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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련(初戀) 6화
2장 (1)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문을 열고 익숙한 내부로 발을 들인 순간, 저를 반기는 이에게 웃으며 물음을 건넸다. 그 물음을 똑똑히 들었음에도 그의 눈은 책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순간 짓궂은 마음이 동해 입꼬리를 올리며 침상으로 다가갔다. 제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제야 서책에서 눈길을 거둔다.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친다. 평소와 달리 단정히 빗어 풀어 헤친 머리가 볼을 간질였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머리카락을 걷어 내는 손길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복받쳤다.
제 머리카락을 거두던 손목을 낚아채 눈앞으로 끌고 오자 손목의 주인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눈가가 유유히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붙잡은 손은 평소 검을 잡아 단단하고 사내다운 제 손과는 사뭇 달랐다. 희고, 부드럽고, 가늘고 또한 작다. 손가락 겉은 새하얀 주제에 안쪽의 끝부분이 연홍빛을 띄어 왠지 모르게 색정적이었다.
고개를 내려 작고 부드러운 손에 입을 맞춰 본다. 입술이 닿는 순간 온몸을 경직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힘을 주어 붙잡힌 손을 빼내려 하자 억눌렀던 사내의 정복욕에 불이 붙는 듯했다. 손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연신 입술을 찍어 눌렀다.
손가락 끝, 손마디 사이사이, 손등과 가느다란 손목까지 입술이 닿지 못한 곳은 없었다. 입술을 찍어 누르는 횟수가 늘 때마다 손의 주인은 이를 악물며 손목을 비틀었다.
당기면 식고, 밀어 내면 불타오르는 것이 사내의 마음이라 했듯, 그 소심한 반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흐읏……아.’
입술은 손목을 지나 옷자락을 걷으며 팔 쪽으로 이동했다. 혀를 내어 적시기도 하고, 이를 세워 울혈을 만들기도 하는 입술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인지 상대는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어깻죽지까지 당도한 입술은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어깨에서 가장 곡선이 심한 부분에 이를 세우고 연하디연한 살을 흡입하자 희미한 신음이 울음으로 뒤바뀌었다. 그 울음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떨지 마세요.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니.’
‘아…….’
옅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자 상대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행동이 마치 입맞춤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이마에 입술을 찍어 내렸다. 눈물이 고인 두 눈가와 코끝, 그리고 볼까지. 마치 제 것이라고 흔적을 남기기라도 하듯 입맞춤은 끝나질 않았다.
작고 말랑한 열매와도 같은 입술을 한입에 삼키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 더 이 감각을 맛보고 싶다. 더욱더 느끼고 싶다. 본능이 뇌리를 잠식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약한 그것을 정신없이 탐하고 있었다.
흐읍, 응…흐……. 드문드문 터져 나오는 가느다란 신음이 귓가를 간질일수록 육신은 더 뜨거워져 갔다. 혀를 내밀어 거칠게 안을 탐하고 농락했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은 축축하고 음탕한 마찰음을 냈고, 그 마찰음이 신음과 섞이자 이성은 점점 마비되어 갔다.
‘하아, 하아…….’
길게 이어진 입맞춤을 끝내고 입술을 떼어 내자 신음 섞인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입맞춤을 계속하고 싶지만, 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교성을 마음껏 귓가에 새기고 싶었다. 혀를 내밀어 턱선부터 목선, 그리고 드러난 쇄골까지 쭉 핥아 내리자 크게 동요하며 숨을 삼킨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육체와는 사뭇 다른 몸이지만, 이 몸은 사내의 육욕을 자극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같은 사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음란한 몸과 대조되는 순수하고 순진한 반응이 정욕을 더욱 부추겨 흐트러진 저고리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아, 안 돼……!’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벌어지는 옷깃을 움켜쥐는 손길과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서는 몸짓이 너무도 가녀리고 애처로웠지만 터져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비웃음이었다. 매정하게 그 안타까운 모습을 무시하며 찢어발기듯 옷가지를 벗겨 냈다.
가녀린 비명과 함께 새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사내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듯 깨끗하고 부드러운 몸이었다. 그 몸에 하나둘씩 제 흔적을 새기고 탐할 생각을 하니 견딜 수 없을 만큼 흥분하는 자신이 있었다.
‘흑… 싫…싫어…….’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삼키며 애원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손을 뻗었다. 입술과 손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은 발갛게 흔적이 남았다. 흐앗, 아아……! 집요하게 가슴 끝을 물어뜯고 게걸스럽게 빨아 대자 숨이 넘어갈 듯한 교성이 사방에 울렸다.
