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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청계산 입성(入城) (2)
“후우-, 그럼 하나만 부탁합시다. 우리가 죽였다는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죽일 뻔한 적도 없는, 죽일 뻔한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그것만 알려 주시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일단 잡혀가더라도 언제든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두식과 용칠의 안전만 확보되면 대피소 전체와 싸운대도 할 만하다 생각했다.
‘여의치 않다면 모두 엎어버린다.’
“서지연, 서지연이란 사람이 고발했고, 믿을만한 분이 보증을 섰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 다 더할 말 있나?”
진 중령 또한 뭔가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곰곰이 생각했고, 이 정도는 문제없다 판단되어 성현의 질문에 답 해줬다.
‘서지연? 서지연이 누구야? 서······.’
“헐. 아저씨, 그 할망구 이름이에요.”
해미의 말을 듣고 그제야 번득 떠오르고 개안이 된다. 이제 모든 일들이 속 시원히 들여다보였다.
“하아-.”
문제의 발단을 알았다고는 하나 한숨부터 나온다.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미야, 두식이 용칠아. 일단 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라. 잠시 대피소 상황이나 보러 간다 생각해.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쳇! 제가 그 할망구 보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네, 중사님.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성현과 두식, 용칠이 바닥에 총과 가진 장비를 내려놓았다. 해미는 진즉에 빈손이다.
“체포해.”
군인들이 달려와 성현과 일행의 손목에 수갑 전용 케이블 타이를 채웠다.
지지직.
케이블 타이가 당겨지며, 특유의 마찰음을 냈다.
“아따, 좀 살살 좀 합시다. 피는 통해야 할 거 아뇨!”
두식의 강한 어필에 찔끔한 군인이 케이블 타이를 다시 꺼내 새로 채웠다. 군인들도 이런 장비에는 익숙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어라, 둘 다 방금까지 헬멧 쓰고 있지 않았나?”
“타기 직전에 버렸소.”
차에 탄 성현이 담담히 말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경준 소령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잊었다.
* * *
청계산 동쪽 해발 150m 부근.
비포장 등산로를 확장해 아스콘이 아닌 콘크리트로 강성 포장해 중차량 통과 도로가 만들어져있었다.
단시간에 얼마만큼의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부아앙.
고기동 차량인 험비들이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며 달리고 있었다.
사실 소음만 요란했지 험비의 엔진 출력은 고작해야 220마력이었고, 가속력은 형편없었다.
성현과 해미, 두식과 용칠은 두 대의 험비에 나뉘어 이송 중이었다.
“와. 저기가 대피소 입구에요?”
해미가 산속에 나타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보고 감탄을 자아낸다.
청계산은 해발고도가 612m였고, 그 중턱에 살짝 못 미치는 250m 지점에 초대형 터널이 떡하니 만들어져 있었다.
터널 입구는 평탄 작업을 마친, 대략 50,000㎡의 어지간한 축구경기장 넓이보다 큰 공터가 조성되어있었다.
터널의 입구는 반구 형태로 높이는 20m, 바닥의 폭은 40m에 달했다.
원래는 입구를 막았을 거대한 강철 골조의 두터운 콘크리트 문은 활짝 개방되어있었다.
‘제대로 방어 라인을 구축했다.’
터널의 입구 부근은 각종 중화기가 설치되어있었다.
그중 K4 고속유탄발사기, 일명 흑거미가 터널 입구 양 끝 쪽에 배치되어있었다.
한 발 한 발이 살상 반경 15m에 이르고 분당 최대 100발을 쏘아내는 직사화기였다.
이외에 12.7 mm 탄을 사용하는 중기관총 2대와 5.56mm 경기관총 2대가 터널 입구를 완벽하게 방비 중이었다.
그리고 완전 무장한 20여명의 군인들이 경비 중이었다.
끼이익.
성현과 일행들을 이송한 험비들이 터널 입구 바리케이드 앞에서 멈추어 섰고, 군인들의 지시로 그들을 따라 내렸다.
