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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좀비를 소환해 버렸어!
“엘리스! 이 쓸모없는 년. 또 어딜 갔어!”
“죄송해요. 여기 있어요.”
“빨리 닭을 잡아 와!”
나는 그때 그녀가 주었던 사탕을 한사코 거절했어야만 했다. 차라리 그때 죽어야 했던 것이 오히려 나을 정도로.
꼬꼬? 꽤엑!
나는 열한 살의 나이에 닭의 머리를 비틀어 버려야만 했다. 구토를 참으며 아직 뜨거운 생피를 억지로 오크 통에 넣고 뛰어가야만 했다.
“자, 잡았어요!”
“빨리 안 가져오고 뭐 해! 오늘도 맞고 싶은 게냐?”
“가져갈게요. 죄송해요!”
그녀는 구린내가 잔뜩 풍기는 갈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이 푸석푸석한 머리에 고름이 가득한 몰골로 내가 가져온 닭의 생피를 빼앗으며 윽박질렀다.
“쓸모없는 년. 너는 오늘도 저녁밥 없어!”
오늘도 밥을 굶게 생겼어. 빌어먹을 헤이즐.
“……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헤이즐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마녀는 변장에 능숙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나폴리의 푸른 정기를 머금은 그녀의 갈색빛 윤기 나는 머리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달콤한 꿀이 흐를 것만 같던 헤이즐의 도톰한 입술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손가락만 갖다 대도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새하얗던 그녀의 피부는 어느샌가 벌레가 자글자글 기어 다니는 몰골이 되어 버렸다.
눈가는 퀭하고, 눈알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으며 피부는 고약한 냄새마저 날 정도로 쭈글쭈글했다. 하늘로 치솟던 코는 지금 당장이라도 땅속에 박혀 버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납작하고 긴 매부리코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마녀 헤이즐은 나를 이곳에 가뒀다. 마녀의 정원에, 그녀의 끔찍한 낙원에.
그것도 60년 동안이나!
“빌어먹을.”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내 앞에서 죽었다. 빌어먹게도.
헤이즐은 어느샌가 이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더니 그대로 24시간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속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졌다.
막을 새도 없었다. 손을 뻗었을 때에는 이미 그녀가 활활 타오르며 나를 보고는 해괴하게 웃고 있었다. 피부가 쪼그라들다가 종내 녹아 없어졌다. 정말 환멸스러운 광경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자유가 되었다.
자유는 이상하리만치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무려 60년 만에 얻은 자유를 이렇게도 만끽하기 힘들다니, 허망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웃긴 것은 예순네 살이 될 동안에도 나의 외모와 신체는 인간의 20대와 같다는 점이었다.
마녀와 인간의 나이는 엄연히 달랐다. 마녀들은 대략 인간보다도 다섯 배의 수명으로 더 살 수가 있었다.
그녀가 먹고 남은 젊음과 재생의 시약을 받아먹었기에 신체의 노쇠화가 늦은 까닭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지만 말이다.
어느샌가 나, 엘리스는 수많은 남자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빼어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남의 집 곳간에 숨어들어 부서진 빵 쪼가리나 허겁지겁 주워 먹던 비루먹은 몰골의 엘리스는 이제는 오뚝한 코, 군데군데 배치된 유혹적인 초콜릿색의 점들과 더불어 푸른 동공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빛 금을 빼다 넣은 듯한 찰랑이는 노란 머릿결과 동시에 곡선이 예쁘장하게 흐르는 라인을 가진 몸 또한 갖고 있었다.
물론 대도시로 나간다면 평범한 여자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 이곳, 소렌토에서도 우거진 마을에서 추앙받을 정도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헤이즐이 없는 순간 나는 어떠한 기로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 또한 온전한 내 몫이었다.
결국 지금 있는 이곳, 베네치아의 묘지 섬, 산미켈레에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중대한 결심을 해야만 했다.
첫째. 마녀의 삶을 포기한다.
둘째. 인간이 되어 산다.
셋째. 그동안 들어 보기만 했지, 먹어 보지 못했던 치즈버거 천 개를 먹는다.
제일 중요한 넷째. 부모님의 영령을 소환한다.
이것이었다.
