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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아르모니아가 창백한 모습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자 뒤에 서 있던 여인 하나가 성녀의 안색을 살피며 그녀를 부축했다. 이런 기념일에 성녀의 상태가 안 좋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니까.
“아, 미안해요. 조금 어지러워서. 인사 뒤의 일정이 어떻게 되었죠? 잠깐 쉬고 싶은데.”
부축을 받은 아르모니아는 익숙하게 아래에 있는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쉴 시간을 내어 달라 청했다. 사람들을 향해 축복을 기도를 올리고 나면 대성당 중심으로 이동해 나이가 찬 아이들에게 따로 축복을 내려 줘야 한다. 그러나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다며 아주 잠깐만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성녀는 다른 사람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미소를 유지한 채 혼자 빈방에 남겨졌고, 그녀는 밖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새하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덜덜 떨면서 굳어 버린 뺨을 감쌌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 거야?!”
여러 신분의 백성이 뒤섞인 공간에서 기분 나쁜 녹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그녀는 실수로 구역질을 할 뻔했다. 이것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하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는 그것이 꿈이라 하기에는 더욱 생생하다. 만약 그것이 망상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맞다면?
“나는…….”
두 팔로 온몸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인 성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어찌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3년이다. 앞으로 3년. 그것이 꿈이 아닌 진짜 미래라면.
‘또 그런 미래를 겪을 수는 없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날. 결혼식을 올린 그 끔찍한 날. 자신이 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던 신부의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를 향해 물었다.
“어떤가요? 잘 어울리나요?”
일부러 왕께서 준비해 주었다는 아름다운 드레스. 성녀라 불릴 때도 언제나 하얀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것은 정말 아름다우면서 사치스럽고 우아한 옷이었다. 머리의 베일부터 발끝의 구두까지, 성녀였던 여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하고 하얀 보석으로 이루어져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동화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이 이런 모습일까? 그녀의 은발과 어울리는 하얀 베일과 반짝이는 티아라, 눈의 결정처럼 빛나는 귀걸이, 빛을 뿌린 듯이 빛나는 드레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빛나는 그녀를 보며 아인즈는 신부의 부케를 건네주었다.
“눈이 멀어 버릴 듯이 아름답군요. 정말 아름다워서…….”
그는 어쩐지 아쉬운 듯한 눈빛을 보이며 아름다운 푸른 꽃으로 만든 부케를 건네주었다.
“흰색이 아니네요?”
“푸른색도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습니다. 델피니움이라는 꽃이죠.”
아르모니아는 그 꽃을 받아들고 기분 좋게 향기를 들이마셨다. 개인적으로 흰색보다 푸른색을 더 좋아했기에 그녀는 그 부케가 정말 마음에 들었고 일부러 따로 그것을 준비해 준 남자에게 진심으로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런 그녀는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라 신부의 모습을 먼저 눈에 담은 자들은 하나같이 감탄과 함께 축복의 말을 입에 담았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우실까?”
“역시 성녀라 불리던 분이시니.”
“제파스 가문에는 틀림없이 신의 은총이 함께할 겁니다.”
성녀를 신부로 받아들이는 남자는 온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나 그만한 질투 역시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인즈는 아주 익숙한 듯이 그 감정을 받아 내며 아르모니아의 손을 잡았다.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좋을 텐데.”
“그럼 결혼식이 끝나지 않잖아요?”
아인즈는 행복한 결혼식을 앞두고 이상한 말을 했다. 물론 이 결혼식이 계속된다고 해도 행복하겠지만 끝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르모니아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지적했다.
“신부를 축복해 준 적은 많지만 신부가 된 건 처음이라 조금 이상한 기분이네요. 언젠가 신부가 되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긴 해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푸른 부케 뒤에 숨은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마 그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남자가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며 아인즈를 저주했으리라. 성녀의 존재는 비스타리아의 상징과 같아 젊은 세대에서는 인기 있는 가희나 연극배우와 비슷한 의미로 그녀를 동경하는 자가 많았다.
“아르모니아.”
“네?”
