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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
모래술사 1권(1화)
prologue
타듯이 뜨거운 태양 빛이 작렬하는 사막 위.
오로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사막은 끝이 보이지 않아 모든 사람들을 좌절케 했다. 이런 사막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들이, 한두 명도 아닌 무려 5만에 이르는 대군이 찾아왔다.
사막정벌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아래 첫 출진한 대륙 선봉군들이었다.
이번 사막원정에 동참한 A급 용병, 다이칸.
그는 양손 검을 주 무기로 하는 탱커형 전사였다.
전사답게 강인한 육체와 힘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도 사막에서는 도저히 버틸 여력이 없는지 기진맥진했다.
“허억…… 허억.”
뜨거운 숨결을 목구멍에서 토해 내던 그. 이내 욕지기와 함께 아침에 먹었던 것이 불쑥 올라와 인상을 찌푸렸다.
“우엑……. 망할…….”
헛구역질을 하던 그는 욕설을 지껄이며 주위를 살폈다. 참전한 용병들은 모두 자신과 별다를 바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죽을상이었다. 그건 꼭 용병들뿐만 아니라 강함의 상징,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사막.
언제부턴가 이스탄 왕국이 있는 모게네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 불러왔다.
도대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꽤나 오래전이었던 것 같았다. 직접 이곳에 와 보니 죽음의 사막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쉬이이…….
“응?”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행진하던 도중.
다이칸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건 비단 그뿐만 아니라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행군을 멈추고 주위 경계를 강화시켰다.
쉬이이이이…….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정적이 흘렀다.
그런 정적 속에서 기묘한 마찰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마치 모래가 서로 마찰되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찰음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으아악! 살려 줘!”
그때,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펼쳐졌다.
“모두들 자리에서 멈춰 서라! 유사다! 유사!”
스으으으으!
사막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었던 지휘관이 급히 외쳤다.
유사라는 소리에 병사들은 허둥지둥했다. 그건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들어 본 적도 없고, 기껏해야 책에서 보았던 유사가 두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으아악! 살려 줘!”
“악!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군사의 주위만을 흐르던 유사는 이내 점점 거대해지더니 마치 소용돌이 같은 모양으로 흘렀다. 그 아래로 병사들은 개미지옥의 개미들같이 빠져들어 갔다. 손쓸 도리도 없었다.
“모두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난다! 빠지는 동료를 구하지 마라!”
동료를 버리라는 잔혹한 명령이었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대자연의 힘!
괜히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동료를 구하려다, 사이좋게 저승으로 같이 갈 수도 있는 노릇. 고급 인력인 마법사들은 플라이 마법으로 일시에 날아올랐다. 기사들은 최대한 마나를 운용하여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만 맨몸에 무기와 병장기를 착용하고 있는 병사들만이 우왕좌왕하다가 그대로 유사에 걸려들 뿐이었다. 용병들의 피해도 극심했다. 마법사들은 플라이로 날아올랐다지만, 용병 중에는 기사들처럼 마나를 쉽게 운용하는 전사들이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이 발악을 하다가 유사에 빠져들었다.
다이칸은 운 좋게도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하여 재빨리 몸을 뺐다. 다행히 안전할 수 있었다.
“제, 젠장!”
제대로 된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건만 병력의 상당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사막의 공포라는 유사.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인지 다이칸의 이빨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래도 자신은 유사에서 빠져나왔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나마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휘이이잉!
파파팍!
그때였다.
순간 거대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바람은 소용돌이로 변하여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콰콰쾅!
바닥은 유사, 그 위로 몰아치는 모래 폭풍은 지옥을 선보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야기로도 이런 광경을 듣도 보도 못한 다이칸은 자신이 폭풍의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아아!”
비명이 난무했다. 적도 아닌 모래 폭풍과 유사라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검과 창, 그리고 화살로 어찌 폭풍을 막을 수 있으랴? 다만 마법사들이 재빨리 마법을 이용해 대응하고 있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모래 폭풍과 유사에 희생되는 군사는 이미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이런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촤차차착!
“크아악!”