나름 원대한 결심 아니던가?
특히 네 번째 맹세는 내게는 절대적인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이렇게 착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못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떡갈나무 집 한편에서 헤이즐이 평생 연구한 마녀의 교본을 전부 태워 버렸다. 그것은 고된 작업이었다. 사흘 밤낮 동안 태워야 할 정도로 거대한 분량이었으니까.
단지 인간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필요한 몇 개의 교본은 남겨 두기로 하였다. 또한 하고 싶던 실험도 있었다.
마녀의 삶을 포기한다 하여도 나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마녀였으니까.
또한 내게는 그녀가 남겼던, 죽을 때까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녀의 문양이 손목에 자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lubi&H’라고 적힌 헤이즐의 마녀 가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 손목을 자르기 전까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나의 족쇄였다.
그동안 헤이즐에게 가려져 거의 감옥 생활을 했던 나에게는 비장한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의 부모를 다시 살리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부모님의 혼을 남몰래 마녀의 영령술을 사용해 내 앞에 구현해 놓는 것이 목표였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들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60년 동안을 이를 악다물고 인내해 온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같은 고기 잡는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혔다고 했다. 하지만 시신은 다행히도 건져 올렸다고 했었다. 지금쯤 뼛조각 몇 개쯤은 분명 남아 있을 테지.
소환마도서를 든 손이 지금 부들 떨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살릴 수 있어.”
산미켈레에는 묘지 관리인이 있다. 그들은 격일제로 인원을 두 명씩 잡아 그곳을 끊임없이 관리하는데, 나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쉽게 잠재워 버렸다.
내 눈앞에는 그들이 잠든 비석이 보였다.
데 폰티와 아델. 석양이 흐르는 곳에 잠들다.
격정에 흔들리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전에 나는 수없이 많은 기도를 올렸다. 제발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나 달라고 말이다.
나의 핏줄은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마도서에 담겨 있는 수없이 많은 공식들을 읊어 대기 전에 미리 예행 연습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을 소환할 영령술의 기회는 단 한 번으로 국한되어 있었기에 다른 시체로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을 슬쩍 돌려 비교적 최근에 사망한 명부를 들춰 보았다.
“잘도 잔다.”
드르렁.
관리인의 세상모르는 코 고는 소리에 피식 웃고 명단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눈앞에 어떤 이름이 빨려 들어왔다.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
흥미가 가득 담긴 혼잣말이 곧이어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호오. 공작가의 후손이란 말이지?”
그것의 이름은 특별 관리라도 되는 양 별표까지 쭈욱 그어져 있었다.
도대체 공작가의 후손이면 얼마나 대단하단 거지?
검지로 아랫입술을 쓸어 만지고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발걸음이 저절로 쏘아졌다. 도착한 곳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거대한 금장 묘지였다.
특별 관리라도 하는 것처럼 깔끔한 모습을 자랑했다.
공작가의 후손은 똥도 금똥으로 싸는 건가?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잘사는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어디 그 고귀하신 몸, 제가 한번 살려 드리리다.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발걸음까지 건들거리고는 묘지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귀족가의 후손답게 묘지는 이곳저곳에 정성스러움을 묻혀 놓은 듯했다. 다른 일반적인 묘지들과는 다르게 디자인까지 해서 나온 비석과 손글씨는 기가 찰 정도였다.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 고결한 숨결을 담아.
“후우.”
막상 시작하려고 했지만 손에 땀이 흥건히 맺히는 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실행해야만 했다. 작은 실수는 곧 내 부모님을 살리지 못하는 길이 되어 버릴 것이니까.
욕구는 곧 욕망으로 이어졌다. 욕망은 행동이 되어 실천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도서를 번쩍 든 나의 손이 결국엔 그 밑을 타고 흘러가 두 눈가에 비장함이라는 단어를 사무치게 만들었다.
“arrias de to pilo!”
부모님을 보기 위한 나의 모든 일념을 악마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감고 있던 두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이름을 외쳤다.
“깨어나라,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여!”
나는 잠시 후에 있을 나의 첫 번째 소환작에 대해 경건함과 기대감이 잔뜩 뒤섞이는 감명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엥?”
왜 안 나타나?
