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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다시 쓰다 1권(22화)
7장 일양왕(一攘王) 금훈(3)
“그렇다면 천지인(天地人)의 삼화(三化)와 수목금화토(水木金火土)의 오기(五氣)를 몸에 담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뜻이옵니까?”
금훈은 갑작스런 내공 심결과도 같은 유소문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그의 말에 대답을 해 주었다.
“천지인의 삼화라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내공심법에서 하늘이란 대주천을 뜻하고 땅이란 소주천을 뜻하며 사람이란 좌식축기로 모인 단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목금화토의 오기는 각각 채약, 양신, 온양, 대맥, 일월성문을 뜻하므로 단전의 기운을 오기로 모은 후 소주천을 거치고 대주천을 거쳐 다시 오기에 담는다는 뜻이겠구나.”
금훈의 설명에 유소문은 지금껏 막혀 있던 위룡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몸 안에 막혀 있던 봇물이 터져 나오듯 강맹한 기의 흐름을 현칠은 느낄 수가 있었다.
몸 안에서 맴도는 믿을 수 없는 힘을 느끼며 자신이 드디어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허허, 자네 몸 주위의 기의 흐름이 바뀌었구먼! 이 순간 무엇인가를 깨달은 모양이군.”
금훈 역시 유소문의 변화를 느낀 듯싶었다.
“이게 다 금훈 대협 덕분입니다.”
유소문은 감사를 전하는 말로 자신의 무공이 높아졌음을 나타냈다.
“허허! 그게 내 덕분이라니, 난 그저 자네의 질문에 답을 해 준 일밖에 없다네. 자네의 오성이 뛰어난 것은 모두 다 자네의 복이라네.”
사실 금훈이 위룡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알려줌으로써 유소문이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유소문의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느 한순간 얻어지는 것이기에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데다, 난해하며 애매모호한 위룡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아무렇지도 않게 단번에 풀이해 준 것은 금훈의 은혜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이게 다 대협의 가르침 덕택입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허허! 자꾸 은혜를 갚는다는 소리는 하지 말게나. 뭐, 정녕 그렇다면 어떤가, 나와 다시 한 번 비무를 해 보지 않겠나?”
유소문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 볼 수밖에 없었다.
삼왕 중 한 명인 금훈이 자신에게 먼저 비무를 바라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사실은 오히려 제가 청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하하! 이 친구, 이제 보니 아주 솔직하구먼! 좋네, 그럼 어디 다시 한 번 비무를 벌여 보세나.”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유소문은 지금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고, 금훈 역시 달라진 유소문의 실력이 상당히 궁금했다.
서로 다시 비무 상태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금훈이 먼저 유소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실 아까의 비무는 금훈이 단지 가르친다는 입장으로서 공격을 받아 준 것이었기에 이번에는 유소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유소문은 아까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힘이 자신을 덮쳐 오자 그 역시 몸을 날렸다.
그 둘의 손바닥이 부딪치며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서로가 정확히 일곱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금훈은 상승된 유소문의 실력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유소문 또한 방금 자신의 일격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놀랍군그래! 그럼 이번에는 전력을 다함세!”
금훈은 이제 유소문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힘을 더 끌어올려 공격해 들어갔다.
유소문 또한 몸 안에서 솟아오르는 무지막지한 힘을 터트리며 그의 공격을 무난히 막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이십여 합을 더 겨루는 동안, 유소문은 금훈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몸 안에 넘쳐흐르는 진기를 다룰 수가 없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유소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 안의 기운을 본래의 힘과 융합하여 처음과는 다르게 놀라운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직도 몸속의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느끼는 유소문은 지금이라면 눈앞의 금훈이라도 이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룡도법을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유소문은 문득 초식만 외웠지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구룡도법을 시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위룡신공을 대성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다던 구룡도법이기에 위룡신공을 대성한 이상 그 힘을 가늠해 보고 싶었다.
더구나 그 위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몰라도 삼왕 중 한 명인 금훈이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더욱더 펼쳐 보고 싶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러한 생각은 길었지만 실로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순간 금훈은 유소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곧 유소문은 지옥도를 힘 있게 움켜쥐고 금훈을 향해 일순 빠르게 내질렀다.
