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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20화)
6장 황보세가 (2)


우우우우웅!
“헉!”
“흐억!”
순간, 진운룡을 향해 돌진하던 다섯 사내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다섯 사내는 갑작스런 상황에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으드득!
곧이어 대기가 진동하며 그들의 몸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더니, 뼈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커헉!”
“아악!”
“사, 살려 줘…….”
고통과 공포가 순식간에 그들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흥! 사람을 봐 가면서 건드려야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더니 꼴좋다!”
어느새 좀 전의 부끄러움을 잊은 소은설이 통쾌한 듯 소리쳤다.
번쩍!
그와 동시에 진운룡의 두 눈에서 섬광이 번뜩이자 다섯 사내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커헉!”
“아악!”
갑작스런 비명 소리에 장내의 싸움이 모두 멈췄다.
“크하하하! 역시 내 목표다운 멋진 실력이야!”
적산이 즐거운 듯 광소를 터뜨렸다.
“젠장! 고수가 있었군! 모두 후퇴하라!”
진운룡이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초극의 고수임을 눈치챈 우두머리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남은 무리들이 우두머리의 명을 따라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들은 마치 잘 조직된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딜!”
적산과 황보세가 일행이 달아나는 무리의 뒤를 쳤다.
“크악!”
“아악!”
진을 이루지 않은 이상 개개인의 무공은 그리 높지 않은 자들이라 순식간에 다섯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동안 나머지 무리들은 숲 속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그만! 더 쫓을 필요는 없어요!”
소녀가 숲으로 들어가려던 두 청년을 말렸다.
“감히 황보세가를 건드린 놈들을 그냥 놓아주잔 말이냐?”
청년 중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구의 사내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오라버니, 어차피 사방으로 흩어져서 쫓아 봐야 한두 명 더 잡을 수 있을 뿐이에요. 게다가 혹시라도 그자들이 전부가 아닐 경우도 생각해야 해요. 자칫 역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어요.”
“형님, 인화의 이야기가 옳습니다. 분하긴 하지만, 일단 추격은 멈추고 나중에 가문의 무사들을 데리고 토벌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마가 넓고 두꺼운 눈썹을 가진 청년이 소녀의 의견에 동의하자 거구의 청년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젠장! 어서 돌아가 놈들을 잡을 추격대를 꾸리자.”
“그러지요. 참,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저희는 황보세가 사람들로 저는 황보영관이라 하고, 이쪽의 제 형님 되시는 황보영호라 하고, 이쪽은…….”
“황보인화라 합니다. 두 분은 저의 오라버니 되십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황보영호라 하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오!”
세 사람이 진운룡 일행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특히 황보인화는 눈을 빛내며 연신 진운룡을 힐끔거렸다.
진운룡의 조각 같은 외모도 외모였지만, 그의 뛰어난 무공 실력이 워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무가의 여식, 그것도 전통적으로 호전적이고 힘을 숭상하는 황보세가에 소속된 그녀이다 보니 강한 사내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반면 비슷한 이유로 황보영호와 황보영관의 눈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진운룡이오.”
“적산이오!”
자칫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두 사람의 단순명료한 소개에 소은설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 하오문의 소은설이라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원래가 이렇게 생겨 먹은 이들이니 이해해 주세요.”
“그……. 하오문이면…….”
황보영호가 얼굴을 붉히며 소은설의 눈치를 봤다.
보통 하오문에 소속된 여인들은 기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황보영호의 표정을 눈치챈 소은설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저, 저는 기녀가 아니라 도둑이에요, 도둑! 호호호!”
순간 정적이 흘렀다.
황보세가의 세 사람이 어색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고, 진운룡과 적산은 그게 자랑이냐는 듯 소은설을 흘겨봤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소은설이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도둑이, 그러니까 절대 그런 나쁜 도둑이 아니라, 탐관오리나 부자들의 돈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의적! 의적이에요! 하하하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크게 웃는 소은설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하! 소 낭자는 의적이시군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시니 복 받으실 거예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도움을 받았으니 저희 세가로 모셔서 꼭 보답해 드리고 싶어요. 그렇죠? 오라버니들?”
황보인화가 얼른 나서서 어색한 상황을 무마했다.
“그럼, 그럼! 당연하지. 황보세가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몇 배로 갚는 것이 대대로 이어져 오는 전통이지!”
“인화의 말이 맞습니다. 당연히 세가로 모셔야지요. 암요, 크흠!”
두 형제는 옳다구나 하고 얼른 동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화제가 옮겨지자 소은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어차피 저희도 제남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니, 잘되었네요. 호호호.”
툭!
소은설이 진운룡의 옆구리를 툭 치며 눈치를 줬다.
“뭐, 귀찮긴 하지만, 나쁘진 않겠군.”
심드렁한 표정으로 진운룡이 말했다.
소은설의 아버지를 찾는 데도 황보세가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진운룡 일행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요청하면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한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황보세가에는 강한 무인들이 많겠지? 이거 벌써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후후후!”
적산은 잔뜩 흥분된 얼굴로 전의를 불태웠다.
“당신은 빠져요!”
소은설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적산을 노려봤다.
“내가 왜? 가장 먼저 도와준 사람이 난데? 오히려 빠지려면 아무것도 안 한 네가 빠져야지. 후후후.”
“어휴, 속 터져!”
능글능글한 적산의 대답에 소은설이 고개를 휙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황보세가로 결정되었다.

