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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술사 1권(5화)
Chapter 2 생존 게임(3)
[…….]
골렘은 육중한 몸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에 잡혀 있던 이욱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 시각,
이욱은 골렘의 바로 뒤에 있었다. 반쯤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자신의 몸을 완전히 쑤셔 넣은 채. 그렇지만 언제든지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 했다.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호흡도 멈췄다. 약간의 움직임도 멈췄다. 마치 그대로 동상이 된 듯, 이욱은 그렇게 기척을 숨겼다.
쿵. 쿵.
골렘은 더 이상 이욱이 근처에 없다고 판단했는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이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시야에서 골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척을 숨길 요량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때때로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후두둑!
[…….]
모래 구덩이의 모래가 순간 한 움큼 떨어졌다. 워낙 급하게 만들었던 모래 구덩이인지라 견고하지 않았던 탓이다.
‘젠장!’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쿵. 쿵.
골렘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이욱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이욱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도망칠까?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어차피 결국에는 잡힐 터였다. 인간이 아닌 저 골렘은, 끝끝내 자신을 쫓아오리라. 그러면. 죽여야 했다.
어떻게?
저 암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을 어떻게?
이욱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일단.’
기다리자.
이욱은 침착하게 골렘을 기다렸다. 도망치려면 진작 했어야 했다. 고민하는 사이, 도망칠 타이밍도 놓친 상태였다.
골렘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순간, 이욱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빈틈을 보았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의 빈틈! 이욱은 다리를 조금 움직여, 반동을 이용해 당장 튀어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점프력을 상당히 업 시켜 주는 자세였다. 그때, 골렘이 바로 앞에 왔다.
쿵. 쿵.
[죽인다!]
“하압!”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욱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이욱의 신형은 골렘의 등 뒤로, 목을 양팔로 부여잡은 채 매달렸다.
팔에서 까슬까슬한 모래가 느껴진다.
[우우우!]
쿵! 쿠웅!
골렘의 신체 구조상,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이욱이 매달리자, 골렘은 성난 소리를 내며 방방 뛰어다녔다.
쿠쿵!
모래가 무너진다. 3m가 약간 넘던 굴이 골렘의 난동에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난동 속에도 이욱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꽉 껴안았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매달렸다.
아니,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목 부위를 껴안고 있었다.
“으아아아!”
[우우우우!]
쑤우욱!
목을 두른 이욱의 양팔이, 엄청난 괴력으로 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목 부위. 하지만 연결 부위기에 제법 단단하다. 그런데 이욱은 그런 부분을 거침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대단한 괴력, 그 이상이었다.
“으아아!”
끊어 낸다!
이욱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됐다. 운동으로 잘 단련된 매끄러운 근육들이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붉고 푸른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이대로 맨손으로 목을 끊어 내리라! 힘줄이 끊어져 나가더라도, 근육이 부서지더라도!
이욱, 그는 자기가 한다면. 해야 했다.
아니, 살기 위해선 해야만 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지금 이때, 완전히 끝내 놔야만 했다.
그리고 끝내.
“으아아아!”
쿠우웅!
성공했다. 목을 빙 두른 양팔이, 모래로 이루어진 목을 완전히 절단해 냈다. 골렘의 거대한 머리통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쿠쿵쿠쿠쿵!
머리가 절단되자, 골렘의 몸뚱이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허름한 건물을 철거하듯,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 하아.”
이욱은 벽에 기대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온몸이 축 처졌다. 물 먹은 휴지처럼. 근육이 늘어나는 바람에 엄청난 고통이 신체에 전해져 온다.
하지만.
“하, 하하핫! 핫!”
이욱은 불현듯 대소를 터뜨렸다.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근육과, 인대가 늘어난 두 팔이 축 처짐에도, 그럼에도 이욱은 웃었다. 아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또 한 번.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 다시 살아남고야 말았다. 기쁜 일이지 않은가. 당연히 즐겁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살아남는다.’라는 말은 흔히, 직장에서 ‘먹고살기 위한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는 말로 사용됐다.
그런데 지금 여기선.
정말로 살아남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손길 아래. 살아남고 있었다. 그것이 이욱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야수를 깨우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에서, 이 지독한 생존 싸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라고.
그 포효를 지르라고.
그 이빨을 보이라고.
이욱, 그는 야수가 되기를 본성이 원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이곳에서만큼은. 살아남기 위해, 야수, 짐승이 되고 싶었다.
