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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이 싫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었다. 진심을 들켜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지아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저와 이사님 사이에 싫고,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손지아 씨 무서운 사람이네. 나는 싫은 사람이랑 섹스 못 해요.”
태준은 검지로 지아의 볼록한 이마를 짚더니 그대로 얼굴선을 따라 선을 그었다. 그 자리마다 전율이 일었다.
“금년 신규 계약서와 거래 내역 정리본 따위를 내가 굳이 확인할 리 없잖아.”
“…….”
“남으라고 해서 남은 거, 아닙니까?”
지아는 고집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씹어 대는 지아를 비소와 함께 바라보던 태준이 물었다.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네.”
“그럼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을래요?”
“생각 없습니다.”
“커피는?”
“늦은 시각에 마시면 잠이 안 와서요.”
“섹스는?”
“…….”
지아는 차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와 눈을 맞춘 순간부터 아니, 사실 이사실 문 앞에 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녹아 버렸다.
“나는 손지아 씨가 너무 좋아서 적어도 격일로는 하고 싶어. 게다가 우리, 한동안은 못 볼 텐데.”
그는 내일부터 보름의 장기 출장을 떠난다. 그것이 오늘 지아가 유독 예민한 이유이기도 했다.
태준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지아의 청각을 자극하고 목줄기로 소름을 올렸다.
“더 이상 고문하지 말아요. 이 냄새를 나흘이나 못 맡을 생각에 미칠 것 같으니까.”
그는 그녀의 살 냄새만 맡으면 이성이 흐려진다고 말했다. 섹스가 끝나면 항상 살결에 코를 박고 언제까지고 냄새를 맡던 그였다.
“내가 서운하게 만든 게 있다면 말로 해. 이렇게 도망만 다니면서 애태우지 말고.”
“……10분 이상 시간 못 냅니다.”
마침내 지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녀도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저를 원한다는 걸 실감할 때마다 오르가슴 이상의 벅찬 충족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 충족감이 지아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너무 많이 위험해져 버렸다.
여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물러서고 싶지 않은 이 지독한 마음을 어찌할는지.
이제 당신만 보면 떠나고 싶지 않아지는데,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태준은 조용히 미소를 그리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여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탄성과 함께 입이 벌어지고, 뜨거운 살덩어리가 침입했다.
빨면 달콤하고, 삼키면 아찔하다. 긴 혀는 지아의 입속이 마치 자신의 공간인 것처럼 자유롭게 유영했다.
“흠, 으음…….”
“봐. 이렇게 예쁘잖아.”
태준은 지아의 블라우스 단추를 능숙하게 풀어 내리고 벌어진 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강한 악력에 지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 나갔지만, 그는 오히려 도드라진 빗장뼈에 이를 박고 씹어 댔다.
“아파, 아파요……!”
얇은 스타킹에 감싸진 가녀린 두 다리가 바르작거렸다. 그러자 태준이 붉은 잇자국이 오른 부위를 혀로 핥았다.
곧 혀끝이 자연스레 아래로 미끄러졌다. 가슴골을 간질이다가 손으로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 올리자 컵에 갇혀 있다 드러난 가슴이 출렁였다. 허공에 달랑거리는 젖꼭지가 붉은빛으로 익어 탐스러웠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혀로 입술을 축인 그가 팽팽하게 부푼 유두를 혀끝으로 살살 자극하다 그대로 입에 머금었다.
“흐읏!”
지아는 그가 혀와 이를 쓰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독 가슴이 민감한 그녀였다. 밤새 그에게 젖꼭지가 빨리는 날은 온종일 흥분이 식지 않아 곤란할 정도였다.
태준이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파고든 손가락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쓸고 올라왔다. 마치 스타킹을 찢어놓을 듯 힘이 들어간 것이 곧 가랑이 사이를 지그시 압박해 왔다.
“가슴만 빨아도 아래가 이렇게 흥건한데, 정말 10분만 해도 괜찮겠어요?”