꼿꼿이 선 유실을 양 손가락으로 비틀고 잡아당기자 제발 그만, 하고 애원한다. 눈물을 흘리며 도리질을 치는 얼굴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동자에 담았다. 저가 어떻게 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눈빛이 되는지 전부 기억하고 머릿속에 새기고 싶었다.
‘아아, 싫어, 그마…….’
‘입은 싫다 말하시는데, 여긴 싫지 않은가 봅니다.’
‘아냐, 아아…아파…….’
아프다는 분이, 여기는 왜 이리되셨습니까? 그리 되물으며 아래를 움켜쥐자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옅은 색의 작은 양물은 딱딱하게 섰음에도 말랑하고 사랑스러웠다. 평생, 죽을 때까지 이 물건이 여인을 맛볼 일은 없을 터이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자신의 손과 입이 지겹도록 사랑을 줄 것인데. 나중엔 제 입이 아니면 토정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여인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고간을 농락하던 손이 다리 사이에서 멀어지자 가느다란 다리가 희미하게 경련했다. 사내로서 양물을 자극해 토정하는 쾌락을 맛보게 해 주는 것 또한 좋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우선이었다.
씩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고개를 내려 가슴을 물었다. 혀와 입으로 말랑한 가슴을 적시며 다리를 넓게 벌리자 다시금 ‘싫어……’ 하고 애처로운 애원이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애원이 저에게는 더 해 달라는 유혹으로 들렸다.
‘싫다니요. 좋아하시잖습니까.’
‘아냐, 아아, 싫어……!’
‘계속 싫다, 싫다…… 이리 솔직하지 못하시니 원.’
희고 가느다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매끈한 복부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무언가를 예측한 것인지 온몸이 경직하는 것이 느껴졌다. 뾰족하게 세운 혀는 아슬아슬하게 고환을 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악……! 양다리를 올려 젖혀 수줍게 꽁꽁 숨어 있던 밀부를 훤히 드러내자 기겁하며 두려움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안 돼, 싫어, 그거, 아아, 싫……! 온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하기 시작하는 상대의 볼기를 망설임 없이 세게 내리쳤다.
‘흐아……!’
어찌나 세게 내려쳤는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한쪽 엉덩이를 터트릴 듯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끅끅 울음을 터트린다.
아아, 이 백치 같고 순진한 분을 어찌하면 좋을까.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한없이 다정한 어조로 달래듯 속삭였다. 하지만, 다정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 내용은 매정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 가리지 마세요. 계속 맞고 싶지 않으면.’
‘흑, 흐윽…….’
‘이런, 왜 우십니까. 제가 아프게 해서 그러십니까?’
다시금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자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행동에 이미 아랫도리는 폭발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엎어 놓고 엉덩이를 쳐들게 한 후 무자비하게 박아 대고 싶었지만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인내를 머릿속에 새겼다.
‘아시지요? 제가 하라는 대로, 착하게 잘하시면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흐윽… 하지만, 하지마안…….’
이런 건 싫다… 싫어……. 다시금 훌쩍거리며 애원해도 봐주거나 번복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웃음 지으며 양손으로 엉덩이를 붙잡고 그대로 활짝 벌렸다. 그러자 발갛게 익은 밀부가 움찔거리며 수줍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 주고 싶지도 않고, 보여 줄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창피한 치부를 그대로 훤히 드러내고야 말았다는 수치심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움찔거리는 입구에 질척거리고 말캉한 혀를 갖다 대자 흐읍, 하고 숨을 멈춘다. 아랑곳하지 않고 밀부 안으로 혀를 삽입하고 손을 뻗어 가슴 끝에 맺힌 돌기를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그리 싫다, 싫다 노래를 부르던 이가 허리를 비틀며 가늘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풀어진 눈과 벌어진 입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 줄기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의 조화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하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입구의 주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샅샅이 핥아 내리고, 쿡쿡 쑤시고 동요하는 안쪽에 손가락을 삽입해 휘젓자 숨이 넘어갈 듯한 교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유독 약한 지점을 집요하게 문지르고 긁어 내렸다. 흐아아, 아앙……! 보다 더 높아진 교성이 귓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가슴과 아래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쾌락의 향연에 아무래도 참지 못하고 토정을 한 듯 보였다.
백탁액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탈진한 듯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것을 황홀경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꿇었다. 제 밀부에 흉기에 가까운 양물이 드리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백치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뿌리까지 꿰뚫었다.
‘아아아……!’
컥, 끅, 끄윽…….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던 것인지,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통에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뜬 채 정신을 잃은 이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흑, 흐으……흐…….’
머리와 볼, 눈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독여 주자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는 듯 보였다. 양다리를 몸에 접어 누르고 그 위에 엎드리듯 상체를 밀착시킨 후 실신한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맞췄다.
