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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19화)
6장 황보세가 (1)
연주를 떠난 지 사흘이 지나 일행은 태산(泰山) 근처에 이르렀다.
이제 제남까지는 이틀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오악 중 으뜸이라 일컫는 태산을 지나는 관도는 평상시에는 제법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으나, 최근의 흉흉한 민심 때문인지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태산까지 오며 적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이제껏 혼자서 무공을 익혔다고 했다.
열 살 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게 된 적산은 강해지기로 마음먹고 처음에는 무관이나 무림 문파들을 기웃거리며 무공을 배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돈도 없고 출신도 보잘것없는 적산을 받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적산의 자질을 제대로 알아봤더라면 그렇게 홀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적산이 돌아다닌 곳들은 대부분 끽해야 중소문파를 벗어나지 못한 곳들이었기에 안목 역시도 그리 높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결국 받아 주는 곳을 찾지 못한 적산은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구한 무공서적― 삼재기공, 삼재검법이 적혀 있는 서적이었다 한다. 그것도 정식 삼재검과는 거리가 먼 단순화된 삼재검―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독학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적산의 재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시중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삼재공 비급을 가지고 혼자 무공을 익혀 제검문 무사들을 제압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적산은 이곳까지 오면서도 수시로 진운룡에게 덤벼들었다가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심지어는 새벽에도 갑자기 덮쳐 왔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진운룡의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자 얼마 전부터 전략을 바꿨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진운룡에게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익힌 무공이 일반 백성들 체력단련에나 사용하는 조악한 것임을 알고는 더욱 진운룡을 귀찮게 했다.
“이봐, 이거 너무 불공평하잖아. 내가 만일 심법만 제대로 익혔다면 당신에게 이렇듯 형편없이 당하진 않았을걸? 사내라면 동등한 싸움을 해야지. 나에게도 공력을 키울 방법을 알려 달라고.”
완전한 억지였으나 진운룡은 가타부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적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 진짜 시끄럽네! 근데, 어젯밤에는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예요?”
적산을 흘겨보던 소은설이 문득 생각난 듯 진운룡에게 물었다.
새벽에 갑자기 진운룡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다.
“왜 약속했던 대가를 받으러 갈까 봐 기다렸나?”
“무, 무슨!”
소은설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휑하니 돌렸다.
“그, 그런데 정말 어디를 갔다 온 거예요?”
소은설이 궁금함을 못 참고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물었다.
“사냥.”
진운룡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 오밤중에 웬 사냥? 게다가 사냥을 했다면서 잡은 짐승 고기는 어디 있는 거죠?”
“고기는 필요 없거든.”
대체 뭔 소리냐는 얼굴로 소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입이거든요? 만날 육포만 먹는 거 질렸다구요! 치사하게 혼자 먹지 말고 동료애 좀 발휘하시죠?!”
“별로 먹고 싶지 않을 텐데?”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
눈썹을 추켜올린 소은설이 막 뭐라고 한 마디 하려 할 때였다.
채챙! 챙!
일행의 앞쪽에서 갑자기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무슨 일일까요?”
소은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했다.
“이거 싸움이 났나 본데? 그렇다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뒤쪽에서 따라오던 적산이 어느새 휭 하니 몸을 날려 앞으로 내달렸다.
“저 싸움귀신은 참 일관성이 있네.”
소은설이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적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두 사람의 시야에도 현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청년 두 명과, 검을 든 소녀 하나가 스무 명이 넘는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세 젊은이들을 둘러싼 이들은 허름한 복장과 추례한 몰골을 보아 아무래도 무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로 보였다.
그에 반해 청년들과 소녀는 척 보기에도 제대로 무공을 익힌 듯 자세가 안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관군을 피해 도망친 민란 가담자들 같네요.”
소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 백성들이 폭정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난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란은 관군에 의해 진압되기 마련이었다.
관군의 토벌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가담자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역적으로 잡혀 참수될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다른 도시로 도망치기엔 도처에 깔린 검문을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대부분의 가담자들은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숨어 버리든가, 아니면 산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저들 역시 살기 위해 결국 산적질을 택한 듯했다.
“일반 백성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
진운룡이 흥미로운 눈으로 두 무리의 싸움을 바라봤다.
모두 스물세 명의 무리가 마치 진을 짠 듯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세 젊은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군요. 저 여인과 청년들이 입은 옷을 보니 황보세가 사람들이 틀림없거든요. 한데 어찌 평범한 백성들이 저토록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제남에 위치한 황보세가는 산동의 패자이자 강호 오대세가에 꼽힐 정도로 무림에서 그 위치가 단단했다.
그만큼 세가 구성원들 역시 이름에 걸맞은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평범한 백성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아닌 모양이지.”
진운룡의 말에 소은설이 눈을 멀뚱거렸다.
“누가 나쁜 놈이냐!”
그때, 먼저 현장에 도착한 적산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갑작스런 적산의 등장에 싸움이 멈췄다.
양측의 시선이 적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진운룡과 소은설도 그들의 시야에 잡혔다.
