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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2화)
Chapter 1 생존 본능(1)


2010년.
‘중동 녹색도시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자, 그 프로젝트를 대한민국 녹색산업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자 한국 제일의 건설 회사 중 하나인 ‘MI.우리’에서는 바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녹색도시 건설!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적인 감각과 창조적인 발상. 그리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최첨단 기술들은 녹색도시의 건설을 가능케 만들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삭막했던 사막에는 ‘미래도시’를 지향하는 녹색도시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4개의 녹색도시를 건설하자던 프로젝트는 무제한으로 늘어났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겠다는 의지였기도 했다.
2024년.
새로운 녹색도시 ‘미래도시 케니베르아 타운’ 계획 건설 현장.
사막의 밤은 몹시 추웠지만, ‘MI.우리’에서 파견한 사람들은 외투를 껴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가만히 모여 앉아 있지는 않았다. 다들 웃으면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내일 돌아간다고?”
“예. 한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욱은 털보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이는, 이욱의 눈빛에는 아련한 추억이 스쳐 지나간다.
사막에서 생활한 지 어연 4년.
4년 동안 이욱은 많이 바뀌었다. 아니, 악랄했던 사막이 이욱을 바꾸어 놓았다. 사막은 가히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대자연이었다.
한국에서 20년이 넘도록 살아왔다. 그런 인물이 사막에서 4년을 지낸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 그렇지만 이욱은 참아 냈다. 버텨 냈다.
어느새 사막이 더없이 친근해질 정도로. 한국 기후보다는 이제 사막 기후가 더욱 친근했다. 좀 더, 편했다.
“하지만 이제 안녕이구나.”
사막을 떠날 때가 왔다.
광활한 중동의 모래사막. 직장 때문에 이곳에 왔고, 이젠 사막을 떠나야만 했다. 본사에서 소환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면 자신은 월급쟁이, 그뿐이다. 고향에 부모님이라도 살아 계시면, 돌아가고 싶겠지만. 애석하게도 두 분 다 돌아가셨다.
평범하고 무료한, 순한 양들처럼 상관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광활한 이 사막이 더 좋았다.
악랄하고! 지독한!
이 사막은 이욱에게서 승부적인 근성을 이끌어 냈다. 사람을 좌절케 하는 사막을 이겨 내고 싶다!
그 승부 근성이 이욱을 4년간 사막에서 버텨 낸 원동력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뻔한 일상과. 상관의 면박에 굽실대야만 하는 월급쟁이가 될 것이라. 그게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이 그러니까.
“자자. 더 마시라고. 사막의 술을 한국에 돌아가면 못 마실 수도 있으니까.”
털보는 우울해하는 이욱의 술잔에 술을 채워 넣으며 격려했다. 4년 동안, 같이 일해 온 직장 선배였다. 물론 위치는 비슷하기야 했지만, 어쨌든 서로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다.
이제 이 사람하고는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쉽고, 텅 빈 느낌이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이욱은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욱의 얼굴이 붉어졌다. 술에 강한 그였지만 하도 부어 댄지라 취하고 말았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많이 취한 것 같으니. 들어가서 푹 쉬어.”
이욱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욱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털보. 털보는 한숨을 내쉬며 술잔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욱은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밤하늘이 빙빙 돌고 있었다. 별도 돌고, 달도 돌고. 이욱도 돌았다.
이욱은 숙소로 들어가지 않았다. 좀 더, 사막의 기운을 만끽하고 싶었다. 내일 가면, 어쩌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기운이 아닌가.
“우아아!”
이욱은 밤하늘을 향해 힘껏 소리 질렀다. 술기운에 몸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소리를 질러 내니 뭔가 후련한 느낌이었다.
스윽!
“후우.”
심호흡을 하는 이욱. 그런 이욱의 귓가로 아련하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스윽!
모래의 미묘한 마찰음.
모래 입자가 서로 미묘하게 마찰하고 있었다. 그런 아주 작은 소리는 일반인이라면 절대 느끼지도 못할 소리였다.
스스스스슥!
마찰음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귓가에 확연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워졌다.
후우우웅!
“컥!”
순간 강한 바람이 이욱의 몸을 강타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이욱은 일어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바람은 그런 이욱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이었다.
휘우우웅!
강한 바람에 모래가 휩쓸려 나갔다.
쿠쿠쿵!
이욱의 눈에 모든 게 돌았다. 달도 돌고, 별도 돈다고 했던가. 하늘도 돌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하늘이 도는 게 아니었다.
이욱, 그 자신이 돌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모래 폭풍!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폭풍이 발생했다. 폭풍의 위력은 가히 상상 초월이었다. 주위의 오아시스 농작물들을 완전히 휩쓸었다. 거대한 모래바위들도 처참하게 부서지고 흩날렸다.
그런 모래 폭풍에, 한낱 사람에 불과한 이욱이 어찌 버티랴!
“으아아아아!”
이욱의 비명마저 폭풍에 휩쓸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찔하다! 뜨겁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때리는 모래!
