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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청계산 입성(入城) (3)



지하 대피소 거주 구역.
거주지는 거대한 돔 형태의 집하장과는 달랐다. 전체를 깎아 만든 것이 아닌 개미굴처럼 수많은 통로들로 이루어진 생활구역이었다.
서로 얽히고설킨 통로는 기본적으로 높이 4m 넓이가 6m인 직사각형의 통로였고, 밝은 전등이 통로를 대낮처럼 밝혀주어 지하특유의 칙칙함은 없었다.
그리고 통로 중앙을 관통하는 상하수도시설은 주거생활의 불편을 덜어줬다.
치안유지본부.
성현은 중앙지휘본부 인근에 위치한 치안유지본부로 이송되어졌다.
치안유지본부는 3층 건물로 층당 300평으로 상당히 큰 규모였다.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형사 직함을 달고 있는 이들이 백여 명이고, 검사 두 명에 본부장이 한 명 있었다.
조직편성부터 임명은 모두 대피소 의결기관인 위원회에서 이루어졌고, 임의로 뽑은 이들이었다.
과거 경찰이나 공직에 있었던 이들도 있었지만 아닌 이들이 더 많았다.
위원회는 치안을 유지하기보다 자신들의 사람들로 채워 놓고 대피소 내에서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이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고자했다.
“들어가.”
군인들로부터 치안본부로 인계된 성현과 일행은 형사들에 이끌려 구치소로 이동되었다.
구치소는 치안유지본부 3층에 있었고, 30개의 독방으로 구성되어있었다.
구치소 내 구금 시설로 만들어진 감방은 구색은 갖추었으나 조잡했다.
한쪽에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은 요강 하나가 전부였고, 침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나무판때기는 바닥보다 조금 높을 뿐이었다.
대충 만들어진 책상, 그리고 등받이 없는 의자 두 개가 휑한 방에 있는 전부였다.
“아저씨··· 별일 없죠?”
복도와 연결된 철제문은 손바닥 크기의 작은 창이 나있었다. 그 창을 통해 해미가 성현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해미야. 문제 생기면 전에 아저씨가 이야기한데로 능력 아끼지 말고. 아저씨도 그럴 테니까. 오래는 안 있을 테니 조금만 참아보자”
“네-. 아저씨.”
성현은 해미에게 따로 이야기는 해두었지만, 노파심에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두식이. 용칠아 지금 듣고 있지?”
“네. 중사님 들립니다.”
“예. 잘 들립니다.”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너희는 소란이 일면 일단 그대로 있어라. 너희 안전을 위해서다.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반드시 꺼내 줄 테니. 걱정 말고, 내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거라 믿는다.”
“넵. 걱정 마십시오.”
“예.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두식과 용칠은 성현의 말에 이해했다는 듯 답을 했고, 이내 정적이 흘렀다.
성현이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 두 명과 검사라는 이가 성현을 찾았다.
형사들은 검사의 지시로 밖에 대기했고, 검사는 성현과 단둘이 마주 하고 앉았다.
“사고를 많이 쳤더군.”
작은 서류철을 들여다보던 검사가 입을 열었다.
전산망이 외부와 연결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각 개별 대피소에는 국민 전체 인명록이 저장되어있었다.
성현의 자료를 가지고 온 담당 검사라는 이가 형식상 취조하듯 말을 했다.
“어이. 좋은 게 좋다고 쉽게 가자. 잘만 따라주면 첫 사건이고 하니 조서도 정상참작이 가능하게 써주고 내가 형도 적게 때려 줄 수도 있어. 과거와 같은 법절차를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그 딴 건 여기 없어. 어렵게 가지 말자고.”
이는 한 사람이 공소권과 형 집행 권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그리고 성현의 사건이 이들에게는 첫 사건이었다.
이를 본보기로 자신들의 입지를 두텁게 할 생각에 부풀어 있는 검사였다.
‘세상이 이지경인데 꼬락서니하고는 쯧.’
성현의 눈앞에 있는 이는 왁스 바른 머리에 말끔한 셔츠, 다림질된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범하고 정상적이지만 지금 성현이 보기엔 다른 세상사람 같았다.
톡. 톡.
이시용 검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습관처럼 두드리며 성현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과 이해미가 사람들을 죽이고, 서지연 그분을 죽이려고 했음을 인정하나?”