아무런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내 귓가를 사각, 때리고 흩어질 뿐.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이제는 발악보다는 오기에 가까웠다.
“arrias de to pilo! 깨어나라,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여!”
그럼에도 감감무소식.
발을 동동 구르던 나의 눈가가 좁혀진 것도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야, 이거. 짭이었어?”
빌어먹을. 이러면 안 되는데?
절망과 실망감이 동시에 혼재된 감정이 머릿속을 적셨다. 비통한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 거짓말쟁이 마녀가 나를 속였어?”
그때였다.
쿠드득―
쿠득―!
“오오!”
순간 덩어리진 흙이 불쑥 치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환희에 가득 찬 입가가 기쁨을 쏟아 냈다.
드디어 시작된 거라고. 나의 첫 번째 결과물이!
나는 유일하게 한 가지, 헤이즐에게 고마워할 필요성을 느꼈다. 역시 마녀는 마녀였어!
“드디어 우리 부모님을 소환하게 된 거야. 드디어…….”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 이렇게나 안도감이 들 줄이야.
실룩이는 입가가 격정과 떨림을 안고 흩어질 때였다.
쿠드득― 쿠득―
땅의 울림이 점차 심해져 갔다.
보름달이 의미심장한 구체를 발현해 내기도 전에 나는 덩실덩실 묘지 앞에서 손을 나풀대며 춤까지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크아아악!”
응?
순간 손 하나가 불쑥 흙 한가운데를 뚫고 나왔다. 각종 모양의 흙이 그 손을 따라 후두둑, 땅 밑으로 떨어졌다. 망연한 느낌에 지면에 굳어 버린 발이 놀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누가 나를 살렸지?!”
어쩌면 절규에 가득 찬 음성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제야 환희와는 별개의 공포가 스멀스멀 심장을 잠식하는 것을 느끼고는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누가 나를 살렸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손을 짚고 나온 남자가 머리까지 비죽 튀어나온 채로 땅 위를 기어 나오다 허겁지겁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왜 시체가 튀어나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발끝에서부터 잠복하고 있던 긴장감이 점차 무릎 위로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야?”
“흐, 흐아.”
주춤주춤, 뒷걸음질이 거세어질 무렵 그의 두 다리가 끝끝내 묘지 위를 뚫고 나왔다.
내 눈동자에 잠겨 있는 푸른색의 잉크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멀찍이서 나를 노려보며 온갖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죽고 싶어서 죽은 나를 살린 것이 너냐고!”
두 눈이 질끈 감겼다가 떠졌다.
내 앞에 나타난 인간, 아니 시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굉장히 키가 컸다. 185센티는 됐을까.
다소 창백해 보이고 핏기는 없었지만 그 어떤 인간과도 비견이 안 될 정도로 아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적색의 머리칼은 찬란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하얀 피부는 전에 헤이즐을 봤을 때보다 더욱 하얬으며 그 작은 얼굴 안에는 다행히도 모든 부위가 알맞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눈가는 고집스럽게 하늘 위를 찌르고 있었다. 노란 눈동자는 보석을 촘촘히 박아다 놓은 듯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우아했으며 입술은 세밀하게 세공이라도 했는지 도톰하고 또한 알맞게 벌어져 있었다. 내가 먹던 꿀꿀이죽은 입 근처에도 안 댈 정도로 세련되어 보인다.
어깨는 떡하니 벌어져 있었으며 다리는 또 왜 이렇게 긴지. 공작가의 성예답게 은색의 예복이 정갈하게 입혀져 있는 점 또한 눈길을 끌었다.
섬세한 눈매 아래로 상반되게 코는 굉장히 오뚝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핏기 하나 보이지 않는 듯한 깔끔한 하얀 얼굴이었다. 웬만한 여자 피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도대체 시체 맞아?
좀비가 뭐 저렇게 섹시해?
이제 막 죽어서 그런 걸까? 죽은 지 6년밖에 안 됐다고 명부에서 봤는데…… 설마.
단숨에 고장 난 머리를 일깨우는 명백한 사실은 이거였다.
첫째. 마녀의 마도서, 소환 1장. 영령술 ‘데드 언데드’의 주문을 실수로 시체 소환술의 형태로 읊어 버린 것.
