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무림, 다시 쓰다 1권(19화)
6장 어둠은 혼돈 속으로(2)


이번 일의 실패로 오늘 자신의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해도 수족 한두 개는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대공자께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이번 나씨세가에 지옥천마의 2개 대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나씨세가와 독고세가를 멸문시켰습니다.”
“호! 그러셨다면 다 된 일 아닙니까?”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어 오는 대공자의 물음에 강청휘는 서둘러 그 뒷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나씨세가에는 귀면갑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대공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곳에 귀면갑이 없다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이미 사전에 다 알아본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만 그것이…… 나씨세가의 여식인 빙백봉 나윤정이 가지고 도주한 것 같습니다.”
순간,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강청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멀쩡하던 강청휘의 왼쪽 귀가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인 듯 피를 뿌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강청휘는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감히 대공자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멸문을 시켰다면서 도망치게 했다니요? 그렇다면 완전한 멸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방금 강청휘의 귀를 잘라 버린 대공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씨세가의 귀문기관이라는 것이 의외로 복잡하기에 부수고 들어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됐어요. 그런 변명은 듣고 싶지 않군요. 언제 제 손에 귀면갑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그거나 말씀해 주십시오.”
대공자의 말에 강청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확실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칠 주야 안에 찾아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삼 일을 드리죠. 그 안에 귀면갑을 찾아오세요.”
“존명!”
대공자의 명에 감히 대꾸하지 못한 강청휘는 잘려진 귀를 주워 들고는 황급히 대전을 빠져나갔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사색에 잠겨 있는 대공자를 향해 잠시 후 대전을 지키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자, 황교의 흑미륵 손불이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사색에 잠겨 있던 대공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들어오시라고 그래요.”
잠시 후 대전의 문이 열리면서 붉은 장포를 입고 있는 흑미륵 손불이가 웃는 얼굴로 들어섰다.
“킥킥! 대공자, 오랜만이구려.”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안부를 전하는 손불이의 말에 대공자 또한 밝게 웃어 보였다.
“황교의 우상호법이신 손불이님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뭐, 저야 언제나 바쁘지요. 킥킥!”
“그래, 이번에 사도의 행방을 알아내셨다고요?”
대공자의 말에 손불이는 약간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혁린세가의 정보력은 무섭군요, 벌써 그런 소문이 나돌다니. 흐흐흐!”
“그 정도 가지고 놀라시다니요, 하하! 그래, 사도는 구하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손불이의 대답에 대공자는 이미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교주님의 행방을 찾지 못하셨군요. 어느 곳에 계실는지…….”
대공자는 은근슬쩍 황교의 교주 이야기를 꺼내며 손불이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손불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저희 교주님이야 돌아오실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오실 테니 걱정이 없지요. 그보다 이번에 혁린세가에서도 귀면갑을 구하셨다면서요?”
“저희도 아직입니다. 그러나 곧 저희 수중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순간 대공자와 손불이의 눈빛이 마주치며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가졌다.
‘능구렁이 같은 녀석!’
손불이는 속으로 대공자란 녀석이 실로 뱀과 같이 교활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 황교 교주의 행방이 오래전부터 묘연한 상태라서 함부로 손을 쓸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그를 죽여 버리리라고 생각하는 손불이였다. 그러나 대공자 역시 속으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교주가 없는 황교쯤은 단번에 쓸어버려야겠군.’
현재 둘의 사이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고 있는 상황이기에 각기 다른 마음을 먹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사령천왕지 하나뿐이군요.”
“그렇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사령천왕지의 행방은 묘연하니까요.”
대공자의 말에 손불이는 약간 근심스런 얼굴을 지어 보이더니 다시금 웃는 얼굴로 대공자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천부굴을 찾기까지는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야 물론 여부가 있겠습니까.”