방금 전의 광인처럼 난폭했던 입맞춤과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몸을 겹친 상대가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 입술을 탐했다. 눈을 뜨고 상대의 얼굴을 계속해서 시야에 담아내다가, 이내 되었다 싶었던 순간, 멈췄던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감으로 흐릿하게 풀린 얼굴로 비명인지 교성인지 모를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도리질 치는 이의 얼굴을 붙잡아 강제로 눈을 마주치게 했다. 당신의 시선이, 이 눈이 향해야 할 곳은 한 곳뿐입니다. 아무 데도 보지 마세요. 저만, 오로지 저만 보는 겁니다.
그리 짐승처럼 목울대를 울리며 경고하듯 속삭이자 눈물을 흘리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쓰는 이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한바탕 휘몰아친 폭풍우 같은 정사는 연약한 몸에 벅찼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된 얼굴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온몸을 잠식해 온 양기를 모조리 배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건만. 허나, 만족할 때까지 품 안에서 굴리고 탐한다면 이 약하신 분은 분명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우시겠지. 안쪽 깊숙이 제 양물을 품고 실신한 이의 눈가를 핥으며 속삭였다.
‘꿈속에서조차 저만 생각하시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형님…….
“……!”
눈이 번쩍 뜨이자마자 보인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정윤은 눈을 뜨자마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침의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터져 나오는 숨결만큼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손으로 감싼 정윤은 덮고 있던 침금을 걷어 냈다. 아랫도리가 축축하다. 결국 또 몽색을 하고야 말았다. 평소 같았다면 당장 봉춘을 불러 이 창피한 흔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앴겠지만, 어인 일인지 오늘은 잠결에 토정한 것을 알고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무거운 숨을 토해 낸 정윤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간밤의 꿈이 차라리 몽마의 농간이라면 좋으련만.
근래 자주 몽색을 하였다만, 오늘만큼은 그 의미가 달랐다. 방금 전 직접 겪은 일이라도 되는 양 생생한 정사는 착잡한 속을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차라리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상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미쳤구나, 기정윤. 네가 정말 미친 것이냐. 어쩌자고 이런 꿈을 꾼 거냐. 꼬부랑 노인네와, 하다못해 어린아이와 정사를 벌였어도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밖에 누구 있느냐!”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정윤은 문밖의 여관을 불렀다.
“봉춘이를 불러와라. 당장.”
“예.”
“일각 후에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여관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물러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정윤은 신경질적으로 침의를 벗어 던졌다.
새벽이슬이 다 마르지도 않은 이른 시각, 모란각의 행수이자 기녀들의 대모인 수련은 어린 동기들을 훈육하던 도중 소왕께서 납신다는 연통을 받고는 헐레벌떡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소왕 저하께서 어찌 이 이른 시각에…….”
“그래, 그간 잘 지내셨는가?”
사시(巳時)도 되지 않은 시각이라 여전히 잠 바람에 든 기녀들도 태반이었다. 홍등가는 여타 저잣거리와 달리, 해가 질 무렵부터 거리의 불을 켜고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고급 기녀들이 선사하는 하룻밤의 꿈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겨우 끝나기 때문이었다.
벌건 대낮은 늙어서까지 낙적되지 않아 접대를 할 수 없는 노기들이 어린 동기들을 훈육하는 시간대였다. 그런 시간에 미리 연통도 없이 이리 행차하시다니. 다른 이도 아니고 군왕의 아들이 친히 발걸음 하였는데, 예를 갖출 수 없는 노릇이라 수련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이리 조용하니 모란각도 기루가 아닌 대궐 같군.”
“과찬이시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수련은 제 몸종에게 얼른 소주방으로 가서 오찬을 준비하라 이른 후 손수 정윤을 안쪽으로 모셨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크고 화려한 방이었다. 손님들 중에서도 이름난 거상이나 나랏일을 하는 고위 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방이었다.
원일과 봉춘을 문밖에서 대기시킨 정윤은 수련이 안내하는 대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맨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는 것을 상스럽게 여겨 모든 구조가 입식으로 되어 있는 귀족들의 사가와는 달리 기루는 편의상 대부분 좌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석에 앉은 정윤은 힐끗 방 안을 훑어보았다. 일전에도 한번 이 방을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남녀의 색사에 대해 익힐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비의 손에 끌려온 데가 바로 이곳, 만경 최고의 기루 모란각이었다.
“한데, 이 이른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곳에서 가장 밤 기술이 뛰어난 아이나 하나 들여보내게.”
처음 행차하셨을 때부터 소왕의 심기가 불편해 다소 보였기에 수련은 별다른 대꾸 없이 ‘예, 송구하오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음에 드실 만한 아이가 있사옵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했다.