“이미 같은 말만 세 번 째 인데. 나나 해미는 누굴 죽인 적이 없고, 죽이려고 한 적도 없다고. 이건 서지연인가 하는 그 여자의 거짓말이라고 했을 텐데. 어이 검사 양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최소한 증거는 있어야 하지 않나?”
성현도 이제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똑같은 질문 같은 답만 3번째였다.
아무리 세상이 망가지고 변했어도 사건조사에 따른 절차가 이렇게 엉성하고 막무가내일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사건 경위 조사나 진술 조서 같은 건 모든 게 생략된 비정상적인 절차였다
누구 한사람의 말만 듣고 일방통행으로만 이루어지는 조사는 말도 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좋게 가려고 했더니,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
이시용 검사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위협적으로 성현을 몰아붙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말도 되지도 않은 사건이었고, 자백만 어떻게든 받아내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적법한 절차나 법조항 따위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말도 전달받았다.
이전처럼 긴급구속하고 몇 시간 안에 풀어줄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어떻게든 범인으로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증거 가져와. 그도 아니면 삼자대면이라도 시켜! 그리고 네가 새끼라고 할 만큼 내가 어린나이가 아냐 이 새끼야!”
성현이 시퍼런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타인을 압도하는 무형의 기운이 전신에서 피어오른다.
누구든 위축되고 두려움을 가질만한 기세였다.
우당탕.
이시용 검사는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혼백이 날아가는 듯 놀라 의자 뒤로 넘어졌다.
벌떡.
“이 개··· 두, 두고 보자.”
욕을 하려다가 성현이 노려보자 찔끔한 이시용 검사는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간다.
밖에 있던 형사가 작은 창으로 안을 노려보지만 성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나간 검사 놈이 오지 않자 성현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성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쪽 벽에 자리한 딱딱한 침상에 몸을 누이고 팔베개를 했다.
‘딱 하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오래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나가 뒤집어엎고 싶지만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 * *

“이것 봐 이 검사.”
“네. 의장님.”
성현의 자백을 받지 못하고 구치소에서 나온 이시용 검사는 지금 중앙지휘본부에 있는 위원회 의장실로 불려와 있었다.
“작은일 하나 맡겼더니 그것도 제대로 못하나?”
“저 그게 사건 자체가 그렇고 또 증거도······.”
“어허! 이사람 안 되겠구먼. 자네 검사일이 영 안 맞나봐. 다시 일반 거주민으로 공사일이나 하는 게 체질에 맞나보군.”
의장이 이시용 검사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반드시 자백을 받아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거주 구역은 세 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일반 구역, 관리 구역, 그리고 위원회 소속과 각 본부의 부장들이 거주하는 중앙 구역이 있었다.
일반 거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했고, 단체급식을 하고 각자 맡은 곳에서 매일 노역과 같은 강제 노동을 하고 있었다.
관리자 계층은 강제노동에서 벗어나 있는 건 물론 이들은 거주지에서 취사도 가능했다. 좀 더 안락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위원회 소속의 인사들과 그 가족들의 특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호호. 동생 이 검사한테 기회를 좀 주지 그래. 이 검사도 이만 하면 알아들었을 거 같은데, 안 그래요? 이 검사.”
“네. 네 맞습니다. 사모님. 제가 책임지고 자백 받고 반드시 죄 값 치를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시용 검사가 사모님이라 부른 이는 바로 서지연이였다.
그녀는 재벌가의 삼녀로 유력 언론사 사주의 차남과 결혼했고, 또 딸자식은 다시 재벌가에 시집을 보냈다.
다른 인물에 비해 다소 부족한 점이 있어 VIP 명단에는 들지 못해 사태 이전에 보호 받지 못했지만, 정재계 최고위급 인사들과는 혈연과 학연등 인맥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서지연이 대피소에 오게 된 경위는 우연과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졌고, 묘하게 운이 좋았음이 분명했다.
의식을 잃고 정신을 차리자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고, 해미라는 아이가 인간같이 보이지 않았었다.
이러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고, 대피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앞뒤 재보지도 않고 도망치듯 혼자 떠났었다.
그리고 때 마침 대피소 3km 지점까지 원거리 정찰에 나선 군인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홀로 갔다면 엄두를 못 냈을 구간을 손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생존자 소식이 당일 의장에게까지 전해져, 의장은 외사촌 누이임을 단번에 알아채고 만난 것이다.