둘째. 좀비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셋째. 그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
넷째. 나는 곧 창자가 뜯겨 죽고 말 것이라는 것!
“크아아악! 나를 얼른 죽여 놔. 심장을 파먹어 버리기 전에 나를 다시 죽여 놓으라고!”
좀비가 내 쪽으로 달려오기 위해 곧 두 발을 튕길 준비 신호를 하고 있었다.
“싫어? 그럼 네 심장을 파먹어 주겠다!”
순간 긴 다리가 타앗―! 땅을 박찼다. 이대로 오장육부가 분리되고 말 것이라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자마자 반대편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흐, 흐에엑.”
“산 채로 심장을 파내 주겠어!”
“살려 주세요!”
마도서를 재빨리 품에 갈무리하고 묘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는 조금 전까지 시체였던 탓에 걷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계속해서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나를 잡기 위해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며 쫓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나를 죽이라고!”
“으아!”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좀비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죽어라 쫓아오는 꼴이라니!
끝까지 넘어지면서도 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잡혔다가는 저 끔찍한 아가리에 내 목덜미가 산산이 물어뜯길 것이다.
그제야 머릿속에 한 가닥 이성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갈피조차 잡기 힘들던 눈동자를 마구 굴리자마자 눈 속으로 헤이즐의 지팡이가 보였다.
마침 그것이 내 쪽과 가까이 있었다. 저것을 잡아야 해!
좀비가 등 뒤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문득 뒤를 돌아봤다. 갈가리 찢어지는 절규를 내지르던 좀비는 어느샌가 내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으악!”
하얗게 질린 얼굴 밑으로 발걸음이 허둥지둥 앞으로 발사됐다. 두 다리가 땅에 붙어 있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점점 가까워져 온다. 이제는 달리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적응한 듯했다.
“흐, 흐아아.”
잡힐 것만 같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가쁜 숨을 겨우 삼키고, 마침 지팡이가 가까워지자마자 순식간에 다이빙하듯 달려가 산발이 되어 버린 머리를 앞세워 그것을 잡고 부들 떨리는 입술을 서둘러 뗐다.
“lacundap!”
순간 지팡이가 두둥실 떠올랐다. 두 손을 지팡이 끝에 겨우 안착시키고 떠오르자마자 그가 점프라도 했는지 내 낡은 부츠에 손끝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가 잡히지 않은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허둥지둥 지팡이를 잡고 밑을 내려다보자마자 그가 내 낡은 부츠 한 짝을 들고 환장하고 있었다.
“안 돼!”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포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실성한 것처럼 보였다. 당연할 테지.
“반드시 찾아낸다!”
재주가 된다면 찾아보시지!
나는 손목에 마녀의 신분을 나타내는 lubi&H 문양을 그에게 흔들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달빛에 반사된 지팡이가 앞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별안간 오기 가득한 감정이 곧 소음이 되어 내 입가를 타고 흘렀다. 밑을 내려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메롱!”
“크아아악!”
분하다는 듯 두 다리를 폴짝 뛰어 대는 그를 보자니 스릴 가득한 웃음이 입가를 타고 흘렀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품속을 뒤졌다.
“음?”
없었다. 있어야 할 나의 마도서가!
“이걸 찾으시나?”
“헉.”
그가, 좀비가 나를 올려다보며 헤이즐의 평생의 비기가 담긴 마도서 한 권을 얄밉게 허공에 치켜들어 까닥거리는 채로 비웃고 있었다.
저건 내 부모님의 영령을 소환할 유일한 물건이라고!
“크아아악!”
순식간에 좀비의 웃음이 나의 입가를 타고 똑같이 재생되었다.
물론 저 잔악무도한 좀비에게로 다시 다가갈 자신은 없었다. 분하다는 듯 소리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두고 보자!”
“마음대로.”
그가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덧 나를 태운 지팡이는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그와는 반대쪽으로 멀어져 갔다. 자유의 태양을 품으며.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좀비가 되어 버린 그와 다시 만나 버리게 될 줄.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악몽이 될 줄은!
“엘리스! 이 쓸모없는 년. 또 어딜 갔어!”