기녀를 대령하기 위해 수련이 서둘러 물러가고, 정윤은 말없이 허공을 넋 놓고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조금만 방심해도 간밤의 정사가 머릿속에 떠올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분명 쌓인 양기를 풀지 못해 계속해서 몽색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다 하다 제 형님과의 정사까지 저지르게 된 데에도 분명 그 때문이 클 터. 그러니 주기적으로 정욕을 풀어 주기만 한다면 금일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정윤은 굳게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관들이 진수성찬과 갖가지 술을 대령했다. 휘황찬란하게 차려진 술상을 보고도 도리어 짜증이 치밀었다. 누가 이딴 산해진미는 필요하다 그랬는가. 매일같이 그것도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진귀한 음식들을 맛보는 지위를 가진 자가 바로 자신이거늘.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기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자신의 꼴이 마치 여색을 밝히는 호색한 늙은이처럼 느껴져 정윤은 이를 으득 갈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계시옵니까. 소녀 미향이라 하옵니다.”
“들어오거라.”
정윤은 거친 손길로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미향이라는 여인은 고급 기녀답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디고왔다. 다른 사내였다면 그 미색에 홀딱 빠졌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정윤은 오히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딴 치장 나부랭이 때문에 이리 기다리게 했단 말이지?
미향은 쓸리는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살짝 걷은 뒤 사뿐사뿐 고양이 같은 발걸음으로 정윤의 앞에 다가와 반절을 올렸다. 반절을 올리는 태가 꽤나 그럴싸했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분이라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사온데, 이리 훤칠하실 줄은 몰랐사옵니다.”
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말은 치기 어린 십 대 사내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것이 설사 사내를 동하게 만들기 위한 접대술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을지언정 결코 나쁘진 않았기에 정윤은 작게 실소를 머금었다.
“일어나 봐.”
보통의 사내들은 이런 식으로 찬사를 보내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마련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미향은 저도 모르게 ‘예?’ 하고 되묻고 말았다.
행수 어르신이 귀하디귀하신 분이니 절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를 하셨기에 미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치켜뜬 눈으로 여인의 머리부터 이목구비, 목선과 가냘픈 어깨, 풍만한 가슴과 비단 천으로 가려진 잘록한 허리선과 하체를 쭉 훑은 정윤은 다시 짧게 덧붙였다.
“벗어 봐라.”
간혹 이런 요구를 하는 손님들이 있기에 그리 당혹스럽진 않았지만, 왠지 방 안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싸늘하고 무거운 터라 미향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고작 열일곱의 어린 도령일 뿐인데 마치 근엄한 군주의 앞에 벌거벗겨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제 몸을 훑는 눈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탓에 그녀는 다소 겁먹은 표정으로 옷가지를 하나둘씩 풀어 내렸다. 저고리부터 치마, 겉속곳과 안 속곳까지 전부 벗자 딱 알맞게 무르익은 성숙한 여인의 나신이 드러났다. 고혹적인 미색과 풍만한 몸매의 조합은 사내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 것임이 분명하건만, 어찌 저 사내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단 말인가.
자신이 누구던가. 만경 최고 기루 모란각의 일등 창기다. 지금껏 제 몸을 타고 넘은 사내들 중 만족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어여쁜 여인이 밤 기술까지 좋으면 사내들은 환장하며 매달리기 마련이다. 한데 저 사내는 입맛이 동하기는커녕 시큰둥한 표정만 지으니…….
“엉덩이를 이쪽으로 하고 엎드려 봐라.”
미향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몸을 돌려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렸다. 하얗고 매끈한 둔덕이 훤히 드러났다. 더, 엉덩이를 높게 들어 봐. 정윤이 거듭 지시했다. 여인의 풍만한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쭉 치솟음과 동시에 그 안의 빨갛고 은밀한 속살이 드러났다.
창기로서 사내에게 다리를 벌리는 삶을 산 지가 몇 해인데, 이런 음란한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그리 수치스럽진 않았었다. 그래, 분명 그랬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는 사내들에게 은밀한 계곡을 손가락으로 벌려 보여 준 적도 있었고, 스스로 작은 돌기를 자극하며 유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치스럽진 않았다. 부끄러움을 느낄 리가 없는 몸이건만 왜 이리 수치심이 드는 것일까. 사내와 함께 정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흥분이라곤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눈에게 마치 품평이라도 당하듯 몸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런 것인가?
