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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3화)
Chapter 1 생존 본능(2)


이욱은 걷고 또 걸었다.
목에 갈증이 심하면 선인장을 맨손으로 벗겨 내 찢어 삼켰다. 독에 중독되면 참았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 이욱의 눈동자에 무언가 어렸다.
그걸 본 이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야자수……?”
야자수! 선인장인 아닌 야자수!
야자수였다. 오아시스에서만 자라는 야자수.
“오아시스…….”
이욱은 저 멀리 보이는 야자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모래 위에 야자수가 어찌 자랄 수 있겠나. 그럼 저 야자수는 곧 ‘오아시스’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욱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다.
오아시스가 있다면, 작은 마을이라도 형성됐을 터!
타탁!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뜨거움에 발을 데일 듯했지만 이욱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참아야 했다.
참고 또 달려야만 했다.
오아시스에만 갈 수 있으면.
다리 쭉 뻗고, 푹 쉴 수 있었다.
절대로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욱은 달리고 또 달렸다. 눈에 어렴풋이 보이는 오아시스를 향해서.
“헉! 헉!”
이욱은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이젠 살았다는 기쁨에. 하지만 달리던 이욱은 이상한 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오아시스로 무작정 달리던 이욱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지금까지 달려온 뒤를 바라보았다.
상당했다.
엄청난 거리를 뛰어왔다. 그런데 오아시스는 여전한 거리 밖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리 가까이 가도,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것은.
“신기루.”
신기루였다.
오아시스의 신기루였다. 공중이나 땅 위에 무언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제대로 살피면 허상과는 다름없는.
중동에서 4년 동안 지냈지만 신기루를 본 건 처음이었다. 도시화된 곳에서만 지냈기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신기루에 낚이니 허탈함이 무척 컸다.
그리고 그 허탈감은 동시에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젠장.”
문득 신기루를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신기루를 어떻게 죽일 수는 없겠지만, 정말 이가 갈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욱은 한 가지 희망을 보았다.
신기루가 보였다면,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소리기도 했기 때문.
이욱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스으으.
그때, 모래가 마찰을 하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뒷골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소리!
분명 위험한 소리였긴 했지만 애석하게도 정신이 가물가물한 이욱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은밀했다. 그러면서도 위험하다는 걸 느낄 만한 섬뜩한 소리였다.
스스슥.
그때였다.
이욱이 발을 내딛는 순간, 모래가 소용돌이쳤다.
“억!”
단발마의 비명이었다.
이욱은 모래에서 무언가 자신을 끌어들인다는 착각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모래는 이욱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유사流砂!
사막의 늪, 유사!
이욱이 그 유사에 걸려들고야 말았다.
“크윽!”
이욱의 두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안간힘을 내며 버티려 했다. 그러나 유사를 어찌 버티겠는가. 안 그래도 몸에 기운이 별로 없는 이욱이!
허우적댈수록 더욱 빠져드는 게 유사다.
이욱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유사는 진공청소기처럼 이욱을 빨아들였다.
“으아악!”
이욱은 목 끝까지 잠기는 뜨거운 모래에, 정신을 잃었다.