그리고 의아한 상황을 목격했다. 지휘관인 진 중령이 터널 경비대 선임에게 다가가 성현과 그 일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중령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 있는 이들이 아니다.’
성현이 보기에 지금 입구 경계를 담당하는 군인들은 진 중령과 같은 군복을 입었지만, 직속 부대원들이 아님을 짐작했다.
자신의 부대원들이라면, 복잡한 통관 절차를 따질 것도 없이 차량 그대로 통과해도 될 문제였다.
‘지휘 계통이 최소 둘 이상이라는 거겠지.’
성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들을 데려온 군인들을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걸으며 살펴보니 군기가 엄정하고 상당한 정예로 이루어진 팀 같은 분위기였다. 밖에서 마주한 이들과는 눈빛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묘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때마침, 입구 초소로 쓰이는 한 컨테이너에서 몇 명의 군인들이 나왔고, 그 중 한 명이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형님!!”
한 군인이 성현을 알은체했고, 반가움을 가득 담은 얼굴로 뛰어왔다.
“어라, 너 이 자식 동원아! 아니지, 최 상사라 불러야겠네. 살아있었구나!”
과거 특전부사관 현역 시절의 직속 후임이었던 최 하사였다. 지금은 진급을 거듭해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너무도 반갑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계급이 무슨 상관입니까. 역시나. 반드시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진짜 다행입니다. 단결!”
최 상사는 성현이라면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었다.
“하아-. 인사는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꼴이 우습게 됐네.”
그제야 최 상사의 눈에도 성현이 찬 수갑과 그의 일행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최 상사는 낯빛이 변해 성현을 데려온 진 중령을 바라봤다.
진 중령도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알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범죄 혐의로 조사받아야 하네.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최 상사에게 막대할 수는 없었다.
“죄명이 뭡니까?”
최 상사는 악다문 입으로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그 기분이 가히 좋지 않음을 표했다.
계급으로 본다면 최동원 상사가 진경준 중령에게 보이는 행동은 무례하다 할 수 있었다.
사태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참 아래의 상사라 하나 함부로 할 위치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냐. 자세한 사항은 치안본부나 위원회에 확인해보는 게 좋겠네.”
진경준 중령이 좋게 타일렀다.
진 중령은 일선 부대에 있다가 차출되어 대피소 경비대 부대장을 맡고 있었고, 현재 최동원 상사는 전투 부대 부대장으로 있는 이였다.
전투 부대는 사태 발생 후 첫 외부 정찰 때 최상급자였던 지휘관인 대령을 비롯해 28명이 생환하지 못했고, 현재 부대 내에서 최고선임이 최 상사였다.
최동원 상사의 계급만 상사일 뿐. 이곳에서의 영향력은 그 이상이었다.
“동원아. 죄가 없으니 오해는 곧 풀릴 거라 본다. 걱정마라. 곧 다시 보도록 하자. 갑시다.”
성현의 말에 최 상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진다.
성현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역 시절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최고의 군인이었고, 짠돌이 사수였지만,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모든 걸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군에서 모친상을 당하고 슬픔에 잠겨 무기력했던 자신을 다독이고 이끌어준 사람.
성현과 자주 연락은 못했지만, 휴가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던 전우였고, 형제 같은 이였다.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군인의 표상이고 우상이었다. 그런 그를 본받아 전우들을 대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일과 후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중령님!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십시오. 최고의 군인이었던 분입니다. 모두 차렷! 경례!”
“단-결!!!”
자신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성현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최 상사를 만나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다시 만난 과거의 인연들이 너무도 반갑다. 이들의 손을 잡고 회포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크흠··· 모두 가자.”
입구 바리케이드가 열리고, 대기 중이던 험비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성현을 체포하고 데려온 진 중령은 얼떨떨했다.