서로를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손불이와 대공자. 황교와 혁린세가 이 둘의 알 수 없는 모종의 음모 속에서 또다시 중원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

나씨세가와 독고세가가 멸문했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유소문과 현칠은 경공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강서의 지현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광동에서 지현강까지는 그들이 최대한으로 경신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꼬박 사흘은 걸릴 정도의 거리였다.
벌써 쉴 새 없이 이틀을 달려온 유소문과 현칠은 많이 피곤한 상태였으며, 특히 내공이 현칠보다 낮은 유소문은 속력이 아까부터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현칠은 어쩔 수 없이 숲 속에서 야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막강한 내공을 지닌 그들이었지만 이틀을 꼬박 달린 그들로서는 피곤함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소문은 지현강에 위치한 나씨세가와 독고세가의 일이 걱정이 되어 쉽사리 잠에 빠져 들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유소문의 귀로 숲 속 어디선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칠 역시 그 소리를 들은 듯 유소문과 함께 소리가 나는 곳으로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곧 한 무리의 검은 복면을 한 사내들이 두 명의 여인을 상대로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복면인들에게 포위되어 공격받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은 다름 아닌 빙백봉 나윤정과 독선화 독고은니였다.
유소문은 지체 없이 도를 뽑아 들고 십여 명의 복면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복면인들은 갑작스런 유소문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포위망을 구축하며 흐트러짐 없는 것이 훈련을 많이 받은 자들 같았다.
그중 한 복면인이 유소문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그러나 유소문은 복면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
“그러는 네놈들은 당귀문의 잔당들이냐?”
흑의 복면인은 유소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당귀문이란 말 한마디로 그가 나씨세가의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복면인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유소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복면인의 행동과 동시에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일제히 유소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유소문이 지옥도에 기를 주입하여 한 번 휘두르자 허망하게도 날아오르던 세 명의 복면인이 일격에 쓰러져 나갔다.
복면인들이 놀랄 사이도 없이 싸움에 끼어든 현칠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다시 네 명의 복면인이 단 한 수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열 명에서 세 명으로 줄어든 복면인들은 상대가 자신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느끼고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현칠은 그들이 그냥 도망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복면인들을 향해 그의 신형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두 명의 복면인의 가슴을 뚫어 버리고 나머지 한 명의 머리채를 잡아챈 채로 끌고 왔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현칠은 마지막 복면인을 살려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질질 끌려오던 복면인은 그 사이에 숨겨 두었던 극약을 깨물어 자살해 버렸다.
설마 자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현칠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복면인이 죽어 버리자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 내심 안타깝고 분한지 이미 죽어 있는 복면인의 가슴팍을 발로 차 버렸다.
“젠장! 이 자식, 자살은 왜 해!”
죽은 시체에 발길질을 하는 현칠은 바라보던 유소문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러나 현칠이 초마기공의 영향으로 내공을 운용하면 잔인성을 띠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소문이기에 그저 씁쓸한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순간 유소문의 등 뒤로 무언가가 와락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유 소협!”
등 뒤에는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하는 독고은니가 유소문의 등을 힘껏 껴안고 있었다.
유소문 역시 무사해 보이는 독고은니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감싸주었다. 그런 유소문과 독고은니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화풀이하던 것을 멈추고 다가온 현칠이 그들을 놀려댔다.
“오∼! 그림 좋은데? 언제부터 둘이 그런 사이야?”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현칠의 농담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는 유소문과 독고은니였다.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가 없자 머쓱해진 현칠은 문득 나윤정을 바라보았다.
“너도 안길래?”
나윤정 역시 현칠의 말은 무시해 버렸다.
잠시 후 조금 진정된 독고은니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평소 침착하기만 한 독고은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유 소협과 현 소협이 세가를 떠나신 이후 열흘 정도 후에 당귀문에서는 놀랍게도 사백 명이나 되는 거대한 인원을 데리고 쳐들어 왔습니다. 저희는 다시 한 번 나씨세가의 귀문기관에 의지하며 그들을 막아섰지만 워낙 수적인 열세에 빠져 그만…….”