“하. 하하.”
한참을 웃던 이욱은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호흡으로 최대한 심신을 안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이욱은 축 처진 팔을 애써 움직이며 골렘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정말로 특이한 구조다. 온몸이 바위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으나, 시체는 바위밖에 남지 않았다. 각 부위를 연결하던 모래는 완전히 흩어져 있었다.
몸통을 이루는 암석 두 개. 머리를 이루는 암석 하나. 팔을 이루는 암석 두 개씩, 양팔이니까 네 개. 그다음 다리를 이루는 암석 총 네 개. 그리고, 원뿔형의 바위 검 두 개.
총 13개의 암석만이 남았다.
“흐으음.”
이욱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매끄럽군.”
암석의 표면을 매만지던 이욱은 살짝 놀랐다. 암석의 표면이 마치 깎아 내린 듯, 아주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투박한 암석이 아닌, 정교한 작업을 거친 암석.
즉 인위적인 힘이 들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럼 이 골렘, 괴물도 어떤 인물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생산물’이란 결과가 나온다.
“한둘이 아니겠군.”
이런 골렘이 하나만 있을 리는 없었다.
“이거 위험하군.”
위험하다.
이런 골렘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 있다면. 도대체 마지막 굴의 끝에는 무엇이 있기에 이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이욱은 인상을 구기며 조용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Chapter 3 이기적인 야수가 되리라(1)
이욱이 굴에서 발견한 괴수는 골렘뿐만이 아니었다. 약 2m가 넘는 신장에 팔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괴물도 발견했다.
얼굴의 모양은 길쭉했고, 온몸에 털이 가득했다. 한번 부딪친 적이 있었는데, 긴팔을 이용해 공격해 오는 놈은 무척 위협적이었다. 또한 손톱 역시 무지 날카로워서 걸리는 대로 모조리 송송 구멍이 뚫릴 정도였다.
이욱도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한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놈들이 다수 포진.”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점은 이런 괴물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굴의 끝 부분에 말이다.
콰직.
아그작. 아그작.
이욱은 전갈의 먹을 수 있는 부위를 씹어 삼키면서 배고픔을 해결했다.
이젠 장기전에 돌입해야 할 때다.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일단 저 굴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괴물들을 처리해야 한다. 이건 전갈이나 독충을 잡는 것처럼 단시간 안에 끝낼 수 없다.
장기전이다. 오랫동안.
천천히, 하나씩 없애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독충보다는 전갈이 먹을 부위가 많았다. 그래서 전과 달리 잡히는 전갈은 우선 껍데기를 벗겨 내고 먹을 수 있는 가슴 부분만 떼어 내서 따로 저장하고 있었다.
수분은 딱히 어쩔 수는 없었다.
독충이나 전갈의 피를 마시는 방법 외에는.
문제는 ‘독성’이겠지만, 이미 거의 독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욱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식량을 조금씩 저장하면서.
이욱은 천천히 준비를 해 나갔다.
“맨손으론 저들을 잡을 수 없다.”
사실이다. 운 좋게 골렘 한 마리를 쓰러뜨렸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맨손으로는 이길 수 없는 사실.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만 했다.
“흠.”
한참 고뇌하던 이욱.
문득 이욱의 시선이 한쪽에 놓아 놓은 골렘의 암석들에게 멈추었다. 매끄럽게 잘 깎인 암석. 그리고 바위 검.
순간, 이욱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생각함과 동시에 이욱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흠. 바위만으로도 충분하다.”
투박한 암석이 아니다. 정교한 작업을 거친 암석들. 이런 암석들은 서로 움직이기에 아주 유용하게 잘 되어 있었다.
이욱의 눈이, 밝게 반짝였다.
타탓, 탓!
“궤에에!”
“그어어어!”
2m가 넘는 털북숭이들이 기괴한 울음을 뱉어 내며 이욱을 쫓았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팔을 빙빙 돌리는 행동이 사뭇 위험했다.
“오케이. 잘 되고 있다.”
이욱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지만, 이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총 여섯 마리의 괴물들. 단번에 없앨 수 있는 방법!
이욱은 장소에 가까워지자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팟!
“궤엑?”
“그어억?”
또 다른 굴로 꺾는 순간 이욱이 사라져 버렸다. 털북숭이 몬스터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좁은 굴 통로. 이 굴 통로에서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그때.
