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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동물 병원은 대체로 한가했다. 간절기에 동물들이 약간 상태가 바뀌는 시기를 제외하면 환축이나 손님이 거의 없었다. 환축이 없는 상태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형은 돈 벌기 글러 먹은 녀석이라 혀를 차곤 했지만 30년 가까이 치열하게 사는 것밖에 몰랐던 나는 이 시간이 인생의 휴식 같았다.
‘휴식은 메스 들고 손 떨 때나 갖는 것이다.’
라는 말이 전설처럼 수의대에서 내려왔지만 말이다. 반려동물 보유 인구가 몇이라 했던가. 그만큼 애완동물 시장은 뜨는 사업이었고 또 공급도 넘쳤다. 단지 동물이 좋아서 수의대에 지원했어도 먹고살려면, 최신식 기계라도 놓고 진료를 보려면 돈이 필요했다. 또한 가장 공부를 잘한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대학엔 직업적 수익성을 좇는 이들이 섞여 들 수밖에. 자본주의의 맹점이겠지.
그러나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나 부인이 없는 나까지 굳이 ‘시장’에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가축을 치료하는 것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내 동기들 중 적임자는 나뿐인 것 같았으니 미련을 두지 않고 내려왔다. 약간의 빚을 졌지만 순조롭게 갚아 가고 있었다.
“그놈의 구제역 덕분에…….”
시골에 있으면 공수의가 되어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아예 안 받고 그 꼴을 안 보는 게 제일 좋았지만. 구제역으로 인한 첫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는 며칠 동안 제대로 식사를 못 해서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며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주셨었다.
‘알지, 알아.’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주름진 손으로 내 등을 쓸어 주신 분들이 계셔서 폐업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할머니들은 아직도 나를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여기시는 모양이었다.
“그다음엔 AI였고…….”
그래도 의심 신고일 뿐이어서 비상근무를 하는 정도로 끝났다. 이렇게 1년간의 시골 생활은 겉으론 평화로워 보여도 나름 스펙터클했다.
봄은 대부분의 생물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시기였기에 동물 병원을 일부러 늦게까지 열어 두었다. 물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부분 가축주는 돈이 드는 병원에서 출산하기보다는 집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서 새벽에 2층 현관을 두드리는 분들이 계신다. 한가할 땐 무료할 정도고 바쁠 땐 두 끼를 굶어도 모를 정도이니 인생은 왜 그 모양일까.
병원 문에 걸린 [영업 중] 팻말을 뒤집어 [비상 시 전화번호]로 바꾸어 두었다. 문을 잠그고 유리로 된 벽을 지나 병원의 오른쪽에 붙은 계단으로 향할 때였다. 직감으로 생명의 기척을 느꼈다. 코로도 미약한 철분 냄새가 스몄다.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내 차 뒤에 있던 박스가 옆으로 쓰러진 채 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혹시 뒷집 할머니네 염소가 종이를 먹으러 왔나. 좀 더 다가가니 가로등 아래 구겨진 박스의 모습이 이상했다.
“순돌이야……? 헉!”
박스 아래쪽에서 검은 액체가 진득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코가 그것을 피라고 알려 주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위험한 상황이었다. 더는 주저하지 않고 내달려 박스 안쪽을 살폈다.
“순돌아!”
새까만 박스 안쪽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간 공간에 검은 털이 한 뭉치 보였다. 순돌이는 흑염소였지만 털이 이렇게 길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사람의 머리였다.
“이봐요! 당신, 괜찮아요?”
내 말에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괜찮지 않다는 듯 흔들린 머리가 좀 더 밖으로 나왔다. 넓은 이마가 땀으로 흥건해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다친 사람을 끌어낼 수 없으니 나는 힘을 주어 박스의 모서리를 찢었다.
“안…….”
의식이 있던 남자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가로등에 점차 드러나는 남자의 얼굴은, 내 피부색보다 확연히 어두웠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속눈썹이 가로등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반듯한 선으로 그린 얼굴은 한눈에 봐도 미남이었지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박스를 찢어 내자 진한 피 냄새가 훅 끼쳐 오며 남자의 상처 부위가 드러났다.
“이거 뭘로 다친 거예요? 일단 기다려요, 병원에 응급 처치할 게 있으니까……!”
하얀 셔츠의 찢어진 옆구리 사이로 검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키자 남자가 내 발목을 잡았다.
“……데려……나를…….”
“움직이면 안 돼요!”
