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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막대 사탕의 저주



11, sep. 2009. Italy.

8년 전.

베네치아의 묘지 섬, 산미켈레에서.

“후우.”

침착하자.

숨소리가 고르지 않게 퍼져 나갔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우중충한 노란색 머리를 부스스 쓸어 넘겼다. 퀭한 눈 밑으로 살가죽을 압박하고 있는 다크서클의 느낌이 눈꺼풀까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성공할 수 있어. 반드시.”

억지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너무 쥐어 피까지 새어 나올 정도로.

고르지 않은 숨이 절로 입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묘지 위를 장식한 하나의 비석. 그 근방을 이미 삭아 버린 꽃잎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고개가 옆을 기웃거렸다.

이미 관리인은 재운 지 오래.

드르렁.

수염이 듬성듬성 난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섞여 귓가를 때린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닌.

“성공할 수 있어, 성공할 수 있어!”

소환 마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다.

왜인가 하니.

“나는 마녀잖아?”

그렇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정확히는 죽어 있는 시체를 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실험.

마녀의 소생법 제1장.

데드 언데드.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아오. 그만 쳐다봐.”

적적할까 싶어 기르다 데려온 올빼미 한 마리가 묘지 위에 앉아 커다란 눈을 번쩍거린다. 180도 회전하는 머리는 덤으로. 마치 내가 할 일을 고자질이라도 할 듯이 그 눈빛이 꽤나 매서웠다.

근처를 느릿하게 눈으로 쓸었다.

코발트블루의 파란 바다, 바싹 흘러넘치는 파도, 거대하고도 수많은 하얀색 묘비. 비석 한편에 세워져 있는 세련된 나의 철강 빗자루.

그 앞에서 나는 진득한 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관절을 풀었다. 이내 목뼈까지도.

우둘투둘한 뼈가 박자를 때리는 것을 끝으로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을 채워 갔다.

내가 왜 이 한심한 짓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사탕은 지랄, 괜히 따라와서.”

고달픈 내 인생에 대해서.



*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네 살 때까지는.

그녀가 나를 데려온 건 수산 자원이 풍부한 이탈리아의 나폴리, 그 안에서도 더 들어간 소렌토의 어느 작은 광장에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부모님 없는 고아로 자랐다. 물론 나를 입양한 고마운 양부모님이 계시기는 했지만 그들은 내가 지능 지수가 차오르지 않은, 아직도 누워 모유 달라고 버둥거리는 나이일 때부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결국 참다못해 그곳으로부터 탈출해 다른 마을로 도망갔다. 그것도 네 살 때 말이다. 이미 닳아져 수십 번이고 기워 낸 낡은 신발로 아장아장 도망칠 때의 희열과 막연한 호기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도착한 곳은 역시나 고기잡이 어선들이 잔뜩 즐비한 소렌토항이었다. 나의 걸음걸이는 그다지 빠르지 못했고, 또한 어린 소녀가 멀리까지 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꼬불꼬불 굽이치는 그곳의 해안 도로는 당시 이탈리안 커플들의 환상적인 여행지였다. 물론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어린 소녀가 세상 물정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누군가 버리고 간 작은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다니고 몰래 숲 속에서 지내는 일이 허다했었다. 가끔 운이 좋으면 잠기지 않은 남의 헛간에서 짐수레용 말의 먹이로 주던, 인간이 먹기에는 무리가 있는 보리와 각종 곡식들을 훔쳐 먹을 수도 있었다. 또한 마른 풀들을 베고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가끔 끼니 해결이 되기는 했었다.

친절한 어부인 마르코는 가끔 내게 때마다 종류가 다른 각종 생선을 제공해 줬지만 그의 심술쟁이 마누라로 인해 어느 날 매몰차게 생선 공급을 끊었다.

결국 주린 배를 부여잡고 오늘 하루도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먹이 사냥에 나서야만 했다.

“에그머니나! 이게 뭐야?”

어느 날 나는 나이 먹은 과부인 안나의 집을 미리 염탐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그녀가 밀빵들을 저장해 놨던 곳간까지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지만, 결국 보기 좋게 잡히고야 말았다.