여인의 밀부를 응시하던 정윤이 더욱 따분함을 느낀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소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2장 (1)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문을 열고 익숙한 내부로 발을 들인 순간, 저를 반기는 이에게 웃으며 물음을 건넸다. 그 물음을 똑똑히 들었음에도 그의 눈은 책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일순간 짓궂은 마음이 동해 입꼬리를 올리며 침상으로 다가갔다. 제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제야 서책에서 눈길을 거둔다. 허공에서 시선이 맞부딪친다. 평소와 달리 단정히 빗어 풀어 헤친 머리가 볼을 간질였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머리카락을 걷어 내는 손길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복받쳤다.
제 머리카락을 거두던 손목을 낚아채 눈앞으로 끌고 오자 손목의 주인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눈가가 유유히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붙잡은 손은 평소 검을 잡아 단단하고 사내다운 제 손과는 사뭇 달랐다. 희고, 부드럽고, 가늘고 또한 작다. 손가락 겉은 새하얀 주제에 안쪽의 끝부분이 연홍빛을 띄어 왠지 모르게 색정적이었다.
고개를 내려 작고 부드러운 손에 입을 맞춰 본다. 입술이 닿는 순간 온몸을 경직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힘을 주어 붙잡힌 손을 빼내려 하자 억눌렀던 사내의 정복욕에 불이 붙는 듯했다. 손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연신 입술을 찍어 눌렀다.
손가락 끝, 손마디 사이사이, 손등과 가느다란 손목까지 입술이 닿지 못한 곳은 없었다. 입술을 찍어 누르는 횟수가 늘 때마다 손의 주인은 이를 악물며 손목을 비틀었다.
당기면 식고, 밀어 내면 불타오르는 것이 사내의 마음이라 했듯, 그 소심한 반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 욕망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흐읏……아.’
입술은 손목을 지나 옷자락을 걷으며 팔 쪽으로 이동했다. 혀를 내어 적시기도 하고, 이를 세워 울혈을 만들기도 하는 입술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인지 상대는 몸을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어깻죽지까지 당도한 입술은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 어깨에서 가장 곡선이 심한 부분에 이를 세우고 연하디연한 살을 흡입하자 희미한 신음이 울음으로 뒤바뀌었다. 그 울음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떨지 마세요.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니.’
‘아…….’
옅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자 상대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 행동이 마치 입맞춤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이마에 입술을 찍어 내렸다. 눈물이 고인 두 눈가와 코끝, 그리고 볼까지. 마치 제 것이라고 흔적을 남기기라도 하듯 입맞춤은 끝나질 않았다.
작고 말랑한 열매와도 같은 입술을 한입에 삼키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 더 이 감각을 맛보고 싶다. 더욱더 느끼고 싶다. 본능이 뇌리를 잠식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약한 그것을 정신없이 탐하고 있었다.
흐읍, 응…흐……. 드문드문 터져 나오는 가느다란 신음이 귓가를 간질일수록 육신은 더 뜨거워져 갔다. 혀를 내밀어 거칠게 안을 탐하고 농락했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은 축축하고 음탕한 마찰음을 냈고, 그 마찰음이 신음과 섞이자 이성은 점점 마비되어 갔다.
‘하아, 하아…….’
길게 이어진 입맞춤을 끝내고 입술을 떼어 내자 신음 섞인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입맞춤을 계속하고 싶지만, 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교성을 마음껏 귓가에 새기고 싶었다. 혀를 내밀어 턱선부터 목선, 그리고 드러난 쇄골까지 쭉 핥아 내리자 크게 동요하며 숨을 삼킨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육체와는 사뭇 다른 몸이지만, 이 몸은 사내의 육욕을 자극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같은 사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음란한 몸과 대조되는 순수하고 순진한 반응이 정욕을 더욱 부추겨 흐트러진 저고리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
‘아, 안 돼……!’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벌어지는 옷깃을 움켜쥐는 손길과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서는 몸짓이 너무도 가녀리고 애처로웠지만 터져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비웃음이었다. 매정하게 그 안타까운 모습을 무시하며 찢어발기듯 옷가지를 벗겨 냈다.
가녀린 비명과 함께 새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사내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듯 깨끗하고 부드러운 몸이었다. 그 몸에 하나둘씩 제 흔적을 새기고 탐할 생각을 하니 견딜 수 없을 만큼 흥분하는 자신이 있었다.
‘흑… 싫…싫어…….’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삼키며 애원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손을 뻗었다. 입술과 손이 스치고 지나가는 곳은 발갛게 흔적이 남았다. 흐앗, 아아……! 집요하게 가슴 끝을 물어뜯고 게걸스럽게 빨아 대자 숨이 넘어갈 듯한 교성이 사방에 울렸다.
꼿꼿이 선 유실을 양 손가락으로 비틀고 잡아당기자 제발 그만, 하고 애원한다. 눈물을 흘리며 도리질을 치는 얼굴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동자에 담았다. 저가 어떻게 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눈빛이 되는지 전부 기억하고 머릿속에 새기고 싶었다.