남자는 나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 했다. 구겨진 옆구리로 피가 울컥 쏟아졌다.
“누워 있어요!”
“괜찮아. 어차피 꿰매야 하니까…….”
가늘게 눈을 뜬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말대로 응급 처치를 하고 근처 보건소로 보내려면 청결한 동물 병원 안이 나았다. 나는 급한 대로 겉에 입은 얇은 카디건을 벗어 남자의 상처 부위를 눌렀다.
“꽉 눌러요. 부축할 테니까.”
남자는 순순히 제 손으로 터진 옆구리를 눌렀다.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목을 넣고 남자를 일으켰다. 그런데 남자의 다리가 제법 길었던 탓에 발이 질질 끌려왔다.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하느라 키가 덜 컸나 보군.”
“어디서 옆구리 터지고 와서 남의 키 평가할 말이 나와?”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이 남자가 지나치게 큰 것뿐이었다.
“성격하고는…….”
얼씨구, 망한 김밥 같은 게 여유가 넘치시네. 확 버리고 가려 했으나 내 병원 앞에서 시체를 볼 수는 없으니 힘을 주어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스스로 걸으려 노력했으나 단 두 걸음을 가지 못해 다리가 풀려서 나도 함께 휘청거려야 했다.
“업어 줘.”
“헛소리…말고…….”
겨우 다섯 걸음 남기고 죽고 싶단 소린가. 걸어온 길도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남자가 스스로 걷길 포기한 탓에 숨을 헉헉 쉬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병원 문 앞에 도착하니 남자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때마다 피 냄새가 더 많이 나고 있었지만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내가…….”
유리문이라 열쇠 구멍이 문 꼭대기에 있었다. 남자는 쉽게 내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더 쉽게 열쇠를 끼워 맞췄다. 항상 까치발을 들고 잠가 온 나는 잠시 남자를 흘겨보았다. 반듯하게 높은 코와 커다란 검은 눈동자만 보였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 해…….”
이를 악물고 문을 열었다. 남자를 질질 끌고 진료실로 들어가다 끌려오는 발을 따라 생겨난 핏길은 일단 무시하고 다음 날 박박 닦든 할 생각이었다. 짧은 진료대에 상체만 눕게 한 후, 옷을 찢어 냈다.
밝은 데서 보니 미용 시술을 받은 것처럼 갈색으로 골고루 잘 익은 복근이 헐떡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정확히 오른쪽 장골 위에 약 8센티 정도가 찢어졌다. 급하게 소독용 알코올을 따서 들이붓자 남자가 이를 물고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핏물이 바닥에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송씨 할아버지네 송아지가 수술을 받던 중에 깨어났을 때보다 더 난리였다.
“조금만 참아요. 일단 응급 치료를 하고 보건소 의사에게 오라고…… 아니, 내 차로…….”
사실 동물 병원을 차리고 내가 살린 동물보다 죽어 나간 동물이 더 많았다. 연세가 있는 보호자들은 동물의 변화에 예민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헐레벌떡 걸어오셨으니까. 하지만 사람까지 죽여서 내보내고 싶진 않았다.
“네가, 꿰매. 의사잖아.”
이 김밥남은 아까부터 왜 반말이십니까? 거친 숨이 섞인 말이 지나치게 다르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니들에 실을 꿸 뻔했다.
“난 사람을 꿰맬 수는 없거든?”
“그러고도 네가, 헉, 의사인가…….”
일단 지혈을 위해 깨끗한 붕대와 거즈 등 닥치는 대로 꺼냈다. 상처 부위를 핀셋으로 살짝 열어 확인해 보니 휘어진 원뿔 같은 것에 꿰뚫린 것 같았다. 생각보다 상처가 많이 벌어져 있어 한 손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졌다.
“의사 아니고 수의사라고. 사람 면허가 없다고!”
소리치는 순간 남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누르고 있던 평평한 부위가 갑자기 부풀어 올랐고 보기 좋던 복근에 짧고 검은 털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남자의 입 주변으로 뻣뻣하고 하얀 수염이 길게 자라더니 짐승의 주둥이가 튀어나오기 직전, 그가 내게 말했다.
“됐나? 빨리 수술해.”
보통 사람으로서 나는 흑표범을 본 적은 없으나 수의사로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나를 빤히 보는 녹색 눈동자의 흑표범이 그르렁 목을 울리며 긴 송곳니를 드러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표범이구나! 다 죽어 가는 표범이 눈동자만큼은 생명력이 가득한 녹색이었기에 귀신을 봤다고 할 수도 없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아무래도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더는 수의술을 행할 수 없겠는데…….”