성녀였던 여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성녀였던 자에게 어울리는 외모의 남자다.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한쪽으로 묶어 내린 게 어색하지 않다. 그림 속의 천사처럼 빛나는 녹색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성녀가 비치고 그 속의 성녀는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웃고 있다.
참 준수하고 아름다운 귀족 가의 자제. 마치 동화의 삽화처럼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까? 아르모니아는 아직 그를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이 남자와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아 온 성녀이니 이 남자 역시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아인즈는 어딘가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신랑치고는 조금 이상한 모습. 하지만 아르모니아는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그의 모습을 두고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결혼식을 올렸다.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드네?’
남편이 될 남자와의 짧은 대화 이후 그녀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 왕이 직접 참석하여 성녀였던 자를 축복하고 새로운 성녀가 된 아이가 부부가 된 이들을 축복해 주었다. 마치 동화 속의 공주님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대한 식을 올린 그녀는 즐거운 연회를 마친 뒤 지옥을 마주했다.
“아인즈. 왜 여기에 이분들이?”
결혼식 뒤의 연회에서는 왕을 포함한 많은 왕족, 귀족 등이 참석해 성녀였던 자를 축하해 주었다. 제파스 가문에 시집간 아인즈의 어머니가 현왕의 여동생이었기에 왕은 일부러 아인즈에게 성녀를 이어 준 거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몰려와 연회에 참석해 즐기는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아르모니아는 연회 뒤의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회는 진작 끝났고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거나 다른 방을 빌려 잠들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놀랄 거 없습니다. 제가 불렀으니까요.”
신방에 들어선 아르모니아는 아인즈뿐만 아닌 다른 수많은 남자를 마주했다. 모두 연회에서 얼굴을 본 자들, 이미 예전부터 자잘한 세례식이나 축제 때 인사를 주고받은 귀족 자제들. 아인즈를 포함하여 모두 8명이나 되는 사내가 한 방에 모여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제가 이런 건 주위에서 설명으로만 들어서 잘 모르는 거일 수도 있습니다만……. 보통 신방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들이나요? 그것도 결혼식 날 밤에?”
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믿음과 사랑을 받아 오지만 성녀는 밖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것이라 여기는 일은 굳이 알리지 않는다. 훗날 그녀가 세상에 나가 정말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배우지만 남녀의 결혼이나 성행위에 대한 교육은 정말 딱 필요한 정도만 배우고 도덕적인 기준을 어긋나는 것은 알릴 필요도 없는 사실. 그래서 아르모니아는 결혼식 날 밤에 신방을 찾아온 여러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보통은 들이지 않죠. 아마 절대로 들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제가 부른 거니 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 틀림없이 선택권을 주었으니까요.”
무슨 소리일까? 아르모니아는 저도 모르게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났으나 아인즈는 두 걸음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 친구들은 모두 예전부터 당신을 흠모하던 자들입니다. 당연하지요. 당신은 성녀, 성녀였던 사람이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누가 그걸 말릴 수 있을까? 그런데 고작 왕가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제가 당신의 남편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불공평하지 않나요?”
아인즈의 표정은 마치 아이를 설득하는 어른처럼 보였으나 그 논리는 실로 허술했다. 그러나 지적하는 자는 없다. 주위의 7명은 모두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정말 이런 행동이 용서되느냐는 듯한 묘한 표정이었으나 누구도 아인즈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모두에게 제안했습니다. 모두 공평하게 당신을 사랑해 주면 어떻겠냐고?”
화사한 미소를 드러내며 아르모니아를 향해 다가온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꺼내며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어떤가요? 성녀가 아닌 지금도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 아닙니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몸을 돌려 아인즈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은발을 낚아챈 손에 붙잡혔고 아인즈는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는 도와 달라는 소리를 지르는 입을 틀어막은 채 결혼식에서도 맞추지 않은 입술을 아르모니아의 입술 위로 포갰다. 아무도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 두려운 눈으로 바라볼지언정 아무도 남자의 행동을 막지 않는다.
“두려워할 거 없습니다. 쾌락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이며, 우리가 당신에게 느끼는 사랑은 진실이니. 당신은 그저 그걸 받아들이면 됩니다.”