의장은 그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고, 괘씸한 생각만이 머리에 남았다.
구해준 은혜보다 외사촌누이가 근본도 없는 천한 것들에게 업심받았다 생각했고, 주제도 모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한 거다.
어차피 대피소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이들이 있을 수 없었고, 작다지만 이곳에서 왕에 버금가는 지휘를 누리고 있었다.
어려울 일은 없다 생각했다.

* * *

이제 다섯 시간 남짓 치안유지본부 구치소에 구금된 성현은 따분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똑. 똑.
“형님?”
찾아온 이는 현역 시절 직속 후임이었던 최동원 상사였다.
“동원아, 뭐 하러 왔냐. 무슨 좋은 꼴 본다고.”
“어떻게 안 옵니까. 형님 일인데요.”
최 상사가 상체를 들이밀고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어어. 부대장님 면회는 검사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싶은데······.”
최 상사를 안내하고 온 형사는 얼굴만 보고 간다기에 데려왔는데 최 상사가 감방 안으로 들어가자 못내 불안한지 말했다.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고 일보세요. 오래 있진 않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야··· 하하. 알겠습니다. 전 그럼 그렇게 알고 이삼십 분 정도 있다 오겠습니다. 크흠.”
철컹.
저벅저벅.
형사가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멀어지자 최 상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형님. 어찌된 영문입니까? 여기 치안본부장이 살인 어쩌고 하던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휴우-. 말하자면 길다······.”
성현은 일말의 주저 없이 이야기를 쏟아 낸다.
이게 신뢰할 수 있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있는 갭의 차이였다.
최동원 상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성현은 이야기 해줬다.
많이 황당하고 설마 싶은 이야기 까지 최 상사에게는 해주었다.
자신이 알고 그리고 격어 본 이들 중에 첫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이였다.
당장 전장에 나가도 최 상사라면 언제든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력에 대한 이야기까지 일부 했고, 마지막에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까지도 보여 줬다.
“······!!”
최 상사는 난데없이 허공에서 총이며 여러 가지를 물건들을 꺼내고 넣는 것을 보고 눈이 틔어 나올 만치 커졌다.
“왜, 마술 같아?”
“아··· 아니 마술 같지는 않지만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습니다.”
최 상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성현은 일종의 초능력을 얻었다고 말하며, 보여주는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좀 더 보여주랴?”
성현은 최 상사를 놀리기라도 하듯 일어서서 창고의 물건을 뺏다 넣었다하며 재주를 부렸다.
“하-아, 형님. 믿어요, 믿어. 그만하셔도 됩니다. 어쩌면 세상이 이지경인 게 더 못 믿을 일이죠.”
최 상사는 성현이 가진 능력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능력이 있고 성현이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런 소문이 있습니다. 사태이후에 초능력이 생긴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한 부대에 있는 애들은 형님처럼 특별한 능력은 못 얻었지만, 이전보다 힘이 쌔지고 몸이 가벼워 졌습니다. 형님은 좀 특별하신 것 같습니다. 역시··· 역시나 대단 하십니다.”
성현에게 단 한 점의 의혹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 최 상사였다. 그에게 성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 여사, 그 여자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니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형님 이일 저한테 맡기십시오. 제가 형님을 압니다. 참아주십시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성현의 성품을 안다.
첫째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둘째 지독히 냉철하다.
셋째 자신과 결부된 이들의 신상에 매우 예민하다.
넷째 적에 대한 자비는 없다.
네 번째 경우는 소말리아 작전 도중 자신이 부상 입었을 때 미쳐 날뛰던 성현이 어떻게 적들을 대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부대원들조차 당시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정신과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각했다.
통합사령부는 작전을 불문에 붙였고, 참여했던 중대원 12명은 이일을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함구했다.
최 상사는 성현이 걱정되기보다 성현과 척을 진 놈들이 더 걱정이다.
사태 이전이라면 어떻게 성현을 조금이라도 걱정해야 했지만, 세상이 달라졌고, 성현은 더욱 큰 변화를 겪었다. 변화했다는 말로는 모자라 진화에 가깝게 변모했다.
대충 짐작만으로도 어떠할지 감이 잡히는 최 상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