낮은 음성에 음부가 불에 달군 것처럼 묵직해졌다. 그가 입술을 빨자 꿀럭, 하고 팬티가 젖어 든다. 보지 않고도 정확히 질구를 내리누른 그가 치마 속에서 손을 빼며 웃었다.
“벌써 손가락이 끈적해졌잖아.”
“이사님…….”
“어느 쪽을 믿어야 합니까?”
태준은 마치 보여 주겠다는 듯 그녀의 눈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붙인 채로 둥글게 돌렸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태준은 귀엽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항상 입보단 몸이 솔직하죠?”
“하아…….”
“마음껏 흘려도 돼. 내가 전부 빨아 줄 테니까.”
아랫배에 닿는 크고 딱딱한 감촉은 당장에라도 안에 들어오고 싶다는 듯 꿈틀거렸다.
“벌려요.”
“끝까지는 안 돼요.”
“그럼 어디까지 되는지 시험해 볼까?”
허리춤으로 두 손이 들어왔다고 느낄 무렵, 스타킹이 엉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을 넣은 태준이 과감한 손길로 끈적해진 팬티를 더듬었다. 갈라진 선을 검지로 쓸어 올리다가 엉덩이 사이에 밀착한 줄을 잡아당겼다.
“난 상상을 했으면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이사님, 제발…….”
“역시 상상보다 실제가 더 야하네. 단정한 옷 속에 이런 티 팬티라니. 아침에 입으면서 내 생각했어요?”
태준은 담백한 미소를 보내며 지아의 말랑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를 애무할수록 작은 면 바깥으로 서서히 물기가 비쳤다.
“아직도 10분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아는 망설이는 얼굴로 입술만 씹어 댔다. 몸이 이성을 배반한 지는 오래였다. 다만 그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이성이 고집처럼 그녀를 붙들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안 돼?”
“……한 번으로 끝내요.”
어렵게 말을 뱉은 그녀가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비로소 내보이는 진심에 태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마치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글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고 약속하기는 힘들지만.”
태준은 지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곳을 만져 주면 어김없이 흥분하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노력해 보죠.”
역시나 더한 것을 바라는 지아의 가랑이 사이가 파들거렸다. 쾌감을 참지 못한 그녀의 어깨가 한껏 경직되었다.
그 순간, 귓가에 닿는 소리에 지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려요.”
그가 오만한 미소를 그리며 명령했다.
1. 기태준입니다
“흐읍, 흑, 으윽…….”
두 평 남짓한 실내는 공기마저 중력에 침잠하는 듯 무거운 분위기였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온통 축적돼 있는 듯한 공간. 영정 사진 주변으로 순백의 국화가 단출하게 장식되었다.
적막을 깨뜨린 것은 한 여자의 흐느낌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지아가 두 평 남짓한 빈소에 무너지듯 엎드려 있었다. 한껏 숙인 고개 아래로 굵은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흐윽, 엄마…….”
숨이 막혔다. 입을 벌리면 울음이 끅끅 쏟아졌다.
엄마를 잃었다.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유일한 가족을 잃고 말았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 아니 오히려 유독 운이 좋은 날이었다. 몇 개월 전 예약을 한 유명 레스토랑에 갈 예정이었다. 모처럼 엄마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났었다.
-지아야! 사거리 병원으로 지금 빨리……!
퇴근길, 이웃 아주머니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날로 지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했다.
세상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몸을 지탱한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핏발 선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렸다.
사경을 헤매는 엄마 앞에서 지아는 밤새 기도했다.
제발 잠깐이라도 눈을 떠 달라고.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엄마에게 닿은 걸까. 동이 터 오를 무렵에 엄마는 기적처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의사를 부르려는 지아의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그동안 못난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이제 우리 딸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해, 내 딸…….”
밤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던 당신인데, 말씀하실 땐 신기하도록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지아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다. 앞으로도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마지막 유언이 됐다.
회사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이 빈소를 찾아주었다. 안타깝게 혀를 차는 그들 앞에서 지아는 억지 미소만 그렸다.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납골당으로 모시고서야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이 싫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었다. 진심을 들켜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지아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저와 이사님 사이에 싫고,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손지아 씨 무서운 사람이네. 나는 싫은 사람이랑 섹스 못 해요.”
