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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4화)
Chapter 2 생존 게임(2)


콰직!
이욱은 달려드는 전갈 한 마리를 손으로 부숴뜨려 죽었다. 놀라운 악력이었다. 전갈이 힘없이 터져 나가고, 독성이 강한 녹색 피가 손아귀에서 흐른다.
그러나 이욱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미 여기까지 굴을 타고 오면서, 수많은 독에 당했다. 독충, 독전갈……. 하도 당하면서 이욱은 정신력으로 버텨 왔다.
살아남고자 하는 정신력.
그런 정신력 속에, 독에 대한 내성은 정말로 강해졌고, 이제는 거의 ‘독인’에 가까운 경지에 올랐다. 어떤 독이더라도 충분히 버텨 낼 수 있는!
그 때문일까. 이욱은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즐겁지는 않았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사실이 무엇이 즐겁겠는가. 그렇지만 뭔가 색달랐다. 이욱, 그는 스스로의 본성을 늘 억누르고 왔다.
학벌중심사회인 대한민국.
그런 대한민국에서 이욱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몸속에서 들끓는 야수의 본성을 억누르며.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상관에게 허리를 굽실거리고, 선배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이욱은 참아 왔다.
아니, 그것이 당연했다. 당연히 야수 같은, 파괴적인 본성은 억눌러야만 했다. 민주주의 사회란 그랬다. 그러나 여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런 본성이 필요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억눌러 왔던.
잠재된, 야수의 본성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욱, 그는 순한 양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호랑이였다.
광폭한 호랑이 말이다.
본성을 억누르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본성대로 행동하는 점이 이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에 더 적절했다.
이욱은 느꼈다.
여기서 진정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자유롭게.
가식과 굴욕에 억눌렸던 본성대로.
이것이 진정 살아가는 이유라는 사실을!
“후. 후우.”
이욱은 달려드는 전갈들을 부수며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또, 요 근래 이욱은 수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더욱이 식량 또한 섭취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이유는 전갈과 독충을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부위는 기꺼이 먹었다.
살기 위해서는. 지독한 냄새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또, 녹색의 피로써 수분을 보충했다.
살기 위해서는. 지독한 독쯤이야 버틸 수 있었다.
이욱은 누구보다 빠르게, 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굴이, 이쪽으로 한 개가 들어 있는데, 그 사이로 연결된 굴이 두 개가 더 있다. 또 그 사이로 한 개가…….”
이욱은 바지의 종아리 부분을 잘라서 지도로 활용했다. 개미굴같이 얽히고설킨 모래굴들을 다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그려져 있는 개미굴만 해도 무려 200여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탐사하지 못한 굴들은 대략 100여 개가 남아 있었다.
그것들의 얽힌 관계를 보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였다. 그런 모래굴들을 다 지도로 그린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욱은 그렇지 않았다.
다름 아닌 건설회사의 직원이다. 특히 건축학에서는 실력이 뛰어나 중동으로 파견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조금 고심하여 머리만 굴리면, 충분히 그려 낼 수 있었다.
복잡한 도식을 최대한 간략화시켰다. 다른 사람이 볼 지도가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필요했다. 그럼 복잡한 계산이 들어간 지도보다, 자신의 눈에 쉽게 그린 그림이 훨씬 나았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그림으로 보일 법한 지도였으니까.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이욱.
그런 이욱의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모든 굴들의 가장 끝을 보면, 그 끝은 없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굴로 연결되니까.
언뜻 보면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았다.
그러나 돌고 돌지는 않았다.
더 자세히 살피니, 결국 하나의 굴로 모든 굴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허!”
놀라운 사실이었다. 아니, 놀라운 발견이었다. 모든 굴들이 얽히고설켜서 돌고 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굴들이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다.
아직 탐사해 보지 않은 굴들만 해도 100여 개가 넘어간다. 속단하기에는 이르긴 했지만.
이욱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100여 개의 굴을 다시 탐사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으리라.
결국에는 하나의 굴로 모두 연결되리라고 이욱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야수의 직감이었다. 아직 완전히 깨어난 야수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포효를 내지를 수 있는 야수의 직감.
이욱은 그 직감을 믿었다.
저벅저벅.
이욱은 굴에서 빠져나와, 모든 굴들이 연결되는 굴 앞에 섰다. 외관상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 똑같았다. 모래로, 마치 개미굴처럼 이루어져 있는 외관.
지름은 약 3m 남짓 한 정도.
‘가자.’
이욱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씩씩한 걸음걸이였다.

