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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다시 쓰다 1권(24화)
7장 일양왕(一攘王) 금훈(5)


나씨세가에서 겨루어 보았던 염기영의 화류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살아 움직이는 듯 거세게 뿜어져 나온 불길은 아래에서 위로, 마치 한 마리의 용이 승천 하듯 현칠의 몸을 덮쳐들었다.
가랑이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불길의 기세를 현칠 역시 감히 받아 낸다는 생각을 못한 채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현칠이 내보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금훈의 일지신파가 뿜어져 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일순간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지 못한 현칠은 일지신파에 정통으로 얻어맞자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다시금 뒤로 서너발자국 물러났다.
어느새 유소문의 신형이 현칠의 머리 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고통에 겨워하는 그의 정수리를 지옥도의 자루부분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일지신파와 이어지는 정수리 부분에 강한 충격으로 이성을 잃었던 현칠 역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지 아늑해지는 기분에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화경의 고수 둘은 무리였는지 정신을 잃고 곤히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현칠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듯 다가온 금훈이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유소문은 막 현칠을 내리치려는 금훈의 손을 잡아 말렸다.
“대협, 부디 그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유소문의 부탁에도 금훈은 노여운 기색을 띠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어찌 이런 사악한 마인을…… 살려 두라는 것인가! 아무리…… 자네의 친구라고는 하나…… 앞으로를…… 위해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나을 것이네.”
금훈은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지 말을 끊어 가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유소문 역시 현칠의 심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또한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은인이기에 다시 한 번 간곡히 금훈을 설득했다.
“오늘 일은 모두 저로 인해 생긴 불찰입니다. 제발 그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소문의 부탁에도 금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마인이 살아서 강호를 헤매고 다닌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의 손에 피를 뿌리며 죽을지 모르는 일……. 이자를 살려 둘 수는 없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금훈은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현칠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자 그 순간 유소문은 자신의 지옥도를 꺼내 들었다.
일순간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방어 자세를 취해 보이던 금훈을 향해 유소문은 결의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오늘 일은 어찌 보면 저의 불찰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에 대한 값을 친구를 대신해서 갚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유소문은 금훈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지옥도를 치켜들어 자신의 왼팔을 향해 힘차게 내리쳤다.
금훈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구인 현칠을 공격했던 유소문이었지만 그 역시 현칠을 죽일 마음은 없었기에 자신의 왼팔을 현칠의 목숨과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옥도로 막 자신의 왼팔을 자르려는 순간, 금훈의 오른손이 지옥도를 움켜잡아 그의 팔이 잘려 나가는 것을 막았다.
잠시 유소문을 바라본 금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자가…… 자네의 팔보다도 중요한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저의 친구이자 은인입니다.”
거침없이 대답하는 유소문을 바라보며 금훈은 그가 얼마나 현칠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무인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팔을 걸 정도의 우정이라는 생각에 금훈은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현칠을 살려 두자니 이후에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릴 것 같았고, 죽이자니 어쩌면 앞으로 무림을 이끌어 갈지도 모를 유소문이 걱정되었고, 또한 지금처럼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유소문이 죽자고 막아선다면 자신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잠시 후 금훈은 무언가를 결정한 듯 서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자네가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저자를 죽이지는 않겠네.”
“가, 감사합니다, 금훈 대협!”
금훈의 말에 유소문은 크게 기뻐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나, 조건이 있네.”
조건을 건다는 금훈의 말에 유소문은 기쁜 마음을 추스르고 이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조건이신지?”
“저자가 정신을 차리면 앞으로 무림에서 그로 인하여 많은 피를 흘릴 것은 자명한 일! 그러니 그의 목숨을 살려 두는 대신 그의 단전을 파괴하여 무공을 빼앗아 가겠네.”
순간 유소문은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무인에게서 무공을 빼앗아 간다는 소리는 어찌 보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그것은 너무하는 일이 아닙니까!”