―구룡도법 1절 강룡(强龍).
유소문이 내지른 지옥도에서 엄청난 힘의 폭풍이 몰아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듯 그 기세를 흉흉히 하며 금훈을 향해 뻗어 나갔다.
구룡도법은 총 3절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절은 내공을 바탕으로 강을 위주로 하는 강의 절이었고, 이절은 유를 바탕으로 하는 유의 절이었으며, 마지막 3절은 강에서 유로, 유에서 강으로 끊임없는 변화하는 무의 절이었다.
금훈 역시 자신을 덮쳐 오는 엄청난 기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룡의 빠르기는 이미 그가 피하기에도 늦어 버릴 정도로 빨랐다.
강룡의 위력이 막 금훈을 꿰뚫으려는 찰나에 금훈의 양 손가락에서 강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일양 오의 일지신파(一指神破).
갑작스런 강룡의 강맹한 기운에 당황한 금훈은 그 순간 자신의 최고 절기인 일지신파를 발산하여 맞받아쳤다.
구룡도법의 강룡과 일양신공의 최고 오의인 일지신파가 충돌하자, 처음 장을 교차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주위 수십 장이 강한 충격으로 산산이 날아갔다.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고 있던 나윤정과 독고은니마저도 그 후폭풍에 의해 뒤로 넘어져 버릴 정도였다. 수십 장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강한 두 힘의 충돌 후에 금훈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박한 상황이란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최고 오의인 일지신파를 발산했지만 그 위력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먼지가 가라앉자 맞은편에 있던 유소문이 이미 수장을 날아가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실 금훈은 이미 화경에 들어 현경을 바라보고 있는 고수였지만 유소문은 이제 막 위룡신공을 대성하며 화경의 초입 단계에 들어섰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둘의 실력에는 당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나, 뜻밖의 강맹한 구룡도법에 의해 금훈 역시 어쩔 수 없이 일지신파를 발산한 것이었다.
서둘러 유소문에게 다가가 그의 맥을 짚어 본 금훈은 다행히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이거 하마터면 아까운 젊은이를 죽일 뻔했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유소문을 바라보며 금훈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독고은니가 거의 죽을상을 하며 뛰어오고 있었다.
“으아앙! 유 소협!”
독고은니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유소문을 붙잡고 마치 초상난 분위기처럼 목 놓아 울었다.
금훈은 난처한 듯 그녀를 달래려고 했지만 오히려 독고은니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금훈을 닦달했다.
“아니, 어떻게 삼왕이나 되시는 분이 나이 어린 후배에게 그렇게 무자비하실 수가 있어요?”
“아니, 소저, 그게……. 허허! 이거야, 원.”
“으아앙! 유 소협, 정신 차리세요.”
한참 후에야 오체 분열하도록 울어 대는 독고은니를 가까스로 떼어 놓은 금훈은 간단히 응급조치를 한 후 그를 들쳐 업고 그들이 머문다는 객잔까지 옮겨다 주었다.
방으로 유소문을 옮긴 금훈은 아직도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독고은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강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을 뿐이지 멀쩡합니다. 그리고 유 소협이 깨어나면 전 이 근처 도원객점에 머물고 있으니 술이나 한잔하러 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몰라요, 흥!”
사랑하는 임을 다치게 한 탓인지 독고은니는 그런 금훈을 흘겨보며 쌀쌀맞은 표정을 지었다.
금훈은 나이 어린 독고은니를 그저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어색하게 객잔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유소문을 바라보며 독고은니는 뭐가 그리 서글픈지 자꾸만 울어 댔다.
“괜찮다잖아. 그만 울어라! 누가 보면 네 서방이 죽은 줄 알겠다.”
보다 못한 나윤정이 한마디 했지만 독고은니는 여전히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윤정은 더 이상 그 꼴을 못 보겠는지 방을 나와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온 나윤정은 아까의 금훈과 유소문의 비무를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이 사실을 현칠에게 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모르니까 그에게도 알려 주는 것이 낫겠지.’
