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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청계산 입성(入城) (1)
타타탕.
성현이 마지막 사무실 문을 열고 총을 발사했다.
[좀비 Lv.3]
‘다섯 마리.’
타탕.
왼쪽 눈이 관통된 좀비가 흐느적대며 쓰러진다. 그 뒤로 바짝 붙어 있던 좀비의 얼굴에 희고 멀건 건더기가 뿌려진다.
그오오오.
퍼퍼퍼-겅!
연속된 총격에 좀비의 얼굴 중앙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뒤쪽 창가 풍경이 드러났다.
성현은 기계적으로 총구를 돌리며 순식간에 좀비의 두개골을 날려버렸다.
문을 열고 모두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3초. 한 마리당 1초도 걸리지 않은 엄청난 속사였다.
“정리 끝. 확인 사살하고 복귀하자.”
“전 뭐, 할 일도 없네요.”
성현은 아이 달래듯 해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생각해보면 해미가 나설 정도면 우리가 정말 위험하다는 거 아니겠니. 좋게 생각하자.”
“앗! 전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해미가 성현의 말에 그것까지는 생각 못 한 듯 깜짝 놀란다.
“박 중사님. 퍼펙트 합니다.”
구석구석 좀비 사체 모두를 확인사살하고 돌아온 두식과 용칠이 보고한다.
“그래 고생했다. 오늘은 올라가서 할 이야기도 있으니 한잔하자.”
“앗싸!”
“해미는 오렌지 주스.”
“아- 정말! 세상이 변했다면서요.”
* * *
“할아버지한테 음식 좀 가져다드리고 왔어요.”
“그래, 잘했다. 해미도 여기 앉아.”
해미는 성현이 권한 자리보다 바짝 붙어 앉았다. 으레 그러려니 하며 성현도 별말 하지 않았다.
“우선, 모두 고생했다. 한잔씩 받아라.”
“칫!”
해미만 노란 오렌지 주스를 종이컵에 받아 같이 잔을 부딪쳤다.
“내일은 이리 대화 나눌 시간이 많지 않을 거다. 그리고 만약 피난소를 찾고 거기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러니 만일에 대비해 행동방침을 세우려고 한다. 먼저, 두식이 용칠아.”
“네. 박 중사님.”
“예, 말씀하세요.”
성현은 이 둘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잔에 술을 채우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난 피난소가 내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합류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럼 저희도 박 중사님 따라 가면 안 될까요?”
“네. 안 그래도 한번 비슷한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저희는 박 중사님이 받아만 주신다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두식과 용칠은 이미 성현에게 매료되어있었다. 세상에 없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불합리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육체적 강함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냉철한 판단력까지 겸비했다.
어떨 때는 냉혹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랬다.
아직 두식과 용칠은 그 경계에 걸쳐져 있어 그 안으로 들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만 너희의 진심은 믿는다. 그러면 피난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같은 이야기다. 아군과 적군은 확실히 구분해라. 어중간한 자세는 필요 없다. 항상 이점만 명심하면 큰 문제는 없지 싶다.”
“아군과 적군······.”
두식과 용칠이 조용히 되뇌어본다.
“난 무조건 아저씨 편.”
해미가 성현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 그, 그럼 나도 중사님······.”
“그냥 우리 편 해요 아저씨 편은 나만 있음 돼요.”
이제 성현도 좀 헷갈린다. 우리 편 내 편. 같은 편인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편 이야기로 성현을 뺀 이들이 한참을 투덕거렸다.
* * *
성현의 일행들은 오전 일찍 빌딩을 나서 청계산으로 향했다.
해미의 창고에 넘쳐나는 전투식량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나선 터였다.
한낮의 무더위로 체력을 낭비하기보다 시원한 아침이 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 아저씨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
『제 1 지역 5호 대피소 3㎞』
도로표지판에 덧대어있는 문구에 성현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있었어.’
표지판을 본 사람들은 살았다며, 좋아하지만 성현은 좀 다른 심정이었다.
선택된 놈들끼리 살겠다고 마련한 장소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몹시도 불쾌했다.
‘가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큰 문제만 없다면. 또 너무 부당한 대우만 하지 않는다면, 성현도 함께하고는 싶었다.
게이머라는 미증유의 능력을 얻었으나, 매일 사선을 넘나드는 불안정한 생활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거기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 바라보는 해미를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제 1 지역 5호 대피소 2㎞』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만 가면 오아시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 여기 좀비 시체 진짜 많아요. 근데 좀 치우긴 한 거 같은 데 정말 어마어마해요.”