그르릉.
표범이 드러낸 이빨을 보고 뒷말은 삼켰다. 내일 면허 반납하러 간다. 꼭.
수술 자체를 혼자 하는 수의사나 의사는 극히 드물지만 나는 꿋꿋하게 직원 없이 동물 병원을 유지해 왔다. 주변의 환축이 대부분 가축이기 때문에 내 병원에서는 큰 수술을 거의 하지 않는 데다 시술은 가축주들이 나서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닥친 상황은 낯설기만 했다. 이 흑표범은 혼자 옮기기엔 너무 거대했고 당장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옆구리에 구멍이 난 짐승을 수술실까지 스스로 걸어가게 할 수도 없었으니 결정을 해야 했다.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먼저 주사기를 가져와 녀석의 혈액을 뽑았다. 검사기를 돌리는 사이 항생제와 진정제, 진통제를 차례로 투여했는데 녀석은 뾰족한 주삿바늘 정도는 무시할 정도로 잘 참고 있었다.
그다음엔 녀석이 누운 진료대에 알코올을 부어 간단히 소독했다. 옮길 자신이 없으니 진료대를 통째로 밀어서 수술실에 넣어 버릴 생각이었다. 다량의 알코올에 녀석의 피가 섞여 떨어지면서 금세 바닥에 핏물이 흥건해졌지만 침착하려 애썼다.
소독제로 손을 비빈 후, 수술 부위 주변의 검은 털을 깎아 냈다. 이미 한바탕 흘린 피가 끈적하게 말라 가고 있으니 재빨리 깎은 털을 제거하고 소독을 진행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 슬쩍 녀석의 생식기 주변에 소독약을 흘렸다.
크르릉!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야.”
부지런히 움직여 가슴엔 혈압계 커프를 붙이고 앞발에 수액 주사기를 꽂자 녀석이 콧잔등을 찡그려 가며 으르렁거렸다. 엄살은.
동물 병원은 대체로 한가했다. 간절기에 동물들이 약간 상태가 바뀌는 시기를 제외하면 환축이나 손님이 거의 없었다. 환축이 없는 상태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형은 돈 벌기 글러 먹은 녀석이라 혀를 차곤 했지만 30년 가까이 치열하게 사는 것밖에 몰랐던 나는 이 시간이 인생의 휴식 같았다.
‘휴식은 메스 들고 손 떨 때나 갖는 것이다.’
라는 말이 전설처럼 수의대에서 내려왔지만 말이다. 반려동물 보유 인구가 몇이라 했던가. 그만큼 애완동물 시장은 뜨는 사업이었고 또 공급도 넘쳤다. 단지 동물이 좋아서 수의대에 지원했어도 먹고살려면, 최신식 기계라도 놓고 진료를 보려면 돈이 필요했다. 또한 가장 공부를 잘한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대학엔 직업적 수익성을 좇는 이들이 섞여 들 수밖에. 자본주의의 맹점이겠지.
그러나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나 부인이 없는 나까지 굳이 ‘시장’에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가축을 치료하는 것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내 동기들 중 적임자는 나뿐인 것 같았으니 미련을 두지 않고 내려왔다. 약간의 빚을 졌지만 순조롭게 갚아 가고 있었다.
“그놈의 구제역 덕분에…….”
시골에 있으면 공수의가 되어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아예 안 받고 그 꼴을 안 보는 게 제일 좋았지만. 구제역으로 인한 첫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는 며칠 동안 제대로 식사를 못 해서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며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주셨었다.
‘알지, 알아.’
도저히 못 먹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주름진 손으로 내 등을 쓸어 주신 분들이 계셔서 폐업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할머니들은 아직도 나를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여기시는 모양이었다.
“그다음엔 AI였고…….”
그래도 의심 신고일 뿐이어서 비상근무를 하는 정도로 끝났다. 이렇게 1년간의 시골 생활은 겉으론 평화로워 보여도 나름 스펙터클했다.
봄은 대부분의 생물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시기였기에 동물 병원을 일부러 늦게까지 열어 두었다. 물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부분 가축주는 돈이 드는 병원에서 출산하기보다는 집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서 새벽에 2층 현관을 두드리는 분들이 계신다. 한가할 땐 무료할 정도고 바쁠 땐 두 끼를 굶어도 모를 정도이니 인생은 왜 그 모양일까.