잡혀 버린 이유는 아주 사소했는데, 그것은 단순하고도 치명적인 실수가 원인이 되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이틀이나 굶어 들어가자마자 닥치는 대로 곡식과 빵에 손을 갖다 대고는 말의 모유가 담긴 통마저 벌컥벌컥 마셨는데, 문제는 그 후였다.

포만감에 젖은 나머지 잠이 들었는데 그녀가 새벽에 나올 시간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안나의, 남자보다도 더욱 센 손아귀에 이끌려 소렌토 광장에 짐짝처럼 내던져졌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손을 싹싹 빌어 그녀에게 머리를 숙였다. 딱히 죄송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어필이라도 해 줘야겠지?

그러나 계산된 의도는 단숨에 엇나갔다.

“마을 사람들 나와 보세요! 이 조그만 암고양이 같은 년이 나의 곳간을 모조리 비워 놨답니다!”

그때 당시의 마을은 꽤나 협소했다. 안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횃불이나 혹은 자주 잡히는 농어에서 짜낸 기름으로 밝힌 등잔을 들고 나와 광장 앞에서 두려움에 가득 질린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태워 죽여라!”

“태워 죽입시다!”

“옳소!”

할 수만 있다면 고막을 뽑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살짜리 소녀가 겪었던 참담함이란 정말이지…….

그들은 세계인의 여행을 위한 낭만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푸른 눈의 이탈리아인이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당장이라도 내 앙상한 몸뚱어리를 활활 타오르는 화형식에 던져 버릴 무자비한 사형 집행인들이었다.

나폴리는 대부분 풍족한 수산 자원으로 인해 다른 지방인 플로렌스나 타란토, 레체, 팔레르모보다 부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을 훔치는 범죄는 그 무엇보다도 가혹하게 채찍을 가했다.

도둑질은 살인과 비견될 정도로 용서받지 못할 중범죄였으니까.

“나의 곳간을 이년이 아주 거덜을 내 버렸다니까요!”

빌어먹을 안나.

역시나 그들은 인정사정없었다. 벌벌 떨며 고개를 땅에 처박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기분까지 땅속에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마침 그들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할 때 나는 한 구세주로 인해 구원받았다.

“내가 변상하죠.”

일순간 나를 태워 죽이라고 떠들썩하던 그들의 소음이 거짓말같이 멎었다.

“흑. 흐윽. 살려 주세요…….”

그녀는 그때쯤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물론 나는 땅속에 고개를 처박고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빌고 있었기에 난데없이 나타난 선악의 존재를 구분할 능력은 없었다. 단지 소름 끼치도록 조용해졌다는 것뿐.

몇 초가 지나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헤, 헤이즐이다!”

“저, 저런 사악한 마녀…….”

“조용히 해. 그러다 가마솥에 끓여질라.”

어느 한 남자의 입에서 헤이즐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그들은 즉각 두려움과 공포가 혼재된 눈빛을 억지로 꼿꼿이 부라렸다.

그래 봤자 반항심뿐이었는지 누구도 헤이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오히려 인파 사이를 뚫고 들어오던 그녀가 내 앞에 적막감을 드러낸 채 다가올 때까지도.

“고개 들어도 돼. 예쁜 아이야.”

“흑, 흐윽…….”

턱을 잡아당기는 하얗고 예쁜 손이 보였다. 눈물범벅이던 나의 눈동자를 파고 들어오는 너무도 하얀 손가락.

헤이즐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들자마자 뿌연 눈가 사이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예쁘구나. 사탕 먹을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에게 품속에 감춰 둔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의 막대 사탕을 쥐여 주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눈을 접으며 웃었다.

누군가에게 빼앗기기라도 할까 봐 허겁지겁 동그란 막대 사탕을 입안에 가득 넣고 오물거렸다. 아아, 너무도 달콤해.

순식간에 안구에 물밀듯이 들이차던 습기가 걷혀 가기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모습이 빨려 들어왔다.

“와…….”

헤이즐은 너무도 예뻤다.

윤기가 잔뜩 흐르는 곱슬곱슬한 장발 머리칼과 꼭 맞춘 듯한 갈색 눈동자. 흠잡을 데 없는 우윳빛 피부와 반듯한 눈매, 그리고 굳게 다물어진 입술과 하늘로 치켜든 오뚝한 코는 그 무엇보다도 반짝였다. 천사의 강림이 저런 것일까 싶었다.