성현이 날듯이 차들 사이를 넘나들며 빠르게 달려갔다.
“여기서부터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 사람 시체는 안 보이는 게 아마 전투는 사람들이 이긴 것 같구나.”
차량 사이사이마다 좀비의 육편이 가득했다 일부로 틈을 매운 듯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하물며 도로의 길가 쪽으로는 좀비들을 쌓아놓고 불태운 시커먼 잿더미 수십 개가 도로를 따라 만들어져 있었다.
“이동하기가 쉽지는 않겠다.”
더 이상 도로의 아스팔트에는 사람들이 발을 디디고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차량 위로 올라왔고, 차와 차 사이를 건너고 좀비 사체를 밟으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아스팔트를 걷다 차량으로 올라와서 가려니 적응하지 못해 이동속도가 더뎌졌다.
“우웩.”
셀 수도 없이 많은 좀비 사체들과 그 잔해들은 역겹기 그지없었고, 몇 걸음만 때어도 구역질을 하고, 제대로 운신도 못하는 이도 더러 나왔다.
『제 1 지역 5호 대피소 1㎞』
‘생존자 여러분을 환영한 다라······.’
대피소가 이제 1㎞ 남았다는 푯말을 확인하고 얼마 안 가, 환경이 바뀌었다.
“도로가 치워져 있어요.”
중장비를 동원했는지 고속도로 갓길에 큰 차량이 밑에 가고 그 위로 겹겹이 차량들을 쌓아져있었다.
“대피소에 있는 이들이 뭔가 시작은 한 것 같다.”
성현은 깨끗하게 치워진 아스팔트 위로 내려섰다.
깨끗하다고는 하나 아스팔트 곳곳에 탄환 자국으로 움푹움푹 패여 있었고, 온통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투는 깨나 치열하게 있었으나 사체는 깨끗이 치워진 걸로 보였다.
부아아앙.
그 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문명의 이기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험비다.’
힘찬 엔진음을 내뿜으며, 큰 동체를 가진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 중사님 저거 험비 아닌가요? 중무장한 것 같습니다만.”
두식의 말처럼 성현의 눈에도 M-134 미니건을 장착한 험비가 아주 잘 보였다.
“해미야, 일단 헬멧 써라.”
좀비들은 별 위협이 못되지만, 총화기로 무장한 이들은 극히 위험하다. 능력을 각성한 자신이나 해미도 맨몸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이유 없이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중화기에 당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미니건을 장착한 험비들이다. 성현도 좀 불안했다.
아이템인 라이트아머의 성능을 정확히 확인 못한 상태다.
소총탄은 무리 없이 막아내지만 중화기는 어떨지 몰랐다. 짐작으로는 가능할 듯싶지만, 확신은 없었다.
끼이익.
차량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일행들 바로 앞까지 와서 정차한다.
끼릭, 털컥.
천장의 해치를 열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존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외각 경비대 부대장 진경준 중령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생환을 환영합니다.”
살짝 긴장한 일행들이 지휘관이자 장교인 진 중령의 말을 듣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만세까지 부른다.
성현은 진 중령이 입고 있는 군복을 유심히 살폈다.
계급은 중령, 부대 마크는 따로 없었고, 그 자리에 I-5 라는 로마숫자와 아라비아숫자가 명시되어있었다.
“어디 소속입니까?”
성현의 군복과 무장을 멀리서도 확인했을 터였다.
성현이 미리 준비한 대답이 있었지만 모두 지웠다.
“민간인입니다. 이 총은 우연히 얻었습니다.”
“총 버리고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4대의 차량에서 두세 명의 무장 군인들이 내리고 성현과 해미 그리고 뒤에 있던 두식과 용칠을 겨냥했다.
“중사님.”
두식과 용칠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움찔대며, 어찌할까를 성현에게 묻는다.
성현은 고개를 흔들고 대응을 자제할 것을 알렸다.
지잉.
레이저 포인트가 성현과 일행의 몸 곳곳을 노렸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좀 심한데?’
생각보다 강하게 나온다.
무기를 소지 했으니 경계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생존도구나 마찬가지다.
저들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음에도 태도는 강경했고, 조금 과하다는 게 성현의 생각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저기 미니건이라면 몰라도, 돌격소총정도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무장 해제를 위한 위협은 아냐. 뭐지 이 상황은?’
단순히 위협용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전부 방아쇠 안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었다.