“죄송해요. 여기 있어요.”
“빨리 닭을 잡아 와!”
나는 그때 그녀가 주었던 사탕을 한사코 거절했어야만 했다. 차라리 그때 죽어야 했던 것이 오히려 나을 정도로.
꼬꼬? 꽤엑!
나는 열한 살의 나이에 닭의 머리를 비틀어 버려야만 했다. 구토를 참으며 아직 뜨거운 생피를 억지로 오크 통에 넣고 뛰어가야만 했다.
“자, 잡았어요!”
“빨리 안 가져오고 뭐 해! 오늘도 맞고 싶은 게냐?”
“가져갈게요. 죄송해요!”
그녀는 구린내가 잔뜩 풍기는 갈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이 푸석푸석한 머리에 고름이 가득한 몰골로 내가 가져온 닭의 생피를 빼앗으며 윽박질렀다.
“쓸모없는 년. 너는 오늘도 저녁밥 없어!”
오늘도 밥을 굶게 생겼어. 빌어먹을 헤이즐.
“……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헤이즐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마녀는 변장에 능숙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나폴리의 푸른 정기를 머금은 그녀의 갈색빛 윤기 나는 머리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달콤한 꿀이 흐를 것만 같던 헤이즐의 도톰한 입술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손가락만 갖다 대도 녹아 없어질 것만 같은 새하얗던 그녀의 피부는 어느샌가 벌레가 자글자글 기어 다니는 몰골이 되어 버렸다.
눈가는 퀭하고, 눈알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으며 피부는 고약한 냄새마저 날 정도로 쭈글쭈글했다. 하늘로 치솟던 코는 지금 당장이라도 땅속에 박혀 버린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납작하고 긴 매부리코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마녀 헤이즐은 나를 이곳에 가뒀다. 마녀의 정원에, 그녀의 끔찍한 낙원에.
그것도 60년 동안이나!
“빌어먹을.”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내 앞에서 죽었다. 빌어먹게도.
헤이즐은 어느샌가 이상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더니 그대로 24시간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속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졌다.
막을 새도 없었다. 손을 뻗었을 때에는 이미 그녀가 활활 타오르며 나를 보고는 해괴하게 웃고 있었다. 피부가 쪼그라들다가 종내 녹아 없어졌다. 정말 환멸스러운 광경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자유가 되었다.
자유는 이상하리만치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무려 60년 만에 얻은 자유를 이렇게도 만끽하기 힘들다니, 허망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웃긴 것은 예순네 살이 될 동안에도 나의 외모와 신체는 인간의 20대와 같다는 점이었다.
마녀와 인간의 나이는 엄연히 달랐다. 마녀들은 대략 인간보다도 다섯 배의 수명으로 더 살 수가 있었다.
그녀가 먹고 남은 젊음과 재생의 시약을 받아먹었기에 신체의 노쇠화가 늦은 까닭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았지만 말이다.
어느샌가 나, 엘리스는 수많은 남자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빼어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남의 집 곳간에 숨어들어 부서진 빵 쪼가리나 허겁지겁 주워 먹던 비루먹은 몰골의 엘리스는 이제는 오뚝한 코, 군데군데 배치된 유혹적인 초콜릿색의 점들과 더불어 푸른 동공을 가지게 되었다.
황금빛 금을 빼다 넣은 듯한 찰랑이는 노란 머릿결과 동시에 곡선이 예쁘장하게 흐르는 라인을 가진 몸 또한 갖고 있었다.
물론 대도시로 나간다면 평범한 여자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 이곳, 소렌토에서도 우거진 마을에서 추앙받을 정도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헤이즐이 없는 순간 나는 어떠한 기로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 또한 온전한 내 몫이었다.
결국 지금 있는 이곳, 베네치아의 묘지 섬, 산미켈레에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중대한 결심을 해야만 했다.
첫째. 마녀의 삶을 포기한다.
둘째. 인간이 되어 산다.
셋째. 그동안 들어 보기만 했지, 먹어 보지 못했던 치즈버거 천 개를 먹는다.
제일 중요한 넷째. 부모님의 영령을 소환한다.
이것이었다.
나름 원대한 결심 아니던가?