60도에 육박하는 태양 빛을 받아 달구어진 모래가 얼굴을 때리자,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아픔이 없었다. 모래에 의해 피부 표면이 벗겨져 갔고, 그 안으로 뜨거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다이칸은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법사들은 뭐 해!”
“당황하지 마라! 마법사는 최대한 소용돌이를 막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대열을 정비하라!”
“개소리!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열을 정비해?!”
다이칸은 지휘관의 명령에 욕설을 지껄이며 달려 나갔다.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화끈거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법사들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인지 소용돌이는 사라져다. 유사 역시 멀어져 갔다.
유사와 소용돌이.
그 둘이 잠잠해지자 군사들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됐을 때. 다시 한 번 절망이 찾아왔다.
“우아아아아아아!”
“대륙 놈들을 죽여라!”
순간 모래가 가득한 허공에서 홀연히 나타난 사막의 전사들이 미친 듯이 들이닥쳤다. 기사와 전사들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에다가, 절반 가까이의 군사를 잃은 그들로서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썅!!”
거대한 투 핸드 소드를 휘두르며 다이칸은 욕설을 지껄였다.
재물에 눈이 멀어 사막원정에 동참한 게 실수였다. 아니 오히려 사막의 전사들이 얼마나 강하겠냐고 방심한 자체가 문제였다.
“죽음의 사막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다이칸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용병들과 기사들이 모였기 때문일까, 금세 사막 전사들과 비등하게 겨루기 시작했다. 이젠 결과를 알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우우우우웅!
“뭐, 뭐야?!”
한참을 치열하게 싸우던 도중. 갑자기 거대한 공명음과 동시에 모래가 하나의 큰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어어…….”
“저게 뭐야?”
“맙소사…….”
다들 하나같이 경악 어린 목소리였다.
모래는 거대한 산이 되는가 싶더니, 사람의 형체로 자리 잡아 갔다. 무려 30m나 되는 거대한 모래로 이루어진 사람, 아니 괴물의 모습에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거대한 포효가 사막을 진동시켰다.
전설의 모래괴물 같은 모습.
사막의 왕이라도 되는 걸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넘쳤다. 단지 모래로만 이루어진 괴물인데 말이다.
“막, 막아!”
뒤에서 기사와 용병들의 보호 아래 마나를 보충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쏘아 보냈다.
콰콰쾅!
크아아아!
그러나 오히려 그런 공격이 모래괴물을 더욱 화나게 했는지, 괴물은 거대한 포효와 함께 덮쳐 왔다. 오로지 모래로 이루어진 괴물을 처치할 방법은 도저히 없어 보였다.
크으으으아아아!
파아아앙!
괴물의 포효와 동시에 주위의 모든 모래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주위를 덮쳤다.
“…….”
시끄러웠던 전장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정적.
괜히 식은땀만이 흐르는 정적에 다이칸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억지로 떴다.
꿀꺽…….
아무도 없었다. 허공은 모래로 가득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설마 5만이나 되었던 대군이 전멸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냐! 그럴 수 없어…….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인데…….”
애써 부정해 보지만 너무나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모래가 가라앉자, 앞이 보였다.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던 모래괴물이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허, 헉!”
다이칸은 두 다리가 후들거려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청난 위압감! 5만의 대군을 몰살시킨 대악마!
스스스스스!
바람이 불더니 그 바람으로 모래괴물은 모래가 되어 사라져 갔다. 이윽고 형체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타난…….
사람이었다.
씨익.
남자는 웃고 있었다.
중절모 아래 보이는 하얀 이빨은 다이칸에게 그 무엇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훗.”
남자는 조소를 보이더니 천천히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헉……헉…….”
이제야 알겠다.
이곳을 왜 죽음의 사막이라 부르는지를.
살인적인 더위? 수많은 몬스터들? 아니면 사막의 전사들? 또는 모래 폭풍과 유사 같은 사막만의 자연재해?
아니다.
이스탄 왕국이 위치한 사막이 왜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지는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다.
“사막왕…… 사막의 귀신…… 모래술사.”
어느 순간 나타난.
단 한 사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