치안본부에서 보내준 용모파기와 같은 범죄자를 찾았고, 연행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범죄자가 아니었다.
생각 이상의 인물이었다.
“그 군복이 본인께 맞는가 보군요. 최 상사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진 중령이 함께 동승한 성현에게 처음과 달리 상당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성현은 그런 진 중령의 질의에 대충대충 답을 하며 터널 안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터널 초입을 지나자 안으로 갈수록 터널은 좁아졌다. 좁아졌다고는 하지만, 높이가 6미터 넓이가 10여 미터는 되었다.
터널 안의 길은 나선형으로 지하로 이어졌고, 상당한 깊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거대한 돔형식의 공동이 나타났다. 축구장 한 개 넓이는 될법한 넓이였다.
“이곳이 대피소입니까?”
“거주지와 지휘본부가 있는 본 대피소는 더 아래에 있소. 여기는 일종의 집하장으로 보면 되오.”
돔 형태의 공동에는 성현이 들어온 길 말고도 세 개의 터널이 추가로 뚫려 있었다. 그중 두 개의 터널로 팔레트를 나르는 지게차가 반복적으로 오가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규모가 상상 이상인데.’
당장 이곳에만 수백 명의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하며 움직이고 있다.
작은 공사용 굴착기도 돌아다니는 것이 아직 공사가 계속 중임을 알게 했다.
끼이익.
거대한 공동의 한쪽에 제법 커다란 건물과 벽으로 구분된 장소에 차를 세우자, 모두가 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거주 구역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차량들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진 중령이 알려줬다.
“여기 타시오.”
골프장에서나 운용될법한 전동차량이었다. 운전자 제외 13인승이고, 유리창이나 천장이 없는 바퀴 달린 철 상자 같았다.
위위윙.
가벼운 모터음을 내며 차량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돔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터널로 들어서자 상당히 가파른 터널이 이들을 맞았다.
새로 들어선 터널도 작지 않다.
높이가 5m 폭은 그 두 배인 10m나 되었다. 대형트럭도 거뜬히 드나 들만한 넓이였다.
거기다 벽과 천정을 이루는 구조물들은 두꺼운 강철 프레임과 강화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었고, 상당히 공들여 무너지지 않게 마감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내려가는 거야?’
상당한 깊이로 내려왔음을 기온변화로 성현은 느꼈다. 서늘한 기운이 밖이 한여름임을 잊게 했다.
“도대체 깊이가 어떻게 됩니까? 기밀입니까?”
“뭐 기밀까지야. 방금 차를 갈아탄 공동이 대략 지하 300미터쯤 되고, 본 대피소는 산의 중심부에 있지. 지면에서 얕은 곳은 550미터 두터운 곳은 680미터 정도 되지. 아직 시설은 완벽하지는 않아서. 보수와 증축이 아직 한참이네.”
성현은 대피소에 대한 정보를 진 중령을 통해 들었고, 예상보다 깊은 곳임에 조금 놀랐다.
대피소는 방대한 규모를 상정하고 추가적인 시설을 만들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진 중령조차도 모든 시설을 알 수 없었고, 짐작만 하고 있는 곳도 수두룩했다.
윙윙위이잉.
모터음이 현저하게 줄더니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다 왔군.”
거대한 강철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삐빅.
“경비대 부대장이다. 전일 고발된 용의자 체포해 이송 중이다. 도어 1단계 개방 요청한다. 이상.”
-대기 바랍니다. 현재 입구 공사 중입니다. 5분 뒤 1단계 개방토록 하겠습니다. 이상.
진경준 중령이 무전을 하고, 통신을 받은 지휘본부에서 곧바로 답을 해줬다.
쿠쿵. 구구구궁.
육중한 강철 슬라이드 도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른 몸통만 한 십여 개의 유압 실린더가 높이 6m, 두께 50㎝ 문을 밀어내고, 1단계 개폐 허용치인 차량 한 대가 드나들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차량이 다시 움직였다.