병원 문에 걸린 [영업 중] 팻말을 뒤집어 [비상 시 전화번호]로 바꾸어 두었다. 문을 잠그고 유리로 된 벽을 지나 병원의 오른쪽에 붙은 계단으로 향할 때였다. 직감으로 생명의 기척을 느꼈다. 코로도 미약한 철분 냄새가 스몄다.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에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내 차 뒤에 있던 박스가 옆으로 쓰러진 채 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혹시 뒷집 할머니네 염소가 종이를 먹으러 왔나. 좀 더 다가가니 가로등 아래 구겨진 박스의 모습이 이상했다.
“순돌이야……? 헉!”
박스 아래쪽에서 검은 액체가 진득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코가 그것을 피라고 알려 주었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위험한 상황이었다. 더는 주저하지 않고 내달려 박스 안쪽을 살폈다.
“순돌아!”
새까만 박스 안쪽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간 공간에 검은 털이 한 뭉치 보였다. 순돌이는 흑염소였지만 털이 이렇게 길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사람의 머리였다.
“이봐요! 당신, 괜찮아요?”
내 말에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괜찮지 않다는 듯 흔들린 머리가 좀 더 밖으로 나왔다. 넓은 이마가 땀으로 흥건해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다친 사람을 끌어낼 수 없으니 나는 힘을 주어 박스의 모서리를 찢었다.
“안…….”
의식이 있던 남자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가로등에 점차 드러나는 남자의 얼굴은, 내 피부색보다 확연히 어두웠다. 눈을 감고 있었기에 속눈썹이 가로등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반듯한 선으로 그린 얼굴은 한눈에 봐도 미남이었지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박스를 찢어 내자 진한 피 냄새가 훅 끼쳐 오며 남자의 상처 부위가 드러났다.
“이거 뭘로 다친 거예요? 일단 기다려요, 병원에 응급 처치할 게 있으니까……!”
하얀 셔츠의 찢어진 옆구리 사이로 검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키자 남자가 내 발목을 잡았다.
“……데려……나를…….”
“움직이면 안 돼요!”
남자는 나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려 했다. 구겨진 옆구리로 피가 울컥 쏟아졌다.
“누워 있어요!”
“괜찮아. 어차피 꿰매야 하니까…….”
가늘게 눈을 뜬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에 힘을 주었다. 남자의 말대로 응급 처치를 하고 근처 보건소로 보내려면 청결한 동물 병원 안이 나았다. 나는 급한 대로 겉에 입은 얇은 카디건을 벗어 남자의 상처 부위를 눌렀다.
“꽉 눌러요. 부축할 테니까.”
남자는 순순히 제 손으로 터진 옆구리를 눌렀다.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목을 넣고 남자를 일으켰다. 그런데 남자의 다리가 제법 길었던 탓에 발이 질질 끌려왔다.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하느라 키가 덜 컸나 보군.”
“어디서 옆구리 터지고 와서 남의 키 평가할 말이 나와?”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이 남자가 지나치게 큰 것뿐이었다.
“성격하고는…….”
얼씨구, 망한 김밥 같은 게 여유가 넘치시네. 확 버리고 가려 했으나 내 병원 앞에서 시체를 볼 수는 없으니 힘을 주어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스스로 걸으려 노력했으나 단 두 걸음을 가지 못해 다리가 풀려서 나도 함께 휘청거려야 했다.
“업어 줘.”
“헛소리…말고…….”
겨우 다섯 걸음 남기고 죽고 싶단 소린가. 걸어온 길도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남자가 스스로 걷길 포기한 탓에 숨을 헉헉 쉬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병원 문 앞에 도착하니 남자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때마다 피 냄새가 더 많이 나고 있었지만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내가…….”
유리문이라 열쇠 구멍이 문 꼭대기에 있었다. 남자는 쉽게 내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더 쉽게 열쇠를 끼워 맞췄다. 항상 까치발을 들고 잠가 온 나는 잠시 남자를 흘겨보았다. 반듯하게 높은 코와 커다란 검은 눈동자만 보였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뭐 해…….”
이를 악물고 문을 열었다. 남자를 질질 끌고 진료실로 들어가다 끌려오는 발을 따라 생겨난 핏길은 일단 무시하고 다음 날 박박 닦든 할 생각이었다. 짧은 진료대에 상체만 눕게 한 후, 옷을 찢어 냈다.
