리만 겨우 내고 있었다.
“해미야, 저기 다리 밑에 좀비 있나 한번 확인해줄래? 저 양반들 데리고 먼저 좀 가 있어라. 좀비 한두 마리는 해미가 처리할 수 있지?”
“네, 걱정 마세요.”
해미가 두식과 용칠을 데리고 먼저 그늘이 있는 다리 밑으로 갔다.
지켜보니 다행히 더 이상 좀비는 없는 듯 해미가 팔을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 위로 표시했다.
끄어어.
“흐음. 죽지는 않는 건가?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그럼 어디···.”
와장창.
성현은 바로 옆에 있던 차량의 조수석 창을 개머리판으로 깨고 안전벨트를 길게 끊어내어 좀비의 목에 칭칭 감았다.
질질질.
그리고 개 끌 듯 끌고 다리 아래로 향했다.
“허헙. 바, 박 선생님 저건 왜 가지고 오신 겁니까?”
성현이 다리 근처까지 끌고 온 좀비를 내버려 두고 일행에게 다가가자 두식이 물었다.
“햇볕에 죽나 안 죽나 확인 좀 할 겁니다. 원래는 한 10분 쉬어 갈랬는데··· 저놈이 죽으면 바로 떠나고, 안 그렇다면 1시간 정도 있다 출발할 테니 좀 쉬세요.”
두식은 두려움 반 존경 반의 시선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자신이나 동생인 용칠은 살기에 급급했지 좀비들을 상대로 이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성현은 강하고 또한 냉철했다. 그런 그가 심히 무섭지만 그만큼의 존경심이 또 생긴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성현 같은 이가 되어야 한다고 두식은 내심 생각했다.
성현도 그런 두식의 시선을 봤음인지 좀 부담스러웠다. 저 시선 속에 담긴 뜻이 대충 어떤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 * *
해미가 어디 소풍 온 듯 돗자리를 펴고 간식거리를 꺼내었다.
아삭아삭.
과자를 맛깔나게 먹으며, 성현 옆에서 재잘댄다.
“두식 씨나 용칠 씨도 간식 좀 들지 그래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는 별생각이 없어서요.”
두식은 용칠 만큼은 아니지만, 속이 메스꺼웠다.
좀비 시체에는 최대한 시선을 두지 않고 왔음에도 그랬다.
“아··· 저는 아직 아침 먹은 게 소화가 덜되어서··· 헤헤.”
“에엑? 아까 저어기 앞에 다 쏟아 놓고 뭔 말이래?”
해미의 핀잔에도 용칠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헤헤거린다.
“흐음.”
성현은 손목에 찬 시계를 한번 보고 좀비를 바라봤다.
이제 30분이 갓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예정했던 시간은 반 정도가 더 남아있었다.
“아 저 박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박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존대하시는데··· 편하게 하시면 안 될까 해서요. 저희보다 연장자시고 더군다나 살려주시기까지 했는데 너무 예를 안 차리셨으면 합니다.”
“저도 두식이 형님 말씀과 같습니다. 자꾸 존대하시니까 제가 다 민망합니다.”
성현은 두식과 용칠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성현은 그런 두 사람의 눈을 한동안 가만히 지켜봤다.
진정성이 있는 건지 그냥 자신한테 잘 보이려 어떻게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건 아닌지 하고.
“······그래 좋아. 그럼 지금부터는 말을 편히 하도록 할게.”
“아이고, 박 선생님.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아, 예예. 그럼요. 헤헤.”
뭐가 그리 좋은지 두식과 용칠이 서로를 보고 웃는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식욕이 생기는지 해미가 꺼내준 간식거리에 손이 갔다.
“으응?”
성현은 돗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리 밖으로 걸어간다.
“아저씨 왜 그래요?”
“좀비한테서 연기가 나네.”
성현의 말에 모두 일어나서 따라온다.
끄어어!!
스스스스. 화악!
허연 연기가 좀비의 전신에서 점점 더 짙어지더니 한순간에 불이 붙어 버렸다.
“이거였군. 놈들이 빛을 피하는 이유가.”
좀비들은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면 피부층에 변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자연발화가 일어남을 성현은 알게 되었다.
한번 불이 붙으니 상당히 강한 화력을 가진 연료처럼 아주 잘 타들어 갔다.