“후우-, 그럼 하나만 부탁합시다. 우리가 죽였다는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죽일 뻔한 적도 없는, 죽일 뻔한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그것만 알려 주시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일단 잡혀가더라도 언제든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두식과 용칠의 안전만 확보되면 대피소 전체와 싸운대도 할 만하다 생각했다.
‘여의치 않다면 모두 엎어버린다.’
“서지연, 서지연이란 사람이 고발했고, 믿을만한 분이 보증을 섰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 다 더할 말 있나?”
진 중령 또한 뭔가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곰곰이 생각했고, 이 정도는 문제없다 판단되어 성현의 질문에 답 해줬다.
‘서지연? 서지연이 누구야? 서······.’
“헐. 아저씨, 그 할망구 이름이에요.”
해미의 말을 듣고 그제야 번득 떠오르고 개안이 된다. 이제 모든 일들이 속 시원히 들여다보였다.
“하아-.”
문제의 발단을 알았다고는 하나 한숨부터 나온다.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미야, 두식이 용칠아. 일단 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라. 잠시 대피소 상황이나 보러 간다 생각해.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쳇! 제가 그 할망구 보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네, 중사님.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성현과 두식, 용칠이 바닥에 총과 가진 장비를 내려놓았다. 해미는 진즉에 빈손이다.
“체포해.”
군인들이 달려와 성현과 일행의 손목에 수갑 전용 케이블 타이를 채웠다.
지지직.
케이블 타이가 당겨지며, 특유의 마찰음을 냈다.
“아따, 좀 살살 좀 합시다. 피는 통해야 할 거 아뇨!”
두식의 강한 어필에 찔끔한 군인이 케이블 타이를 다시 꺼내 새로 채웠다. 군인들도 이런 장비에는 익숙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어라, 둘 다 방금까지 헬멧 쓰고 있지 않았나?”
“타기 직전에 버렸소.”
차에 탄 성현이 담담히 말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경준 소령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잊었다.
* * *
청계산 동쪽 해발 150m 부근.
비포장 등산로를 확장해 아스콘이 아닌 콘크리트로 강성 포장해 중차량 통과 도로가 만들어져있었다.
단시간에 얼마만큼의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었는지 짐작이 가능했다.
부아앙.
고기동 차량인 험비들이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며 달리고 있었다.
사실 소음만 요란했지 험비의 엔진 출력은 고작해야 220마력이었고, 가속력은 형편없었다.
성현과 해미, 두식과 용칠은 두 대의 험비에 나뉘어 이송 중이었다.
“와. 저기가 대피소 입구에요?”
해미가 산속에 나타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보고 감탄을 자아낸다.
청계산은 해발고도가 612m였고, 그 중턱에 살짝 못 미치는 250m 지점에 초대형 터널이 떡하니 만들어져 있었다.
터널 입구는 평탄 작업을 마친, 대략 50,000㎡의 어지간한 축구경기장 넓이보다 큰 공터가 조성되어있었다.
터널의 입구는 반구 형태로 높이는 20m, 바닥의 폭은 40m에 달했다.
원래는 입구를 막았을 거대한 강철 골조의 두터운 콘크리트 문은 활짝 개방되어있었다.
‘제대로 방어 라인을 구축했다.’
터널의 입구 부근은 각종 중화기가 설치되어있었다.
그중 K4 고속유탄발사기, 일명 흑거미가 터널 입구 양 끝 쪽에 배치되어있었다.
한 발 한 발이 살상 반경 15m에 이르고 분당 최대 100발을 쏘아내는 직사화기였다.
이외에 12.7 mm 탄을 사용하는 중기관총 2대와 5.56mm 경기관총 2대가 터널 입구를 완벽하게 방비 중이었다.
그리고 완전 무장한 20여명의 군인들이 경비 중이었다.
끼이익.
성현과 일행들을 이송한 험비들이 터널 입구 바리케이드 앞에서 멈추어 섰고, 군인들의 지시로 그들을 따라 내렸다.