특히 네 번째 맹세는 내게는 절대적인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이렇게 착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못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떡갈나무 집 한편에서 헤이즐이 평생 연구한 마녀의 교본을 전부 태워 버렸다. 그것은 고된 작업이었다. 사흘 밤낮 동안 태워야 할 정도로 거대한 분량이었으니까.
단지 인간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필요한 몇 개의 교본은 남겨 두기로 하였다. 또한 하고 싶던 실험도 있었다.
마녀의 삶을 포기한다 하여도 나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마녀였으니까.
또한 내게는 그녀가 남겼던, 죽을 때까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녀의 문양이 손목에 자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lubi&H’라고 적힌 헤이즐의 마녀 가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 손목을 자르기 전까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나의 족쇄였다.
그동안 헤이즐에게 가려져 거의 감옥 생활을 했던 나에게는 비장한 목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의 부모를 다시 살리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부모님의 혼을 남몰래 마녀의 영령술을 사용해 내 앞에 구현해 놓는 것이 목표였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들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60년 동안을 이를 악다물고 인내해 온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같은 고기 잡는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혔다고 했다. 하지만 시신은 다행히도 건져 올렸다고 했었다. 지금쯤 뼛조각 몇 개쯤은 분명 남아 있을 테지.
소환마도서를 든 손이 지금 부들 떨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살릴 수 있어.”
산미켈레에는 묘지 관리인이 있다. 그들은 격일제로 인원을 두 명씩 잡아 그곳을 끊임없이 관리하는데, 나는 당연하게도 그들을 쉽게 잠재워 버렸다.
내 눈앞에는 그들이 잠든 비석이 보였다.
데 폰티와 아델. 석양이 흐르는 곳에 잠들다.
격정에 흔들리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전에 나는 수없이 많은 기도를 올렸다. 제발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나 달라고 말이다.
나의 핏줄은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마도서에 담겨 있는 수없이 많은 공식들을 읊어 대기 전에 미리 예행 연습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을 소환할 영령술의 기회는 단 한 번으로 국한되어 있었기에 다른 시체로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을 슬쩍 돌려 비교적 최근에 사망한 명부를 들춰 보았다.
“잘도 잔다.”
드르렁.
관리인의 세상모르는 코 고는 소리에 피식 웃고 명단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눈앞에 어떤 이름이 빨려 들어왔다.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
흥미가 가득 담긴 혼잣말이 곧이어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호오. 공작가의 후손이란 말이지?”
그것의 이름은 특별 관리라도 되는 양 별표까지 쭈욱 그어져 있었다.
도대체 공작가의 후손이면 얼마나 대단하단 거지?
검지로 아랫입술을 쓸어 만지고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발걸음이 저절로 쏘아졌다. 도착한 곳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거대한 금장 묘지였다.
특별 관리라도 하는 것처럼 깔끔한 모습을 자랑했다.
공작가의 후손은 똥도 금똥으로 싸는 건가?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잘사는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어디 그 고귀하신 몸, 제가 한번 살려 드리리다.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발걸음까지 건들거리고는 묘지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귀족가의 후손답게 묘지는 이곳저곳에 정성스러움을 묻혀 놓은 듯했다. 다른 일반적인 묘지들과는 다르게 디자인까지 해서 나온 비석과 손글씨는 기가 찰 정도였다.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 고결한 숨결을 담아.
“후우.”
막상 시작하려고 했지만 손에 땀이 흥건히 맺히는 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실행해야만 했다. 작은 실수는 곧 내 부모님을 살리지 못하는 길이 되어 버릴 것이니까.
욕구는 곧 욕망으로 이어졌다. 욕망은 행동이 되어 실천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도서를 번쩍 든 나의 손이 결국엔 그 밑을 타고 흘러가 두 눈가에 비장함이라는 단어를 사무치게 만들었다.
“arrias de to pilo!”
부모님을 보기 위한 나의 모든 일념을 악마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감고 있던 두 눈이 번쩍 떠짐과 동시에 이름을 외쳤다.
“깨어나라,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여!”
나는 잠시 후에 있을 나의 첫 번째 소환작에 대해 경건함과 기대감이 잔뜩 뒤섞이는 감명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엥?”