태준은 검지로 지아의 볼록한 이마를 짚더니 그대로 얼굴선을 따라 선을 그었다. 그 자리마다 전율이 일었다.
“금년 신규 계약서와 거래 내역 정리본 따위를 내가 굳이 확인할 리 없잖아.”
“…….”
“남으라고 해서 남은 거, 아닙니까?”
지아는 고집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씹어 대는 지아를 비소와 함께 바라보던 태준이 물었다.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네.”
“그럼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을래요?”
“생각 없습니다.”
“커피는?”
“늦은 시각에 마시면 잠이 안 와서요.”
“섹스는?”
“…….”
지아는 차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와 눈을 맞춘 순간부터 아니, 사실 이사실 문 앞에 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녹아 버렸다.
“나는 손지아 씨가 너무 좋아서 적어도 격일로는 하고 싶어. 게다가 우리, 한동안은 못 볼 텐데.”
그는 내일부터 보름의 장기 출장을 떠난다. 그것이 오늘 지아가 유독 예민한 이유이기도 했다.
태준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지아의 청각을 자극하고 목줄기로 소름을 올렸다.
“더 이상 고문하지 말아요. 이 냄새를 나흘이나 못 맡을 생각에 미칠 것 같으니까.”
그는 그녀의 살 냄새만 맡으면 이성이 흐려진다고 말했다. 섹스가 끝나면 항상 살결에 코를 박고 언제까지고 냄새를 맡던 그였다.
“내가 서운하게 만든 게 있다면 말로 해. 이렇게 도망만 다니면서 애태우지 말고.”
“……10분 이상 시간 못 냅니다.”
마침내 지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녀도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저를 원한다는 걸 실감할 때마다 오르가슴 이상의 벅찬 충족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 충족감이 지아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너무 많이 위험해져 버렸다.
여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물러서고 싶지 않은 이 지독한 마음을 어찌할는지.
이제 당신만 보면 떠나고 싶지 않아지는데,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태준은 조용히 미소를 그리더니 그대로 허리를 숙여 입술을 깨물었다. 짧은 탄성과 함께 입이 벌어지고, 뜨거운 살덩어리가 침입했다.
빨면 달콤하고, 삼키면 아찔하다. 긴 혀는 지아의 입속이 마치 자신의 공간인 것처럼 자유롭게 유영했다.
“흠, 으음…….”
“봐. 이렇게 예쁘잖아.”
태준은 지아의 블라우스 단추를 능숙하게 풀어 내리고 벌어진 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강한 악력에 지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튀어 나갔지만, 그는 오히려 도드라진 빗장뼈에 이를 박고 씹어 댔다.
“아파, 아파요……!”
얇은 스타킹에 감싸진 가녀린 두 다리가 바르작거렸다. 그러자 태준이 붉은 잇자국이 오른 부위를 혀로 핥았다.
곧 혀끝이 자연스레 아래로 미끄러졌다. 가슴골을 간질이다가 손으로 브래지어를 위로 밀어 올리자 컵에 갇혀 있다 드러난 가슴이 출렁였다. 허공에 달랑거리는 젖꼭지가 붉은빛으로 익어 탐스러웠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혀로 입술을 축인 그가 팽팽하게 부푼 유두를 혀끝으로 살살 자극하다 그대로 입에 머금었다.
“흐읏!”
지아는 그가 혀와 이를 쓰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독 가슴이 민감한 그녀였다. 밤새 그에게 젖꼭지가 빨리는 날은 온종일 흥분이 식지 않아 곤란할 정도였다.
태준이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파고든 손가락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쓸고 올라왔다. 마치 스타킹을 찢어놓을 듯 힘이 들어간 것이 곧 가랑이 사이를 지그시 압박해 왔다.
“가슴만 빨아도 아래가 이렇게 흥건한데, 정말 10분만 해도 괜찮겠어요?”