언제든 발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좋지 않다. 나나 해미는 모르지만, 두식이와 용칠이는 눈먼 총탄에 노출되면 그걸로 끝이다.’
해미가 있다 한들 치명상을 입고 즉사하면 방법이 없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이분들은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다 주신 분들입니다. 위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나마 나서주는 이는 김원일 박사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했는데······.’
“다른 생존자분들은 인도하는 병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임시 대피소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본 대피소로 안내됩니다. 차량 한 대가 호위할 겁니다. 모두 데려가.”
지휘관인 진 중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당번병으로 보이는 이와 두 명의 군인들이 김원일 박사와 다른 일행들을 호위하며 이끌고 간다.
끌려가다시피 가는 김원일 박사가 뭐라 뭐라 계속해서 항변하는 말을 하지만, 지휘관인 진 중령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떠나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박성현이겠고, 저 여자가 이해미. 맞나?”
성현은 깜짝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과 해미의 이름을 알고 정확하게 특정해 내는지 당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당신들은 살인 및 살인 미수, 불법 무기 소지 등의 혐의로 체포한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이건 무슨 개소리야?”
어이가 없는 성현이 되물었다. 살인? 살인 미수? 좀 더 참신한 개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반전은 없나 보다.
“이미 증거와 증인은 모두 확보되어있다. 할 말이 있으면 가서 해.”
진 중령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잡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다.
“기분 더럽네. 우리가 누굴 죽이고 누굴 죽이려고 했는지 말해봐.”
성현에게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쓰고 겁박당하는 상황이다.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아예’ 하고 말할 일은 없었다.
저벅저벅.
성현은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총탄이 최대한 자신을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변명은 가서 해. 난 상부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마지막이다 투항하지 않으면 강제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처척.
진 중령이 최종통보를 하며 윽박지르자. 병사들도 늘어지던 총구를 바짝 조이고 노려본다.
성현이 보기에도 순수한 군인 같다. 오직 상명하복만이 전부인 사람의 표본이다.
이런 사람에게 강하게 나가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에는 누구든 부러진다.
자신과 해미 둘이라면 한번 부딪혀 볼 여지라도 있겠지만, 두식과 용칠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타타탕.
성현이 마지막 사무실 문을 열고 총을 발사했다.
[좀비 Lv.3]
‘다섯 마리.’
타탕.
왼쪽 눈이 관통된 좀비가 흐느적대며 쓰러진다. 그 뒤로 바짝 붙어 있던 좀비의 얼굴에 희고 멀건 건더기가 뿌려진다.
그오오오.
퍼퍼퍼-겅!
연속된 총격에 좀비의 얼굴 중앙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뒤쪽 창가 풍경이 드러났다.
성현은 기계적으로 총구를 돌리며 순식간에 좀비의 두개골을 날려버렸다.
문을 열고 모두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3초. 한 마리당 1초도 걸리지 않은 엄청난 속사였다.
“정리 끝. 확인 사살하고 복귀하자.”
“전 뭐, 할 일도 없네요.”
성현은 아이 달래듯 해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생각해보면 해미가 나설 정도면 우리가 정말 위험하다는 거 아니겠니. 좋게 생각하자.”
“앗! 전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해미가 성현의 말에 그것까지는 생각 못 한 듯 깜짝 놀란다.
“박 중사님. 퍼펙트 합니다.”
구석구석 좀비 사체 모두를 확인사살하고 돌아온 두식과 용칠이 보고한다.
“그래 고생했다. 오늘은 올라가서 할 이야기도 있으니 한잔하자.”
“앗싸!”
“해미는 오렌지 주스.”
“아- 정말! 세상이 변했다면서요.”
* * *
“할아버지한테 음식 좀 가져다드리고 왔어요.”
“그래, 잘했다. 해미도 여기 앉아.”
해미는 성현이 권한 자리보다 바짝 붙어 앉았다. 으레 그러려니 하며 성현도 별말 하지 않았다.
“우선, 모두 고생했다. 한잔씩 받아라.”
“칫!”
해미만 노란 오렌지 주스를 종이컵에 받아 같이 잔을 부딪쳤다.
“내일은 이리 대화 나눌 시간이 많지 않을 거다. 그리고 만약 피난소를 찾고 거기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러니 만일에 대비해 행동방침을 세우려고 한다. 먼저, 두식이 용칠아.”
“네. 박 중사님.”
“예, 말씀하세요.”