‘아아, 싫어, 그마…….’
‘입은 싫다 말하시는데, 여긴 싫지 않은가 봅니다.’
‘아냐, 아아…아파…….’
아프다는 분이, 여기는 왜 이리되셨습니까? 그리 되물으며 아래를 움켜쥐자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옅은 색의 작은 양물은 딱딱하게 섰음에도 말랑하고 사랑스러웠다. 평생, 죽을 때까지 이 물건이 여인을 맛볼 일은 없을 터이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자신의 손과 입이 지겹도록 사랑을 줄 것인데. 나중엔 제 입이 아니면 토정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터인데 여인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고간을 농락하던 손이 다리 사이에서 멀어지자 가느다란 다리가 희미하게 경련했다. 사내로서 양물을 자극해 토정하는 쾌락을 맛보게 해 주는 것 또한 좋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것이 더 우선이었다.
씩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고개를 내려 가슴을 물었다. 혀와 입으로 말랑한 가슴을 적시며 다리를 넓게 벌리자 다시금 ‘싫어……’ 하고 애처로운 애원이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애원이 저에게는 더 해 달라는 유혹으로 들렸다.
‘싫다니요. 좋아하시잖습니까.’
‘아냐, 아아, 싫어……!’
‘계속 싫다, 싫다…… 이리 솔직하지 못하시니 원.’
희고 가느다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매끈한 복부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무언가를 예측한 것인지 온몸이 경직하는 것이 느껴졌다. 뾰족하게 세운 혀는 아슬아슬하게 고환을 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악……! 양다리를 올려 젖혀 수줍게 꽁꽁 숨어 있던 밀부를 훤히 드러내자 기겁하며 두려움에 찬 비명을 내지른다. 안 돼, 싫어, 그거, 아아, 싫……! 온몸을 버둥거리며 저항하기 시작하는 상대의 볼기를 망설임 없이 세게 내리쳤다.
‘흐아……!’
어찌나 세게 내려쳤는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한쪽 엉덩이를 터트릴 듯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자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끅끅 울음을 터트린다.
아아, 이 백치 같고 순진한 분을 어찌하면 좋을까.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한없이 다정한 어조로 달래듯 속삭였다. 하지만, 다정한 목소리와는 달리 그 내용은 매정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 가리지 마세요. 계속 맞고 싶지 않으면.’
‘흑, 흐윽…….’
‘이런, 왜 우십니까. 제가 아프게 해서 그러십니까?’
다시금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자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행동에 이미 아랫도리는 폭발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엎어 놓고 엉덩이를 쳐들게 한 후 무자비하게 박아 대고 싶었지만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인내를 머릿속에 새겼다.
‘아시지요? 제가 하라는 대로, 착하게 잘하시면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흐윽… 하지만, 하지마안…….’
이런 건 싫다… 싫어……. 다시금 훌쩍거리며 애원해도 봐주거나 번복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웃음 지으며 양손으로 엉덩이를 붙잡고 그대로 활짝 벌렸다. 그러자 발갛게 익은 밀부가 움찔거리며 수줍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 주고 싶지도 않고, 보여 줄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창피한 치부를 그대로 훤히 드러내고야 말았다는 수치심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움찔거리는 입구에 질척거리고 말캉한 혀를 갖다 대자 흐읍, 하고 숨을 멈춘다. 아랑곳하지 않고 밀부 안으로 혀를 삽입하고 손을 뻗어 가슴 끝에 맺힌 돌기를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그리 싫다, 싫다 노래를 부르던 이가 허리를 비틀며 가늘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풀어진 눈과 벌어진 입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 줄기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의 조화는 그 무엇보다도 훌륭하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았다. 입구의 주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샅샅이 핥아 내리고, 쿡쿡 쑤시고 동요하는 안쪽에 손가락을 삽입해 휘젓자 숨이 넘어갈 듯한 교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유독 약한 지점을 집요하게 문지르고 긁어 내렸다. 흐아아, 아앙……! 보다 더 높아진 교성이 귓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가슴과 아래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쾌락의 향연에 아무래도 참지 못하고 토정을 한 듯 보였다.
백탁액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탈진한 듯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것을 황홀경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꿇었다. 제 밀부에 흉기에 가까운 양물이 드리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백치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뿌리까지 꿰뚫었다.
‘아아아……!’
컥, 끅, 끄윽…….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던 것인지,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통에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뜬 채 정신을 잃은 이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흑, 흐으……흐…….’
머리와 볼, 눈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독여 주자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는 듯 보였다. 양다리를 몸에 접어 누르고 그 위에 엎드리듯 상체를 밀착시킨 후 실신한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맞췄다.