낮은 음성에 음부가 불에 달군 것처럼 묵직해졌다. 그가 입술을 빨자 꿀럭, 하고 팬티가 젖어 든다. 보지 않고도 정확히 질구를 내리누른 그가 치마 속에서 손을 빼며 웃었다.
“벌써 손가락이 끈적해졌잖아.”
“이사님…….”
“어느 쪽을 믿어야 합니까?”
태준은 마치 보여 주겠다는 듯 그녀의 눈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붙인 채로 둥글게 돌렸다.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보지 못한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태준은 귀엽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항상 입보단 몸이 솔직하죠?”
“하아…….”
“마음껏 흘려도 돼. 내가 전부 빨아 줄 테니까.”
아랫배에 닿는 크고 딱딱한 감촉은 당장에라도 안에 들어오고 싶다는 듯 꿈틀거렸다.
“벌려요.”
“끝까지는 안 돼요.”
“그럼 어디까지 되는지 시험해 볼까?”
허리춤으로 두 손이 들어왔다고 느낄 무렵, 스타킹이 엉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을 넣은 태준이 과감한 손길로 끈적해진 팬티를 더듬었다. 갈라진 선을 검지로 쓸어 올리다가 엉덩이 사이에 밀착한 줄을 잡아당겼다.
“난 상상을 했으면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거든.”
“이사님, 제발…….”
“역시 상상보다 실제가 더 야하네. 단정한 옷 속에 이런 티 팬티라니. 아침에 입으면서 내 생각했어요?”
태준은 담백한 미소를 보내며 지아의 말랑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를 애무할수록 작은 면 바깥으로 서서히 물기가 비쳤다.
“아직도 10분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아는 망설이는 얼굴로 입술만 씹어 댔다. 몸이 이성을 배반한 지는 오래였다. 다만 그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이성이 고집처럼 그녀를 붙들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정말 안 돼?”
“……한 번으로 끝내요.”
어렵게 말을 뱉은 그녀가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비로소 내보이는 진심에 태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마치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글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고 약속하기는 힘들지만.”
태준은 지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곳을 만져 주면 어김없이 흥분하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노력해 보죠.”
역시나 더한 것을 바라는 지아의 가랑이 사이가 파들거렸다. 쾌감을 참지 못한 그녀의 어깨가 한껏 경직되었다.
그 순간, 귓가에 닿는 소리에 지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려요.”
그가 오만한 미소를 그리며 명령했다.
1. 기태준입니다
“흐읍, 흑, 으윽…….”
두 평 남짓한 실내는 공기마저 중력에 침잠하는 듯 무거운 분위기였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온통 축적돼 있는 듯한 공간. 영정 사진 주변으로 순백의 국화가 단출하게 장식되었다.
적막을 깨뜨린 것은 한 여자의 흐느낌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지아가 두 평 남짓한 빈소에 무너지듯 엎드려 있었다. 한껏 숙인 고개 아래로 굵은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흐윽, 엄마…….”
숨이 막혔다. 입을 벌리면 울음이 끅끅 쏟아졌다.
엄마를 잃었다.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유일한 가족을 잃고 말았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 아니 오히려 유독 운이 좋은 날이었다. 몇 개월 전 예약을 한 유명 레스토랑에 갈 예정이었다. 모처럼 엄마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났었다.
-지아야! 사거리 병원으로 지금 빨리……!
퇴근길, 이웃 아주머니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날로 지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했다.
세상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몸을 지탱한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핏발 선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렸다.
사경을 헤매는 엄마 앞에서 지아는 밤새 기도했다.
제발 잠깐이라도 눈을 떠 달라고.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엄마에게 닿은 걸까. 동이 터 오를 무렵에 엄마는 기적처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의사를 부르려는 지아의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그동안 못난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이제 우리 딸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해, 내 딸…….”
밤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던 당신인데, 말씀하실 땐 신기하도록 평온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지아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다. 앞으로도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마지막 유언이 됐다.
회사 사람들과 동네 주민들이 빈소를 찾아주었다. 안타깝게 혀를 차는 그들 앞에서 지아는 억지 미소만 그렸다.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납골당으로 모시고서야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