촤차착!
얼굴이 찢겨져 나갈 것만 같다. 얼굴 가죽이 화끈해서 눈조차 띄어지지 않는다.
쾅!
그때, 폭풍에 휩쓸린 나무의 몸체가 이욱의 뒤통수에 직격했다.
“악!”
단발마의 비명.
이욱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의 텔레비전에선 한 가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4월 21일 현지 시간 저녁 9시경. 사우디아라비아 네푸드 사막 전역에 강력한 모래 폭풍이 덮쳐들었습니다. 다행히도 모래 폭풍은 생성된 지 10분 만에 소멸되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MI.우리기업의 직원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급히 수색 작업에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무방하다고 보고 있어…….

* * *

쨍쨍!
“으음……음.”
뜨거운 태양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글거리면서 작렬하는 태양 빛. 이욱은 그 뜨거움을 못 이기고 깨어났다.
“쿨럭. 쿨럭, 우웩!”
정신을 차린 이욱은 헛구역질을 하며 연신 기침을 터뜨렸다. 담배도 핀 적 없는 신체였건만, 폐는 쪼그라들 정도로 기침을 토해 냈다. 마치 드라마 속 불치병에 걸린 환자처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욱은 간신히 기침이 멎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아. 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며,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모래 위에서 피어오른다. 그런 모래들이 하나의 형체를 이룬 사구들이 주위에 가득하다.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뜨거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막.
악랄한 사막이 맞았다.
“하아. 여기가 어디지.”
사막인 건 여전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다. 모래 폭풍에 휩싸여서 눈 뜬 곳이, 인적 하나 없는 사막이라는 건 참으로 허탈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말해 이욱이 있던 사막은, 도시계획 건설현장이었다. 이미 충분히 문명의 혜택을 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장소는.
정말 황량한 사막,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욱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허탈하다고 해서 멍 때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일단 이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고, 최대한 가까운 마을로 움직여야만 했다. 이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최소 방향이라도 알아야 움직이기라도 한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오른 이 시각. 방향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아시스의 흔적을…….”
가장 중요한 오아시스의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당연한 소리였다. 모든 마을과 도시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되니까.
이욱은 생각에 빠졌다.
모래 폭풍에 휩쓸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휑한, 인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그럼, 원래 위치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에 떨어진 곳일까?
“알 수 없군.”
알 수 없다.
모래 폭풍의 규모도 가늠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어느 거리만큼 떨어진 곳이라고 하더라도 방향을 모르니 소용없었다.
“움직이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단 움직여야 했다. 어쩌면 이 근처에 오아시스 마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욱은 자신의 단단한 두 다리를 믿고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후웁! 후!”
이욱은 입으로 가쁜 숨을 뱉어 냈다.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땀으로 목욕을 한다는 말이 이때에 쓰는 게 아닐까. 그만큼 이욱은 땀을 많이 흘렸다.
거의 60도에 육박하는 온도!
엄청난 무더위. 사계절 기후가 뚜렷한 일반인들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쓰러졌으리라. 삭막하고, 황량한 건조 기후는 뭐든지 말라 버리게 하니까.
그러나 이욱은 달랐다.
20년 평생 한국에서 지내 놓고도, 갑작스러운 사막 생활을 4년 동안 끈질기게 버텨 온 인물이다. 이제는 이런 기후도 익숙했다. 오히려 더없이 친근하기까지 했다.
기후 따위는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수분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인체에 가장 중요한 수분이 없으면 어찌 버티랴! 땀으로 빠져나가는 수분도 엄청났다. 수분이 보충이 되지 않자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시도 쉬지 못했다. 쉴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늘진 곳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 뜨거운 태양 빛에 달아오른 모래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아. 학!”
숨이 턱 끝까지 치달았다. 하늘이 노랬다. 구역질이 울컥울컥 치솟는다. 빙빙 돈다는 느낌이 또 든다. 이대로는…….
‘죽는다!’
이욱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선명한 단어.
죽음!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는 단어다. 이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정말 끝장이다. 인적조차 없는 이곳에 쓰러지면, 그건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욱은 현재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
이욱의 몸은 생존 본능으로 가득 찼다. 본능이었다. 살고자 하는 가장 기초적인 본능!
이욱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에서 붉고 선명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꿀꺽꿀꺽.
이욱은 흘러나오는 피를 남김없이 그대로 삼켰다. 뜨뜻한 피를 마시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욱은 놀라운 정신력을 보이며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러 입술을 이빨로 찢어, 피를 낸다.
그리고 마신다.
그것을 무한 반복했다.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졌지만, 이욱이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
끊임없이 길을 걷던 이욱의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막은 오로지 황색이다. 정말 삭막하기 짝이 없는 황색.
그런 황색 중에 유난히 녹색이 눈에 띄었다.
“선인장!”
선인장. 선인장이다.