나윤정은 현칠의 방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나윤정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나윤정은 밖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현칠은 잠을 자고 있는 상태에서도 몸 안에서 쉴 새 없이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나윤정은 순간 현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불편한 상태에서도 현칠을 살펴보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현칠은 눈에 보일 정도로 붉은 마기를 뿜어내면서도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급한 마음에 자고 있는 현칠을 깨우자 그제야 마기가 서서히 사라지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현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달콤한 잠을 방해한 것이 귀찮다는 듯 현칠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 그게…… 벼, 별……일이…… 아……니라…….”
“응? 잠깐!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윤정의 말을 가로챈 현칠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너 그거 피 아냐?”
자신을 바라보는 현칠의 눈길에 그제야 자신의 몸을 훑어본 나윤정은 아까 유소문을 옮길 때 그의 피가 옷에 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현칠의 몸 안에서 나오던 마기를 떠올리고, 또한 지금의 붉어진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윤정은 지금껏 현칠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두려움을 느꼈다.
현칠이 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그가 익힌 초마기공은 잠을 자면서도 기를 단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현칠은 지금껏 그녀들과 같이 지내며 초마기공 연성하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있다가 오늘은 간만에 잠을 자며 운기조식을 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초마기공의 운용 후 잠에서 깬 현칠이 피 냄새를 맡자 그의 몸 안에서 마기가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게…… 이건 유 소협의 피인데…….”
낯선 모습의 현칠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나윤정은 방금 전 일양왕 금훈과 유소문의 비무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줄줄이 설명을 하고 자신의 옷에 묻은 피가 사실은 유소문을 옮기다가 묻었다는 것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현칠의 입가에 괴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크크! 그래? 일양왕인지 영양밥인지 하는 놈이 내 친구 놈을 피떡이 되도록 주물러 줬다, 이거지? 크크!”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건 비무로 인한 사고였…….”
“그래, 그가 머무는 곳이 어디라고?”
어느새 완전히 눈동자가 붉게 충혈된 현칠을 바라보며 나윤정은 그의 물음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가 눈 깜박하는 사이, 현칠은 이미 방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현칠이 마기에 휩쓸려 복수를 한답시고 방 안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윤정은 서둘러 유소문의 방으로 뛰어갔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유소문을 향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다가간 나윤정은 느닷없이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윤정의 행동에 놀란 독고은니가 그녀를 잡고 말렸지만 나윤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소문을 깨우기 위해 애썼다.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는 유소문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윤정은 그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짝, 짝, 짝, 짝!
“일어나요, 유 소협! 제발 일어나요!”
한참 그의 뺨을 때리자 유소문은 그제야 인상을 찡그리며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윽! 어, 어떻게 된 거죠?”
볼을 잡고 깨어나는 유소문을 바라보며 나윤정은 자신이 볼을 때린 사실은 잊은 채 방금 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눈을 토끼처럼 뜨며 놀란 표정을 짓는 유소문은 부상당한 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일어났다.
‘이거 큰일이구나, 오랜만에 현칠이 초마기공을 운행한 모양인데. 피 냄새를 맡고 마기가 솟아오른다면, 나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터인데.’
이미 초마기공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유소문은 현칠이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가 알려 준 도원객점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피 냄새를 맡은 현칠은 주체할 수 없는 마기에 휩싸여 가고 있었다. 이럴 때 유소문이라도 있다면 그를 잡아 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를 못했다.
피를 본 것이 잘못이었다. 오랜만에 운신한 초마기공의 부작용으로 지금 그의 정신은 반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마기공의 운용 후 마기가 끓어오르는 상태에서 피 냄새를 맡자 이성보다는 피의 대한 본능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객점의 문을 박살낸 현칠은 내공이 실린 목소리로 객점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일양왕인지 영양밥인지가 누구야! 나와!”
내공이 실린 그의 목소리로 인해, 순간 객점 안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나갔다.
현칠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중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고 이층에서 자신을 노려보며 내려오는 문사 차림의 중년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호! 네가 일양왕인지 영양밥인지 하는 놈이냐?”
온몸에서 마기를 풀풀 풍기는 현칠을 바라보는 금훈이 심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칠의 몸에서 풍겨지는 마기로 인해 객점 안은 이미 숨쉬기도 곤란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