번쩍!
“컥!”
등에서 부서질 듯한 고통이 전해져 온다. 짜릿한 고통에 온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이욱!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욱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딱딱하면서도, 차갑고, 까끌까끌한 모래의 느낌이 등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유사에 빠졌다면 당연히 죽음을 맞이하는 게 순리일 터, 하지만 이욱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하……하아…….”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금세 밤이라도 된 걸까.
이욱은 좀 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등에서는 허리를 삐끗했는지 계속 고통이 스며들어 왔다.
주위 환경에 익숙해진 이욱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흠, 춥지 않다.”
원래 사막의 밤은 무시무시하게 추운 것이 정상이다. 과연 사막인가 하는 의문마저 생길 정도로 무척이나 춥다.
하지만 이욱은 전혀 추위를 못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지금 밤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럼 이욱 주위를 감싸는 이 칠흑 같은 어둠은 무어란 말인가. 이욱은 내심 이곳이 사막의 아래라고 추측했다. 즉, 지하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분명 유사에 빠졌는데,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사막의 내부가 아닐까.
그러나 이욱은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사막에 지하라니?
사막에는 내부가 존재할 수 없으리라. 어떤 힘으로든 모래를 지탱할 수 없으니, 모래는 후두둑 떨어지지 않겠는가?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시력은 어둠에 익숙해져 갔다.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보는 것같이, 이욱은 어느 정도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
이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정했던 그 생각을 다시 가져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커다란 방과 같은 공간.
그 공간에 이욱은 서 있었다.
“무슨 장소지?”
이욱은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여기는 어디인가? 어떤 장소인가?
이욱은 벽으로 손을 뻗었다.
후두둑……둑…….
꺼끌꺼끌한 모래의 느낌.
건드리자마자 모래는 후드득하면서 힘없이 떨어졌다. 이욱은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모래로 이루어진 벽. 그런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무척 컸다.
무언가 모태를 지탱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인위적인 힘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지하터널이라도 된다면 따른 기계적인 장치가 보일 법도 했지만, 순수하게 모래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벽에 수많은 굴들이 있었다.
추춥! 춥!
그때, 귓가로 생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마치 빨대로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소리. 그런 느낌의 소리였다.
이욱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흡?”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징그러운 소음을 내며. 그것은 언뜻 보면 곤충이었다.
투명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드는 생소한 곤충! 그러나 곤충이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무척 컸다. 거의 주먹만 한 크기.
특히 빨대처럼 길게 삐져나온 입과 그 위에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두 눈은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생물체!
춥춥!
그렇지만 결코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곤충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저건 해충이었다. 이욱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해충의 입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다음 오른손으로 해충의 날개를 찢었다.
푸악!
파아악!
“키에에엑!”
“이놈!”
주먹만 한 놈이, 힘은 무척 쌨다. 날개가 찢겨져 나가자 귀청을 찌르는 날카로운 소음이 무척 시끄러웠다.
푸악!
해충의 다리가 찢겨져 나갔다.
푸욱!
빨대 같은 긴 대롱의 입도 처참하게 찢겨졌다.
“더럽군!”
지지직!
이욱의 왼손과 오른손이 몸통의 양옆을 잡았다. 그리고 해충의 몸을 절반으로 처참하게 찢어 놓았다.
이욱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아니, 해충에게 어떤 인정을 주겠는가. 이 같은 징그러운,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모르는 해충!
당연 죽어 마땅했다.
이욱은 잔인했다. 정말로 잔인하게.
해충을 짓이겼다.
“후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역한 냄새는 다름 아닌 자신의 손에서 나고 있었다.
주루룩.
끈적끈적한 녹색 액체가 손에 잔뜩 묻어 있었다. 이욱은 표정을 찡그렸다.
“제길.”
더럽다. 역겹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끈적끈적한 녹색의 액체는 정말 역겨웠다.
“대체.”
이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손에서 느껴졌던 그 찢을 때의 아찔한 쾌감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맨손으로 생명체를 찢어 죽였다.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태도로. 아니 당연한 짓이다. 이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공격하려 한, 생소한 생물체. 어쩌면 돌연변이일지도 모르는 생물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욱은 그 생명체를 죽였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나를 공격해 오는, 위협해 오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리라고. 부수리라고. 찢으리라고.
푸욱!
“흡!”
갑자기 발목에서 느껴져 오는 싸한 고통에 이욱은 표정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발목을 공격한 건 전갈이었다.
약 15∼20cm로 징그럽게 커 보이는 놈이었다. 무슨 전갈이 이리도 크단 말인가. 이욱은 발로 전갈을 밟았다.
투투툭!
전갈의 몸통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느낌이 발을 타고 전해져 왔다. 전갈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가 더 있었다.
이욱은 손을 뻗었다.
오른손에 전갈 한 마리를 잡았다.
콰지직!
이욱은 거리낌 없이 꼬리를 찢었다. 꼬리를 찢자 덩달아 꼬리 부근의 살덩어리도 움큼 찢겨졌다. 다리를 찢어 버리고 몸통을 부숴 버렸다.
콰직!
주룩!
“크윽?”
순간 손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이욱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독임을. 피에도 독이 들어 있음을.
독을 품고 있는 전갈.
독을 품고 있는 독충.
그런 놈들이.
“몰려오는군.”
몰려오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가.
이욱은 손아귀를 몇 번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통은 여전했다. 팔에서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충들이 몰려온다.
이것은.
“생존 게임.”
생존 게임의 시작이었다.