필요한 지식은 있으나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르모니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억지로 침대 위에 내던져진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는 16개의 눈동자에게서 아주 기분 나쁜 무언가를 느꼈다. 아인즈를 제외한 남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주 많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살짝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 말리지도 않았으며 도망치지도 않았다. 유독 아인즈만이 뻔뻔하고 화사하게 잘못된 것을 모르는 듯이 웃으며 침대 위로 기어 왔다.
“일단 형식적인 남편은 저이니 제가 제일 먼저 당신을 안긴 하겠습니다만.”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성녀였던 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크기의 불쾌함, 두려움, 공포, 막막함, 혐오가 뒤섞인 감각을 마주했다.
“한 가지 알아 두셔야 할 건, 당신은 이제 성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는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어 보였다.
“욱!”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아르모니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았다. 그저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구역질이 나다니.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안 되는 기억을 두고 이렇게 치를 떨다니. 틀림없이 꿈이었을 텐데 지나치게 생생한 감각은 그것을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만약 그게 정말 앞으로 일어날 일이면 어쩌지?’
떠올리기 싫어도 눈을 감은 동시에 되살아나는 기억. 불안에 흔들리는 호박색의 눈동자는 악몽 속의 기억을 떠올린다.
“싫어! 하지 마!”
남자에게 안기는 일은 아인즈와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교육받긴 했으나 마주한 상황은 그것과 전혀 달랐다. 억지로 침대 위에 던져진 것도 모자라 두 팔을 붙잡아 누르고 비명을 지르는 입술을 틀어막는다. 애무라기보다는 단순한 입막음에 가까운 행위.
‘대체 왜 이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을 성녀로서 살아온 여자. 그런 여자가 이런 대접을 받아 봤을 리가 있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그 자리에서 물러난 순간 이 무슨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체험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아르모니아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버둥거렸다. 아인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려는 여자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한참이나 틀어막은 채 혀를 섞더니 숨이 막히기 직전에야 떨어지고는.
“버둥거리니까 불편하군. 너희가 와서 잡아.”
아르모니아가 창백한 모습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자 뒤에 서 있던 여인 하나가 성녀의 안색을 살피며 그녀를 부축했다. 이런 기념일에 성녀의 상태가 안 좋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니까.
“아, 미안해요. 조금 어지러워서. 인사 뒤의 일정이 어떻게 되었죠? 잠깐 쉬고 싶은데.”
부축을 받은 아르모니아는 익숙하게 아래에 있는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쉴 시간을 내어 달라 청했다. 사람들을 향해 축복을 기도를 올리고 나면 대성당 중심으로 이동해 나이가 찬 아이들에게 따로 축복을 내려 줘야 한다. 그러나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다며 아주 잠깐만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성녀는 다른 사람이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미소를 유지한 채 혼자 빈방에 남겨졌고, 그녀는 밖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새하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덜덜 떨면서 굳어 버린 뺨을 감쌌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어떻게 과거로 돌아온 거야?!”
여러 신분의 백성이 뒤섞인 공간에서 기분 나쁜 녹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그녀는 실수로 구역질을 할 뻔했다. 이것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하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는 그것이 꿈이라 하기에는 더욱 생생하다. 만약 그것이 망상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맞다면?
“나는…….”
두 팔로 온몸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인 성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어찌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3년이다. 앞으로 3년. 그것이 꿈이 아닌 진짜 미래라면.
‘또 그런 미래를 겪을 수는 없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날. 결혼식을 올린 그 끔찍한 날. 자신이 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던 신부의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될 남자를 향해 물었다.
“어떤가요? 잘 어울리나요?”
일부러 왕께서 준비해 주었다는 아름다운 드레스. 성녀라 불릴 때도 언제나 하얀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것은 정말 아름다우면서 사치스럽고 우아한 옷이었다. 머리의 베일부터 발끝의 구두까지, 성녀였던 여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하고 하얀 보석으로 이루어져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동화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이 이런 모습일까? 그녀의 은발과 어울리는 하얀 베일과 반짝이는 티아라, 눈의 결정처럼 빛나는 귀걸이, 빛을 뿌린 듯이 빛나는 드레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빛나는 그녀를 보며 아인즈는 신부의 부케를 건네주었다.