성현은 이 둘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잔에 술을 채우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난 피난소가 내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합류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럼 저희도 박 중사님 따라 가면 안 될까요?”
“네. 안 그래도 한번 비슷한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저희는 박 중사님이 받아만 주신다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두식과 용칠은 이미 성현에게 매료되어있었다. 세상에 없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불합리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육체적 강함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냉철한 판단력까지 겸비했다.
어떨 때는 냉혹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그랬다.
아직 두식과 용칠은 그 경계에 걸쳐져 있어 그 안으로 들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다만 너희의 진심은 믿는다. 그러면 피난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같은 이야기다. 아군과 적군은 확실히 구분해라. 어중간한 자세는 필요 없다. 항상 이점만 명심하면 큰 문제는 없지 싶다.”
“아군과 적군······.”
두식과 용칠이 조용히 되뇌어본다.
“난 무조건 아저씨 편.”
해미가 성현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 그, 그럼 나도 중사님······.”
“그냥 우리 편 해요 아저씨 편은 나만 있음 돼요.”
이제 성현도 좀 헷갈린다. 우리 편 내 편. 같은 편인데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답잖은 편 이야기로 성현을 뺀 이들이 한참을 투덕거렸다.
* * *
성현의 일행들은 오전 일찍 빌딩을 나서 청계산으로 향했다.
해미의 창고에 넘쳐나는 전투식량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나선 터였다.
한낮의 무더위로 체력을 낭비하기보다 시원한 아침이 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 아저씨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
『제 1 지역 5호 대피소 3㎞』
도로표지판에 덧대어있는 문구에 성현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있었어.’
표지판을 본 사람들은 살았다며, 좋아하지만 성현은 좀 다른 심정이었다.
선택된 놈들끼리 살겠다고 마련한 장소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몹시도 불쾌했다.
‘가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큰 문제만 없다면. 또 너무 부당한 대우만 하지 않는다면, 성현도 함께하고는 싶었다.
게이머라는 미증유의 능력을 얻었으나, 매일 사선을 넘나드는 불안정한 생활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거기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 바라보는 해미를 위하는 길이기도 했다.
『제 1 지역 5호 대피소 2㎞』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만 가면 오아시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 여기 좀비 시체 진짜 많아요. 근데 좀 치우긴 한 거 같은 데 정말 어마어마해요.”
성현이 날듯이 차들 사이를 넘나들며 빠르게 달려갔다.
“여기서부터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 사람 시체는 안 보이는 게 아마 전투는 사람들이 이긴 것 같구나.”
차량 사이사이마다 좀비의 육편이 가득했다 일부로 틈을 매운 듯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하물며 도로의 길가 쪽으로는 좀비들을 쌓아놓고 불태운 시커먼 잿더미 수십 개가 도로를 따라 만들어져 있었다.
“이동하기가 쉽지는 않겠다.”
더 이상 도로의 아스팔트에는 사람들이 발을 디디고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차량 위로 올라왔고, 차와 차 사이를 건너고 좀비 사체를 밟으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아스팔트를 걷다 차량으로 올라와서 가려니 적응하지 못해 이동속도가 더뎌졌다.
“우웩.”
셀 수도 없이 많은 좀비 사체들과 그 잔해들은 역겹기 그지없었고, 몇 걸음만 때어도 구역질을 하고, 제대로 운신도 못하는 이도 더러 나왔다.
『제 1 지역 5호 대피소 1㎞』
‘생존자 여러분을 환영한 다라······.’
대피소가 이제 1㎞ 남았다는 푯말을 확인하고 얼마 안 가, 환경이 바뀌었다.
“도로가 치워져 있어요.”
중장비를 동원했는지 고속도로 갓길에 큰 차량이 밑에 가고 그 위로 겹겹이 차량들을 쌓아져있었다.
“대피소에 있는 이들이 뭔가 시작은 한 것 같다.”
성현은 깨끗하게 치워진 아스팔트 위로 내려섰다.
깨끗하다고는 하나 아스팔트 곳곳에 탄환 자국으로 움푹움푹 패여 있었고, 온통 핏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투는 깨나 치열하게 있었으나 사체는 깨끗이 치워진 걸로 보였다.
부아아앙.
그 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문명의 이기가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험비다.’
힘찬 엔진음을 내뿜으며, 큰 동체를 가진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 중사님 저거 험비 아닌가요? 중무장한 것 같습니다만.”
두식의 말처럼 성현의 눈에도 M-134 미니건을 장착한 험비가 아주 잘 보였다.
“해미야, 일단 헬멧 써라.”