왜 안 나타나?
아무런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바람만이 내 귓가를 사각, 때리고 흩어질 뿐.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이제는 발악보다는 오기에 가까웠다.
“arrias de to pilo! 깨어나라, 로드 데 폰트 다니엘레여!”
그럼에도 감감무소식.
발을 동동 구르던 나의 눈가가 좁혀진 것도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야, 이거. 짭이었어?”
빌어먹을. 이러면 안 되는데?
절망과 실망감이 동시에 혼재된 감정이 머릿속을 적셨다. 비통한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 거짓말쟁이 마녀가 나를 속였어?”
그때였다.
쿠드득―
쿠득―!
“오오!”
순간 덩어리진 흙이 불쑥 치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환희에 가득 찬 입가가 기쁨을 쏟아 냈다.
드디어 시작된 거라고. 나의 첫 번째 결과물이!
나는 유일하게 한 가지, 헤이즐에게 고마워할 필요성을 느꼈다. 역시 마녀는 마녀였어!
“드디어 우리 부모님을 소환하게 된 거야. 드디어…….”
예행연습을 했던 것이 이렇게나 안도감이 들 줄이야.
실룩이는 입가가 격정과 떨림을 안고 흩어질 때였다.
쿠드득― 쿠득―
땅의 울림이 점차 심해져 갔다.
보름달이 의미심장한 구체를 발현해 내기도 전에 나는 덩실덩실 묘지 앞에서 손을 나풀대며 춤까지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크아아악!”
응?
순간 손 하나가 불쑥 흙 한가운데를 뚫고 나왔다. 각종 모양의 흙이 그 손을 따라 후두둑, 땅 밑으로 떨어졌다. 망연한 느낌에 지면에 굳어 버린 발이 놀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누가 나를 살렸지?!”
어쩌면 절규에 가득 찬 음성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제야 환희와는 별개의 공포가 스멀스멀 심장을 잠식하는 것을 느끼고는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누가 나를 살렸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손을 짚고 나온 남자가 머리까지 비죽 튀어나온 채로 땅 위를 기어 나오다 허겁지겁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왜 시체가 튀어나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발끝에서부터 잠복하고 있던 긴장감이 점차 무릎 위로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야?”
“흐, 흐아.”
주춤주춤, 뒷걸음질이 거세어질 무렵 그의 두 다리가 끝끝내 묘지 위를 뚫고 나왔다.
내 눈동자에 잠겨 있는 푸른색의 잉크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가 멀찍이서 나를 노려보며 온갖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죽고 싶어서 죽은 나를 살린 것이 너냐고!”
두 눈이 질끈 감겼다가 떠졌다.
내 앞에 나타난 인간, 아니 시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굉장히 키가 컸다. 185센티는 됐을까.
다소 창백해 보이고 핏기는 없었지만 그 어떤 인간과도 비견이 안 될 정도로 아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적색의 머리칼은 찬란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하얀 피부는 전에 헤이즐을 봤을 때보다 더욱 하얬으며 그 작은 얼굴 안에는 다행히도 모든 부위가 알맞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눈가는 고집스럽게 하늘 위를 찌르고 있었다. 노란 눈동자는 보석을 촘촘히 박아다 놓은 듯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우아했으며 입술은 세밀하게 세공이라도 했는지 도톰하고 또한 알맞게 벌어져 있었다. 내가 먹던 꿀꿀이죽은 입 근처에도 안 댈 정도로 세련되어 보인다.
어깨는 떡하니 벌어져 있었으며 다리는 또 왜 이렇게 긴지. 공작가의 성예답게 은색의 예복이 정갈하게 입혀져 있는 점 또한 눈길을 끌었다.
섬세한 눈매 아래로 상반되게 코는 굉장히 오뚝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핏기 하나 보이지 않는 듯한 깔끔한 하얀 얼굴이었다. 웬만한 여자 피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도대체 시체 맞아?
좀비가 뭐 저렇게 섹시해?
이제 막 죽어서 그런 걸까? 죽은 지 6년밖에 안 됐다고 명부에서 봤는데…… 설마.
단숨에 고장 난 머리를 일깨우는 명백한 사실은 이거였다.