“눈이 멀어 버릴 듯이 아름답군요. 정말 아름다워서…….”
그는 어쩐지 아쉬운 듯한 눈빛을 보이며 아름다운 푸른 꽃으로 만든 부케를 건네주었다.
“흰색이 아니네요?”
“푸른색도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습니다. 델피니움이라는 꽃이죠.”
아르모니아는 그 꽃을 받아들고 기분 좋게 향기를 들이마셨다. 개인적으로 흰색보다 푸른색을 더 좋아했기에 그녀는 그 부케가 정말 마음에 들었고 일부러 따로 그것을 준비해 준 남자에게 진심으로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런 그녀는 정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라 신부의 모습을 먼저 눈에 담은 자들은 하나같이 감탄과 함께 축복의 말을 입에 담았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우실까?”
“역시 성녀라 불리던 분이시니.”
“제파스 가문에는 틀림없이 신의 은총이 함께할 겁니다.”
성녀를 신부로 받아들이는 남자는 온 세상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나 그만한 질투 역시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인즈는 아주 익숙한 듯이 그 감정을 받아 내며 아르모니아의 손을 잡았다.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좋을 텐데.”
“그럼 결혼식이 끝나지 않잖아요?”
아인즈는 행복한 결혼식을 앞두고 이상한 말을 했다. 물론 이 결혼식이 계속된다고 해도 행복하겠지만 끝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르모니아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지적했다.
“신부를 축복해 준 적은 많지만 신부가 된 건 처음이라 조금 이상한 기분이네요. 언젠가 신부가 되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긴 해도.”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푸른 부케 뒤에 숨은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마 그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남자가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며 아인즈를 저주했으리라. 성녀의 존재는 비스타리아의 상징과 같아 젊은 세대에서는 인기 있는 가희나 연극배우와 비슷한 의미로 그녀를 동경하는 자가 많았다.
“아르모니아.”
“네?”
성녀였던 여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성녀였던 자에게 어울리는 외모의 남자다. 어깨를 넘어 가슴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한쪽으로 묶어 내린 게 어색하지 않다. 그림 속의 천사처럼 빛나는 녹색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성녀가 비치고 그 속의 성녀는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웃고 있다.
참 준수하고 아름다운 귀족 가의 자제. 마치 동화의 삽화처럼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까? 아르모니아는 아직 그를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이 남자와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아 온 성녀이니 이 남자 역시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아인즈는 어딘가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신랑치고는 조금 이상한 모습. 하지만 아르모니아는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그의 모습을 두고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결혼식을 올렸다.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드네?’
남편이 될 남자와의 짧은 대화 이후 그녀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 왕이 직접 참석하여 성녀였던 자를 축복하고 새로운 성녀가 된 아이가 부부가 된 이들을 축복해 주었다. 마치 동화 속의 공주님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대한 식을 올린 그녀는 즐거운 연회를 마친 뒤 지옥을 마주했다.
“아인즈. 왜 여기에 이분들이?”
결혼식 뒤의 연회에서는 왕을 포함한 많은 왕족, 귀족 등이 참석해 성녀였던 자를 축하해 주었다. 제파스 가문에 시집간 아인즈의 어머니가 현왕의 여동생이었기에 왕은 일부러 아인즈에게 성녀를 이어 준 거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몰려와 연회에 참석해 즐기는 것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아르모니아는 연회 뒤의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회는 진작 끝났고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거나 다른 방을 빌려 잠들었을 터. 그런데 어째서?
“놀랄 거 없습니다. 제가 불렀으니까요.”
신방에 들어선 아르모니아는 아인즈뿐만 아닌 다른 수많은 남자를 마주했다. 모두 연회에서 얼굴을 본 자들, 이미 예전부터 자잘한 세례식이나 축제 때 인사를 주고받은 귀족 자제들. 아인즈를 포함하여 모두 8명이나 되는 사내가 한 방에 모여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제가 이런 건 주위에서 설명으로만 들어서 잘 모르는 거일 수도 있습니다만……. 보통 신방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들이나요? 그것도 결혼식 날 밤에?”