수분을 채울 수 있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슝슝 나 있는 녹색의 선인장. 선인장을 본 이욱의 표정이 밝아졌다. 선인장이 사막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바로 수분을 오랫동안 저장해 놓기 때문이다. 뿌리를 깊은 지하 속까지 내려서 수분을 얻고, 그것을 저장한다.
그럼 선인장에는 지금 수분이 가득 저장되어 있다는 소리!
이욱은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로 선인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리가 저려 왔지만 극한의 정신력으로 이욱은 버텨 냈다.
선인장 가까이 온 이욱은 눈을 빛냈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이욱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칼도 없었다. 그저 맨손으로.
마치 야인처럼 이욱은 맨손으로 껍질을 벗겨 냈다.
가시가 피부를 파고들어 상처를 내도 이욱은 신경 쓰지 않았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선인장을 붉게 물들였다. 그럼에도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지지직!
선인장의 껍질이 벗겨지자 여린 속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피를 내뿜는 여린 속살. 흰색에 옅은 초록색이 서려 있는, 속살은 정말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아그작! 지익!
이욱은 속살을 뜯어 입속으로 닥치는 대로 집어넣었다. 미친 듯이 씹어 삼키는 이욱은 흡사 야인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이욱의 의지였다. 배가 고프면 설령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씹어 삼키면서라도 살기를 원했다. 그만큼 이욱은 삶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컸다.
“하악! 이제야 살겠군!”
이욱은 신음 이외에 처음으로 말을 했다. 수분을 힘껏 섭취하니 정신이 순간 맑아졌다. 노란 하늘이 푸르른 하늘로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단 조금의 수분 섭취만으로도. 모든 환경이 달라보였다.
이욱은 그제야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욱은 살아남았다.
“후!”
이욱은 한숨 돌렸다. 그러고는 피가 줄줄 흐르는 양손을 바라보았다. 딱히 붕대로 사용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욱은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지직! 직직!
이욱은 바지의 밑단을 찢기 시작했다. 괜히 치렁치렁해서 걷는 것이 불편한 점보다는 나았다. 문제는 모래가 상당히 묻어 있다는 점. 상처로 모래에 묻어 있던 세균이 침투하면 심각한 병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피로 수분이 더 빠져나가면 수분을 섭취하지 못한 것이지.”
피로써 나가는 수분이 많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더 손해일 수도 있다. 일단 오염에 대해서는 도시를 찾아 치료를 하면 됐다.
우선은 살고 봐야만 했다.
이욱, 그는 생존 본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흐음?”
길을 걸으면서 이욱은 배가 슬슬 아파 옴을 느꼈다.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서 아직은 괜찮았지만, 갑작스러운 복통은 뜻밖이었다.
이욱은 생각에 잠겼다.
복통이 갑작스럽게 오지 않을 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걸으면서 생각하던 이욱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독인가!”
간혹 선인장 중에는 독소를 가지고 있는 선인장이 있다. 어쩌면 자신이 먹은 선인장이 독소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수군.”
이욱은 자신을 자책했다. 명백한 실수였다. 중동에서 4년을 지낸 자신이 독이 있는 선인장인지, 그렇지 않은 선인장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는가.
너무도 혼미했던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혼절할 듯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했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말이다. 그렇지만 다행인 점은.
“참을 만하다.”
충분히 참을 만하다는 점이다. 선인장이 가지고 있는 독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기껏해야 복통 정도가 다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참을 만했다. 이욱은 호흡법을 달리해서 독을 다스렸다.
요가호흡법.
이욱은 한때 요가를 배웠었다. 중동 사막에 오기 전. 학창 시절,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요가를 배우자, 같은 학원을 끊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욱은 요가를 조금이나마 익혔던 터였다.
요가호흡 중 이욱이 하는 호흡법은 풀무호흡이었다. 요가에서 이 호흡만큼 더 강렬하게 기를 돌리는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 호흡은 기를 순환시키는 데에 그 효과가 탁월했다.
특히 기가 막힌 곳을 뚫어 주는 데에는 이처럼 좋은 호흡법이 없다. 기가 바르게 돌면 모든 질병이 깔끔히 사라진다. 그래서 이 호흡법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다. 요가 경전에서도 이 호흡을 세 번만 해도 모든 질병이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좋은 호흡인데, 고작 독을 다스리지 못할까? 활발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순환하는 기는 몸에 축적된 독을 다스리고, 밖으로 배출하고 있었다.
이욱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익숙하지 않은 호흡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은 어설펐다. 그렇지만 충분히 독을 다스릴 수 있었으니 그 효과는 대단했다.
지익! 아그작!
이욱은 수분이 부족해질 때마다, 선인장을 찾아 수분을 섭취했다. 물론 그중에는 독소를 가지고 있는 선인장이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잠그랴?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게 될 것은 뻔한데, 어떡하겠는가?
다행인 점은 호흡으로 독을 충분히 다스린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욱의 신체는 점점 독에 민감해졌고, 자연히 내성이 길러졌다.
아무리 약한 선인장 독이라 하더라도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독에 대한 내성이 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욱, 자신도 모르게 독에 대한 내성이 점점 길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