그리고 의아한 상황을 목격했다. 지휘관인 진 중령이 터널 경비대 선임에게 다가가 성현과 그 일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중령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 있는 이들이 아니다.’
성현이 보기에 지금 입구 경계를 담당하는 군인들은 진 중령과 같은 군복을 입었지만, 직속 부대원들이 아님을 짐작했다.
자신의 부대원들이라면, 복잡한 통관 절차를 따질 것도 없이 차량 그대로 통과해도 될 문제였다.
‘지휘 계통이 최소 둘 이상이라는 거겠지.’
성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들을 데려온 군인들을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걸으며 살펴보니 군기가 엄정하고 상당한 정예로 이루어진 팀 같은 분위기였다. 밖에서 마주한 이들과는 눈빛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묘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때마침, 입구 초소로 쓰이는 한 컨테이너에서 몇 명의 군인들이 나왔고, 그 중 한 명이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형님!!”
한 군인이 성현을 알은체했고, 반가움을 가득 담은 얼굴로 뛰어왔다.
“어라, 너 이 자식 동원아! 아니지, 최 상사라 불러야겠네. 살아있었구나!”
과거 특전부사관 현역 시절의 직속 후임이었던 최 하사였다. 지금은 진급을 거듭해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너무도 반갑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계급이 무슨 상관입니까. 역시나. 반드시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진짜 다행입니다. 단결!”
최 상사는 성현이라면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었다.
“하아-. 인사는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꼴이 우습게 됐네.”
그제야 최 상사의 눈에도 성현이 찬 수갑과 그의 일행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최 상사는 낯빛이 변해 성현을 데려온 진 중령을 바라봤다.
진 중령도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알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범죄 혐의로 조사받아야 하네.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최 상사에게 막대할 수는 없었다.
“죄명이 뭡니까?”
최 상사는 악다문 입으로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그 기분이 가히 좋지 않음을 표했다.
계급으로 본다면 최동원 상사가 진경준 중령에게 보이는 행동은 무례하다 할 수 있었다.
사태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참 아래의 상사라 하나 함부로 할 위치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냐. 자세한 사항은 치안본부나 위원회에 확인해보는 게 좋겠네.”
진경준 중령이 좋게 타일렀다.
진 중령은 일선 부대에 있다가 차출되어 대피소 경비대 부대장을 맡고 있었고, 현재 최동원 상사는 전투 부대 부대장으로 있는 이였다.
전투 부대는 사태 발생 후 첫 외부 정찰 때 최상급자였던 지휘관인 대령을 비롯해 28명이 생환하지 못했고, 현재 부대 내에서 최고선임이 최 상사였다.
최동원 상사의 계급만 상사일 뿐. 이곳에서의 영향력은 그 이상이었다.
“동원아. 죄가 없으니 오해는 곧 풀릴 거라 본다. 걱정마라. 곧 다시 보도록 하자. 갑시다.”
성현의 말에 최 상사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진다.
성현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역 시절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최고의 군인이었고, 짠돌이 사수였지만,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고 모든 걸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군에서 모친상을 당하고 슬픔에 잠겨 무기력했던 자신을 다독이고 이끌어준 사람.
성현과 자주 연락은 못했지만, 휴가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던 전우였고, 형제 같은 이였다.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군인의 표상이고 우상이었다. 그런 그를 본받아 전우들을 대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일과 후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중령님!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십시오. 최고의 군인이었던 분입니다. 모두 차렷! 경례!”
“단-결!!!”
자신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성현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최 상사를 만나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다시 만난 과거의 인연들이 너무도 반갑다. 이들의 손을 잡고 회포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크흠··· 모두 가자.”
입구 바리케이드가 열리고, 대기 중이던 험비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성현을 체포하고 데려온 진 중령은 얼떨떨했다.