유소문의 절규 어린 말투에도 금훈은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내 맘 같아서는 이자를 일수에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자네를 봐서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인 줄 알게나. 자네가 정녕 그것마저 반대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피를 봐야 할 것이네.”
이것마저도 할 수 없다면 유소문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금훈의 단호한 마음에 유소문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평소의 현칠은 이렇지 않다는 것을 들려줘 봐야 금훈 역시 믿지 않을 것이고, 금훈이 현칠의 단전을 파괴하는 것을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렇다고 금훈과 목숨을 건 일전을 벌일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실로 태어나서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유소문은 정녕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럴 필요 없어.”
어느새 정신을 차린 현칠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금훈은 놀란 마음에 한 발자국 물러나며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조용히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난 현칠은 그런 금훈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금훈 대협, 아까의 실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느닷없는 현칠의 사과의 당황한 금훈은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자 유소문 역시 이런 현칠의 모습에 놀란 듯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살펴보았다.
“자네, 괜찮은가?”
유소문의 물음에 현칠은 그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곤 금훈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제가 뜻하지 않게 마공을 익히게 되어 몸 안에 살심이 가득 생기고 마기가 저를 지배하려는 영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마기가 제 몸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현칠의 갑작스런 말에 금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르게 현칠의 눈동자 안에 붉은 마기의 기운이 아닌 정심한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정녕 자네가 아까의 그 마인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오늘로서 마공을 익힌 지 칠십 번째 만월을 지나게 된 영향으로 몸 안의 마기가 사라지고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현칠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정녕 강한 마기로 뒤덮여 있던 마인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믿는 유소문은 이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현칠을 느닷없이 껴안았다.
갑작스런 유소문의 행동에 살짝 놀란 현칠이었지만 그러한 유소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금훈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마기를 띠던 인간이 단 한순간에 저리도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오랜 경험으로도 이렇게 한순간에 사람이 개과천선(?)하는 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믿을 수 없네! 이얏!”
금훈은 현칠의 말을 믿을 수가 없는 듯 얼싸안고 있는 유소문의 등을 향해 둘 다 한 번에 꿰뚫어 버릴 듯 강한 기운을 실은 일양지를 내뿜었다.
광엄한 힘이 담긴 일양지가 유소문의 등을 꿰뚫어 버릴 찰나, 현칠은 급히 유소문의 몸을 안고 등을 돌렸다.
유소문의 몸을 보호하려는 양 자신의 등을 내보인 현칠을 바라보며 금훈은 황급히 그의 손을 멈추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유소문을 막아선 현칠의 행동에 금훈 역시 놀라며 그제야 현칠의 말에 어느 정도 의심을 버리게 되었다.
“정녕 그대 마음속의 마기는 모두 사라진 것인가?”
손을 거둔 금훈은 아직도 등을 보이고 있는 현칠을 향해 물어보았다. 그제야 몸을 돌린 현칠은 다시금 정명한 얼굴로 금훈을 바라보았다.
“예, 그렇습니다.”
진실로 거짓이 없어 보이는 현칠의 말에도 아직은 미심쩍은 듯한 금훈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다면 정녕 다행이지만, 난 자네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크윽!”
말을 하던 금훈은 갑작스레 한 줄기 선혈이 쏟아져 나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현칠과의 싸움 도중 입은 내상으로 상했던 피들이 말을 많이 하게 되자 드디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칠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급히 금훈의 몸을 부축했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저 때문에 이리도…… 흑!”
자신으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는 자책감에 현칠의 눈에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이 어렸다. 그러자 선혈을 내뿜은 금훈은 힘든 기색 속에서도 그런 현칠의 순수한 모습이 실로 사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조금 전에 생사를 다투던 일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자신이 그를 믿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정말 여린 친구였구먼.’