“저놈들도 잡아라! 어차피 관군이나 무림인이나 제 놈들 뱃속 불리기에만 신경 쓰는 놈들이다!”
무리 중 수장인 듯한 자가 적산과 진운룡 일행에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황보세가 젊은이들을 상대하던 무리들 중 열 명이 진운룡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후후, 좋아! 걸어 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나의 좌우명!”
적산이 신이 나서 마주 달려갔다.
다섯 명이 적산을 둘러싼 채 진을 형성했고, 나머지 다섯은 진운룡과 소은설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볼 때는 진운룡이나 소은설보다 적산이 더 강해 보였던 모양이다.
소은설이야 워낙에 무공이 일천했고, 진운룡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은 탓이리라.
열 명이 진운룡 일행에게 빠져나간 탓에 황보세가 일행은 한결 편안하게 나머지 무리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비록 무리의 수장인 듯한 자의 무공이 상당히 높아 쉽게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으나, 이제 더는 밀리지 않고 있었다.
적산은 곧바로 자신을 포위한 다섯 사내와 맞부딪혔다.
다섯 사내가 번갈아 가며 적산을 공격했으나, 적산은 요리조리 움직이며 그들의 공격을 용케 피해 냈다.
그렇다고 적산이 그들에게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은 무공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진(陣)이었다.
풍차처럼 돌아가면서 연달아 쏟아 내는 공격은 물론, 한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네 명이 적산을 공격하는 통에 쉽게 틈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편, 나머지 다섯 사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진운룡과 소은설을 포위했다.
“당장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무릎을 꿇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물론 계집은 좀 더 봉사를 해야 하겠지만. 큭큭큭!”
도를 손에든 외눈 사내의 말에 다섯 사내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소은설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런 개 버러지 같은!”
그들의 딱한 사정에 안쓰러웠던 마음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이미 민란을 일으켰던 초심은 사라지고 한낱 도적으로 전락해 버린 자들이었다. 일말의 동정심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호오! 고년 성깔이 제법이구나? 일단 사내놈부터 죽이고 나서 네년을 맛보도록 할 테니 너무 보채지 말거라. 큭큭큭!”
외눈 사내가 턱짓을 하자 다섯 사내가 한꺼번에 진운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아이는 안타깝게도 이미 내가 먼저 맛보기로 선약이 되어 있는데 말이지…….”
“무, 무슨 소리예요!”
진운룡이 곤란하다는 투로 말하자, 소은설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빽 하고 소리쳤다.
피식.
차갑게 웃은 진운룡이 공력을 끌어 올렸다.
6장 황보세가 (1)
연주를 떠난 지 사흘이 지나 일행은 태산(泰山) 근처에 이르렀다.
이제 제남까지는 이틀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오악 중 으뜸이라 일컫는 태산을 지나는 관도는 평상시에는 제법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으나, 최근의 흉흉한 민심 때문인지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태산까지 오며 적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놀랍게도 이제껏 혼자서 무공을 익혔다고 했다.
열 살 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남게 된 적산은 강해지기로 마음먹고 처음에는 무관이나 무림 문파들을 기웃거리며 무공을 배우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돈도 없고 출신도 보잘것없는 적산을 받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적산의 자질을 제대로 알아봤더라면 그렇게 홀대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적산이 돌아다닌 곳들은 대부분 끽해야 중소문파를 벗어나지 못한 곳들이었기에 안목 역시도 그리 높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결국 받아 주는 곳을 찾지 못한 적산은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구한 무공서적― 삼재기공, 삼재검법이 적혀 있는 서적이었다 한다. 그것도 정식 삼재검과는 거리가 먼 단순화된 삼재검―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독학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적산의 재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시중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삼재공 비급을 가지고 혼자 무공을 익혀 제검문 무사들을 제압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적산은 이곳까지 오면서도 수시로 진운룡에게 덤벼들었다가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심지어는 새벽에도 갑자기 덮쳐 왔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진운룡의 옷깃조차 건들지 못하자 얼마 전부터 전략을 바꿨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진운룡에게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익힌 무공이 일반 백성들 체력단련에나 사용하는 조악한 것임을 알고는 더욱 진운룡을 귀찮게 했다.
“이봐, 이거 너무 불공평하잖아. 내가 만일 심법만 제대로 익혔다면 당신에게 이렇듯 형편없이 당하진 않았을걸? 사내라면 동등한 싸움을 해야지. 나에게도 공력을 키울 방법을 알려 달라고.”
완전한 억지였으나 진운룡은 가타부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적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우, 진짜 시끄럽네! 근데, 어젯밤에는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예요?”
적산을 흘겨보던 소은설이 문득 생각난 듯 진운룡에게 물었다.
새벽에 갑자기 진운룡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다.
“왜 약속했던 대가를 받으러 갈까 봐 기다렸나?”
“무, 무슨!”
소은설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휑하니 돌렸다.
“그, 그런데 정말 어디를 갔다 온 거예요?”
소은설이 궁금함을 못 참고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물었다.
“사냥.”
진운룡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 오밤중에 웬 사냥? 게다가 사냥을 했다면서 잡은 짐승 고기는 어디 있는 거죠?”