쿠우웅!
거대한 암석이 굴러 들어와 입구를 막아 버렸다. 암석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입구를 꽉 메울 정도의 암석이 틈을 완전히 막아 버리지 않는가? 털북숭이들은 순간 당황했다.
동시에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완전히 메워진 입구를 뚫을 수는 없었다. 정밀하게, 치밀하게 서로 단단히 틈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 저 위에서부터 빠른 속력으로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다.
쿠쿠쿠쿵!
“궤에엑?”
“그어어어!”
몬스터들은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암석, 엄청난 크기의 암석이 무서운 속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궤엑! 그억!”
콰직, 파지직!
퍼억!
처참하게 부서진다. 사방으로 튀는 피. 바위에 눌려 뭉개지고, 터져 버리는 신체. 그런 모습을, 이욱은 지켜보고 있었다. 저번과 달리 깊게 파 놓은, 구덩이 안에 숨어서.
“그어어억!”
6마리에 달했던 몬스터들이 어느새 전멸당했다. 바위에 깔려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억, 억억!”
그러나 한 마리, 단 한 마리가 깔린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놈이다.
“흠. 그냥 깔끔하게 죽을 것이지.”
이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 조금 안돼 보이기도 했다. 자신도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함정을 만들었고. 이 몬스터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건 자신과 같았다.
하지만.
“죽어야지.”
푸악!
이욱은 두 손으로 힘겹게 바위 검을 들어 놈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즉사했다.
“방해되는 장애물은…… 부숴야지.”
이욱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뛰어넘지 않았다. 오로지, 부쉈다. 귀찮게 뛰어넘을 이유가 없었다. 처참히 부수면, 그만이었다.
“괜찮군.”
주위를 둘러본 이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성공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던 함정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거대 함정.
이 모든 함정은 다 골렘의 시체로 만들어졌다. 골렘의 몸을 이루었던 암석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으니까. 사실 모래굴 속에 함정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예 생각조차 못하리라. 그러나 이욱은 달랐다. 건축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그 능력이 뛰어나 현장에 파견된 사람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머리가 아플 정도의 생각만 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10일.
이 거대 함정을 만드는 데 투자한 시간이었다.
골렘의 사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죽여 온 전갈, 독충들의 사체도 사용되었다. 치밀한 계산 아래 준비된 함정이었다.
“후우.”
이욱은 완전히 짓이겨진 시체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시체들을 살피던 이욱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졌다.
“다 쓸모없군.”
다 쓸모가 없었다. 어디 쓸모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전갈은 그래도 식량 대용으로 쓰인다. 독충도 그 피가 식수 대용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놈은 뭐란 말인가?
써먹을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욱의 시선이 놈의 손에서 멈추었다.
약 20cm까지 자란 긴 손톱.
날카롭기 그지없는. 저번에 저 손톱에 당했던 적이 있던 이욱은 흥미가 동했다. 다른 신체는 바위에 완전히 뭉개진 것에 비해, 손톱은 멀쩡했다.
“호?”
그만큼 단단하다는 얘기다. 이욱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손톱을 살폈다.
퉁!
살짝 눌렀다가 손을 떼니, 다시 원래대로 쫙 펴졌다. 탄력성이 뛰어나다.
단단함, 탄력성……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흥미가 동하는 점은 뭐든지 꿰뚫어 버릴 기세의 날카로움이라는 점이다.
이욱은 혹시 모르니 챙기기로 결정했다. 이런 물건이 후에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는 일. 일단 챙기면 후에 유용하게 쓰일지도 몰랐다.
“일단 복구를 해야겠군.”
일회용 함정이 아니었다. 아니, 고작 일회용에 그친다면 이런 거대 함정을 무슨 수고로 만든단 말인가? 다만, 거대 함정인 만큼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하루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루.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욱은 인내할 줄 알았다. 하루에 한 번씩, 대여섯 마리씩 처리한다고 하면 아무리 못해도 한 달 내에 웬만한 몬스터들은 제거하리라.
그 시간을 여기서 버틴다는 점은 무척 고역이었다. 그러나 이욱은 버틸 수 있었다.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다.
인간은 죽기 싫어한다. 심지어는 하찮은 짐승들마저. 이욱도 죽기 싫었다. 살고자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인내하리라.
어둠 속, 이욱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