굴의 중간 부분까지는 똑같았다.
독충과 전갈들. 나오는 족족 이욱의 손아귀에 모두 박살이 났다. 찢겨지고, 부서지고. 피가 파팍 튀어 오른다.
중간 지점을 지나, 더 걸어감에도 전갈과 독충만이 나오는 건 여전했다. 그럴수록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초조해하는 반응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이욱은 달랐다.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 굴 끝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즉, 자기의 직감을 절대 신뢰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이욱은 믿었다. 자기의 직감을.
얼마쯤 걸었을까.
“음?”
호흡을 약하게 하며 조심히 길을 걷던 이욱은 무언가 발견한 듯 숨을 죽이며 몸을 낮췄다. 전방에 거대한 형체가 눈에 띄었던 탓이었다.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는 노릇.
지금까지 전갈만을 지겹게 보고 와서 그런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증폭되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뭐지……?’
직립 보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람일 가능성은 아주 없었다.
대충 눈어림으로 보는데 신장은 약 3m쯤 되는 듯싶었고 덩치가 상당했다.
‘도대체…….’
언뜻 비치는 그림자로는 대단한 덩치다. 3m의 덩치라면 절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곧 그 말은.
‘괴물인가.’
괴물.
이미 생소한 생김새의 독충들을 보아 왔다고 해서, 저런 3m의 괴물을 보고 놀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이욱도 그랬다.
어찌 저런 산만 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코앞에 있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보고 싶었다. 이욱은 조심스럽게, 가까이, 가까이 다가갔다.
후두둑!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그때, 벽의 모래가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그러자 괴물, 아니 골렘은 즉시 몸을 돌려 이욱을 향해 달려왔다.
쿵! 쿵! 쿵!
육중한 소리가 땅을 울렸다.
골렘은 기계 목소리를 내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이욱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였지만 그 위압감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골렘의 생김새는 이랬다.
온몸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각 바위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황색의 모래가 있었다. 즉 무릎 연골 같은 부위는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목 부분도 거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왼손과 오른손에는, 원뿔형의 바위 검이 달려 있었다. 매끄러워 보이고, 투박한 암석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암석도 뚫을 수 있어 보이는 바위 검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그 짧은 시간.
이욱은 골렘의 생김새를 거의 다 파악했다.
쿵쿵!
[죽인다!]
“이크.”
일단 어쩔 수 없다. 이욱은 우선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싸움?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선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생존, 살아남아야 하는 사실!
끝까지 생존해야만 했다. 괜한 호승심에 부딪쳐 보는 멍청한 일 따위는 이욱은 하지 않았다. 특히 바위로 이루어진 골렘. 맨손으로 어찌 해 볼 수 없었다.
쿵! 쿵!
“흡, 흡.”
일반 호흡이라면 벌써 가빠 와야 할 호흡이, 호흡을 달리하니 아직도 안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욱도 사람이다.
지칠 수밖에 없는 사람. 호흡도 점점 흐트러졌다. 그러나 골렘은 달랐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까.
전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일정한 속도로 이욱을 쫓아오고 있었다. 이욱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뛴 다 해도 점점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지 않는 이상 계속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합!”
이욱은 중간에 옆 굴로 빠졌다.
단번에 몸을 날리며. 하지만 그렇게까지 골렘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욱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끝까지 쫓아왔다.
쿵! 쿵!
“으랏찻!”
이욱은 좀 더 속력을 냈다. 그리고 중간에서 또 다른 굴로 꺾어 들어갔다. 잠시 골렘의 시야에서 벗어난 지금.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파파팟!
이욱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투박한 상처만이 가득한 맨손, 그런 맨손이 엄청난 속도로 모래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미친 듯이. 빠르게!
손이 얼얼해질 정도다. 하지만 이욱은 멈추지 않았다. 몸을 웅크릴 정도의 굴은 파야만 했다. 지금 이욱의 위치가 딱, 꺾고 들어온 굴에서, 또 오른쪽으로 꺾는 굴의 그 사이 부분에 있었다.
한마디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부분.
그때, 골렘이 굴 안으로 들어왔다.
쿵! 쿵!
이욱은 다급해졌다. 구덩이를 제대로 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렘은 더욱 가까워졌다.
발걸음 소리가 커질수록. 이욱의 손놀림도 급해졌다. 빨리! 조금 더 빨리!
쿵! 쿵!
골렘이 더욱 가까워진다. 15m…… 10m…… 5m.
그리고, 코앞!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