방금 전의 광인처럼 난폭했던 입맞춤과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몸을 겹친 상대가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 입술을 탐했다. 눈을 뜨고 상대의 얼굴을 계속해서 시야에 담아내다가, 이내 되었다 싶었던 순간, 멈췄던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감으로 흐릿하게 풀린 얼굴로 비명인지 교성인지 모를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도리질 치는 이의 얼굴을 붙잡아 강제로 눈을 마주치게 했다. 당신의 시선이, 이 눈이 향해야 할 곳은 한 곳뿐입니다. 아무 데도 보지 마세요. 저만, 오로지 저만 보는 겁니다.
그리 짐승처럼 목울대를 울리며 경고하듯 속삭이자 눈물을 흘리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쓰는 이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한바탕 휘몰아친 폭풍우 같은 정사는 연약한 몸에 벅찼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된 얼굴로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온몸을 잠식해 온 양기를 모조리 배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건만. 허나, 만족할 때까지 품 안에서 굴리고 탐한다면 이 약하신 분은 분명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우시겠지. 안쪽 깊숙이 제 양물을 품고 실신한 이의 눈가를 핥으며 속삭였다.
‘꿈속에서조차 저만 생각하시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형님…….
“……!”
눈이 번쩍 뜨이자마자 보인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정윤은 눈을 뜨자마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침의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터져 나오는 숨결만큼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손으로 감싼 정윤은 덮고 있던 침금을 걷어 냈다. 아랫도리가 축축하다. 결국 또 몽색을 하고야 말았다. 평소 같았다면 당장 봉춘을 불러 이 창피한 흔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앴겠지만, 어인 일인지 오늘은 잠결에 토정한 것을 알고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무거운 숨을 토해 낸 정윤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간밤의 꿈이 차라리 몽마의 농간이라면 좋으련만.
근래 자주 몽색을 하였다만, 오늘만큼은 그 의미가 달랐다. 방금 전 직접 겪은 일이라도 되는 양 생생한 정사는 착잡한 속을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차라리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상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미쳤구나, 기정윤. 네가 정말 미친 것이냐. 어쩌자고 이런 꿈을 꾼 거냐. 꼬부랑 노인네와, 하다못해 어린아이와 정사를 벌였어도 이렇게까지 자괴감이 들진 않았을 것이다.
“밖에 누구 있느냐!”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정윤은 문밖의 여관을 불렀다.
“봉춘이를 불러와라. 당장.”
“예.”
“일각 후에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여관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물러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정윤은 신경질적으로 침의를 벗어 던졌다.
새벽이슬이 다 마르지도 않은 이른 시각, 모란각의 행수이자 기녀들의 대모인 수련은 어린 동기들을 훈육하던 도중 소왕께서 납신다는 연통을 받고는 헐레벌떡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소왕 저하께서 어찌 이 이른 시각에…….”
“그래, 그간 잘 지내셨는가?”
사시(巳時)도 되지 않은 시각이라 여전히 잠 바람에 든 기녀들도 태반이었다. 홍등가는 여타 저잣거리와 달리, 해가 질 무렵부터 거리의 불을 켜고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고급 기녀들이 선사하는 하룻밤의 꿈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겨우 끝나기 때문이었다.
벌건 대낮은 늙어서까지 낙적되지 않아 접대를 할 수 없는 노기들이 어린 동기들을 훈육하는 시간대였다. 그런 시간에 미리 연통도 없이 이리 행차하시다니. 다른 이도 아니고 군왕의 아들이 친히 발걸음 하였는데, 예를 갖출 수 없는 노릇이라 수련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이리 조용하니 모란각도 기루가 아닌 대궐 같군.”
“과찬이시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수련은 제 몸종에게 얼른 소주방으로 가서 오찬을 준비하라 이른 후 손수 정윤을 안쪽으로 모셨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크고 화려한 방이었다. 손님들 중에서도 이름난 거상이나 나랏일을 하는 고위 귀족들만 이용할 수 있는 방이었다.
원일과 봉춘을 문밖에서 대기시킨 정윤은 수련이 안내하는 대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맨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는 것을 상스럽게 여겨 모든 구조가 입식으로 되어 있는 귀족들의 사가와는 달리 기루는 편의상 대부분 좌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석에 앉은 정윤은 힐끗 방 안을 훑어보았다. 일전에도 한번 이 방을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남녀의 색사에 대해 익힐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비의 손에 끌려온 데가 바로 이곳, 만경 최고의 기루 모란각이었다.
“한데, 이 이른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곳에서 가장 밤 기술이 뛰어난 아이나 하나 들여보내게.”