치안본부에서 보내준 용모파기와 같은 범죄자를 찾았고, 연행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범죄자가 아니었다.
생각 이상의 인물이었다.
“그 군복이 본인께 맞는가 보군요. 최 상사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진 중령이 함께 동승한 성현에게 처음과 달리 상당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성현은 그런 진 중령의 질의에 대충대충 답을 하며 터널 안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터널 초입을 지나자 안으로 갈수록 터널은 좁아졌다. 좁아졌다고는 하지만, 높이가 6미터 넓이가 10여 미터는 되었다.
터널 안의 길은 나선형으로 지하로 이어졌고, 상당한 깊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거대한 돔형식의 공동이 나타났다. 축구장 한 개 넓이는 될법한 넓이였다.
“이곳이 대피소입니까?”
“거주지와 지휘본부가 있는 본 대피소는 더 아래에 있소. 여기는 일종의 집하장으로 보면 되오.”
돔 형태의 공동에는 성현이 들어온 길 말고도 세 개의 터널이 추가로 뚫려 있었다. 그중 두 개의 터널로 팔레트를 나르는 지게차가 반복적으로 오가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규모가 상상 이상인데.’
당장 이곳에만 수백 명의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하며 움직이고 있다.
작은 공사용 굴착기도 돌아다니는 것이 아직 공사가 계속 중임을 알게 했다.
끼이익.
거대한 공동의 한쪽에 제법 커다란 건물과 벽으로 구분된 장소에 차를 세우자, 모두가 내리도록 했다.
그리고 거주 구역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차량들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진 중령이 알려줬다.
“여기 타시오.”
골프장에서나 운용될법한 전동차량이었다. 운전자 제외 13인승이고, 유리창이나 천장이 없는 바퀴 달린 철 상자 같았다.
위위윙.
가벼운 모터음을 내며 차량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돔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터널로 들어서자 상당히 가파른 터널이 이들을 맞았다.
새로 들어선 터널도 작지 않다.
높이가 5m 폭은 그 두 배인 10m나 되었다. 대형트럭도 거뜬히 드나 들만한 넓이였다.
거기다 벽과 천정을 이루는 구조물들은 두꺼운 강철 프레임과 강화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었고, 상당히 공들여 무너지지 않게 마감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내려가는 거야?’
상당한 깊이로 내려왔음을 기온변화로 성현은 느꼈다. 서늘한 기운이 밖이 한여름임을 잊게 했다.
“도대체 깊이가 어떻게 됩니까? 기밀입니까?”
“뭐 기밀까지야. 방금 차를 갈아탄 공동이 대략 지하 300미터쯤 되고, 본 대피소는 산의 중심부에 있지. 지면에서 얕은 곳은 550미터 두터운 곳은 680미터 정도 되지. 아직 시설은 완벽하지는 않아서. 보수와 증축이 아직 한참이네.”
성현은 대피소에 대한 정보를 진 중령을 통해 들었고, 예상보다 깊은 곳임에 조금 놀랐다.
대피소는 방대한 규모를 상정하고 추가적인 시설을 만들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진 중령조차도 모든 시설을 알 수 없었고, 짐작만 하고 있는 곳도 수두룩했다.
윙윙위이잉.
모터음이 현저하게 줄더니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다 왔군.”
거대한 강철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삐빅.
“경비대 부대장이다. 전일 고발된 용의자 체포해 이송 중이다. 도어 1단계 개방 요청한다. 이상.”
-대기 바랍니다. 현재 입구 공사 중입니다. 5분 뒤 1단계 개방토록 하겠습니다. 이상.
진경준 중령이 무전을 하고, 통신을 받은 지휘본부에서 곧바로 답을 해줬다.
쿠쿵. 구구구궁.
육중한 강철 슬라이드 도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른 몸통만 한 십여 개의 유압 실린더가 높이 6m, 두께 50㎝ 문을 밀어내고, 1단계 개폐 허용치인 차량 한 대가 드나들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
차량이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