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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꽃



1.


칠월의 칠석이 되면 손에 풍등을 든 이들이 저잣거리로 몰려나와 밤하늘에 풍등을 날려 보내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리하여 칠월 칠석의 밤은 하늘이 온통 아름다운 풍등으로 물들었고 어린아이들은 그 진풍경을 보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창문에 매달려 밤하늘만 쳐다보고는 했다.

칠석의 밤에는 풍등을 날리는 것 외에도 또 다른 풍습이 있었는데 서로 눈이 맞은 미혼의 남녀가 자유로이 교합하는 것을 허락해 주는 그런 조금은 난잡한 풍습이었다.

사내가 반한 여인을 향해 정을 나누고 싶다는 눈길을 보내면 여인은 그 사내가 마음에 들면 그가 건네는 창포꽃을 받아 드는 것으로 하룻밤의 교합이 이루어지고, 교합한 다음 날 사내는 여인의 집에 약간의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자신이 그 여인과 관계하였음을 여인의 아비에게 고함으로써 청혼을 하는 것이 절차였다.

그런 방법으로 평소에 혼인을 반대하던 집안의 뜻을 꺾고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이 꽤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칠석날이 되면 과년한 딸을 둔 아비들은 딸자식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만 했고, 딸들은 그런 아비의 눈을 피해 기어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그런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떠들썩한 칠석날이 지나면 부부의 연을 맺는 이들이 혼례식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칠월 칠석의 뒤에는 붉은 홍사의 눈이 내린다는 말까지 있었다.

“아씨. 이렇게 밖에 나와 계신 것을 마님께서 아시면 경을 치십니다.”

풍등이 수놓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홀딱 빼앗긴 은호의 뒤에서 몸종 사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쫓아왔다.

칠석의 밤에는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은호의 부친은 그녀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친이 허락하지 않아도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부친의 반대를 예상하고 한 달 전부터 만들어 놓은 개구멍으로 집을 빠져나온 은호는 지금 칠석의 풍경을 마음껏 만끽하는 중이었다.

부친은 엄격한 성격이라 은호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다.

몸종들을 통해서 말로만 듣던 칠석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풍등으로 물든다는 그 하늘을 직접 보고 싶은 나머지 기어이 탈출을 감행했다.

나중에 부친에게 들켜 혼이 날 땐 나더라도 지금은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며 은호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아씨.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 아씨!”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드는 은호의 뒤에서 그녀의 몸종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아씨! 아씨!”

몸종 사비의 눈에서 순식간에 은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를 어째?! 우리 아씨!”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린다면?

아니면 무뢰한이라도 만난다면?

가장 큰 문제는 무뢰한을 만나 은호가 봉변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아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죄로 자신은 목이 달아날 것이다.

은호의 부친 주 승상은 집안 종들에게는 무자비한 주인이다.

은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집안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씨! 아씨!”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은호를 찾아 사비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나 어디에도 은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

결국 사비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주 잠시 은호를 놓친 결과였다.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아씨…….”

새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떠는 사비의 주위로 그녀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



“사비야?”

사비가 뒤따라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은호가 알아차린 것은 두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이 이상해 돌아봤을 때였다.

“사비야?!”

뒤에 사비가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 은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은호가 칠석의 밤에 저잣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사비 때문이었다.

사비라는 든든한 동행이 있어서 이런 용감한 짓도 시도할 수 있었다.

은호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사비야!”

은호는 돌아가는 길도 모른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건지 무엇 하나 아는 것이 없다.

담장 안에서 고이 자란 귀한 댁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사비야……!”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밀려드는 사람들을 밀쳐 가며 은호가 되돌아갔다.

퍽―!

허둥지둥 사비를 부르며 사람들 속을 헤치고 지나가던 은호의 몸이 누군가와 부딪친 것은 그때였다.

“아…….”

모르는 사람과 부딪친 은호가 사과의 말을 하려고 했다.

“어딜 이렇게 바쁘게 가고 있는 거지?”