나라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믿음과 사랑을 받아 오지만 성녀는 밖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것이라 여기는 일은 굳이 알리지 않는다. 훗날 그녀가 세상에 나가 정말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배우지만 남녀의 결혼이나 성행위에 대한 교육은 정말 딱 필요한 정도만 배우고 도덕적인 기준을 어긋나는 것은 알릴 필요도 없는 사실. 그래서 아르모니아는 결혼식 날 밤에 신방을 찾아온 여러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보통은 들이지 않죠. 아마 절대로 들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제가 부른 거니 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 틀림없이 선택권을 주었으니까요.”
무슨 소리일까? 아르모니아는 저도 모르게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났으나 아인즈는 두 걸음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 친구들은 모두 예전부터 당신을 흠모하던 자들입니다. 당연하지요. 당신은 성녀, 성녀였던 사람이니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누가 그걸 말릴 수 있을까? 그런데 고작 왕가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제가 당신의 남편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불공평하지 않나요?”
아인즈의 표정은 마치 아이를 설득하는 어른처럼 보였으나 그 논리는 실로 허술했다. 그러나 지적하는 자는 없다. 주위의 7명은 모두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정말 이런 행동이 용서되느냐는 듯한 묘한 표정이었으나 누구도 아인즈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모두에게 제안했습니다. 모두 공평하게 당신을 사랑해 주면 어떻겠냐고?”
화사한 미소를 드러내며 아르모니아를 향해 다가온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꺼내며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어떤가요? 성녀가 아닌 지금도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 아닙니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몸을 돌려 아인즈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은발을 낚아챈 손에 붙잡혔고 아인즈는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는 도와 달라는 소리를 지르는 입을 틀어막은 채 결혼식에서도 맞추지 않은 입술을 아르모니아의 입술 위로 포갰다. 아무도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 두려운 눈으로 바라볼지언정 아무도 남자의 행동을 막지 않는다.
“두려워할 거 없습니다. 쾌락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이며, 우리가 당신에게 느끼는 사랑은 진실이니. 당신은 그저 그걸 받아들이면 됩니다.”
필요한 지식은 있으나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르모니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억지로 침대 위에 내던져진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는 16개의 눈동자에게서 아주 기분 나쁜 무언가를 느꼈다. 아인즈를 제외한 남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주 많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살짝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 말리지도 않았으며 도망치지도 않았다. 유독 아인즈만이 뻔뻔하고 화사하게 잘못된 것을 모르는 듯이 웃으며 침대 위로 기어 왔다.
“일단 형식적인 남편은 저이니 제가 제일 먼저 당신을 안긴 하겠습니다만.”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성녀였던 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크기의 불쾌함, 두려움, 공포, 막막함, 혐오가 뒤섞인 감각을 마주했다.
“한 가지 알아 두셔야 할 건, 당신은 이제 성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름다운 녹색 눈동자는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어 보였다.
“욱!”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아르모니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았다. 그저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구역질이 나다니. 아직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안 되는 기억을 두고 이렇게 치를 떨다니. 틀림없이 꿈이었을 텐데 지나치게 생생한 감각은 그것을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만약 그게 정말 앞으로 일어날 일이면 어쩌지?’
떠올리기 싫어도 눈을 감은 동시에 되살아나는 기억. 불안에 흔들리는 호박색의 눈동자는 악몽 속의 기억을 떠올린다.
“싫어! 하지 마!”
남자에게 안기는 일은 아인즈와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교육받긴 했으나 마주한 상황은 그것과 전혀 달랐다. 억지로 침대 위에 던져진 것도 모자라 두 팔을 붙잡아 누르고 비명을 지르는 입술을 틀어막는다. 애무라기보다는 단순한 입막음에 가까운 행위.
‘대체 왜 이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을 성녀로서 살아온 여자. 그런 여자가 이런 대접을 받아 봤을 리가 있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그 자리에서 물러난 순간 이 무슨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경험을 체험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아르모니아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버둥거렸다. 아인즈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려는 여자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한참이나 틀어막은 채 혀를 섞더니 숨이 막히기 직전에야 떨어지고는.
“버둥거리니까 불편하군. 너희가 와서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