Chapter 2 생존 게임(1)


이욱은 거침없었다.
아니, 필사적이기 때문이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살고자 하기 때문에, 살고자 원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웠다.
주먹만 한 독충들이 날아와 독을 넣고 피를 빨아 가면. 손으로 붙잡아 완전히 절반으로 찢었다.
전갈이 발목을 타고 올라와 살을 물어뜯으면, 이욱 그도 전갈을 잡아 이빨로 전갈을 뜯고, 씹어 삼켰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갈이 물어뜯으면, 그도 전갈을 씹어 삼켰다.
독충이 피를 빨아들이면 그도 독충을 짓이겨 그 피를 마셨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음을 이욱은 깨달았다. 아니, 느꼈다. 온몸의 피부로 파르르, 전해져 온다. 살기 위한 투쟁임을.
이런 상황에 빠지면.
대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미치거나.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거나.
이욱은 후자였다. 후자 중에서도, 생존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한.
이 순간.
이욱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살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 하는.
짐승이기를 원했다.
이욱, 그는 지금 짐승이었다. 한 마리의 야수!
포효하는 야수였다.

“후. 후우.”
문득 눈을 뜨니, 이욱의 주위에는 징그러운 전갈의 시체와 독충들이 가득했다.
그것들도 다 정상이 아니었다. 전갈들은 사체 중 일부분만 너덜너덜하게 널려 있었고, 그건 독충들도 마찬가지였다. 날개만 따로 있는 독충. 절반의 몸통만 너저분하게 있고, 그 안에 있던 내장물이 주룩 흘러나오고 있는 독충. 머리가 박살 나 몸통이, 그것도 완전히 부서진 몸통만이 남겨진 전갈.
“큭?”
거기에 녹색 액체가 흥건히 바닥을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정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위가 약한, 아니 비위가 강한 일반인들이 봤으면 당장 구토부터 했으리라.
그러나 이욱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담담한 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뛴 건 처음이었으니까. 살고자, 너무나 필사적이었다. 독에 중독되고, 독충들에게 덮이고.
자신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봤단 말인가.
이욱은 몸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는 듯했다.
독, 엄청난 독이다.
심지어 전갈을 뜯어 삼키고, 독충의 피를 마셨는데 멀쩡하겠는가. 그러나 놀라운 건, 이욱이 중독돼서 죽을 위기라는 건 아니었다.
분명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독이었지만.
선인장의 독으로 차곡차곡 강해진 내성은 강했다.
어느 정도의 독성은 충분히 버텨 냈다. 물론 다 버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독이라는 것이, 똑같은 독만 계속 주입되면 내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전갈의 독이나. 독충의 독이나.
서로 비슷한 종류였다.
그것들에게만 계속 당하니, 독에 대한 내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지금 중독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힘들다.
진짜 움직이기도 힘들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분명 놀랄 일이리라.
“도대체 여긴.”
이욱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풀 수 없는 호기심. 그런 호기심은 계속해서 증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욱은 한 가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가 중동이 아닐지도.’
중동에서 모래 폭풍에 휩쓸리면, 기껏해야 중동에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중동 사막은 그만큼 넓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에서 느낀 점은.
어쩌면 여기가 중동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막 아래 이런 공간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처음 보는 거대 독충들도. 전갈들도.
어쩌면.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이욱에게는 살아남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설사 이곳이 중동 사막이 아닐지라도. 이욱에겐 그다지 신경 쓸 점이 아니었다.
이욱에겐 중요한 건.
“살자!”
살아남는 것.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