첫째. 마녀의 마도서, 소환 1장. 영령술 ‘데드 언데드’의 주문을 실수로 시체 소환술의 형태로 읊어 버린 것.
둘째. 좀비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셋째. 그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
넷째. 나는 곧 창자가 뜯겨 죽고 말 것이라는 것!
“크아아악! 나를 얼른 죽여 놔. 심장을 파먹어 버리기 전에 나를 다시 죽여 놓으라고!”
좀비가 내 쪽으로 달려오기 위해 곧 두 발을 튕길 준비 신호를 하고 있었다.
“싫어? 그럼 네 심장을 파먹어 주겠다!”
순간 긴 다리가 타앗―! 땅을 박찼다. 이대로 오장육부가 분리되고 말 것이라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자마자 반대편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흐, 흐에엑.”
“산 채로 심장을 파내 주겠어!”
“살려 주세요!”
마도서를 재빨리 품에 갈무리하고 묘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는 조금 전까지 시체였던 탓에 걷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계속해서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나를 잡기 위해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며 쫓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나를 죽이라고!”
“으아!”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좀비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죽어라 쫓아오는 꼴이라니!
끝까지 넘어지면서도 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잡혔다가는 저 끔찍한 아가리에 내 목덜미가 산산이 물어뜯길 것이다.
그제야 머릿속에 한 가닥 이성이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갈피조차 잡기 힘들던 눈동자를 마구 굴리자마자 눈 속으로 헤이즐의 지팡이가 보였다.
마침 그것이 내 쪽과 가까이 있었다. 저것을 잡아야 해!
좀비가 등 뒤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문득 뒤를 돌아봤다. 갈가리 찢어지는 절규를 내지르던 좀비는 어느샌가 내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으악!”
하얗게 질린 얼굴 밑으로 발걸음이 허둥지둥 앞으로 발사됐다. 두 다리가 땅에 붙어 있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점점 가까워져 온다. 이제는 달리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게 적응한 듯했다.
“흐, 흐아아.”
잡힐 것만 같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가쁜 숨을 겨우 삼키고, 마침 지팡이가 가까워지자마자 순식간에 다이빙하듯 달려가 산발이 되어 버린 머리를 앞세워 그것을 잡고 부들 떨리는 입술을 서둘러 뗐다.
“lacundap!”
순간 지팡이가 두둥실 떠올랐다. 두 손을 지팡이 끝에 겨우 안착시키고 떠오르자마자 그가 점프라도 했는지 내 낡은 부츠에 손끝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가 잡히지 않은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허둥지둥 지팡이를 잡고 밑을 내려다보자마자 그가 내 낡은 부츠 한 짝을 들고 환장하고 있었다.
“안 돼!”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포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실성한 것처럼 보였다. 당연할 테지.
“반드시 찾아낸다!”
재주가 된다면 찾아보시지!
나는 손목에 마녀의 신분을 나타내는 lubi&H 문양을 그에게 흔들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달빛에 반사된 지팡이가 앞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별안간 오기 가득한 감정이 곧 소음이 되어 내 입가를 타고 흘렀다. 밑을 내려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메롱!”
“크아아악!”
분하다는 듯 두 다리를 폴짝 뛰어 대는 그를 보자니 스릴 가득한 웃음이 입가를 타고 흘렀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품속을 뒤졌다.
“음?”
없었다. 있어야 할 나의 마도서가!
“이걸 찾으시나?”
“헉.”
그가, 좀비가 나를 올려다보며 헤이즐의 평생의 비기가 담긴 마도서 한 권을 얄밉게 허공에 치켜들어 까닥거리는 채로 비웃고 있었다.
저건 내 부모님의 영령을 소환할 유일한 물건이라고!
“크아아악!”
순식간에 좀비의 웃음이 나의 입가를 타고 똑같이 재생되었다.
물론 저 잔악무도한 좀비에게로 다시 다가갈 자신은 없었다. 분하다는 듯 소리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두고 보자!”
“마음대로.”
그가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덧 나를 태운 지팡이는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그와는 반대쪽으로 멀어져 갔다. 자유의 태양을 품으며.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좀비가 되어 버린 그와 다시 만나 버리게 될 줄.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악몽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