밝은 데서 보니 미용 시술을 받은 것처럼 갈색으로 골고루 잘 익은 복근이 헐떡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정확히 오른쪽 장골 위에 약 8센티 정도가 찢어졌다. 급하게 소독용 알코올을 따서 들이붓자 남자가 이를 물고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핏물이 바닥에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송씨 할아버지네 송아지가 수술을 받던 중에 깨어났을 때보다 더 난리였다.
“조금만 참아요. 일단 응급 치료를 하고 보건소 의사에게 오라고…… 아니, 내 차로…….”
사실 동물 병원을 차리고 내가 살린 동물보다 죽어 나간 동물이 더 많았다. 연세가 있는 보호자들은 동물의 변화에 예민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헐레벌떡 걸어오셨으니까. 하지만 사람까지 죽여서 내보내고 싶진 않았다.
“네가, 꿰매. 의사잖아.”
이 김밥남은 아까부터 왜 반말이십니까? 거친 숨이 섞인 말이 지나치게 다르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니들에 실을 꿸 뻔했다.
“난 사람을 꿰맬 수는 없거든?”
“그러고도 네가, 헉, 의사인가…….”
일단 지혈을 위해 깨끗한 붕대와 거즈 등 닥치는 대로 꺼냈다. 상처 부위를 핀셋으로 살짝 열어 확인해 보니 휘어진 원뿔 같은 것에 꿰뚫린 것 같았다. 생각보다 상처가 많이 벌어져 있어 한 손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졌다.
“의사 아니고 수의사라고. 사람 면허가 없다고!”
소리치는 순간 남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누르고 있던 평평한 부위가 갑자기 부풀어 올랐고 보기 좋던 복근에 짧고 검은 털이 순식간에 솟아났다. 남자의 입 주변으로 뻣뻣하고 하얀 수염이 길게 자라더니 짐승의 주둥이가 튀어나오기 직전, 그가 내게 말했다.
“됐나? 빨리 수술해.”
보통 사람으로서 나는 흑표범을 본 적은 없으나 수의사로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나를 빤히 보는 녹색 눈동자의 흑표범이 그르렁 목을 울리며 긴 송곳니를 드러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표범이구나! 다 죽어 가는 표범이 눈동자만큼은 생명력이 가득한 녹색이었기에 귀신을 봤다고 할 수도 없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내 뺨을 후려쳤다.
“아무래도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더는 수의술을 행할 수 없겠는데…….”
그르릉.
표범이 드러낸 이빨을 보고 뒷말은 삼켰다. 내일 면허 반납하러 간다. 꼭.
수술 자체를 혼자 하는 수의사나 의사는 극히 드물지만 나는 꿋꿋하게 직원 없이 동물 병원을 유지해 왔다. 주변의 환축이 대부분 가축이기 때문에 내 병원에서는 큰 수술을 거의 하지 않는 데다 시술은 가축주들이 나서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닥친 상황은 낯설기만 했다. 이 흑표범은 혼자 옮기기엔 너무 거대했고 당장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옆구리에 구멍이 난 짐승을 수술실까지 스스로 걸어가게 할 수도 없었으니 결정을 해야 했다.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먼저 주사기를 가져와 녀석의 혈액을 뽑았다. 검사기를 돌리는 사이 항생제와 진정제, 진통제를 차례로 투여했는데 녀석은 뾰족한 주삿바늘 정도는 무시할 정도로 잘 참고 있었다.
그다음엔 녀석이 누운 진료대에 알코올을 부어 간단히 소독했다. 옮길 자신이 없으니 진료대를 통째로 밀어서 수술실에 넣어 버릴 생각이었다. 다량의 알코올에 녀석의 피가 섞여 떨어지면서 금세 바닥에 핏물이 흥건해졌지만 침착하려 애썼다.
소독제로 손을 비빈 후, 수술 부위 주변의 검은 털을 깎아 냈다. 이미 한바탕 흘린 피가 끈적하게 말라 가고 있으니 재빨리 깎은 털을 제거하고 소독을 진행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 슬쩍 녀석의 생식기 주변에 소독약을 흘렸다.
크르릉!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야.”
부지런히 움직여 가슴엔 혈압계 커프를 붙이고 앞발에 수액 주사기를 꽂자 녀석이 콧잔등을 찡그려 가며 으르렁거렸다. 엄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