“예쁜 아가씨가 일행도 없이 혼자 나왔나 보지?”

은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세 명의 낯선 사내들이었다.

사내들은 은호의 좌우를 가로막고 그녀가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했다.

“칠석의 밤에 혼자 돌아다니다니. 놀아 줄 사내를 찾고 있는 건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가 놀아 주지.”

사내들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은호의 안에 두려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비, 비키거라!”

사내들을 노려보며 비키라 말했지만 그들은 그저 히죽히죽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

“비, 비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소리? 어디 한번 질러 보시지. 여기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그런 곳이란 걸 모르는 걸 보니,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인가 보네.”

사내들은 이런 일이 흔한지 아주 예사스런 표정으로 은호를 놀려 댔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이자들이 나를 희롱합니다!”

은호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은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도와주려는 이들은 더더욱 없었다.

이 사내들이 이 근방에서 유명한 무뢰배들이었기 때문이다.

간섭해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들 도와 달라는 은호의 외침을 외면하고 지나갔다.

“칠석의 밤에는 질펀하게 노는 법이지.”

“돌아가며 사내 맛을 제대로 보여 주지, 아가씨.”

사내들이 던지는 말에 은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곧 네게 혼담이 들어올 것이다. 이 아비가 네 혼처를 위해 노심초사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서 괜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하거라.]

굳이 부친 몰래 집을 빠져나온 이유는 혼례 전 자유로이 누릴 수 있는 오늘이 마지막 칠석의 밤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부친은 은호의 혼처를 찾고 있다.

머잖아 혼처가 정해지면 곧 혼례를 올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자유는 없다.

혼인한 여인은 지아비에게 묶여 집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귀족 부인들은 전부 그렇게 살아간다.

마음대로 밖으로 다닐 수 없고 외출을 한다 하더라도 가마 안에서 얼굴을 비치면 안 되는 것이 법도다.

지금까지도 은호에게 자유는 없었지만 혼례를 올리고 나면 더 엄격하게 자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누려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 여기에서 봉변을 당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안 돼……!’

만약 여기에서 겁탈이라도 당하면 혼담은 전부 깨지게 될 것이다.

몸을 버린 처녀를 어떤 사내가 아내로 삼으려 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부친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 놓아라!”

한 사내가 은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놓아라! 놓아라. 이놈!”

사내에게 손목을 잡힌 은호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외간 사내가 제 손을 잡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놓으라니까!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사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은호를 질질 끌고 갔다.



사내들이 은호를 끌고 간 곳은 으슥하고 구석진 골목이었다.

저 멀리 칠석의 밤을 즐기러 나온 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화려한 불빛이 보였지만 그것은 너무 멀었다.

“꺄아악!”

사내의 손에 붙잡힌 채 끌려온 은호의 몸이 나동그라졌다.

구석으로 처박히며 은호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

쓰러진 채로 은호가 덜덜 떨었다.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입술이 달달 떨리는 것을 보며 사내 중 한 명이 다가앉았다.

“제발…….”

저를 향해 뻗어 오는 우악스런 손을 보며 은호가 애원했다.

“이대로 나를 보내 주면 그대들이 달라는 대로 돈을 줄 것이니…….”

“돈?”

사내가 피식 웃었다.

“돈도 좋지만 지금은 네 속살이 더 궁금한데 어쩌지?”

히죽 웃으며 사내가 은호의 발목을 덥석 붙잡았다.

“아, 안 돼!”

사내의 우악스런 두 손이 은호의 양 발목을 잡아 그녀의 다리를 거칠게 벌렸다.

거친 힘에 다리가 강제로 벌려지며 은호가 그대로 까무러치고 말았다.

겁을 먹은 나머지 혼절한 은호의 위에 올라탄 사내가 그녀의 옷자락을 풀어 헤치고 있을 때,

“헉…….”

옷자락을 벌리던 사내의 손이 멈췄다.

제 목덜미에 서늘한 칼날이 닿은 것이다.