금훈은 마공을 익힌 마인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마음이 이 순간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칠의 몸을 서서히 밀쳐 낸 금훈은 처음처럼 인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 자네를 믿지 못해 미안하네. 그러니 이제라도 아까의 일은 잊도록 하게.”
“믿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저의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흑흑흑!”
드디어 닭똥 같은 눈물이 현칠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현칠의 모습에 금훈은 그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심한 내상으로 인해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인 금훈을 향해 현칠은 그를 객점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했지만 금훈은 극구 그의 호의를 마다했다.
삼왕의 한 사람으로서 누구에게 부축 받아 간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내일 다시 도원객점에서 술이나 나누자는 약속을 남긴 채 사라지는 금훈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던 현칠은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씨발! 노인네, 더럽게도 사람 말을 안 믿네.”
갑작스런 현칠의 변화에 놀란 유소문은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뭘 봐, 임마! 그럼 넌 진짜로 내가 한순간에 확 하고 성격이 돌아왔을 것 같아?”
“그, 그럼…… 너 지금까지 연기한 거였단 말야?”
“당근이쥐!”
자신의 연기에 만족해하는 현칠을 바라보며 유소문은 기가 찬 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꼭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말끝을 흐리는 현칠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던 유소문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러자 현칠 자신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다.
오늘같이 초마기공을 연성한 날에 피를 보거나 기분이 나빠지면 마기가 솟구쳐 오른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금훈의 일격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자신의 몸 안에서 주체할 수 없었던 마기가 사라진 것을 그는 느낄 수가 있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몸 안의 마기는 사라진 것 같아.”
자신조차도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듯 현칠은 그저 그렇게만 답할 뿐이었다.
이미 한 번 속았던 유소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현칠을 바라보다가 문득 현칠의 몸에 생긴 변화를 눈치 채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그러고 보니 너, 머리색이 다시 검게 변했는걸.”
유소문의 말에 그제야 자신의 머리색이 다시 검게 변한 것을 알게 된 현칠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초마기공을 드디어 대성한 것인가!’
현칠이 익힌 초마기공은 그 특성상 대성을 하기 전까지는 그 시전자의 머리색이 자색을 띠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대성을 하기 전까지는 내공을 사용함에 있어 여타 다른 마공에 비해 강한 마기를 주체할 수 없지만 대성 후에는 그 마기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특성도 지니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강한 마기를 폭발하며 금훈과 싸우던 중 현칠의 몸 안에서 그의 내공이 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마기에 눌려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리던 현칠의 몸은 이대로 폭발하는 듯싶었으나 다행히 금훈의 장에 맞은 후 폭주를 멈추자 운이 좋게도 초마기공을 대성하여 마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서 마기가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된 현칠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 거였군.”
살짝 웃어 보인 현칠은 이내 유소문에게 초마기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금훈에게 한 이야기도 거짓은 아닌 것이다. 다만 위선이었을 뿐이지.
유소문 역시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깨어난 후 금훈을 이대로 돌려보낸다면 앞으로 자신을 찾기 위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칠은 방금 전 연기를 해서까지 금훈을 설득해서 돌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문득 그의 마음속에 한 줄기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런데 뭐지, 이 찜찜한 기분은……?’

객잔으로 돌아가고 있던 금훈은 답답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현칠과의 싸움으로 입은 내상이 심한 듯 그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냥 데려다 준다고 할 때 놔둘 걸 그랬나?’
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혼자 가겠다고 나선 금훈은 자신의 몸 상태가 극히 안 좋다는 사실을 느끼고 방금 전 현칠의 호의를 무시한 것을 아쉬워했다.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금훈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낄 수가 있었다.
“누구냐?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내상을 입은 몸으로도 아직은 건장함을 보여 주려는 듯 금훈은 어둠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무것도 없던 어둠 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듯 서서히 사람의 인영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두 명으로, 한 명은 기괴한 안광을 내뿜는 붉은 장포를 걸친 노인이고 다른 한 명은 8척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키에 흑색 도복을 입은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