* * *

제남은 산동 제일의 도시답게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무인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제남은 샘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도시 전체에 수많은 샘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집집마다 샘이 있고 버드나무 늘어진’이라고 표현 될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제남 시내에 도착한 일행은 일단 식사를 해결한 후 황보세가로 향하기로 했다.
황보영호는 일행을 천미각(天味閣)이라는 주루 겸 식당으로 이끌었다.
천미각은 제녕의 수많은 샘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호수인 대명호 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백 평은 족히 넘을 것 같은 큰 규모의 주루였는데, 위로도 오층이나 건물을 올려 능히 천 명이 넘는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었다.
황보영호의 설명에 의하면 제남은 물론 산동에서도 가장 유명한 주루로 숙수만도 스무 명이 넘었으며 종업원의 수가 백 명이 넘어간다 했다.
소은설은 천미각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에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제녕 역시 경치가 수려하고 주루와 식당들이 많이 있었으나, 천미각과 같은 곳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가장 꼭대기 층인 오층으로 안내되었다.
황보세가의 이름값이 작용한 결과였다.
오층에서 바라보는 대명호의 경치는 모두의 피로를 날려 버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루 바깥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진운룡과 소은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대명호 우측 공터에 삼백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도포 차림의 중년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너희에게 하늘의 힘을 내려주실 분은 누구시냐!”
“천사시여!”
“너희에게 영생을 주실 분은 누구시냐!”
“천사시여!”
“너희를 무간지옥에서 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강림하신 분이 누구시냐!”
“천사시여!”
“탐욕과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응징하고 너희를 새로운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실 분이 누구시냐!”
“천사시여!”
사내가 큰 소리로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천사시여’를 합창했다. 개중에는 경련을 일으키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진운룡과 소은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을 올린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나라는 하늘의 뜻을 거역한 채 무능하고 어리석음을 자랑으로 아는 황제와 수염도 나지 않는 환관 무리의 횡포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지역마다 탐관오리가 들끓고, 백성들은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고 있다! 우리가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구원을 얻고 영생에 이를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미륵의 현신이신 천사(天使)의 말씀을 받들고, 그것을 따르는 것뿐이니라!”
“천사시여!”
“천사시여!”
군중들은 마치 단체로 약에 취하기라도 한 듯 사내의 말에 전율하고 환희했다.
“무슨 사이비 종교인가 보네요?”
소은설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아! 천사교(天使敎)라는 신흥 종교인데, 요즘 민간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황보영관의 말에 소은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