좀비들은 별 위협이 못되지만, 총화기로 무장한 이들은 극히 위험하다. 능력을 각성한 자신이나 해미도 맨몸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이유 없이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중화기에 당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미니건을 장착한 험비들이다. 성현도 좀 불안했다.
아이템인 라이트아머의 성능을 정확히 확인 못한 상태다.
소총탄은 무리 없이 막아내지만 중화기는 어떨지 몰랐다. 짐작으로는 가능할 듯싶지만, 확신은 없었다.
끼이익.
차량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일행들 바로 앞까지 와서 정차한다.
끼릭, 털컥.
천장의 해치를 열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존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외각 경비대 부대장 진경준 중령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생환을 환영합니다.”
살짝 긴장한 일행들이 지휘관이자 장교인 진 중령의 말을 듣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만세까지 부른다.
성현은 진 중령이 입고 있는 군복을 유심히 살폈다.
계급은 중령, 부대 마크는 따로 없었고, 그 자리에 I-5 라는 로마숫자와 아라비아숫자가 명시되어있었다.
“어디 소속입니까?”
성현의 군복과 무장을 멀리서도 확인했을 터였다.
성현이 미리 준비한 대답이 있었지만 모두 지웠다.
“민간인입니다. 이 총은 우연히 얻었습니다.”
“총 버리고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4대의 차량에서 두세 명의 무장 군인들이 내리고 성현과 해미 그리고 뒤에 있던 두식과 용칠을 겨냥했다.
“중사님.”
두식과 용칠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움찔대며, 어찌할까를 성현에게 묻는다.
성현은 고개를 흔들고 대응을 자제할 것을 알렸다.
지잉.
레이저 포인트가 성현과 일행의 몸 곳곳을 노렸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좀 심한데?’
생각보다 강하게 나온다.
무기를 소지 했으니 경계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생존도구나 마찬가지다.
저들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음에도 태도는 강경했고, 조금 과하다는 게 성현의 생각이었다.
두렵지는 않았다. 저기 미니건이라면 몰라도, 돌격소총정도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무장 해제를 위한 위협은 아냐. 뭐지 이 상황은?’
단순히 위협용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전부 방아쇠 안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었다.
언제든 발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좋지 않다. 나나 해미는 모르지만, 두식이와 용칠이는 눈먼 총탄에 노출되면 그걸로 끝이다.’
해미가 있다 한들 치명상을 입고 즉사하면 방법이 없다.
“무, 무슨 일입니까. 이분들은 저희를 이곳까지 데려다 주신 분들입니다. 위험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나마 나서주는 이는 김원일 박사하나뿐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했는데······.’
“다른 생존자분들은 인도하는 병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임시 대피소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본 대피소로 안내됩니다. 차량 한 대가 호위할 겁니다. 모두 데려가.”
지휘관인 진 중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당번병으로 보이는 이와 두 명의 군인들이 김원일 박사와 다른 일행들을 호위하며 이끌고 간다.
끌려가다시피 가는 김원일 박사가 뭐라 뭐라 계속해서 항변하는 말을 하지만, 지휘관인 진 중령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떠나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박성현이겠고, 저 여자가 이해미. 맞나?”
성현은 깜짝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과 해미의 이름을 알고 정확하게 특정해 내는지 당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당신들은 살인 및 살인 미수, 불법 무기 소지 등의 혐의로 체포한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이건 무슨 개소리야?”
어이가 없는 성현이 되물었다. 살인? 살인 미수? 좀 더 참신한 개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반전은 없나 보다.
“이미 증거와 증인은 모두 확보되어있다. 할 말이 있으면 가서 해.”
진 중령은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잡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다.
“기분 더럽네. 우리가 누굴 죽이고 누굴 죽이려고 했는지 말해봐.”
성현에게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쓰고 겁박당하는 상황이다.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아예’ 하고 말할 일은 없었다.
저벅저벅.
성현은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총탄이 최대한 자신을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변명은 가서 해. 난 상부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마지막이다 투항하지 않으면 강제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처척.
진 중령이 최종통보를 하며 윽박지르자. 병사들도 늘어지던 총구를 바짝 조이고 노려본다.
성현이 보기에도 순수한 군인 같다. 오직 상명하복만이 전부인 사람의 표본이다.
이런 사람에게 강하게 나가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에는 누구든 부러진다.
자신과 해미 둘이라면 한번 부딪혀 볼 여지라도 있겠지만, 두식과 용칠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