약 3분이 흐르자 좀비는 아스팔트에 허연 재만 남기고 있었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와, 대박! 근데 저기 시체는 그대로네요. 살아있는 좀비들만 이렇게 태워지나 봐요.”
해미는 저 멀리 있는 시체를 가리키고 예리한 지적을 했다.
“그러네. 아마 좀비가 살았을 때와 달리 죽으면 무슨 변화가 있나 보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움직이자.”
성현의 말에 충분히 쉰 두식과 용칠이 힘을 내어 대답하고, 이전과 같이 해미가 앞장섰다.
* * *
“방금 총소리 아닙니까?”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아파트에 모여 있었다.
“총소리 맞는 거 같습니다.”
“이거 참. 뭐가 보여야 보던지 하지.”
“고 씨. 어차피 안 보여.”
고 씨라 불리 40대 중년인이 창문에서 가로수 사이로 어떻게든 밖을 보려 하지만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오래된 아파트이고 최상층이 5층인 터라 한강변에 있는 도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경찰이나 군대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경찰보다 군대가 아닐까 합니다. 총소리가 자동소총 소리가 맞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조금 어린 20대 청년이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되는지 자신 있게 말했다.
웅성웅성.
다들 저마다 친한 이들과 이야기하며 떠들어대니 중구난방이 따로 없었다.
“자자, 모두 조용히 좀 합시다.”
“박사님 말씀하신답니다. 모두 좀 조용히 하세요.”
김원일 박사가 주변을 환기했다. 그럼에도 소란이 가시지 않자.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모두의 주의를 끌어줬다.
“모두 알다시피 여기 있다간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시기가 문제지 여길 나가야 합니다. 그때를 좀 앞당길 때가 바로 지금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김원일 박사의 남다른 기지로 위험을 피할 수 있었고, 운도 따른 탓에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극초신성의 여파가 지구를 덮친 날, 여기 있는 이들은 인근 대형 빌딩의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의학박사인 김원일 박사가 일종의 발작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전염을 우려해, 모두 한 장소에 모아둔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발작증상이 좀비화가 진행 중인 것을 몰랐지만, 변한 이들을 본 후 다들 김원일 박사를 리더로 따르는 눈치였다.
“좀 더 기다리면 구하러 올 텐데 왜 나간 데?”
아직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한 한 아줌마가 딴죽을 건다.
“그게 싫은 서 여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 여기 계시면 됩니다.”
“아니, 내가 싫다고 했나? 사람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네. 잘났네. 잘났어. 참내!”
표독스런 눈빛으로 김원일 박사를 째려본 서 여사는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우선, 모두가 나갈 수는 없습니다. 대표로 몇 명만 뽑아 상황을 보고 도움 청을 하는 게 우선입니다.”
“자기가 갈 것도 아니면서 유세는. 쳇!”
조용하게 말한다고 했지만, 서 여사의 목소리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크흠. 우선 지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손드시고 없다면 제비뽑기로 세 명만 뽑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손을 드는 이가 없었고, 모두의 찬성하에 별수 없이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다.
“난 안가! 난 처음부터 안 간다고 했어. 놔 이거. 난 안 간다고!!”
서 여사가 바닥에 드러눕고 안 간다고 버텼다.
자신도 찬성한 제비뽑기에서 걸렸음에도 버팅기고 있는 것이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누군가고 싶어 가나!”
이때 제비뽑기에 걸린 한 남자가 참다 참다 한마디 했다.
“뭐? 아니 어린놈이 새끼가 어따 대고!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넌 애비 애미도 없냐!”
“뭐? 뭐! 이 아줌마가 진짜!”
사람들이 말리고 난리도 아니다.
“이러다 좀비들이 몰리면 어쩌려고!! 모두 입 좀 다무시오!”
“흥! 자기 목소리에 다 몰려오겠네.”
끝까지 한마디 하는 서 여사였다.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우-. 이보게, 철원이.”
“예. 박사님.”
“내가 갔다 올 테니 여길 좀 부탁함세.”
“아니, 박사님 제가 갈 테니 여기 계십시오. 한 살이라도 젊은 제가 가겠습니다.”
철원이 급구 김원일 박사를 말린다.
“아니네. 내가 가는 게 맞아. 가서 만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 할 듯 하이.”
김원일 박사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자진해서 나갈 뜻을 세웠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이끌고 온 사람들이었다.
일말의 책임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