“고기는 필요 없거든.”
대체 뭔 소리냐는 얼굴로 소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입이거든요? 만날 육포만 먹는 거 질렸다구요! 치사하게 혼자 먹지 말고 동료애 좀 발휘하시죠?!”
“별로 먹고 싶지 않을 텐데?”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
눈썹을 추켜올린 소은설이 막 뭐라고 한 마디 하려 할 때였다.
채챙! 챙!
일행의 앞쪽에서 갑자기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무슨 일일까요?”
소은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했다.
“이거 싸움이 났나 본데? 그렇다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뒤쪽에서 따라오던 적산이 어느새 휭 하니 몸을 날려 앞으로 내달렸다.
“저 싸움귀신은 참 일관성이 있네.”
소은설이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적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두 사람의 시야에도 현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청년 두 명과, 검을 든 소녀 하나가 스무 명이 넘는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세 젊은이들을 둘러싼 이들은 허름한 복장과 추례한 몰골을 보아 아무래도 무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로 보였다.
그에 반해 청년들과 소녀는 척 보기에도 제대로 무공을 익힌 듯 자세가 안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관군을 피해 도망친 민란 가담자들 같네요.”
소은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근 백성들이 폭정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난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란은 관군에 의해 진압되기 마련이었다.
관군의 토벌을 피해 뿔뿔이 흩어진 가담자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역적으로 잡혀 참수될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다른 도시로 도망치기엔 도처에 깔린 검문을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대부분의 가담자들은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숨어 버리든가, 아니면 산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저들 역시 살기 위해 결국 산적질을 택한 듯했다.
“일반 백성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
진운룡이 흥미로운 눈으로 두 무리의 싸움을 바라봤다.
모두 스물세 명의 무리가 마치 진을 짠 듯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세 젊은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군요. 저 여인과 청년들이 입은 옷을 보니 황보세가 사람들이 틀림없거든요. 한데 어찌 평범한 백성들이 저토록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제남에 위치한 황보세가는 산동의 패자이자 강호 오대세가에 꼽힐 정도로 무림에서 그 위치가 단단했다.
그만큼 세가 구성원들 역시 이름에 걸맞은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평범한 백성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아닌 모양이지.”
진운룡의 말에 소은설이 눈을 멀뚱거렸다.
“누가 나쁜 놈이냐!”
그때, 먼저 현장에 도착한 적산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갑작스런 적산의 등장에 싸움이 멈췄다.
양측의 시선이 적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진운룡과 소은설도 그들의 시야에 잡혔다.
“저놈들도 잡아라! 어차피 관군이나 무림인이나 제 놈들 뱃속 불리기에만 신경 쓰는 놈들이다!”
무리 중 수장인 듯한 자가 적산과 진운룡 일행에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황보세가 젊은이들을 상대하던 무리들 중 열 명이 진운룡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후후, 좋아! 걸어 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 것이 나의 좌우명!”
적산이 신이 나서 마주 달려갔다.
다섯 명이 적산을 둘러싼 채 진을 형성했고, 나머지 다섯은 진운룡과 소은설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볼 때는 진운룡이나 소은설보다 적산이 더 강해 보였던 모양이다.
소은설이야 워낙에 무공이 일천했고, 진운룡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은 탓이리라.
열 명이 진운룡 일행에게 빠져나간 탓에 황보세가 일행은 한결 편안하게 나머지 무리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비록 무리의 수장인 듯한 자의 무공이 상당히 높아 쉽게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으나, 이제 더는 밀리지 않고 있었다.
적산은 곧바로 자신을 포위한 다섯 사내와 맞부딪혔다.
다섯 사내가 번갈아 가며 적산을 공격했으나, 적산은 요리조리 움직이며 그들의 공격을 용케 피해 냈다.
그렇다고 적산이 그들에게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은 무공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진(陣)이었다.
풍차처럼 돌아가면서 연달아 쏟아 내는 공격은 물론, 한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네 명이 적산을 공격하는 통에 쉽게 틈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편, 나머지 다섯 사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진운룡과 소은설을 포위했다.
“당장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무릎을 꿇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물론 계집은 좀 더 봉사를 해야 하겠지만. 큭큭큭!”
도를 손에든 외눈 사내의 말에 다섯 사내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소은설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런 개 버러지 같은!”
그들의 딱한 사정에 안쓰러웠던 마음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이미 민란을 일으켰던 초심은 사라지고 한낱 도적으로 전락해 버린 자들이었다. 일말의 동정심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호오! 고년 성깔이 제법이구나? 일단 사내놈부터 죽이고 나서 네년을 맛보도록 할 테니 너무 보채지 말거라. 큭큭큭!”
외눈 사내가 턱짓을 하자 다섯 사내가 한꺼번에 진운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아이는 안타깝게도 이미 내가 먼저 맛보기로 선약이 되어 있는데 말이지…….”
“무, 무슨 소리예요!”
진운룡이 곤란하다는 투로 말하자, 소은설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빽 하고 소리쳤다.
피식.
차갑게 웃은 진운룡이 공력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