처음 행차하셨을 때부터 소왕의 심기가 불편해 다소 보였기에 수련은 별다른 대꾸 없이 ‘예, 송구하오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음에 드실 만한 아이가 있사옵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했다.
기녀를 대령하기 위해 수련이 서둘러 물러가고, 정윤은 말없이 허공을 넋 놓고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조금만 방심해도 간밤의 정사가 머릿속에 떠올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분명 쌓인 양기를 풀지 못해 계속해서 몽색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다 하다 제 형님과의 정사까지 저지르게 된 데에도 분명 그 때문이 클 터. 그러니 주기적으로 정욕을 풀어 주기만 한다면 금일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라 정윤은 굳게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관들이 진수성찬과 갖가지 술을 대령했다. 휘황찬란하게 차려진 술상을 보고도 도리어 짜증이 치밀었다. 누가 이딴 산해진미는 필요하다 그랬는가. 매일같이 그것도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진귀한 음식들을 맛보는 지위를 가진 자가 바로 자신이거늘.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기녀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자신의 꼴이 마치 여색을 밝히는 호색한 늙은이처럼 느껴져 정윤은 이를 으득 갈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계시옵니까. 소녀 미향이라 하옵니다.”
“들어오거라.”
정윤은 거친 손길로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미향이라는 여인은 고급 기녀답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디고왔다. 다른 사내였다면 그 미색에 홀딱 빠졌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정윤은 오히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딴 치장 나부랭이 때문에 이리 기다리게 했단 말이지?
미향은 쓸리는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살짝 걷은 뒤 사뿐사뿐 고양이 같은 발걸음으로 정윤의 앞에 다가와 반절을 올렸다. 반절을 올리는 태가 꽤나 그럴싸했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분이라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사온데, 이리 훤칠하실 줄은 몰랐사옵니다.”
제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말은 치기 어린 십 대 사내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것이 설사 사내를 동하게 만들기 위한 접대술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을지언정 결코 나쁘진 않았기에 정윤은 작게 실소를 머금었다.
“일어나 봐.”
보통의 사내들은 이런 식으로 찬사를 보내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마련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미향은 저도 모르게 ‘예?’ 하고 되묻고 말았다.
행수 어르신이 귀하디귀하신 분이니 절대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당부 또 당부를 하셨기에 미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치켜뜬 눈으로 여인의 머리부터 이목구비, 목선과 가냘픈 어깨, 풍만한 가슴과 비단 천으로 가려진 잘록한 허리선과 하체를 쭉 훑은 정윤은 다시 짧게 덧붙였다.
“벗어 봐라.”
간혹 이런 요구를 하는 손님들이 있기에 그리 당혹스럽진 않았지만, 왠지 방 안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싸늘하고 무거운 터라 미향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고작 열일곱의 어린 도령일 뿐인데 마치 근엄한 군주의 앞에 벌거벗겨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제 몸을 훑는 눈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탓에 그녀는 다소 겁먹은 표정으로 옷가지를 하나둘씩 풀어 내렸다. 저고리부터 치마, 겉속곳과 안 속곳까지 전부 벗자 딱 알맞게 무르익은 성숙한 여인의 나신이 드러났다. 고혹적인 미색과 풍만한 몸매의 조합은 사내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 것임이 분명하건만, 어찌 저 사내는 눈 하나 깜짝 않는단 말인가.
자신이 누구던가. 만경 최고 기루 모란각의 일등 창기다. 지금껏 제 몸을 타고 넘은 사내들 중 만족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어여쁜 여인이 밤 기술까지 좋으면 사내들은 환장하며 매달리기 마련이다. 한데 저 사내는 입맛이 동하기는커녕 시큰둥한 표정만 지으니…….
“엉덩이를 이쪽으로 하고 엎드려 봐라.”
미향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몸을 돌려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렸다. 하얗고 매끈한 둔덕이 훤히 드러났다. 더, 엉덩이를 높게 들어 봐. 정윤이 거듭 지시했다. 여인의 풍만한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쭉 치솟음과 동시에 그 안의 빨갛고 은밀한 속살이 드러났다.
창기로서 사내에게 다리를 벌리는 삶을 산 지가 몇 해인데, 이런 음란한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그리 수치스럽진 않았었다. 그래, 분명 그랬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는 사내들에게 은밀한 계곡을 손가락으로 벌려 보여 준 적도 있었고, 스스로 작은 돌기를 자극하며 유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치스럽진 않았다. 부끄러움을 느낄 리가 없는 몸이건만 왜 이리 수치심이 드는 것일까. 사내와 함께 정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흥분이라곤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눈에게 마치 품평이라도 당하듯 몸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런 것인가?
여인의 밀부를 응시하던 정윤이 더욱 따분함을 느낀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소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