말을 하던 독고은니는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럼? 나머지 세가의 사람들은 어찌 되셨습니까?”
“흑흑, 나백천 아저씨께서 저희들만이라도 피하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저희들만 살아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흑흑.”
슬픔에 겨워하는 독고은니를 바라보며 유소문은 지금 당장이라도 당귀문을 찾아가 모든 것을 박살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신 또한 가족과 마을 식구를 잃은 슬픔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미 당귀문의 사람들은 다 죽고 그것이 혁린세가의 눈가림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독고은니를 뒤로하고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나윤정이 차분한 음성으로 독고은니의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당귀문의 무사들이 아니었습니다. 당귀문에서 그만한 세력을 갖추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고, 또한 그들이 이번에 왔을 때 노린 것은 저희 세가의 목숨이 아닌 바로 귀면갑이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나윤정의 태도에 약간은 놀란 듯한 유소문은 이내 귀면갑을 찾는다는 소리에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귀면갑이라면…… 나 문주께서 저희에게 선물로 주신 황금가면이 아닙니까?”
“네, 저도 아버님께 그것을 당신들에게 주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저희 세가에 와서는 귀면갑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우리 가문에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선물로 받은 귀면갑 때문에 설마 나씨세가와 독고세가의 사람들이 모두 죽을 줄은 몰랐던 유소문은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현칠이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우선은 저들의 정체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몸이라도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현칠의 말에 따라 일행들은 복면인들의 시체를 살펴보았지만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처음 유소문에게 말을 걸었던 복면인의 몸에서 ‘혈(血)’이라고 적힌 종이쪽지 하나가 그들이 찾은 전부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자 우선 충격에 싸여 있는 독고은니와 나윤정을 위해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가까운 마을을 찾아 나섰다.
간신히 한밤중에 가까운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방을 찾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독고은니와 나윤정을 숙소로 데려다 주고 유소문은 현칠과 의논하기 위해 객점의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 어찌해야 하지?”
유소문의 물음에 현칠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우선은 그 혈이라는 글자에 적힌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귀면갑의 비밀을 알아내야지!”
“귀면갑의 비밀이라…….”
“분명 그들이 그것을 노렸다면 아마 귀면갑에는 뭔가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이 분명해.”
“그런데 그 혈이라는 한 글자를 통해 어떻게 정체를 알아본다는 말이야?”
“음…….”
“…….”
“만통선사를 찾아가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뜻밖에도 쉬고 있는 줄 알았던 나윤정이 어느새 그들 사이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유소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렇군요. 무림의 모든 일들은 만통선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었지. 그를 찾아가면 되겠군요.”
유소문 역시 만통선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만통선사(萬通仙士) 유백서는 무림에 관해 모르는 일이 없는 이 시대 최고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기인이었다.
무림 전대에 일부터 최근의 일까지 그가 모르는 무림의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입 한번 잘못 놀리면 무림을 피바다로 만들 수도, 또한 무림을 구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가 어디에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만통선사 유백서는 무림에 관해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만큼 그를 노리는 세력 또한 많았다. 생각해 보라. 가문에서 절대적으로 감추고 있어야 할 비밀을 아는 사람을 그 가문에서 살려 두고 싶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그가 어디에 사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었다.
나윤정 역시 만통선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그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현칠은 그런 거라면 걱정 말라는 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찾는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날 믿어!”
현칠의 말에 그의 능력을 알고 있는 유소문은 환한 얼굴을 지어 보이다가 곧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너, 또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돌을 던져 찾아가는 게 제일 쉬운 일이잖아.”
“으아아악!”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유소문은 그만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현칠과 함께 기연을 얻기 위해 돌아다닐 무렵, 그놈의 돌 던지기로 얼마나 숱한 고생을 겪어야만 했던가.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도 역시 그 방법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