더군다나 큰 키의 헤이즐의 몸매는 가녀린 선이 너무도 예뻐 보는 남자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옆에 있던 그들의 연인들이 질투에 눈이 멀 정도로.

새벽의 어둠이 그녀의 아름다움까지 가리지 못할 정도였달까.

헤이즐은 나에게 처음으로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가녀린 선을 둘러싼 ‘아름다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름이 있니?”

사탕을 빨아 재끼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없어요.”

“그럼 이제부터 너를 엘리스라고 부를게.”

“엘리스, 엘리스…….”

그 말을 되뇌는 모습을 보던 헤이즐이 밝게 웃었다.

“가자. 아무도 구경해 보지 못한 신비로운 곳에 데려가 줄 테니.”

너무도 매혹적인 미소였다. 나는 홀린 듯이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갈라져 우리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던 인파 사이를 너무도 간단하게 뚫고 나왔다.

헤이즐은 내 손을 꾸욱 잡고 밀빵 가격의 수천 배에 달하는 금화 두 냥을 안나의 근처에 서슴없이 던졌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자마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금화를 줍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내 돈이야!”

“내 밀빵 가격이에요!”

“비켜!”

그녀의 손길이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인간들이란.”

“……웅?”

사탕을 한가득 입에 넣은 나의 관심사는 이미 금화 따위에게 가 있지 않았다. 동그란 눈을 들어 올리자마자 그녀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어 버렸다.

“아냐, 가자.”

“응!”

헤이즐은 올리브나무들이 잔뜩 우거진 숲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 그곳에서 커다란 떡갈나무 지팡이를 꺼내 보여 주며 은근하게 웃었다.

더럽고 추한 나와는 달리 너무도 유혹적으로 설계된 그녀의 웃음에 양 뺨이 붉어졌을 때였다.

“타.”

맙소사.

“이걸 타요?”

“응. 세상의 다른 곳을 구경시켜 줄게.”

나는 그녀의 부름에 순순히 응했다. 고작해야 네 살짜리가 무엇을 알겠냐마는 쉽사리 거부하기 힘든 헤이즐의 목소리에는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쳤다.

호기심 많은 꼬마가 지팡이 뒷자락에 엉덩이를 걸치자마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lacundap.”

“우왁!”

그 순간이었다.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을 받자마자 억,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지팡이가 나를 태운 채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

“재미있지?”

“네!”

무서움을 느끼기도 잠시, 허공을 떠나 상공에 이르자마자 지팡이는 쏜살같이 하늘 위를 달렸다. 놀랍게도 두 짝의 엉덩이가 자석이라도 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 멀리서 몇몇의 사람들이 우릴 발견하고 꺼지라고 소리치며 횃불을 던졌다. 별 영양가는 없었지만 말이다.

“우와.”

감탄사가 입가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

“재미있지?”

“이런 구경은 처음이에요.”

그녀가 탄 지팡이는 내게 또 다른 자유를 선사해 주었다.

코발트빛 바다, 이제 막 동이 트고 있는 붉은 태양, 항구에 정박하는 고기잡이 어선들. 배 안에서 아직도 살아 헐떡이는 농어와 도미들. 이제 막 동냥질을 시작하는 나와 같은 고아들이 멍하니 헤이즐의 뒤에 타 있는 나를 보며 경악에 차 있는 표정들까지도.

그중에서도 매일 꾀죄죄한 나를 보고 놀리며 돌을 던지던 가브리엘레가 하늘에 떠오른 내 모습을 보고 오줌을 지리는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바람이 이제 막 구름을 벗어난 달을 할퀴는 낙원. 새벽의 끝을 적시는, 지금의 그 무엇보다도 활활 타오르는 생명력이 가득한 아침이 온갖 곳으로 눈을 굴리는 나의 눈가에 가득 들어찼다.

새벽과 아침의 기묘한 경계점에서 넋을 놓아야만 했었다. 그제야 네 살짜리 꼬마는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자유를 만끽했다.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약 30분이 지나자 해안가를 타고 오르는 절벽 위에 깎아지른 듯한 산이 보였다. 인간이 갈 수 없는 곳, 그곳에 거대한 떡갈나무가 실재하고 있었다. 약 몇천 년은 살아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전설의 나무.

그곳이 헤이즐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마녀의 길로 접어든 것이.

그리고.

지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